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독일에서 공부를 하던 중 아버지의 부음을 받고 급히 돌아온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에다 아버지 사망 후 두 달도 안되어, 그것도 숙부와 재혼한 어머니 때문에 햄릿은 혼란스럽고 우울하다. 바로 이때 그의 친구 호레이쇼는 죽은 부왕의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식을 전해주고 햄릿은 이 말을 듣자마자 아버지의 죽음에 뭔가 비밀이 숨어 있음을 직감한다.
마침내 햄릿과 만난 유령은 자신이 동생인 클로디어스에게 살해되었음을 알리며 햄릿에게 복수를 부탁한다. 햄릿은 유령의 말대로 복수를 맹세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는’ 중대한 일이기에, 그리고 어머니가 중간에 끼여 있기에, 그리 쉽지가 않다. 햄릿은 우선 세상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미쳐버린 척하기로 한다. 그러나 우발적으로 폴로니어스를 죽이게 되면서 사태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신변에 위협을 느낀 숙부에 의해 영국으로 보내어진다. 그가 없는 사이, 그가 사랑했던 오필리아는 일련의 사태에 충격을 받아 미쳐버리고 결국 물에 빠져 죽고, 오빠인 레어티스는 햄릿에게 복수를 다짐하는데…(요약).
햄릿 덴마크의 왕자. 학식과 용기, 감수성과 지혜,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나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클로디어스 형을 살해하고 왕위와 형수까지 차지한 냉혹한 인물이지만 뛰어난 현실감각과 적응력을
지니고 있다.
거르투르드 햄릿의 어머니. 죽은 남편과 클로디어스, 햄릿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약한 인물이지만
이들에게 각각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인물이다.
오필리아 햄릿이 사랑하는 여인. 자신도 햄릿을 사랑하지만 그의 복수전 와중에 제일 먼저 희생되어 미쳐버린다.
폴로니어스 오필리아의 아버지. 클로디어스의 충복으로 매사에 참견하기를 좋아하고 말이 많다.
레어티스 검술의 달인으로 프랑스에 유학 가 있는 오필리아의 오빠이다. 성질이 급하지만 동생과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유별난 젊은이이다.
호레이쇼 햄릿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친구로 햄릿의 복수 과정을 지켜보며 도와준다.
제1막 고통스러운 운명
세상이 온통 잘못되어 있어. 오, 저주받은 운명이여
내가 그걸 바로 잡기 위해 태어나야 했다니.
막이 열리면 두 명의 경비병이 등장하여 최근 노르웨이의 왕자 포틴브라스의 위협과 이로 인해 국내에서 벌어지는 전쟁준비를 걱정한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이 목격했던 선왕의 유령이 혹시 나라의 위기를 경고하려던 것이 아닌지 두려워한다. 경비병들은 이 소식을 햄릿의 친구인 호레이쇼에게 전하고 이 사태를 걱정하는 세 사람 앞에 다시 유령이 나타난다. 세 사람은 유령에게 말을 걸지만 유령은 아무 말 없이 사라지고 호레이쇼는 이 소식을 햄릿에게 알리기로 한다.
한편 궁정에서는 새로 국왕에 취임한 클로디어스의 축하연이 열리고 있다. 이 축하연은 또한 클로디어스와 거투르드의 결혼을 축하하는 것이기도 한데, 떠들썩한 잔치 분위기 속에 오직 햄릿만이 섞이지 않은 채 이 광경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클로디어스는 새로 즉위한 첫 조치로 노르웨이에 사신을 보내 포틴브라스의 위협을 봉쇄하겠다고 하고, 이어서 프랑스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레어티스의 청을 수락하는 등 국왕으로써 유능하고 능숙하게 국정을 처리한다.
또한 클로디어스는 햄릿이 위텐버그 대학으로 돌아가는 것을 만류하면서 죽은 아버지에 대한 애도는 그만하고 이제 자신 곁에 있으라고 짐짓 다정한 모습을 보인다. 거르투르드까지 이에 합세하여 설득하자 햄릿은 일단 그 명령에 따르겠노라고 대답하지만 혼자 남게 되자 곧 어머니와 숙부,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혐오를 드러낸다. 일차적으로는 아버지가 죽은 지 두 달도 안되어 숙부와 근친상간적인 결혼을 한 어머니에 대한 것이고, 그래서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 Frailty, thy name is woman“라며 여성 모두를 싸잡아 공격하지만, 이차적으로는 죽은 아버지와 클로디어스의 차이, 즉 아름답고 위엄 있는 태양의 신(Hyperion)과 반은 인간이고 반은 짐승인 괴물(satyr)의 차이를 알지 못하고 클로디어스의 지배를 기꺼이 받아들인 온 세상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햄릿이 이처럼 생각하며 독백하고 있을 때 호레이쇼와 경비병들이 들어와 죽은 선왕의 유령에 대해 알려주자 햄릿은 자신 역시 그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레어티스는 프랑스로 떠나기에 앞서서 햄릿의 구애를 두고 여동생 오필리아에게 애정어린 잔소리를 한다. 비록 햄릿이 지금은 오필리아를 사랑할지 몰라도 그는 일국의 왕자의 신분이고, 따라서 결혼이 그의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니 분수를 알아서 현명하게 처신하라는 것이다. 아버지 폴로니어스도 이 견해에 동의하며 조심하라고 하자 오필리아는 다소곳한 딸답게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한다.
