남의 성공을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사람이 음식을 먹고 ‘맛있다’ ‘맛없다’라는 말을 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인간이 다른 동물에게 잡아먹힐 위험이 사라진 때부터가 아닐까 하는 것이 구마 씨의 설이다. 누군가에게 잡아먹힐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음식의 맛 같은 것은 느끼지 못했을 거라는 이야기다. 과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는 나 자신에게도 들어맞는다. 내가 타인의 성공을 기뻐할 수 있게 된 것도 다른 연예인에게 먹힐 염려가 없어진 다음부터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남의 성공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만약 내가 전혀 팔리지 않는 연예인인데도 아야노코지의 성공을 기뻐할 수 있다면 정말 훌륭한 사람일지 모른다. 하지만 만약 내가 뜨지 않았다면 만나서 입으로는 “잘됐다” 정도의 말은 하겠지만, 내심 ‘웃기고 있네. 어째서 나는 못 뜨고 네가 뜨는 거야’ 하고 생각했을 게 뻔하다. . 타인의 성공을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 것 같다.
진정한 우정이란
우정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돈으로 사려고 하는 근성이 잘못됐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애초에 우정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 문제다. 우정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없는 것을 사려고 해서는 안 된다. “네게 곤란한 일이 생기면 내가 꼭 도와줄게. 내가 곤란할 때는 네가 도와줘. 우리는 친구잖아.” 이런 건 우정이 아니다. “네가 곤란하면 나는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곤란할 때 나는 절대로 네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다.” 이런 자세가 옳다. 서로에게 그렇게 생각할 때 비로소 우정이 성립한다. ‘옛날에 나는 너를 도와주었는데 너는 지금 왜 날 도와주지 않는 거야’ 하고 생각한다면, 그런 건 처음부터 우정이 아니다. 자신이 정말로 곤란할 때 친구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짜 우정이다. 요컨대 우정은 내가 저쪽에다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지, 저쪽에서 얻을 수 있는 뭔가가 아니다. 우정이란 상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다.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 노트, 기타노 다케시 지음, 북스코프>
<어저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