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교육은 아내에게 전담시키고 자식들과 좀처럼 대화를 하지 않았다. 부자가 사이좋게 지내는 건 아무래도 어색하다고 할까, 나는 도저히 그러지 못하겠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가까이 하기 어렵고 두려운 정도가 딱 좋다. ‘마이홈 파파(가정을 제일로 치는 사람)’인지 뭔지, 아무튼 언제나 싱글벙글 웃으면서 자식의 마음도 잘 알고 이해심 많은 아버지가 이상적인 아버지상으로 자리 잡은 시절부터 교육이 뭔가 이상해졌다. ‘마이홈 파파’가 아니더라도 아이들 기분은 어른이라면 누구나 안다. 어른들도 누구나 옛날에는 아이였으니, 알고는 있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아버지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것은 가르쳐주지도 않고 뭐든 잘 이해해주는 아버지가 너무 많다. 아버지가 아이에게 아양을 떨어서 어쩌자는 건가. 결국은 자기한테만 귀여울 뿐이지 않은가. 아버지는 아이가 최초로 만나는 인생의 방해꾼이어도 좋다. 아이에게 미움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버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나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전제는 결국 모든 실패는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노력하면 뭐든 이루어진다고 자식을 위하는 척하면서 부모의 체면을 차리는 말을 하지 말고,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재능이 없는 아이에게는 그런 재능이 없다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것은 안된다고 부모가 가르쳐주어야 한다. 그런 말을 하면 아이가 위축되지 않느냐고? 위축되지만 않으면 운동신경 둔한 녀석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나? 아이의 마음이 상처 입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상처 입고 힘들어하다 포기하면 되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려면 노력해야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거라면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아이의 골수에 새겨주도록 하라. 그것이 아버지의 역할이다.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 노트, 기타노 다케시 지음, 북스코프>
<꿩의 바람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