한편 궁정에서는 클로디어스의 경축연이 밤을 새워 흥청망청 계속되고 그 경축연에서 멀리 떨어져서 경비병들을 따라 성벽으로 올라간 햄릿은 마침내 선왕의 유령을 만난다. 호레이쇼와 친구들은 햄릿에게 그 유령의 정체를 알 수 없으니 따라가지 말라고 만류하지만 햄릿은 단호하게 그들을 물리치고 유령과 단둘이 호젓한 곳으로 간다.
유령은 자신이 선왕의 유령임을 밝히면서 자신이 회개조차 못하고 갑자기 살해당했기 때문에 천당에 가지 못하고 이렇게 고통받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클로디어스의 발표에서처럼 자신이 낮잠을 자다가 뱀에게 물려 죽은 것이 아니라 바로 그 클로디어스에 의해 독살되었음을 밝힌다. 호시탐탐 왕위와 왕비를 노리던 친동생 클로디어스가 평화롭게 정원에서 낮잠을 자던 자신의 귀에 독을 부어넣었고, 그래서 자신은 보기에도 끔찍한 모습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유령은 햄릿에게 세 가지를 당부한다. 첫째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복수해달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과정에서 ‘네 마음을 더럽히지 말라 taint not thy mind’는 것이며, 세 번째로 어머니는 그냥 두라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아침이 다가와 유령은 고통 속으로 되돌아가고 혼자 남은 햄릿은 절규하며 어머니와 숙부에 대한 증오를 표출한다.
한편 햄릿을 찾아 헤매던 호레이쇼 일행은 햄릿이 무사한 것을 보고 안도하고 햄릿은 이들에게 오늘밤 있던 일을 비밀에 부쳐달라며 자신의 칼에 맹세할 것을 요구한다. 유령과의 만남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햄릿은 아무것도 얘기해주지 않고 단지 앞으로 자신이 혹시 미친 것으로 가장하더라도 놀라지 말며 뭔가 내막을 아는 듯한 내색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이제 햄릿은 고통스럽더라도 복수를 피해갈 수 없는 운명으로 떨어진다.
제2막 복수를 위한 준비
폴로니어스가 아들 레어티스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보낼 정탐꾼 레이놀즈와 얘기하고 있는 중에 오필리아가 놀라 뛰어들어온다. 그녀는 방금 자신의 방에 왔다간 햄릿의 행동에 너무나 놀라고 당황하여 아버지를 찾아온 것이다. 햄릿은 옷이 온통 풀어헤쳐진 채로 와서 아무 말 없이 오필리아의 팔을 잡고는, 자신의 팔 길이 만큼의 거리를 두고 오필리아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다가, 너무나 가여운 얼굴로 깊은 한숨을 쉬고는 팔을 놓아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끝까지 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로 뒷걸음질을 쳐 방을 나갔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폴로니어스는 햄릿의 광기가 오필리아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단정짓고 황급히 왕에게 보고하러 간다.
이제 궁정의 모든 사람들이 햄릿의 광기에 대해 알게 된다. 왕과 왕비는 그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햄릿의 어린시절 친구들인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을 불러들인다. 이들이 왕을 알현하고 있을 때 폴로니어스가 들어와 노르웨이에 갔던 사신들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돌아와서 노르웨이의 위협이 사라졌다는 것, 그 대신 노르웨이의 왕자 포틴브라스가 폴란드와 싸우러 가는 길에 덴마크 영토를 통과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하고 있다고 전한다. 왕은 그 소식에 기뻐하고 게다가 폴로니어스가 햄릿의 광기가 무엇 때문인지를 알아냈다고 하자 더욱 기뻐한다.
하지만 오필리아에 대한 사랑이 광기의 원인이라는 폴로니어스의 말에 왕과 왕비는 미심쩍어하고 거르투르드는 ‘선왕의 죽음과 우리의 성급한 결혼’이 아마도 광기의 원인일 것이라고 비교적 정확하게 지적한다. 어쨌든 이들은 햄릿과 오필리아의 만남을 숨어서 지켜봄으로써 폴로니어스가 내린 진단의 진위를 알아보기로 한다.
한편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들, 길덴스턴과 로젠크란츠를 보고 반가워하던 햄릿은 곧 이들이 왕의 정탐꾼임을 알게 되고 배신감을 느낀다. 이제 덴마크의 궁정은 정탐과 엿듣기가 횡행하는 곳이 되었고 친구들을 비롯하여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전해준 소식, 즉 위텐버그 대학에 있을 때 자신이 매우 좋아했던 순회극단이 덴마크 궁정을 향해 오고 있다는 소식은 잠시나마 햄릿을 매우 기쁘게 한다.
순회극단이 도착하고 햄릿은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한다. 햄릿의 부탁으로 이들은 햄릿이 좋아하는 한 대목인, 트로이의 왕 프리암의 죽음과 그 아내 헤큐바의 슬픔을 암송하고 햄릿은 감동받는다. 햄릿은 이들에게 다음날 저녁 궁정에서 〈곤자고의 암살〉의 공연을 부탁하고 여기에 자신이 쓴 부분을 추가해달라고 은밀하게 당부한다. 이는 클로디어스의 유죄 여부를 알아보기 위한 마지막 시험인 셈인데, 그러면서도 햄릿은 일개 배우들이 남의 슬픔을 이토록 절절하게 표현하는데 비해, 자신은 친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고 있지 못하다는 죄책감을 갖는다. 연극 공연은 클로디어스의 죄를 확인하는 기회가 될 것이고 그것이 확인되면 자신은 바로 복수에 들어가겠다고 다짐한다.
