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위한 외침
평정심
인생 후반기까지 우리는 자기에게 익숙한 수많은 자아 개념과 씨름하기도 하고 더러는 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돋보이도록 하거나 화려하게 과시하거나 외양을 꾸미는 일도 줄어든다. 한때는 자신이 누구인지 나타낼 소품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자신에게 가장 보람되고 본질적인 것에만 신경을 쓴다. 자신을 지지해주는 응원군이 있으면 든든해서 좋겠지만 사실 더 이상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50대 한 남성은 주관도 없고 불확실했던 젊은 시절이 지나고 난 후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는지 새삼 놀랐다. “제가 젊었을 때는 참고 견뎌야 할 것들이 아주 많았어요. 굉장히 오랫동안 견디기 싫은 상황도 참았죠. 인간관계나 직장생활이 비참해도 끔찍하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죠. 그런데 지금은 제 기분이 어떻고,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에 신경 써요. 잘 지내고 있는지에 대한 제 기분을 존중하는 거죠. 억지로 상황을 받아들이진 않아요. 저에게 유리하지 않은 상황은 저도 알 수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도망치는 것을 점점 더 잘하게 되었죠.”
동요하지 않는 내면은 수십 년을 살면서 얻어진 달콤한 과실이다. 이는 모든 의문이 멈췄다는 게 아니라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성큼성큼 걸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살다 보면 여전히 좌절도 하겠지만 뿌리째 흔들리는 일은 별로 없다. 작은 실망 따위는 사소하게 여겨질 정도로 평정심이 생긴다. 우리 자신이 천하무적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한편으로 세월의 시련을 견뎌냈다고 믿는다. 지금까지보다 더욱 단호한 태도로 걱정의 한계를 돌파하고 계속해서 잘 헤쳐 나간다.
자신의 목소리를 찾다 보면 가장 깊이 숨어 있는 영향력은 가장 파악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흔히 부모에게 물려받은 신념을 현실로, 가족들에게 배운 태도를 정답으로 착각하고 그와 다르면 자연스럽게 무시한다. 세상을 바라보고 인생을 경험하는 방법은 세대가 바뀌면서 반향을 일으키기도 하고, 가족 사이에서조차 조용히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 하지만 워낙 확고한 신념으로 포장되어 물려지기 때문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이 그저 그렇게 살아야 하나 보다 생각한다.
60대 초반인 한 여성은 자기 삶이 오랫동안 어머니의 조바심에 휘둘려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그런 조바심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난 항상 뭔가를 해야만 했어요. 한 가지 걱정이 끝나면 다음 일을 걱정해야 하는 느낌이었죠. 마치 어머니가 내 안에 사는 것 같았어요. 그 사실을 한참이 지나서야 깨달았어요. 60대가 되자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적어도 한동안은 매일 조금씩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마음을 편히 가지려고 노력했어요. 매일 매 순간 해야 할 과제와 의무로 달력을 채우는 대신 여백을 남기려고 했죠. 여기까지 오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아직까지도 여백이 너무 많으면 초조하고 불안해요. 하지만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그녀의 어머니는 영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채로 이민 와서 먹고살기 위해 종일 일만 했다. 아이들은 놀거나 빈둥거리는 시간이 없도록 엄격하게 길렀다. 딸은 점차 그런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내가 우리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는 거 알아요. 우리 어머니만큼은 아니지만 그런 점을 물려받았나 봐요. 내가 느긋해지면 아이들 표정부터 달라지는 게 보여요.” 그녀는 이제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이렇게 세대가 얽힌 문제를 인식하는 것은 그 고리를 끊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그러면 그 문제를 어떻게 물려받았는지, 또는 너무도 많이 강요받아서 그것을 어떻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다는 것은 외부 영향을 받지 않거나 거부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 생각과 감정을 확인할 때까지 평온한 시간을 준다는 의미다. 자신이 어떻게 반응할지 생각할 때 떠오르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 견해를 정리할 수 있다.
