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인간관계

[중산] 2012. 4. 19. 17:22

 

2008년 미국인 34만 명을 상대로 전화 조사를 한 결과, 나이가 많을수록 더 행복하고 스트레스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이냐 여성이냐, 18세 이하 자녀가 있느냐 없느냐, 직업이 있느냐 없느냐, 배우자가 있느냐 없느냐와 같은 변수는 나이를 먹으면서 느끼는 행복에 놀랍게도 별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생의 후반은 자신이 어떻게 만들어 나가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어린 시절은 자신이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지만 노년은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젊은 시절을 인생에서 가장 좋은 때라 착각한다. 그래서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하고, 오래 살수록 삶이 베푸는 것이 줄어든다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 반대, 즉 육체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나이가 들수록 더 좋아진다고 생각했고 이것을 책으로 알리면 모두가 반가워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 후 10년 동안 저자는 몇십 년 앞서서 인생 후반을 풍요롭게 누리는 노인들의 이야기와 경험담을 수집했다. 저자는 그동안 인터뷰, 심리 치료 상담, 나이 든 지인들과의 대화, 조사 자료, 영화, 블로그, 라디오 방송 사연, 버스나 카페에서 들은 이야기 등 노인들이 겪은 생생한 체험담을 이 책에 담았다.(요약)

 

 

 

희망을 위한 소통

 

 

인간관계

형제, 친구, 부부 등 오랫동안 맺은 인간관계는 공유한 과거만큼 깊은 안정감을 준다. 그런 사이에서는 서로의 불안함과 시련을 충분히 알기에 지난날 엉뚱한 행동도 웃으면서 회상할 수 있다. 서로가 살아오면서 겪은 변화와 전환점을 함께 들여다볼 수 있기에 과거 일을 혼자 곱씹어볼 때보다 더 많이 쉽게 이해한다. 많은 말이 필요 없고, 투덜거리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동작만으로도 많은 것을 공감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친밀감이 깊어지면 오래 지속된 관계는 인생 후반에 이르러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상이 된다.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향상되면 인간관계도 좋아진다. 타협하고 조화롭게 지내는 게 능숙해진다. 이에 따르는 변화는 많다. 더욱 공정하게 싸우고 논쟁 중에 더 이상 몸을 낮추지 않아도 된다.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의도하는 것을 젊었을 때보다 더욱 명확하게 직접 표현한다. 또 자신을 더 정확히 파악한다. 하고 싶은 말을 당당히 하되 상대의 기분이 거슬리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더욱 세심하게 찾는다. 다툴 일이 있을 때는 윗사람으로서 신중하게 결정한다. 복잡한 마음을 견디는 것도 덜 힘들어진다. 뇌 검사에 의하면, 나이가 들수록 부정적인 상황에 덜 민감하고, 그 어느 때보다 인간관계에서 쉽게 행복을 느낀다.

 

 

오래된 친구들은 우리가 살아온 내력을 잘 안다. 우리가 지난날 극복한 어려움에 대해서도 증언해줄 수 있다.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가 무엇인지도 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있는지 훤히 알아서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로 하여금 더 넓은 시야를 보게 한다. 우리가 갇혀 있던 곳에서 끌어내주며 변화를 견딜 힘을 준다.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것을 잘 알기에 지금 괴로워하는 걱정거리 말고 이후를 보라고 설득할 수도 있다.

 

 

오랜 친구는 우리 혼자서는 알 수 없는 모습을 현실 생활 가운데 보여준다. 우리가 어찌 하지 못하는 고민이나 어려운 점을 말하면 우리가 겪은 이야기를 꺼내어 비교하며 통찰력을 얻게 해준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지난번 얻은 교훈을 가치 있게 생각하며 연속성과 일관성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전에는 알지 못했던 옛 친구의 면모를 발견하기도 한다. 새로운 부분을 탐험하고 대화하면서 몰랐던 모습을 보기도 한다. 각자가 살면서 경험한 것은 대화를 풍부하게 해준다. 그런 대화를 친구와 주고받다 보면 전보다 새롭고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친구들은 종종 다른 차원의 우정을 발견하게 된다.