제3막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
길덴스턴과 로젠크란츠는 햄릿의 광기를 ‘책략적인 광기 a crafty madness’라고 부르며 햄릿이 자신들을 의도적으로 피하기 때문에 그의 진의를 알아내기 어렵다고 보고한다. 이에 더욱 의심을 갖게 된 클로디어스는 햄릿을 미치게 만든 것이 과연 오필리아와의 사랑인지 의심하고 이를 알아보기 위해 폴로니어스와 함께 숨어서 햄릿과 오필리아의 만남을 지켜보기로 한다. 이를 알지 못하는 햄릿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유명한 독백을 하며 등장하여, 이 모진 세상을 자살로 끝내고 싶은 충동과 그러나 그렇게 죽었을 경우 사후 세계가 어떨지 모르는데서 오는 불안감을 술회하면서 최근 아버지의 복수를 둘러싼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한다. 그러던 중 혼자 서성거리는 오필리아를 보고 처음에는 반갑게 인사하지만 곧 엉뚱하고 잔인한 말로 그녀에게 상처를 입힌다.
햄릿은 오필리아가 돌려주려는 자신의 편지와 선물들을 거부하면서 자신이 보낸 적이 없다고 말하고, 오필리아에게 ‘honest’하냐고 묻는다. ‘honest’는 정직하다는 의미와 순결하다는 의미를 다 갖고 있는 단어이니 햄릿은 오필리아에게 이 두 가지를 다 묻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나는 그대를 정말 사랑했지 I did love you once."라고 했다가 곧 이어 “그대를 사랑하지 않아 I loved you not" 부인하면서, 오필리아에게 ”수녀원에 가라 Get thee to a nunnery“고 쏘아붙인다. 그리고 햄릿은 여자들의 화장과 음란함에 대해 비난을 퍼부으며 그래서 “더 이상 결혼을 해서는 안된다”고 일갈하면서 다시 한번 오필리아에게 “수녀원에 들어가라”며 퇴장해버린다.
혼자 남겨진 오필리아는 ‘궁정인, 군인, 학자’로서 덴마크의 ‘희망이자 장미꽃’이었던 햄릿이 이렇게 미쳐버린 것을 보고 절망하며, 한때나마 그의 사랑을 받았던 여성으로서 햄릿의 몰락한 모습을 보게 된 자신의 운명에 대해 비통해한다. 숨어서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본 왕과 폴로니어스에게 오필리아의 비탄은 관심 밖이고, 클로디어스는 햄릿의 광기가 오필리아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보기에는 햄릿의 행동이 미친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으므로 그는 햄릿으로 인해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 클로디어스는 햄릿을 영국으로 보내 자신의 곁에서 멀리 떨어뜨려놓겠다고 하고, 폴로니어스는 마지막으로 거르투르드에게 햄릿과 얘기를 해보게 해서 수상한 점이 있으면 그때 영국으로 보내자고 제안한다.
한편 햄릿은 순회 극단의 배우들과 만난 자리에서 연극과 연기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호레이쇼에게 연극이 공연되는 도중에 클로디어스를 잘 관찰하라고 한다. 클로디어스가 연극을 보고 어떤 식으로든 죄책감을 드러낸다면 유령의 말이 맞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흔히 말하듯 유령이 사악한 존재라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극이 막을 올리면서 왕과 왕비를 비롯한 궁정의 여러 신하들과 오필리아가 공연을 관람하러 들어오고 햄릿은 오필리아의 무릎을 베고 누워 아버지 장례 후 두 달도 안되어 결혼한 어머니를 빗대면서 여성 일반의 헤픈 본성에 대해 빈정거린다.
햄릿이 무대에 올린 극은 의미심장하게도 〈쥐덫〉이라는 제목이고 그 내용은 햄릿의 아버지와 어머니, 숙부의 관계를 극화한 것이다. 극 중 왕비가 왕에게 혹시 왕이 죽더라도 자신은 절대로 재혼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의 한결같은 사랑을 강조하자 거르투르드는 “저 여자는 지나치게 단언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극 중 극에서 왕의 동생이 잠든 왕의 귀에 독을 부어넣는 장면이 나오자 클로디어스는 벌떡 일어나 퇴장해버리고 공연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뒤에 남은 호레이쇼와 햄릿은 왕의 반응에 대한 각자의 관찰을 맞추어보며 유령의 말이 맞다는 것을 확신한다.
이때 등장한 길덴스턴과 로젠크란츠는 이번 공연 건으로 왕비가 매우 상심하고 있음을 알리고 왕비가 햄릿을 불렀다는 것을 알린다. 이어서 이들은 햄릿이 자신들을 멀리하며 속을 털어놓지 않는 것에 대한 섭섭함을 표현하고 그러자 햄릿은 이들에게 파이프를 불어보라면서 하물며 하찮은 파이프도 제대로 불기가 어렵거늘 감히 햄릿 자신을 파이프처럼 마음대로 불어대며 비밀을 헤집어내려 하느냐고 비난한다. 이들을 내보내고 혼자 남은 햄릿은 이제 자신은 뜨거운 피라도 마실 수 있다고 결의를 다지면서 어머니에게 잔인한 말은 하겠지만 실제로 단도를 들이대지는 않겠다며 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자식으로서의 도리 사이에서 갈등한다.
