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당신의 자유!

[중산] 2023. 1. 24. 19:29

명상의 목적

 

명상은 무(無)가 아니라 모든 것이 된다. 모든 것이 되라. 그러면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게 된다. 욕망은 결핍이요. 분리의식이요. 모든 번뇌의 근원이다. 

 

명상의 으뜸가는 목적은 마음을 고요히 침묵시키는 것이다. 하나의 생각을 붙잡고 궁구하면 다른 생각들은 하나씩 하나씩 떨어져 나간다. 오늘의 생각(화두)은 ‘그가 나에게 한 일, 내가 해야 했던 일’이다. 이 모든 생각은 잠재의식 차원에서 작용한다.

 

마음을 침묵시키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호기심이다. 어떤 것에 호기심이 깊어지면 다른 생각은 모두 뒷전으로 물러난다. 강렬한 호기심으로 ‘나는 무엇인가? 이 세상은 무엇인가? 나는 이 세상과 무슨 인연이 있는가?라는 의문의 답을 알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타오르면 다른 모든 생각은 떨어져나가고 마음이 극도로 집중된 상태가 된다. 그러면 답이 스스로 나타난다.

 

출발점

 

출발점은 답을 얻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이다. 나는 형이상학적 지식이나 구도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이 시작했다. 사실 나는 종교와 철학을 싫어했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요정 이야기나 믿는 나약한 사람들의 도피처라고 생각했다.

 

답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 너무나 강해서, 나의 마음은 가장 소란한 마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답이 오기 시작했다. 나는 자동으로 사미디 같은 것으로 떨어졌다.

 

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어떻게 하면 행복을 얻을까?’하는 의문으로 시작했다. 나는 나의 행복은 나의 사랑의 능력에 달려 있음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사랑받는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내 삶을 돌이켜보니 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그래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것이 답이 아님을 깨달았다. 계속 궁구하다가 나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나의 사랑하는 능력임을 깨달았다. 그다음 의문은 ‘지성이란 무엇인가?’였다. 나는 ‘아하!알았다!’하게 될 때까지 그것을 붙잡고 늘어졌다. 우주에는 오직 하나의 지성밖에 없고, 우리는 모두가 그것을 얻을 수 있다.

 

그다음에는 나는 책임에 대해 궁구했고, 나에게 일어난, 그리고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나의 책임임을 깨달았다. 창조계는 내가 창조한 것이었다!

 

단 한 가지 의문

마지막으로 ‘나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붙들고 답을 얻을 때까지 궁구했다. 나는 이 의문을 줄곧 붙들고 석 달이 지나서야 전체 그림을 보았다고 믿는다. 오로지 의문에만 집중적으로 매달린 덕에 나는 길의 끝까지 갔다.

 

방향도, 길도, 과정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저 ‘나는 무엇인지, 이 세상은 무엇인지, 나와 세상의 관계는 무엇인지’만은 너무나 알고 싶었다. 당신은 온 세상이 당신 자신 외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오로지 당신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오로지 하나만이 존재하고, 당신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최후의 경지는 아니다. 거기서 나오면 아직도 마음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 그래서 당신이 지배하는 마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까지 다시 명상 속의 궁구로 들어간다.

 

생각의 모든 습관과 마음의 모든 성향이 제거되면 당신은 자유다. 그러면 당신은 마음을 사용할 수 있다. 당신은 마음의 주인이요 지휘관이다. 더 이상 마음이 당신을 결정하지 않는다. 당신이 마음을 결정한다. 우리는 지금 전체 시간의 90퍼센트 이상을 무의식적인 마음의 지배 하에서 산다.

 

욕망이란 ‘난 그게 없어!’라는 생각인가요?

☞ 맞아요! 당신은 결핍감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겁니다. ‘난 그게 없어’라고 말할 때 당신은 거짓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욕망은 ‘나는 가지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일으킵니다. 욕망을 놓아 보내고 ‘나는 가지고 있다’고 느끼세요. 그러면 이것이 그것을 당신에게로 가져다줍니다.

 

모든 것이 된다면 우리는 아내가 되고 세상이 되고 모든 것이 됩니다. 자신을 분리시켜놓지 말고 상대방이 되라는 건가요?

☞ 예. 그거야말로 그 어떤 기분보다도 좋은 기분입니다! 분리감을 놓아 보내면 - 그건 최고의 기분이고 최고의 사랑입니다. 달리 말하면 당신은 그녀가 접시를 깬 것이 아니라 우리가 깼다고 느낍니다. 그녀가 옷을 사느라 돈을 쓴 게 아니라 우리가 썼다고 느낍니다. 이것이 최고의 사랑입니다.

 

이건 마치 집도 자동차도, 아내나 애인도, 아무것도 갖고 싶어 하지 말고 아무것도 되지 말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데요.

☞ 다 맞는데 마지막 말만 틀렸어요. 아무것도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되는 겁니다. 모든 것이 되면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게 됩니다. 욕망은 결핍이고, 분리의식입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이지요. 당신이 모든 것, 만유라면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다 맞는데 마지막 말만 틀린 겁니다. 그것만 뒤집어놓으면 됩니다. 아시겠어요?

