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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중요한 깨달음!

[중산] 2023. 1. 16. 11:21

남편이 알츠하이머에 걸렸다. 소파에 앉아 있던 어느 날, 나는 내가 빌어먹을 전구 하나도 바꿔 끼울 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단 전구를 어디서 사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또 전구 소켓 사이즈를 어떻게 감별하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나는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세상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이 죽음에 의해 잠식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때까지 남편에게 맡겨두었던 일들을 가능한 빨리 익히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아이패드를 샀다.

 

그런데 가족과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은 사실 더 어렵다. 내 가까운 사람들은 더 바쁘게 산다. 나는 바쁜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모르는 걸 물어 보며 귀찮게 구는 늙은이가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전화를 걸어 다정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멋진 늙은이가 되고 싶은 것이다.

 

늙었다는 것이 특별히 좋아지는 순간이 있다. 가령 수영을 마치고 탈의실에 있으면 단장하는 젊은 여자들이 보인다. 한 겹 한 겹 공들여 화장을 하고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로 마무리를 하며 이들은 바깥세상을 준비한다. 반면 나는 샤워하면서 머리를 감은 다음, 타월로 머리를 말리고 나서 겨드랑이에 디오더런트를 뿌리고 옷을 걸친다.

 

젊은 여자들보다 먼저 수영장을 나설 수 있으니, 때로 노년은 당신에게 커다란 자유를 준다. 마치 나이가 당신에게 그런 자유로움을 주는 것 같다. 그 순간 나는 나이 든 것이 전혀 구슬프지 않고 근사하기만 하다.

 

나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괴롭힌다. 한 번은 바쁘게 쇼핑을 가야 해서 남편의 휠체어를 밀었는데 남편이 밀지 말라며 발을 바닥으로 내려서 휠체어를 멈추려 했다. 나는 그 순간 폭발을 했고 울면서 남편에게 소리쳤다. 이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며 이 모든 게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나쁜 기억을 담아둔 나의 도서관에는 사람들과 다툰 기억들이 담겨 있다. 나에게 소중했던 사람들에게 큰소리를 냈던 순간들. 살면서 원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싸움이다. 분노가 쌓이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살면서 겪은 그 모든 불화를 생각해보면 결과적으로 가치 있는 싸움은 하나도 없다. 많은 경우에 나는 도대체 왜 싸웠는지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결과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잘 기억한다. 그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지 않은가.

 

 

콘서트를 같이 갈 남자를 찾고 있어요.

 

새로운 파트너를 원하는지에 대한 물음이 자주 내 머릿속에서 맴돈다. 남편은 몇 년 전에 죽었고 그 전에도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해 자신을 상실한지 오래였다. 그러다 보니 수년 동안 나는 홀로 삶에 맞서는 심정을 느껴야 했다. 혼자라는 것은 독자적인 리듬에 맞추어 삶을 살아간다는 장점은 있지만 어떤 때는 나만의 짝이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신문의 TV프로그램을 샅샅이 훑어보는 남자, 혹은 내가 돌봐주어야 하는 남자는 원하지 않는 것이다. 심술궂은 노인도 사절한다. 

 

나와 함께 멋진 순간을 나눌 수 있고 긍정적인 의미에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남자. 저녁에 나를 픽업하여 함께 연주회장에 갈 수 있는 남자, 독서를 좋아하며 새로운 작가를 나에게 소개해줄 수 있는 남자.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는 대화 상대자이자 아침을 먹으면서 썩어빠진 정치인들을 같이 욕할 수 있는 남자.

 

그런 남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나의 여자 친구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새로 만나는 남자들은 고압적인 타입들이 대부분이었다. 노년기에는 자신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고 괴팍한 습관이 증가한다. 예전처럼 쉽게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기도 어렵고 그걸 더 이상 원하지도 않게 된다.

 

느림의 발견

 

음식을 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나는 다른 방법을 찾아냈는데 바로 같이 먹어줄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일기를 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요즘 내가 하는일,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쓰다 보면 한 페이지 정도는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내 삶이 느리게 느껴진다. 과거보다 경험하는 일은 훨씬 적지만 그 모든 것이 훨씬 시간이 더 걸린다. 그렇다고 속도가 줄어든 나의 삶이 나를 짜증나게 하는 것 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나는 노년의 여유 있는 시간을 양심의 가책 없이 즐길 수 있다. 시장을 오가는 데 두 시간이 걸리는 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오가는 길에 나는 일상의 작은 것들을 만끽할 수 있다. 공원의 나무와 새들의 지저귐을 기꺼이 맞이한다.

