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마주하고 있는 벽들
관념적으로 볼 때, 세계화는 절대로 동질화 과정이 아니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비서양 세계가 결국에는 단일한 발전 공식을 따르게 된다는 통념은 지나치게 단순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관념은 세계화 추세 속에 나타나는 갖가지 복잡한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이다. 환경의 퇴화와 질병, 약물 남용과 범죄 등도 과학과 기술, 무역과 금융, 여행과 이민 등과 마찬가지로 철저히 국제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세계의 상호관계와 상호의존이 오늘날처럼 심화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한창 출현중인 ‘지구촌’은 완전한 통일체로 결합하지 못했고, 한 조각 철판처럼 단순한 공식에 따라 발전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와 반대로 세계는 선명한 다양성을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갈수록 사회집단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세계는 세계화와 그 대립물인 지역화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양자는 서로 세력을 과시하면서 개인과 집단에 대해 거대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다양성과 끊임없이 고양되고 있는 자기정체성을 조성하는 중요한 요인은 세계화가 지역의식과 지역정서, 그 열정과 민감성을 전례 없이 부각시키고 있다는 데 있다. 이처럼 강렬한 ‘원초적 유대’에 대한 의존의식이 다시 나타나게 된 것을 각종 세계화 추세의 일환이라고 일축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는 세계화 추세가 가져온 뜻밖의 결과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 간단히 말해 세계화가 그동안 인류가 구체적인 생존을 위해 구성해놓은 불확실성을 해결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러한 ‘원초적 유대’는 수십 년 동안 사람들에게 더욱 강조되는 화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반드시 자신의 ‘원초적 유대’를 포기하고 세계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관념은 확실히 현실적이지 못하다. 요컨대 우리는 자신의 갖가지 ‘원초적 유대’에 깊이 뿌리박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생존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가 선택을 통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다면 전통과의 연계를 말소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인류의 일상경험에서 우리는 진정한 대화란 온갖 정성을 들여 세심하게 만들어내는 일종의 예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식이나 심리에서, 또는 마음자세나 신념에서 충분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우리는 어떤 대화에도 전적으로 몰입할 수 없다. 실제로 우리는 진정한 친구나 영혼이 통하는 상대에게서만 교류의 희열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낯선 사람들, 특히 그 중 어느 한쪽이 극단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타자나 경쟁자, 적수로 인식되는 상황에서라면 어떻게 문화의 대립을 초월하여 진정한 대화를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대화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너무도 순진한 발상이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개인이나 지역, 국가나 국제사회 등 다양한 차원에서 유익한 대화의 연계를 철저하게 실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수 년, 심지어 여러 세대에 걸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지금 당장에는 세계화 과정에 몇몇 초보적인 조건만을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종교의 대화에서 일정한 교훈과 이익을 얻은 바 있다. 차이에 대한 관용은 어떤 의미의 교류에서도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선결조건이다.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의 협애한 시야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단순히 관용만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지나치게 소극적인 감이 없지 않다. 교류를 진행하기에 앞서 우리에게는 타자의 상황에 대한 민감한 의식이 있어야 한다. 쌍방이 충분한 신뢰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상호존중의식을 가지고 얼굴을 마주하여 앉으면 풍성한 결과를 가져다줄 대화가 진정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대화를 통하여 우리는 타자의 가치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는 우리가 상호존중의식에 기초하여 타자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서로 간의 차이에서조차 기쁨을 느낄 수 있다. 차이가 쌍방의 시야를 넓혀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화는 결코 상대방을 설복시키거나 상대방에게 압력을 가하는 기교가 아니다.<“문명들의 대화”에서 극히 일부 발췌, 뚜웨이밍 지음,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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