클로디어스는 이제 햄릿이 자신의 죄를 알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고 더욱 경계한다. 그는 햄릿이 위험인물이 되었다면서 로젠크란츠과 길덴스턴에게 햄릿을 수행하여 영국으로 가라고 한다. 폴로니어스가 들어와 햄릿이 왕비의 처소에 갔음을 알리고 자신이 숨어서 그 대화를 엿듣겠노라고 한다. 혼자 남게 된 클로디어스는 자신의 죄에서 나는 악취가 하늘까지 닿는다면서 형을 죽인 것에 대한 회한과 죄책감을 드러낸다. 기도라도 해서 용서받고 싶지만 자신은 그 죄의 결과인 왕관과 왕비를 차지하고 있어서 회개할 수도 없다며 괴로워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무릎꿇고 기도하고 있을 때 어머니의 처소로 가던 햄릿이 그 옆을 지나간다. 햄릿은 지금이 복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알지만 기도하고 있는 클로디어스를 처치할 경우 그는 회개를 했기 때문에 천당에 갈 것이고, 이는 미처 회개도 못한 채 죽어서 연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정당한 복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클로디어스의 육체뿐 아니라 영혼까지 처벌하고 싶은 것이다.
왕비의 처소에서 폴로니어스는 장막 뒤에 숨어 햄릿과 거르투르드의 대화를 엿듣고 있다. 햄릿은 ‘아버지‘(클로디어스)를 화나게 한 것에 대해 야단치는 거르투르드에게 어머니야말로 진짜 아버지(햄릿의 아버지)를 화나게 했다면서 어머니의 내면을 들여다보라면서 그녀를 억지로 붙잡고 거울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 과정에서 폴로니어스가 소리를 지르자 햄릿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장막 뒤에 있는 인물을 단번에 칼로 벤다. 햄릿은 죽어 있는 폴로니어스를 내려다보며 클로디어스인 줄 알고 죽였다며 전혀 가책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거르투르드를 계속 다그치면서 거르투르드가 저지른 죄 때문에 이 세상에 도덕이나 미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도대체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기에 이런 추궁을 받아야하느냐고 항변하는 거르투르드에게 햄릿은 아버지의 얼굴과 클로디어스의 얼굴 그림을 나란히 보여주며 이 두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고 아버지에게서 클로디어스에게로 간 것, 즉 아버지의 미덕과 고결함, 용기를 클로디어스의 비열함과 바꾼 것이 거르투르드의 죄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성욕에 눈이 먼 때문이라면서 여성 일반의 과도한 성욕을 성토한다.
거르투르드는 햄릿의 말이 단도처럼 귀를 찌른다며 괴로워하고 흥분한 햄릿은 계속해서 심한 말로 거르투르드를 다그친다. 바로 이때 유령이 다시 나타나 더 이상 어머니를 괴롭히지 말라고 하는데, 유령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거르투르드는 유령에게 대꾸하는 햄릿이 정말 미쳤다고 생각한다. 유령이 사라진 후 햄릿은 누그러진 태도로 어머니를 대하면서 이제부터라도 숙부의 침대를 피하고 클로디어스에게는 자신이 계속 미친 것으로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제 분노를 가라앉힌 햄릿은 폴로니어스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자신의 경솔했던 행동을 뉘우치고, 일이 이렇게 된 것은 “하늘이, 나를 통해 이 자를 벌하고 이 자를 통해 나를 벌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나쁘게 시작되었으니 이제 더 나쁜 일이 뒤에 남아 있다”고 한다. 햄릿은 폴로니어스의 죽음으로 시작된 일련의 사건들, 즉 그의 복수의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자신이 치루어야 할 대가 또한 클 것임을 미리 짐작한다. 그러면서 햄릿은 처음으로 거르투르드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인사를 하고 시체를 끌고 나간다.
제4막 나쁘게 시작되었으니 이제 더 나쁜 일만 남았다
거르투르드는 햄릿이 시킨 대로 그가 정말 미쳤다고 클로디어스에게 얘기하고 클로디어스는 햄릿에게 살해당한 사람이 폴로니어스가 아닌 왕 자신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두려워한다. 또한 그는 폴로니어스의 살해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올까 봐 걱정하면서 햄릿을 멀리 떠나보내야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힌다.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은 폴로니어스의 시체가 어디 있는지를 햄릿에게 묻지만 햄릿은 이리저리 피하며 똑바로 대답해주지 않는다. 클로디어스는 국민들이 햄릿을 사랑하기 때문에 햄릿이 살인을 저질렀는데도 그를 함부로 처벌할 수 없다면서 햄릿을 불러 폴로니어스의 시체를 어떻게 했는지 묻는다. 햄릿은 수수께끼같은 말만 하며 대답하지 않다가 마침내 계단에 있다고 대답한다. 클로디어스는 햄릿의 안전을 위해 그를 멀리 보낼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영국으로 떠날 준비를 서두르라고 한다. 햄릿은 선선히 그러겠다고 하면서 거르투르드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클로디어스는 혼자 남게 되자 햄릿이 영국에 닿자마자 처형되도록 조치를 취했음을 밝히고 햄릿이 죽을 때까지 자신은 결코 안심할 수 없다고 한다.
한편 항구를 향해 가던 햄릿 일행은 폴란드와 싸우기 위해 덴마크 영토를 지나가는 포틴브라스의 군대와 만나게 된다. 이들이 싸우는 이유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달걀 껍질’만한 조그만 땅덩이 때문인데 햄릿은 이처럼 아무 실익도 없이 단지 명예 때문에 수만 명이 사지로 나가는 것을 보며 한편으로는 경탄하고 한편으로는 그 덧없음을 생각한다. 그러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어머니는 더럽혀졌는데도 행동을 취하지 않고 참고만 있다면서 다시금 복수의 결의를 다진다.