 

많은 사람들이 명상 수업을 위해 돈을 지불하고, 명상을 통해 이 순간을 알아차리려고 노력한다. 만약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면 걱정하지 말라. 나이가 들면 저절로 그것이 이루어진다. 느린 걸음걸이가 당신의 삶의 속도를 늦추고 순간 속도에서 살도록 만든다. 나이는 등록할 필요가 없는 명상 코스이다.

 

노년의 중요한 깨달음

 

젊은 시절 나는 고민하느라고 머리를 쥐어짤 때가 많았다. 나의 삶을 되돌아보면 그런 걱정들은 그저 기우였다는 걸 깨닫게 된다. 돌아보면 잘못된 결정이라 해도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든 세월이 흐르고 늙은이가 된 후 나는 마침내 나 자신과 친구가 되었다.

 

내가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내가 스스로를 들볶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나는 실패할 수 있다. 실수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 또한 나의 실수를 받아들이고 용서할 것이다.

 

악마에게 사로잡혀도 좋다. 사후 세계에 대하여

 

어렸을 때 일주일에 한 번씩 고해를 해야 했다. 고해 의식은 나의 창의력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일조했다. 일주일마다 신부님에게 이야기할 거리를 생각해야 했으니까 그건 일종의 창작행위이기도 했다. 

 

가톨릭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다. 인간이 죄인이라는 생각, 그러므로 순수한 양심을 갈구해야만 한다는 생각. 이것은 신약성서에서 읽은 내용과 완전히 모순된다. 내 생각에 신약성서는 무한한 사랑과 용서에 관한 것뿐이다.

 

지금은 교회도 이 같은 방향으로 변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교회는 여러모로 나를 두렵게 했다. 이제 나는 이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어서 몹시 가뿐하다. 나는 더 이상 사후 세계를 믿지 않는다. 육신의 부활도, 천국의 문지기인 베드로가 나를 천국으로 들여보낼지 말지를 결정한다는 것도 이제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남편이 구름 위에 앉아 있었다고 상상해보자. 푹신푹신한 이 천국은 대체 얼마나 넓어야 할까? 죽은 남편들과 소중한 애완견과 고양이들이 모두 그곳에 살고 있다면? 나는 종교란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기 위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삶이 한 번에 느닷없이 끝난다는 것을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우리 인간은 그토록 지혜로운 척하지만 실상 아는 것은 너무나 적다. 우리는 우주의 한 귀퉁이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어쩌면 본능적인 이기심을 떨쳐내고 타인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게 하는 우리 안의 이 신성한 불꽃을 영혼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영혼은 불멸의 존재여서 우리가 죽은 후에 정원을 맴도는 나비나 나뭇가지에 앉은 아름다운 까마귀의 몸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인간은 마지막 숨을 거둔 후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그것이 나를 두렵게 만들지 않는다. 나는 초원의 데이지 꽃과도 같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누군가가 내 뿌리를 캐거나 꺾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여름이 다시 오면 데이지는 새로 피어날 것이다. 삶의 아름다움은 줄어들지 않는다.

 

나의 죽음을 생각하며 나는 단 한 가지 결론만을 얻을 수 있다. 잠깐이지만 이 지구에 머문 이 시간이 그저 기막히게 멋진 시간이라는 것이다.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죄의식을 느낄 필요도 없고, 그저 역사 속에 잠깐 등장한 존재의 한 토막을 기꺼이 누리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나는 웃고, 마시고, 아이들과 손주들이 나를 떠올릴 때 항상 따스함을 느낄 수 있도록 실컷 사랑을 베풀며 살고 싶다.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유일한 불멸의 형식이다.

 

<‘늦게라도 시작하는 게 훨씬 낫지-80이 넘어 내가 깨달은 것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메흐틸트 그로스만∙ 도로테아 바그너 지음, 이덕일님 옮김, 미래의창 출판> * 메흐틸트 그로스만 : 나이 든 지금 그녀는 작은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인생 최고의 자유로움을 누리고 있다. 노년기가 얼마나 좋은 시간인지를 유쾌하지만 진중하게 이야기 한다. 도로테아 바그너 : 1990년 생으로 그로스만의 손녀다. 뮌헨에 있는 <주트도이체 차이통>의 미디어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칠암 동백항
간절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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