 

 

슬프지만 옛 친구가 발전하지 않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성숙했음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한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관점 차이가 크게 벌어질 수도 있다. 30년 전에는 우러러봤던 것이 지금은 대단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옛 친구와 판이한 길을 걸어왔다고 해도 공유하는 과거는 소중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에 오랜 관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한 독신 여성은 절친한 친구 몇 명과 40대 중반을 맞았다. 유년기와 사춘기를 외롭게 보낸 그녀는 따뜻한 친구 사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았다.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대신 아기를 돌봐주고, 친구가 아프면 음식을 만들어주었으며, 친구가 차를 정비소에 맡기면 친구를 태워다주었다. 그녀가 지닌 유일한 단점은 정작 자신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는 친구들에게 알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마음 속 깊이 자신을 외톨이 여행자,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가는 혼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46세가 되던 해 그녀가 유방암에 걸리자 친구들이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친구들은 화학요법을 받으러 갈 때 교대로 동행해주었고, 그녀가 사는 집을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개를 산책시켜줬다. 그녀는 친구들 덕분에 삶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꼈다. 암 치료를 받는 동안 자신에 대한 생각도 완전히 바뀌었다. 가족 같은 친구들이 있어서 삶에 활기가 넘쳤다. 다른 사람을 믿고 도움을 받아들임으로써 스스로 성장했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런 뜻밖의 발견으로 두려움 없이 미래를 맞이하게 되었다.

 

 

배우자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불량품처럼 생각하고 있고, 나쁜 기억을 배우자에게 털어놓는 걸 수치스러워한다. 실제로 자신에게 원인이 있음에도 고통의 원인을 배우자의 탓으로 돌린다. 비난을 멈추고 자신을 좀 더 철저히 파악하려면 인내심과 훈련이 필요하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부부일수록 갈등을 쉽게 해결하고 상처로 생기는 후유증을 적게 남긴다. 64세 한 남성은 40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하면서 일어난 변화를 이렇게 설명한다. 지금 우리는 싸움을 해도 서로 져주는 편이에요. 원래 관계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더 크죠. 싸움을 얼마나 더 끌고 갈지,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지 아닌지 알거든요. 지금까지는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이유를 들어 싸운 것 같아요. 그러니 뭣 하러 극단으로 가겠습니까? 전 과거에 비해 화도 덜 내고 문제도 더 빨리 해결한답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관계에서 얻는 큰 보상이라고 할 수 있죠.

 

 

서로 터놓고 말하면 주도권을 잡거나 독립적인 척하느라 마음을 숨길 때보다 친밀감이 더욱 깊어진다. 무엇 때문에 상대가 힘들어하는지 서로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관계를 온전히 성공으로 이끌 수 없다. 어느 한쪽이라도 자신에 대해 반성하며 솔직해져야 한다. 상대방이 자신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인정할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 그러면 두 사람 관계가 서로 의존하는 단계로 올라가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친밀함은 겹겹이 쌓인다. 부부는 서로 상대의 감정, 특히 슬픔을 표현하는 언어에 유창해진다. 상대방을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다정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언제 보여줘야 하는지, 혼자만의 시간을 언제 줘야 하는지 안다. 서로에 대한 배려는 부부가 어려운 전환기를 맞을 때, 이를테면 정들었던 집을 떠나 이사한다든지 오랜 친구의 죽음을 맞을 때 특히 가치를 발휘한다. 풍성한 관계 속에 노년을 맞는 일은 많은 노력을 해도 좋을 만큼 충분히 가치가 있다. 80대와 90대 부부들을 보면 그런 확신이 든다. 함께 보낸 오랜 세월과 두터운 신뢰가 결합되어 서로 깊은 속까지 아는 것보다 더 로맨틱한 일은 없을 것이다. 나이든 부부가 손을 잡고 걷는 모습은 언제나 깊은 울림을 준다. 편안한 애정과 조화를 이루는 그들의 걸음걸이, 침묵 가운데 깃든 다정한 몸짓에 시선이 이끌린다. 어떤 것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함께 있는 기쁨을 음미하며 몸짓으로 축하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영성

 

20대 말에 심리 치료사가 된 나는 인생의 가장 깊은 질문에 쉽사리 파고드는 노인들을 보고 내심 놀랐다. 젊은이들은 인간관계에 대한 분노 가령, 사랑의 위기라든지 부모님에 대한 원망 따위를 화젯거리로 삼지만, 노인들은 삶과 죽음에 관해 알고 싶어 했다. 노인들은 특히 심장 발작이라든지 뇌졸중 같은 충격을 받은 후에 그런 심오한 실존 문제에 매달렸다.