 

일어나는 모든 일로부터 기쁨을 얻는가요?

☞ 아닙니다. 당신의 본성 자체가 기쁨입니다. 그게 당신 본연의 상태입니다. 본연의 상태는 무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기에 이 모든 제약과 필요와 집착과 저항의 관념들을 들씌워놓지요. 무한한 기쁨인 그것에다가요.

 

명상을 하고자 하는 열망을 키우면 기회는 스스로 찾아온다는 말인가요?

☞ 명상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다면 다른 일은 안 하고 명상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면 세상 속에서도 마음속에 신을 품고 있을 수 있게 됩니다.

 

명상 중에 일체 상태에 이르러도 분리 상태 속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나요?

☞ 예. 처음으로 그 상태가 이를 때 그건 엄청난 경험이어서 결코 잊히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마음이 지워진 것은 아니므로 다시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 상태에 이를 때마다 마음이 상당 부분 태워 없애집니다.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 모든 사람은 무의식중에 자신의 참자아를 찾고 있어요. 고생을 실컷 하고 나면 올바른 방향을 찾기 위해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짓을 돌아보지 않으면 그건 불행으로 가는 영원한 길이 된다. 자신의 생각에 책임을 지면 지배력을 가지게 된다. 나쁜 생각을 이겨낼 때까지 그것을 꺼버리고 , 바꾸고, 좋은 생각을 집어넣을 수 있다. 그러고 나면 당신은 생각을 내려놓게 될 것이다. 아무런 생각도 없을 때, 당신은 최고의 상태가 된다.

 

자연과 가까이하는 건 좋은 것 같아요.

☞ 자연이 좋은 것은 세속적인 자극에서 떨어져 있을 수 있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도피잖아요?

☞ 맞아요. 자연을 즐기기 위해 자연으로 갈 때 당신이 실제로 즐기고 있는 것은 모든 불행한 생각과 사회적 구속을 떨쳐 버릴 때 얻어지는 해방감입니다. 그리고 그건 도피지요. 하지만 자신의 참자아 속으로 뛰어들기 위해서 홀로 지낸다면 그건 도피가 아니지만요.

 

자연을 즐기면서 동시에 내면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는 건가요?

☞ 그런 뜻은 아닙니다. 뭔가를 즐기려면 분리의 환영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니까요. 기쁨은 사물이나 사람과는 무관한 것이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실상을 깨달으면 즐기기를 택할 수 있게 됩니다. 감각이 섬세해져서 모든 것이 훨씬 더 강렬하게 느껴지지요. 하지만 자연을 즐기러 나갈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본성 자체가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과학의 과학

이 과학은 독창적이다. 이것은 주관적인 과학이다. 우리는 그것을 내면에서 추구해야 한다. 지성으로는 그것을 알 수 없다. 지성은 올바른 방향만을 가리켜줄 뿐이다. 그 방향이란 주의를 안으로 돌리는 것이다.

 

가장 차원 높은 방법은 모든 사람이 최후에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이 궁구는 명상할 때만이 아니라 하루 종일 지속되어야 한다. 그 답이 스스로 우리 앞에 분명해질 때까지.

 

생각이 잠잠해지면 무한히 있음이 스스로 자신을 드러낸다. 그것은 스스로 빛난다. 그것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다른 생각들이 끼어 들것이다. 가장 큰 어려움은 이런 생각들을 침묵시키는 것이다.

 

잡생각들이 끼어들면 ‘이 생각들은 누구에게 일어나는가?’라는 의문을 떠올리라. 그 답은 당연히 ‘나에게’이다. 그러면 다시 ‘나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당신을 제자리로 데려간다. 이런 방법으로 ‘나는 무엇인가?’하는 의문에 주의를 계속 집중시킬 수 있다.

 

행위자가 되지 말라

 

일상 속에서 행위자, 대리자가 되지 않는 연습을 하는 것이 좋다. 단지 목격자가 되라! ‘이것은 내가 아니라 나를 통해 역사하시는 아버지다’라는 태도를 취하라. 삶을 그저 지켜보는 목격자로 남아 있을수록 우리는 몸에 덜 집착되고 더욱 자신의 참자아로서 있게 된다.

 

그러니 내가 제안하는 두 가지, 하나는 ‘나는 무엇인가? 하는 궁구이고, 둘째는 삶 속에서 ’행위자가 되지 말고 목격자가 되라. 일이 일어나게 내버려두라. 삶이 그저 있도록 허용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가장 높은 경지의 상태다.

 

참자아의 출현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기는 어렵다. 그들은 전과 같이 삶 속을 움직인다. 이전에 무엇을 했든지 그것을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완전히 달라져 있다. 그들은 자신의 몸뚱이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어서 에고가 전혀 없다.

 

존재했던 유일한 것은 한계 없고 너무나 완벽하고 전지하고 전능하고 편재하는 절대적 실재, 나의 있음(my Being)이었음을 깨닫는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강조하고자하 중요한 것 두 가지 중 첫째는, 가장 높은 차원의 방법은 ‘나는 무엇인가?’하는 궁구이다.