인생 후반기에 역경에 부딪혀보면 그동안 살면서 얻은 배짱에 놀라게 된다. 인생 후반기에 겪는 변화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엄청난 능력이 있다. 곧 62세 생일을 맞는 한 여인은 40년이 넘는 세월을 고집 센 남편이 지시하는 대로 살아왔다.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슬픔과 함께 밀려드는 허전함을 이기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실의에만 빠져 지낼 수는 없었다. “누군가 남편이 하던 사업을 이어받아야 했어요.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으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모든 결정을 내가 해야만 했어요. 남편이 기록한 장부를 들여다보기만 해도 골치가 아팠죠. 하지만 그 경험은 유익했어요. 매일 할 일도 많았고 압박감도 심했지만 해내야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어요. 혼자서 사업을 꾸려나갔죠. 예전에는 남편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내게 강단이 있었어요. 이제 2년이 흘렀는데, 난 딴사람이 되었어요. 이제는 무슨 일이 주어지든 주저하지 않죠. 지금은 질문을 던지고 혼자서 생각하고 판단하죠. 옳다고 판단하면 직감대로 밀고 나가요. 이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어요. 이제는 내 능력만으로 평가받는 느낌이에요.”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도덕적인 잣대나 행동의 본질이 흔들리지 않는 태도가 정립된다. 그리고 이런 내적인 판단 기준은 평정심의 토대가 된다. 마침내 신념뿐만 아니라 싫어하는 것과 민감한 부분까지도 포함한 자신의 참모습에 편안해진다. 인생 후반에 이르러서야 자신에게 만족하는 법을 비로소 확실히 알게 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노벨 문학상을 탄 도리스 레싱은 노년이 되면 “삶이 잘 보이지 않도록 가리고 있던 막이나 천이 녹아버린 듯…… 새로운 활기를 느낀다”라고 했다. 이어서 계속 말했다. “우리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열병처럼 덮치는 순간 놀라고 흔들리게 됩니다. 모든 것이 놀랍게 보이죠. 잔혹하고 인상적인 연극에 나오는 배우들처럼 사람들과 삶, 사건이 직접 우리 앞에 나타난 것만 같을 겁니다. 마치 우리도 그 연극의 일부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눈을 얻게 됩니다. 그 눈으로 보면 난생처음 세상을 보는 어린아이가 된 듯 느껴집니다. 모든 게 신기할 거에요.”
병이나 사별로 죽음이 현실이 되면 삶에 정말 중요한 것을 위해 방해물을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런 유한함은 진실을 말하고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 바라는 대로 행동하게 해준다. 그러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열렬히 영혼에 집중한다. 우리가 얼마나 덧없는 존재인지 알기에 위대한 것과 하찮은 것, 고상한 것과 감각적인 것에 즉시 관심을 가진다. 나이 듦에 관해 연구한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로라 카르스텐슨은 나이를 먹을수록 현재를 더 잘 산다고 주장했다. 장기 목표보다는 즉각적인 느낌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말했다. “젊은이들은 노인을 보며 죽음이 가까워지면 얼마나 두려울까 생각하죠. 하지만 노인들은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알아요.”
8월 중순 어느 날 오후, 나는 블루베리 밭에서 83세 할머니를 우연히 만났다. 다른 줄에서 블루베리를 따고 있는 딸과 같이 온 할머니였다. 그 할머니는 최근에 요양원에 들어갔는데, 딸과 함께 세상 여기저기 아름다운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라고 했다. 나는 할머니에게 예전에 살던 집이 그립지는 않은지 물어보았다. 할머니는 세간이 달린 유료 양로원에서 지낼 때는 친구들도 사귀고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릴 수 있어서 괜찮다고 했다. “내 나이가 되면 애착을 가지면 안 돼요. 인생의 무대를 옮겨야 해요. 내가 어디에 속했건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편하게 생각해야죠.” 나는 블루베리 그릇을 붙잡고 할머니가 울퉁불퉁한 땅바닥을 지팡이로 짚고 지나가도록 도와드리려 했다. 오히려 할머니는 웃으면서 나를 안심시켰다. “여기에서 넘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에요.” 위험은 삶의 필수 요소다. 위험을 잘 이용하면 그만큼 성장하니까 말이다. 변화에는 두려움이 따르고, 나이가 들면 상실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중요한 점은 두려워도 위험을 무릅쓰고 계속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말없이 할머니를 부축해서 걸어갔다. 기쁨에 한계를 두지 않는 할머니가 내심 존경스러웠다.
