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앤드류 카네기

[중산] 2011. 8. 29. 12:51

 

 

훗날 철강왕으로 불리게 되는 앤드류 카네기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13세 때 가족과 함께 미국 펜실베니아주로 건너와 방적공, 전기기사 등 여러 가지 일을 전전했다. 그러던 그가 실업가로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은 아주 조그마한 일이 계기가 되어서이다.

 

피츠버그에서 전기기사 일을 하고 있던 그는 어느 날, 기차 안에서 한 발명가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발명가는 이것이 내가 최근에 발명한 신식 침대차입니다라고 하면서 카네기에게 그 모형을 자랑했다. 당시의 침대차는 화차의 양쪽에 선반을 매단 어설픈 것이었지만, 그 발명가가 보여준 새 모형은 현대의 침대차와 꽤 비슷한 것이었다. 선견지명이 있던 카네기는 이 발명품은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다라고 판단하고 빚까지 내어 신식 침대차 제조 회사의 주식을 샀다. 아니나 다를까 높은 배당이 붙었다.

 

 

카네기는 불과 25세 때에 침대차 제조 회사와 석유 회사의 투자 배당으로 연 5천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리고 1865년 철강수요의 증대를 예견하고 철강업을 시작한 것이 크게 발전하여 1870년대부터는 선반과 철도에 이르는 대단위 철강 트러스트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8개 회사를 합병하여 만든 카네기 철강회사는 철도 경기의 붐을 타고 철광석에서부터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를 취급하는 대형 회사로 성장했고, 그는 마침내 세계적 대재벌이 되는 한편 철강왕으로까지 불리게 되었다.

 

사실 철강왕이라고는 하지만 카네기의 철강 지식은 매우 빈약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철강 전문가들을 몇 백 명씩 고용하여 그들을 부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그가 대부호가 된 비결이었다. 애초부터 사업가의 기질을 타고났던 카네기에게는 다음과 같은 일화도 있다. 어느 날 어떤 사회주의자가 카네기를 찾아왔다. 그는 오랫동안 한 사람이 수만 명 몫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카네기는 비서를 불러서 물었다. 내 재산의 총액을 세계 인구수로 나누면 얼마나 되는가? 잠시 후 계산을 마친 비서는 1인당 16센트라고 말했다. 그러자 카네기는 비서에게 지시했다. 내 재산에서 이 손님 몫인 16센트를 봉투에 넣어 드리게!

 

또 어떤 사람이 카네기에게 물었다. 노동과 자본, 그리고 지식 중에서 무엇이 사업을 해 나가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카네기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반문으로 대답했다. 세발의자의 세 다리 중에서 어느 다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신앙심이 깊었던 카네기는 교육사업이나 사회사업에도 열심이어서 많은 돈을 사회에 환원했다. 기꺼이 공익단체나 교육단체의 후원자로 나서는 한편 직접 카네기공업대학, 카네기재단, 카네기 홀 등을 건립하여 사회에 부를 환원했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에 2천 8백여 개의 도서관을 세워 기증한 것도 그의 특기할 만한 업적이다.

 

카네기는 노령에 접어들자 자신이 죽은 후의 묘비명을 이렇게 새기게 했다.

 

여기, 나보다 현명한 사람을 주위에 모으는 기술을 알고 있던 한 사람이 잠들다.

 

비교적 장수한 카네기는 1919년 8월 11일 평안한 가운데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탁월한 수완으로 부를 축적한 다음 그 돈을 가치 있게 씀으로써 후회 없는 인생을 보내고 편히 잠든 것이다.

<“인생 열전”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박영만 지음, 프리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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