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노동일의 제정은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수세기에 걸친 투쟁의 결과다. 우리의 노동자는 생산과정에 들어갈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생산과정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래가 완결된 뒤 노동자는 ‘자유로운 행위자’가 결코 아니었다는 것, 그가 자유롭게 자기의 노동력을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은 그가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판매해야만 하는 기간이라는 것, 사실상 흡혈귀는 “착취할 수 있는 한 조각의 근육, 한 가닥의 힘줄, 한 방울의 피라도 남아 있는 한”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노동자들은 자기들을 괴롭히는 뱀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자기 자신의 자본과의 자발적인 계약에 의해 자기 자신과 자기의 가족을 죽음과 노예상태로 팔아넘기는 것을 방지해 줄 하나의 법률(즉, 아주 강력한 사회적 장벽)을 제정하도록 하나의 계급으로서 강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계에 의해 축출되는 노동자들에 대한 보상이론(補償理論)
많은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노동자들을 축출하는 모든 기계들이 이 축출되는 노동자들을 취업시킬 만한 자본(資本)을 축적하는 동시에 반드시 노동자들을 생활수단으로부터 유리(遊離: set free)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사실은 기계에 의해 작업장에서 쫓겨나는 노동자들은 노동시장(勞動市場)으로 내쫓기며 자본가에 의해 착취될 수 있는 노동력의 수를 증가시킬 뿐이다. 기계 그 자체는 노동시간을 단축시키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노동시간을 연장시키며, 기계 그 자체는 노동을 경감시키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노동강도를 높이며, 기계 그 자체는 자연력에 대한 인간의 승리이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인간을 자연력의 노예로 만들며, 기계 그 자체는 생산자의 부를 증대시키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생산자를 빈민으로 만든다.
성과급제 임금
시간급제 임금이 노동력의 가치의 전환된 형태인 것과 마찬가지로 성과급제 임금(成果給制 賃金)은 시간급제 임금의 전환된 형태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노동시간 자체의 가격은 결국 하루 노동의 가치=노동력의 하루의 가치라는 방정식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성과급제 임금은 시간급제 임금의 변형된 형태이며 임금지불의 형태상의 차이는 임금의 본질을 전혀 변경시키지 않는다. 성과급제 임금은 노동의 질을 통제할 수 있고, 노동강도를 강화할 수 있으며, 더 큰 일당을 벌기 위해 노동자가 스스로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노동에 대한 감독이 필요 없게 되며, 노동자들 상호간의 경쟁으로 인해 성과급 수준 그 자체가 인하되기 때문에 자본가에게 매우 유리한 임금 형태이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임금형태이다.
<“자본론(Capital : A Critical Analysis of Capitalist Production)”에서 일부 요약 발췌, 칼 마르크스 지음 >
『자본론』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자본주의가 영구불멸하다든가 가장 좋은 체제라는 부르주아적 지식인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있다. 따라서 일반 대중이 자본주의체제 아래에서 고통과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자본주의를 개선하거나 변혁할 수 있는 지름길을 찾을 수 있도록 『자본론』을 반드시 읽어야 할 것이다. - 칼 마르크스 지음 -
▣ 저자 칼 마르크스(1818~1883)
독일의 라인주(州) 트리어 출생의 공산주의자ㆍ혁명가ㆍ경제학자. 유대인 그리스도교 가정의 7남매 중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변호사로 자유사상을 지닌 계몽주의파 인물이었고, 어머니는 네덜란드의 귀족 출신이었다. 자유롭고 교양 있는 가정에서 성장하여 1830~1835년 트리어김나지움(고등학교)에서 공부한 다음, 1835년 본대학에 입학하여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ㆍ미술사 등 인문계 수업을 받았다. 1년 후 본을 떠나 1836년 베를린대학교에 입학하여 법률ㆍ역사ㆍ철학을 공부하였다.