햄릿이 떠난 후 오필리아는 아버지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 미쳐버리고 거르트루드는 가슴아파하면서 이로 인해 어떤 나쁜 결과가 생길지 걱정한다. 거르트루드를 찾아온 오필리아는 왕비의 질문에 뜻이 안 맞는 대답을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의미가 정확히 연결되지는 않지만 그녀의 노래들은 대부분 죽은 애인, 혹은 여자를 버린 무정한 남자에 대한 것이어서 그녀가 직접적으로는 아버지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고 간접적으로는 햄릿의 변심에 상처를 입었음을 알 수 있다. 뒤늦게 들어온 클로디어스는 이 광경에 충격을 받고 불행은 절대로 혼자 오지 않는 법이라면서 폴로니어스의 살해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과 그로 인해 흉흉해진 민심, 게다가 은밀하게 프랑스에서 돌아와 복수를 벼르고 있는 레어티스를 걱정한다.
바로 이때 한떼의 군중을 몰고 궁정으로 쳐들어온 레어티스가 경비병들을 물리치고 문을 부수고 들어온다. 군중들은 레어티스를 왕으로 하자고 떠들어대고 레어티스는 신하의 의무나 충성의 맹세 따위는 지금 자신에게 아무 의미도 없다면서 아버지의 살해 경위를 밝히라고 사납게 들이댄다. 클로디어스의 안전을 걱정하여 레어티스를 붙잡고 있는 거르투르드에게 레어티스를 놓아주라고 하면서 클로디어스는 침착하게 레어티스를 설득한다. 자신은 폴로니어스의 죽음과 무관하며 오히려 그 일에 레어티스 못지않게 상심하고 있다는 것과 폴로니어스의 살해범은 따로 있으니 그 복수를 도와주겠다는 것이 그의 설득의 요지이다. 단순한 레어티스는 그 말에 쉽게 넘어가고 그게 사실이라면 클로디어스의 말대로 따르겠다고 한다. 바로 이때 오필리아가 들어와 오빠도 알아보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꽃을 나누어주면서 다시 아버지의 죽음을 노래한다. 이 광경을 본 레어티스는 그토록 예쁘고 착하던 ‘5월의 장미’ 같던 동생이 이렇게 미쳐버린 것을 보고 가슴이 무너지는 듯 마음 아파하면서 더욱더 복수를 맹세한다.
한편 몇 명의 선원들이 호레이쇼를 찾아와 햄릿의 편지를 전해준다. 영국으로 향하던 길에 그가 탄 배가 해적의 습격을 받았고 그들과 싸우는 와중에 햄릿이 단신으로 해적의 배에 옮겨타게 되었다는 것, 그들이 보상을 바라고 햄릿을 정중히 대우하고 있다는 것, 그러니 이들을 왕에게 데려가 보상을 해주도록 하라는 것이 그 편지의 요지이고 그 말미에 호레이쇼가 들으면 깜짝 놀랄 얘기가 많이 있다면서 속히 자신에게 오라고 쓰여져 있다. 호레이쇼는 이 선원들을 왕에게 데려간다.
클로디어스는 레어티스를 설득하여 폴로니어스를 죽인 것이 햄릿이고 그가 클로디어스 자신의 목숨까지 노리고 있다고 믿게 한다. 왜 햄릿을 처벌하지 않느냐는 레어티스의 말에 그는 첫째는 거르트루드가 햄릿을 보는 낙으로 사는데 자신은 거르트루드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국민들이 햄릿을 너무나 사랑해서 섣불리 햄릿을 처벌하려다가는 국민들의 분노만 살 뿐이라고 얘기한다. 바로 이때 햄릿이 보낸 편지가 도착하고 클로디어스는 햄릿이 영국에서 죽지 않고 이렇게 무사히 돌아온 것에 놀란다. 레어티스를 이용하여 햄릿을 처치하려는 클로디어스는 레어티스의 복수심을 다시 한번 자극하면서 사고사처럼 햄릿을 죽일 계책을 말해준다.
햄릿이 평소에 늘 레어티스의 검술을 부러워했으니 햄릿을 부추겨 레어티스와 검술 시합을 하게 만들면, 햄릿은 천성이 관대하고 의심이 없어서 자세히 살피지 않을 테니 햄릿에게는 끝이 뭉툭한 연습용 칼을 쓰게 하고 레어티스는 실전용 칼을 사용해 햄릿을 찔러 죽이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레어티스는 한술 더 떠서 자신의 칼끝에 독을 묻히겠다고 하고, 클로디어스는 일을 확실히 하기 위해 햄릿에게 마시게 할 독배를 준비하겠다고 한다. 이때 거르트루드가 들어와 오필리아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슬픈 소식을 알린다. 화환을 만들려고 시냇가 나뭇가지에 매달렸다가 물에 빠졌는데 옷자락이 물 위에 퍼져서 마치 인어공주 같았던 그녀는 슬픈 노래를 부르면서 물 밑으로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레어티스는 통곡하며 비탄에 잠겨 나가고, 흥분한 레어티스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불안한 클로디어스는 황급히 그를 따라 나간다.