 

고요한 상태에서 의문을 품고 있다가 잡생각이 끼어들면 ‘이 생각은 누구에게 떠올랐는가?’하고 물어보고, ‘나에게’라는 답이 떠오르면 ‘그럼 그 나는 무엇인가?’ 하고 물으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이것을 온전한 답을 얻을 때 까지 하는 것이다. 둘째로 중요한 것은 행위자가 아니라 목격자가 되라는 것이다.

 

당신의 자유

 

나의 말을 받아들여서 무임승차를 했다면 여러분은 스스로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스스로 뜻하거나 소망하는 것이라면 당신은 무엇이든지 될 수 있고, 할 수 있다. 실체를 알고 나면 더 이상 엉뚱한 곳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당신을 있음(beingness)으로부터 추락하게 된다. 열쇠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즐거움이 곧 행복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글에게 즐거움이란 고통으로부터의 도피이다. 혼자서는 자기만의 생각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으니까 영화관으로, 친구의 집으로 도망가거나 그저 뭔가를 계속한다. 그래야만 제 안의 생각들을 대면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몸은 우리가 가진 큰 족쇄요 감옥이며, 우리가 가는 길을 우리 스스로 막아 놓은 가장 큰 장애물이다. 모든 어려움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당신이 몸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 

 

몸은 동작이 굼뜬 기계다. - 그게 그것의 전부이다. 몸으로서 살아남고자 하는 욕망이 우리의 모든 이상행동의 근원이다. 모든 사람이 인정(사랑)을 받고 싶어서 발버둥치고 그것을 얻기 위해 거의 모든 노력을 허비한다.

 

당신은 몸이 없으면 당신도 없어질까 봐 두려워한다. 모든 두려움은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몸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불행이라는 덩어리는 모두가 육신에 연루되어있다. 행복이라는 덩어리는 곧 본연의 당신인 참자아로서 있는 것이다.

 

행복은 정확히 바로 당신 자신이다. 몸은 아파도 그것과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 더 높은 경지이다. 완벽한 몸은 불완전한 몸만큼이나 쉽게 사람을 구속할 수 있다. 마음은 몸의 신경계의 배전반이다. 불행은 오로지 몸과의 동일시에서 비롯된다.

 

가장 건강한 음식은 식물의 꽃에서 나온 과일과 채소이다. 가장 불건강한 음식은 고기이다. 운동은 좋다고 믿으면 좋다. 근육이 긴장되고 이완될 때 우주의 에너지가 몸을 드나드는 것을 보는 것이다.

 

모든 몸들을 자신의 몸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불멸을 원한다면 몸에 집착하지 말라. 자신이 분리된 개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당신은 육체와 아스트랄체와 근원체를 초월한다. 분리된 개인이라는 생각이 신체를 만들어 낸다. 자신의 개체성을 하나의 있음(one being)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몸과 세상을 실재로 받아들이는 한 신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한한 참자아로 있을 때, 당신은 몸을 돌보지 않고 그 안의 있음만을 본다. 몸이 되려고 애쓰는 한 당신은 실상을 목격할 기회가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무한하다는 것인데, 몸은 무한의 반대극에 있기 때문이다.

 

몸이 되지 말라. 세상은 하나의 꿈, 하나의 아름답고 완벽한 꿈이다. 자신이 몸이라는 생각을 놓아 보내면 당신은 단숨에 꼭대기까지 간다. 이 육체의 차원이야 말로 가장 위대한 차원계이다.

 

왜냐하면 이 속에서 우리는 모든 차원계를 초월하여 자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이 그토록 멋지다고 생각한다면 참자아를 깨달은 후에 똑같이 생긴 완벽한 몸을 무수히 만들어 낼 수 있다. 몸을 버리라, 그러면 죽음을 버리게 될 것이다!

 

<‘깨달음 그리고 지혜‘ P350 중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레스터 레븐슨 지음, 이균형님옮김, 정신세계사출판> * 레스터 레븐슨 : 1909년 뉴저지주 태생. 루트거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 대공항과 제2 차세계대전의 여파로 생계를 위해 일찌감치 사업에 뛰어들었고, 큰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다 뉴욕의 펜트하우스에서 지낼 만큼 부를 누리게 된 1952년에 심장질환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다. 그 직후 필사적으로 자기 내면을 탐구하기 시작했고, 3개월간 은둔생활 끝에 인생의 모든 의문이 일시에 해소되는 깨달음을 경험했다. 병이 나은 것은 물론이고 실험 삼아 손댄 부동산사업도 대성공이었다. 그 이후 대도시를 돌며 자신의 깨달음을 본격적으로 전달했다. 사람들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1994년에 세상을 떠났다. 옮긴 책으로 <홀로그램 우주>,<상처받지 않은 영혼>, <자발적 진화>,<그리스도의 편지>등 30여권이 있고,지은 책으로 <우주의 홀로그래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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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리에서 바라 본 일광해변과 달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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