마르크스는 1842년 1월 새로 창간된 급진적 반정부신문인 『라인 신문』에 기고를 시작하여 그해 10월에 신문편집장이 되었으나, 여러 현실문제를 취급하는 과정에서 경제학 연구의 필요성을 느꼈다. 1844년 『경제학ㆍ철학 초고(草稿)』와 『헤겔 법철학 비판서설(法哲學批判序說)』을, 1845년 엥겔스와 공동으로 『신성가족』과 『독일 이데올로기』를 썼으며,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유물사관의 주장을 처음으로 정립ㆍ설명하였다. 1847년 P. J. 프루동(1809~1865)의 『빈곤의 철학』을 비판한 『철학의 빈곤』을 쓰고, 그해에 런던에서 공산주의자동맹이 결성되자 엥겔스와 함께 이에 가입하여 동맹의 강령인 『공산당선언』을 공동명의로 집필하였는데 이 선언은 그해 2월에 발표되었다.
1859년 경제학 이론에 대한 최초의 저서 『경제학비판』이 간행되었는데, 이 책의 서언(序言)에 유명한 유물사관 공식이 실려 있다. 1864년에 1862년부터 구상 중이던 『자본론』 제1권을 저술했고 1867년 함부르크에서 출판하였다. 그러나 제2권과 제3권은 마르크스의 사후에 엥겔스가 1885년과 1894년에 각각 출판하였고, 처음에 제4권으로 구상되었던 부분은 K.카우츠키에 의하여 1905~1910년에 『잉여가치학설사(剩餘價値學說史)』라는 이름의 독립된 형태로 출판되었다. 1881년 3월 14일 런던 자택에서 평생의 친구이자 협력자인 엥겔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64세로 일생을 마쳤다.
▣ 더 깊이 있게 알기 위하여
마르크스의 경제학 체계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사회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경제’를 철저하게 연구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 신념은 유물론, 상부구조와 하부구조, 계급이론과 계급투쟁에 관한 연구를 통해 확립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본주의 경제를 완전히 분석하기 위해 자본(capital), 토지재산(landed property), 임금노동(wage-labour), 국가(the state), 대외거래(foreign transactions), 세계경제(the world economy)라는 여섯 권의 책을 계획했던 것 같으나 이 여섯 권의 책을 모두 쓸 시간을 갖지 못해, 자본ㆍ토지재산ㆍ임금노동에 관한 연구를 현존의 『자본론』 세 권에 남겼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인류 역사상 하나의 ‘특수한 단계’라고 파악하고 있으며, 다음과 같은 특수성 또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첫째, 생산의 목적이 이윤(profit)의 획득에 있기 때문에 인간들의 욕구(needs, wants) 충족은 무시될 수 있다. 둘째, 사회의 신진대사가 ‘상품의 교환’을 통해서 이루어지므로, 사회 전체가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에 사로잡힌다. 따라서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당연히 몰락한다고 보았는데, 그 주된 이유는 자본가적 사적 소유가 경제위기나 공황을 심화ㆍ확대하면서 사회의 물적ㆍ인적 자원을 점점 더 낭비하게 된다는 점과, 이 과정에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투쟁이 심화ㆍ확대된다는 점이다. 특히 생산력이 모든 주민들을 잘 살게 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부의 거대 자본가들이 모든 이익을 독점함으로써 대부분의 주민들을 억압과 궁핍으로 내모는 것에 대한 반항이 자본주의 사회를 타도하는 큰 동력이 된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몰락 이후의 사회를 인간의 착취가 없는 사회, 또는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the association of free producers), 또는 공산주의(communism)라고 부른다. 프롤레타리아 독재(dictatorship of proletariat)는 자본가계급에 의한 정치적ㆍ경제적ㆍ사상적 지배를 타도하기 위한 과정이다. 여기서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어떤 폭력적인 정치 형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이 사회 전체에 걸쳐 ‘헤게모니’를 잡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를 부르주아지 독재(dictatorship of bourgeoisie)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What is to be done?)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의 기본과제는 자본주의의 특수성과 한계를 해명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