제5막 나, 덴마크의 왕, 햄릿
묘지에서 두 명의 인부가 새 무덤을 파고 있다. 물에 빠져 자살한 시체라 원래는 기독교식 장례를 치를 수 없겠지만 귀족 여자여서 장례식이 허용되었다는 것이다. 인부들이 음산한 농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을 때 호레이쇼와 햄릿이 그 옆을 지나간다. 파헤쳐진 해골들을 보면서 햄릿은 인생의 덧없음에 대해 생각하고 인부와 여러가지 얘기를 나눈다. 인부가 내던진 해골이 유명한 광대 요릭의 것임을 알고 햄릿은 어린 시절 요릭이 놀아주던 것을 기억하며 감상에 젖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결국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는 죽음에 대해 호레이쇼와 대화를 나눈다.
이때 왕과 왕비, 그 밖의 인물들이 장례행렬을 이끌고 다가오는데, 아직 오필리아가 죽은 것을 모르는 햄릿은 누구의 장례식이 이렇게 초라할까 궁금해한다. 레어티스는 오필리아의 무덤에서는 제비꽃이 피어날 것이라면서 의심스러운 죽음이라는 이유로 정식 장례식을 거부하는 사제를 비난한다. 햄릿은 그제서야 죽은 사람이 오필리아라는 것을 알게 된다. 거르트루드는 관 위에 꽃을 뿌리면서 자신이 오필리아와 햄릿이 결혼하기를 바라고 있었다며 슬퍼한다. 슬픔을 이기지 못한 레어티스는 여동생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안아보겠다면서 무덤 속으로 뛰어들고 아예 자기까지 함께 묻으라고 소리친다.
바로 이때 숨어 있던 햄릿이 나서면서 감히 누가 그렇게 요란스레 슬픔을 떠벌리느냐며 레어티스보다 더 슬퍼할 사람은 바로 “나, 덴마크의 왕, 햄릿”이라고 외치며 무덤으로 뛰어든다. 햄릿이 덴마크의 적법한 왕임을 주장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레어티스와 햄릿은 무덤 안에서 싸움을 벌이고 사람들이 달려들어 두 사람을 떼어놓는다. 햄릿은 자신도 오필리아를 사랑했다면서 레어티스 같은 오빠가 몇만 명이라도 자신만큼 그녀를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햄릿이 나간 후 클로디어스는 레어티스에게 어젯밤의 대화를 상기시키고 곧 복수할 기회를 만들어주겠노라고 한다.
햄릿은 호레이쇼에게 세상에는 ‘하늘의 뜻 divinity’이라는 것이 있어서 인력으로는 안되는 일들을 종종 해결해준다면서, 영국으로 가는 배 안에서 자신의 처형을 명령하는 클로디어스의 편지를 발견한 일과, 마침 자신이 덴마크 왕의 옥새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처형 대상을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으로 바꾼 편지를 써서 바꿔치기한 것을 얘기해준다. 그러면서 영국에서 사신이 와서 모든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의 시간은 자기 것이라며 그 사이에 클로디어스를 처치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레어티스에게는 자신과 같은 처지(아버지가 살해된)가 된 것에 대해 미안해한다.
이때 신하가 들어와 왕이 레어티스와 햄릿의 검술시합을 제안하고 상당한 상까지 걸었다고 전한다. 질 것이라며 만류하는 호레이쇼에게 햄릿은 자기가 그동안 많은 훈련을 했으니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든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에도 신의 섭리가 작용하는 것이니 언제 죽든,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담담하고 준비된 태도를 보인다.
검술시합이 시작되고 햄릿은 레어티스를 “형제”라고 부르면서 자신이 저지른 잘못들은 과거의 광기 탓이니 용서해달라고 진지하게 말한다. 레어티스는 이 사과를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명예를 걸고 검술시합은 해야겠다고 대답한다. 시합이 시작되고 햄릿이 우세해진다. 불안해진 왕은 햄릿에게 독배를 권하는데 왕비가 그 잔을 대신 마신다. 레어티스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독이 묻은 칼로 햄릿을 찌르고 드잡이의 와중에서 칼이 바뀌면서 자신도 그 칼에 찔린다.
왕비가 독을 먹었다며 쓰러지자 햄릿은 암살자를 찾아내겠다며 문을 잠그라고 하고, 죽어가는 레어티스는 클로디어스의 음모를 모두 밝힌다. 햄릿은 독 묻은 칼로 클로디어스를 찌르고 클로디어스는 죽는다. 레어티스 역시 마지막 힘을 모아 햄릿에게 용서를 교환하자고 하고는 죽는다. 이처럼 모두가 죽어서 쓰러진 궁정에서 햄릿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느낀다. 그는 자신을 따라 죽으려는 호레이쇼를 만류하면서 살아남아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이름을 깨끗하게 해달라고 한다. 이때 멀리서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포틴브라스 군대의 행진나팔 소리가 들린다. 햄릿은 덴마크의 왕위를 포틴브라스에게 양도하며 “나머지는 침묵에 맡긴다”며 마침내 눈을 감는다. 뒤늦게 도착한 영국의 사신들과 포틴브라스는 이 학살의 현장을 보고 경악한다.
호레이쇼는 우선 시체들을 잘 모실 것을 부탁하고 그후 이 모든 비극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말하겠다고 한다. 포틴브라스는 자신에게 떨어진 이 행운을 슬픈 마음으로 받겠다면서 햄릿이 살아 있었으면 가장 좋은 왕이 되었을 것이니 ‘군인’의 장례답게 햄릿을 모시라고 한다. 일동은 시체들을 운구하면서 대포소리와 함께 퇴장한다.