비통한 경험을 하면 영적인 세계로 발을 들여놓기 쉽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계기가 되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일 때일 것이다. 누구라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화장실에 간 후 바지를 끌어올려 줄 사람을 기다릴 때와 같은 절망적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우리는 흙과 같은 존재다. 우리가 죽어서 돌아갈 곳도 흙이다. 종교에 관심을 가진 적도 없고 영혼이니 믿음이니 하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은 사람도 여전히 인간의 유한함과 약함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한다. 인생을 이해하려면 불행했던 순간과 행복했던 나날, 두 가지를 모두 놓고 맥락을 찾아야 한다. 64세의 한 노인은 해가 갈수록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울창한 녹색 나뭇잎을 보면 우리 뇌의 프랙탈 형태가 떠오릅니다. 그러면 식물이나 동물도 분자 수준으로는 똑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우리는 눈에 보이는 만물의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관점을 지니면 마음이 더욱 평온해지고 한 발 물러서서 세상을 보게 됩니다.

 

 

내면에서 들려오는 작고 고요한 목소리를 듣는 법을 배우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우리가 자꾸만 바깥을 두리번거리는 사이에 영혼의 언어는 외부의 아귀다툼하는 소란에 잠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년간은 내면의 목소리를 의식하지 못하고 저마다 가치 있는 삶이라고 떠들어대는 다른 사람들의 주장에 휘둘리기 쉽다. 그러나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내면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를 듣게 한다.

 

 

어느 한 남자가 정서적, 경제적으로 무너졌다. 아내가 오랫동안 외도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다. 게다가 아내는 알코올 중독자인 아들에게 남편 몰래 거액의 대출 보증까지 섰다. 45년이라는 세월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하루아침에 은퇴 자금의 절반을 잃고 아들이 갚지 않는 대출금의 절반도 갚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 누가 봐도 억울한 일이었다. 60대 중반인 그는 황량한 바위 위에 홀로 선 욥(사단의 시험으로 갑자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린 구약 성경 속 인물)이 된 심정이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을 견딜 때는 확실했던 모든 것이 불확실하게 보인다. 가야 할 방향을 알지 못하고 헤맨다. 그대로 있으면 길을 잃는다는 절박함은 내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진정 누구인가, 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줘야 하는가 하는 근원적인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모든 인간관계가 회의적이 된다. 의지할 곳도 없고 전적으로 믿어줄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이 남자는 실존의 밑바닥, 슬픔에 빠져본 사람은 누구나 느꼈을 절망의 구렁텅이까지 도달했다. 매일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생각했다. 그는 가장 기본적인 것만 빼고 삶의 껍데기를 모두 벗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몸을 누일 곳과 먹을 음식, 그리고 몸에 걸칠 옷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다행히 건강했고 몸도 성했습니다. 애초에 그런 값비싼 물건들은 필요 없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한낱 장난감이었죠. 저는 몸을 덥힐 장작 난로도 있고 여름이면 푸성귀를 길러 먹을 밭도 있었습니다. 옷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중고시장에 가서 5달러만 줘도 왕처럼 차려입을 수 있으니까요. 은행에 얼마가 있든 말 그대로 쓸데없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애초에 부자였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니 결국 아내가 축낸 돈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감쌌던 자학을 멈추고 되도록 많은 인생의 가능성을 향해 마음을 열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절망감이 사라졌다.

 

 

나이가 들수록 영적인 욕구는 밀물처럼 밀려온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물질적인 세상에 집착이 약해질 때 신성한 존재에 대한 관심은 커진다. 인생에 대한 근본 의문도 더 또렷해진다. 자신을 초월적인 이야기의 일부로 보면서 개인적인 소유물의 가치가 시시하게 느껴진다. 자연의 섭리를 설명하기 위해 신과 같이 대단히 중요한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마음은 더욱 커진다. 더 큰 진리를 알게 될수록 세속적인 것에 지배를 덜 받는다.

 

<“살아가는 동안 나를 기다리는 것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웬디 러스트베이더 지음, 역자 이은정님, 국일미디어>

 

저자 웬디 러스트베이더

시애틀 워싱턴대학의 사회복지학과 교수이자 시애틀의 커뮤니티 클리닉(보건소)에서 20년간 각계각층 사람들을 치료한 유능한 심리치료사이기도 하다. 또한 작가이자 교육자로서도 어느 역할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사회복지사로서 오랫동안 쌓은 경험을 감동 깊은 글로 녹여내어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도움을 주고 있으며, 교육과 노인 봉사 분야에 활용하고 있다. 어떤 복잡한 문제든 스토리텔링으로 명쾌하게 풀어내는 남다른 능력이 있어서 미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인기 연사로 바쁘게 생활하고 있다. 간병인과 환자에 관한 비디오도 두 편 선보였으며, 저술 활동도 쉬지 않고 있다.

                                                                                 박태기꽃몽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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