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활짝 열고 변화를 환영하라
열두 살 때, 우리 가족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이민은 난생 처음 경험하는 일생일대의 변화였다. 미국에 들어간 직후 나는 여러 가지 문화충격을 경험해야 했다. 게다가 편히 쉴 집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자리를 잡기까지 당분간은 삼촌네에 얹혀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너무 바빠서 얼굴을 보기조차 힘들었다. 정신적, 정서적, 신체적으로 정말 끔찍한 시간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거북이처럼 내 세계에 틀어박히기 시작했다. 거절당하고 놀림 받는 것이 싫어서 친구들을 피하기도 했다. 그러다 서서히, 아주 조금씩 새로운 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사촌들이 있어서 좋았다. 뿐만 아니라 바다와 산, 사막이 모두 가까이에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캘리포니아도 썩 나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기가 무섭게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시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간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성장해서 대학을 마치고 난 뒤에 결국 캘리포니아로 되돌아왔으며 이제는 두 번째 고향으로 여길 만큼 친숙한 곳이 되었다.
변화하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성장통은 키가 자라고 몸이 커지고 있다는 증표다. 그 과정을 통과해야만 난관을 타개하고 더 나은 날들을 맞을 수 있는 법이다. 2008년에 인도를 여행하면서 뭄바이의 홍등가에서 성 노예로 살아가는 이들을 대상으로 소망의 메시지를 전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을 돕는 단체인 BTC의 데바라지 목사는 나를 데리고 본격적인 가정방문에 나섰다. 거기서 만난 마흔 살은 족히 돼 보이는 여성은 시골에서 열 살 때 팔려 와서 줄곧 성매매를 하며 살았다고 하는데, 실제 나이는 스무 살이라고 했다. “아이도 두 명 낳았는데 그중 하나는 죽었어요. 이틀 전에는 에이즈에 감염된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우리는 함께 기도했다. 그리고 사창가에서 나가서 BTC가 제공하는 쉼터에 머물며 에이즈 클리닉에서 진료를 받자고 했다. 눈을 뜨고 더 따듯한 세상으로 이어지는 문을 본 여인은 기꺼이 변화의 길을 선택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믿음까지 받아들였다. 눈망울에 평안과 소망이 깃드는 걸 보는 순간, 숨이 막히도록 감격스러웠다. 그 여인은 믿음을 통해 한없이 아름다운 소녀로 돌아갔다. 나는 “하나가 천을 쫓으며 둘이 만을 도망하게 한다”(신 32:30)는 성경 말씀을 참 좋아한다. 이 말씀처럼 우리 모두가 삶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변화를 받아들이고 이어서 다른 이들의 인생까지 한 차원 높이 끌어올리는 일꾼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닉 부이치치의 허그”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닉 부이치치 지음, 역자 최종훈 님,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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