▣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복수극의 전통에 속한다. 복수극은 16세기 말, 17세기 초 영국에서 크게 유행했던 장르로서, 고대 로마의 비극작가인 세네카의 영향을 받았다. 이들 복수극들은 대부분 5막으로 이루어져 있고, 센세이셔널한 장면이나 대사들이 많이 있으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아들이, 혹은 아들의 죽음에 대해 아버지가 복수하고, 죽은 사람의 유령이 나타나 사실의 전모를 알려주며, 복수를 쉽게 하기 위해 광기를 가장하는 등, 공통된 장치와 문법을 가지고 있다.
《햄릿》은 이 같은 복수극의 문법과 관습을 따르면서도 여타의 복수극들과는 구별되는 품격과 감동을 주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주인공 햄릿의 존재 때문이다. 햄릿은 그의 유명한 독백들에서 알 수 있듯이 생각이 많고 사려깊은 사람이면서도 영국으로 향하는 배에서의 활약에서 알 수 있듯이 필요할 때는 신속하게 행동하는 추진력과 용기를 가지고 있다. 또한 극중 다른 인물들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는 판단력의 소유자면서 그를 죽이려 하는 클로디어스도 인정하듯이 정직하고 명예로운 인물이다. 그는 극중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심지어 폴로니어스를 살해했는데도 왕이 함부로 처벌할 수 없을 만큼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젊은 왕자’, 즉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나 아직은 그것이 잠재력으로만 남아 있는 인물이다. 3막 1장에 나온 오필리아의 대사는 햄릿의 잠재력을 가장 잘 집약해준다.
오, 그 고귀한 마음이 이렇게 무너지시다니!
궁정인의 말이고, 군인의 칼이며, 학자의 눈과 같은 분이었는데,
이 나라의 희망이자 장미꽃 같은 분이셨는데.
유행이 거울로 삼고, 예법을 만들어내시던 분인데.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던 분이었는데, 이렇게 무너지시다니!
O, what a noble mind is here o'erthrown!
The courtier's, soldier's, scholar's, eye, tongue, sword,
Th'expectancy and rose of the fair state,
The glass of fashion and the mould of form,
Th'observ'd of all observers, quite, quite down!
《햄릿》의 비극은 이렇게 아름다운 잠재력을 가진 젊은 왕자가 복수의 운명에 휘말려 자신의 잠재력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너무 이른 죽음을 맞는 것에 있다. 그러나 그 복수가 단지 아버지의 살해자를 죽이는 사적 차원의 복수가 아니라 잘못된 세상을 바로 잡는 공적 차원의 복수이고, 그 복수를 하기까지 많은 갈등과 회의 끝에 일정한 깨달음과 성장을 이루어냈기에, 햄릿의 죽음은 무의미한 희생이 아니라 비극적인 깊이를 가진 죽음으로 승화된다.
《햄릿》은 1599년에서 1601년 사이에 쓰여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때는 엘리자베스 여왕 말기로서 여왕의 노쇠에다가 불안한 국내외 정세, 여기에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은 데서 오는 불안까지 겹쳐 사회적으로 불안감과 위기감이 팽배해 있었다.《햄릿》은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전반적으로 어둡고 암울한 세계를 그린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덴마크는 서로간의 정탐과 엿듣기가 삶의 방식인 곳이다. 폴로니어스는 아들에게 정탐꾼을 보내고, 클로디어스는 햄릿에게 정탐꾼을 붙이며, 거르투르드와 아들 햄릿의 내밀한 대화는 폴로니어스가 엿듣는다. 이곳에서는 햄릿의 어린시절 친구들인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조차도 출세를 위하여 햄릿을 배신하고, 햄릿이 사랑했던 유일한 사람인 오필리아도 햄릿의 광기의 진위를 알아보기 위하여 미끼로 ‘풀어놓아’지며, 훌륭했던 부왕의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도 시류와 권력을 좇는 사람들은 다투어 클로디어스의 초상화를 사면서 클로디어스의 지배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덴마크는 이제 ‘잡초만이 가득한 정원unweeded garden‘이 되어버린 것이다.
햄릿이 실행해야 하는 복수는 바로 이런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는 일이다. 1막 5장에서 햄릿은 유령을 만나 아버지가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복수를 맹세한 후 다음과 같이 독백한다.
“세상이 온통 잘못되어 있어. 오, 저주받은 운명이여,
그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태어난 것이 바로 나였다니.
The time is out of joint. O cursed spite,
That ever I was born to set it right.“
처음부터 햄릿은 자신의 복수가 단지 아버지의 살해범을 죽이는 개인적인 차원의 복수가 아니라, 아버지가 죽고 숙부가 왕이 됨으로써 초래된 혼란과 부패를 척결하는 공적 차원의 복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알고 있었다.
복수라는 숙명을 받아들인 후 햄릿이 첫번째로 한 일은 오필리아를 멀리하는 것이었다. 2막 1장에서 오필리아를 찾아와 한 팔로 그녀의 팔을 붙잡고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한숨을 꺼지게 쉬면서 눈을 그녀에게 고정시킨채 뒷걸음질쳐 나갔다는 햄릿의 행동은, 일차적으로는 광기를 가장하여 클로디어스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을 속이려는 것이지만 그보다 중요하게는 그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성인 오필리아에게 작별을 고하는 의식으로 이해된다. 거짓과 정탐이 횡행하는 덴마크의 세계에서 오필리아는 유일하게 건강하고 긍정적인 인물이다. 그런 그녀를 햄릿이 제일 먼저 끊어낸다는 것은, 복수를 위해 자신의 삶에서 그녀가 상징했던 삶의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포기한 것이고, 이는 오필리아뿐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 있는 아름다움까지 도려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후 3막 1장에서 오필리아에게 심하게 대하며 “수녀원에나 가라”고 되풀이해 윽박지르는 것은 거르투르드로 인해 여성 일반에게 갖게 된 여성혐오가 오필리아에게까지 투사되어 그녀가 필연적으로 겪게 될 성적 타락을 미리 방지하라는 의미로, 햄릿이 오필리아에게 주는 마지막 충고일 것이다. 그러나 자기통제를 잘하는 인물인 햄릿이 이토록 심하게 감정에 휩쓸려 필요 이상으로 심하게 구는 것은, 역으로 오필리아가 그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며 그가 그녀를 포기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입혔는지를 반증한다.