우리는 많은 제약으로 무의미한 일과 싸우곤 한다. 이를테면 끝없이 과제를 하고, 즐겁지 않은 사람들과 시간을 낭비하고, 내일 걱정거리를 붙들고 끙끙대는 따위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정말 필요하거나 즐거운 일만 하겠다고 결심한다. 나이 듦 자체는, 유연함과 만족감을 요구하는 만큼 더 대담한 정신을 선물로 준다. 그래서 풀밭에 벌렁 드러눕지는 못해도 마음 놓고 넘어질 자유가 생긴다.
인생을 전체적으로 조명할 줄 아는 것은 아마도 최고의 능력일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 수명만큼 고통스러운 사건의 전후 관계를 살피는 범위가 넓어진다. 오래 살수록 사소한 것은 더 빨리 인식하고 버리게 된다. 시야가 넓어져서 많은 문제를 축소하고 위안을 얻는 힘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런 능력은 지속적으로는 평정심을 주지 못해도 계속되는 불행을 회복하는 힘을 키워준다. 결국 그 누구도 남들보다 더 낫지 않으며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고 확신하게 된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갈 준비가 되는 것이다. 그 후에는 끝없이 자기 위치를 남과 비교하는 대신 자신이 살아 온 인생을 받아들인다. 남보다 돋보이려는 노력도 그만둔다. 그저 자신이 지닌 재능을 발휘하고 조용히 기쁨을 만끽하고 싶어 한다.
문학평론가 아나톨 브로야드는 69세에 전립선암이 임파선까지 전이됐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썼다. “당신이 병에 걸린 사실을 아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겪는 중대한 경험 중 하나다. 당신은 영원히 죽지 않기를 기대한다. 프로이드는 누구나 자신의 영원불멸을 믿는다고 했다. 나도 분명 그랬다. 그때까지는 그렇게 믿으며 살았다. 그러던 내가 병에 걸렸다는 말을 듣는 순간 엄청난 전기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나는 갑자기 딴사람이 되었다. 예전의 사소한 자아는 모두 사라지고 본질에 근접했다.”
사람들은 죽음을 눈앞에 두면 먹고사느라 뒷전으로 밀어두었던 것들을 앞으로 꺼내어 주목한다. 잘못한 일과 잘한 일, 부담이 되었거나 기뻤던 일을 돌아보고 그것을 다른 식으로 처리했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한다. 꼭 했어야 했던 말과 감사 인사 그리고 사과의 말, 오랜 고독을 각오하고 감춰두었던 감정을 용기 내어 표현하려고 한다.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의식될수록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사랑했는지 확인시켜주고 싶어 한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러면 사소한 걱정 대신 가장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우리에게 닥친 상황을 더욱 잘 헤쳐 나갈 수도 있다. 아침마다 현관에 앉아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를 듣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함께하는 기회를 놓치지 마라.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행복하고 수월하게 인생을 보낼 수 있는 비결은 더욱 기쁜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몇 년 전 아버지 묘소를 찾았을 때 우리 부부를 위해 마련해 둔 근처 묘소 자리를 힐끗 보았다. 신선한 풀 냄새가 올라오고 나무에선 새싹이 움트는 이른 봄날 화창한 아침이었다. 나는 언젠가 내 관이 들어갈 땅을 보며 그곳에 모일 추모객들을 떠올렸다. 아직 내가 죽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나는 순간, 생기가 돌았다. 나는 당당히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그 특전을 누리기로 했다. 내 앞에 펼쳐진, 나를 기다리는 그 하루가 그 어느 때보다 반가웠다.
<“살아가는 동안 나를 기다리는 것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웬디 러스트베이더 지음, 역자 이은정님, 국일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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