사실 오필리아뿐 아니라 거르투르드 역시 햄릿에게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아버지가 죽은 지 두 달도 안되어 거르투르드가 클로디어스와 재혼한 것은, 아버지가 지배하던 세계가 클로디어스가 지배하는 세계로 타락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위다. 햄릿이 보기에는 그것은 이 ‘잘못된 세상’의 축소판으로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집약한 것이었지만, 아버지의 유령도 “어머니는 그냥 두라”고 했고 햄릿 역시 어머니를 해칠 수는 없었기에 어떤 식으로든 어머니와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나서야 제대로 복수에 착수할 수 있었다. 3막 4장에서 어머니와의 담판을 통해 숙부의 침대를 피하라고 하고 나서야 햄릿은 눈에 띄게 안정된 모습으로 자신의 복수에 전념할 수 있게 된다.
이후 5막에서 영국에서 돌아온 햄릿은 이전과는 다른 자신감과 담담함을 보인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비하하거나 조급해하지 않고 훨씬 달관한 자세로 때를 기다린다. 그래서 마침내 오필리아의 무덤에서 슬퍼할 사람은 “바로 나, 덴마크의 왕, 햄릿 This is I, Hamlet the Dane."이라고 당당하게 외칠 때의 햄릿은 스스로를 왕이라고 칭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덴마크의 진정한 왕으로 이 병든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결국 마지막 장에서 햄릿은 클로디어스를 죽이면서 스스로도 죽지만, 자신을 희생해 새로운 질서를 탄생시킨다. 또한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복수의 의미에 대해 힘든 깨달음을 얻었기에, 햄릿의 죽음은 무의미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미처 피어나지도 못한 그의 무한한 잠재력을 생각할 때, 그리고 그의 사후 나라를 물려받을 포틴브라스가 명예롭기는 하지만 햄릿과 비견할 때 훨씬 못한 인물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햄릿의 죽음은 여전히 안타까운 비극으로 남는다.
<”햄릿(Hamlet, Prince of Denmark)“에서 일부 요약 발췌,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
▣ 저 자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
가장 진부하면서 가장 참신한 작품들 속에 인간성의 모든 것, 영구불변의 진리를 담다,
누가 뭐라든,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세계 최고의 극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쓴 37편의 드라마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형태로 각색되어 TV, 영화, 연극 무대에 올려지고 있고, 챨스 램 남매가 각색한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들》을 포함, 독자에 따라 그 내용과 수준을 달리하는 책들이 계속해서 쏟아져나오고 있는 실정이어서, 그의 드라마 중 몇 편의 내용은 세계각국의 남녀노소에게 진부하리만치 친숙하다.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애틋한 사랑과 비극적인 죽음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나 정작 셰익스피어가 어떠한 삶을 살았고, 자신을 둘러싼 당대 문제들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졌는지를 말해주는 직접적인 자료는 거의 없다. 단지 그가 남긴 작품들을 통해, 근대의 탄생이라는 엄청난 역사의 격변기를 살았던 그가, 자신을 휘감고 도도히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를 알아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삶에 대한 단서가 될 최초의 기록은 1564년 4월 26일의 세례 기록이다. 영국의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소읍 스트래트포트 온 에이븐에 있는 성삼위일체 교회는, 존 셰익스피어와 메리 아든 사이의 3남으로 태어난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1564년 4월 26일 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버지가 마을의 읍장을 지낼 정도의 유지였으므로 셰익스피어는 상당히 풍족한 어린시절을 보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마을의 문법학교를 다녔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다음으로 남아 있는 기록은 결혼에 관한 것. 1582년 11월 27일 당시 18세였던 셰익스피어는 자신보다 8년 연상이었던 앤 헤서웨이와의 결혼허가서를 발부받았는데, 세 번의 결혼예고 후에야 결혼이 이루어지던 일반적인 관례와는 달리 급하게 허가서를 발부받았다는 사실과 신부와 신랑의 나이차이가 많이 나며 이들 부부의 첫딸 수잔나가 결혼 후 6개월 만에 태어났다는 것,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런던에서 활동한 십수년 간 두 사람이 떨어져 살았다는 사실 등등, 그의 결혼 생활은 후대인들의 온갖 상상의 근원이 되었다. 이들 부부는 2년 후 햄넷과 주디스라는 쌍둥이 남매를 얻게 된다. 이때부터 셰익스피어가 런던의 배우 겸 극작가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 1592년까지,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 셰익스피어의생애와작품
1564 4월 26일, 영국 스트래트포드 온 에이븐에 있는 성삼위일체 교회에서 존 셰익스피어와 메리 아든의 아들로 세례를 받다.
▣ 글쓴이 이미영
천안대학교 영어과 교수.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 〈Shakespeare의 희극과 비극에 나타난 여성상 연구 : 강한 여성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햄릿과 오펠리아,18세기 유화, 루브르 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