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그럭저럭 견딜 만한 삶!

[중산] 2024. 10. 6. 06:53

 

두물머리

 

 

 

현명한 사람은 고통이 없기를 바라고 쾌락을 추구하지 않는다.

- 아리스토텔레스

 

 

모든 행복이나 쾌락은 부정적(소극적인)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고통은 긍정적(적극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기반 한다.

 

만약 아리스토텔레스 이 가르침이 틀린 것이라면, 볼테르의 “행복은 꿈에 불과하고, 고통은 현실이다”라는 말도 틀린 말일 것이다.

 

삶 속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쾌락이 아닌 고통을 근거로 삶을 대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행복은 그 말 자체가 완곡한 표현으로 ‘행복하게 산다’라는 것은 작은 불행에 의해 그럭저럭 견딜 만한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삶은 즐기고자 주어진 게 아니라, 극복하고 벗어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이것을 라틴어로 표현하면 ‘그럭저럭 삶을 견뎌낸다’이다.

 

행복한 사람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없이 살아온 사람이지, 쾌락과 향락을 누린 사람이 아니다. 즉 쾌락과 향락을 행복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잘못된 기준을 지닌 것이다.

 

왜냐하면, 쾌락은 소극적인 것에 머무르며, 향락이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은 질투와 부러움에서 비롯된 착각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삶을 쾌락에 좇다가 나중에야 자신이 속은 것을 알게 된다. 반면 현명한 사람은 고통을 피한다.

 

현명한 사람이 고통을 피하기 위해 쾌락을 포기했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더 나빠진 것은 없다. 그런 즐거움을 얻지 못했다고 해서 후회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리를 낙관적인 견해에 의해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불행의 원인이다. 이러한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오로지 즐기기 위해서 이 세상이 있는 것이며, 이런 행복을 얻지 못한 사람은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탓이고, 세상에는 실제적인 행복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 시와 소설 등, 겉모습만 화려한 세상의 위선적인 것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괴테가<선택적 친화력>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고통을 피하려는 것은 확실한 목표이지만, 현재보다 더 나은 운을 바라는 것은 맹목적인 어리석음이다.”

 

괴테는 젊은 시절 친구였던 메르크와 주고받은 서신에서 이렇게 말했다. “행복에 대한 탐욕적인 요구는 그 정도가 높아지면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망친다. 이러한 요구에서 벗어나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원하는 사람이 진보할 수 있다.”

 

<‘결코 나의 운명을 원망하지 않으리라 - 쇼펜하우어의 인생에 대한 조언’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아루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김요한님 옮김, RISE출판>

 

* 아루투어 쇼펜하우어 : 독일의 철학자로 19세기 서양 철학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인간 삶의 비극적인 면만을 탐구한 사상가로서 흔히 염세주의자, 비관론자로 알려졌지만, 그는 인생의 허무를 폭로하기 위함이 아닌 허무해질 가능성이 있는 이들에게 인생의 참된 의미를 전하고자 끊임없이 탐구하였다. ‘철학자의 철학자’로 불린 그는 니체, 프로이트, 톨스토이, 보르헤스,카프카, 아인슈타인 등 수많은 위인에게 영감을 준 스승이다.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의 착품들은 불멸적 고전으로 읽히고 있다.

 

경주 대릉원

 

 

철학 상식 한 토막 - 포스트모더니즘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근대 이후’를 뜻한다. 즉 포스트모던은 근대 이후의 사상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근대 사상은 프랑스 계몽사상가 루소나 영국 철학자 로크의 사회계약설을 통해 시민의 손으로 국가를 세울 수 있게 했고, 독일 철학자 헤겔이 인간의 지체가 무한하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처럼 근대 사상의 태도를 비판적으로 반성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포스트모던이었습니다. 그 예가 리오타르가 주장한 ‘거대담론의 증언‘을 들 수 있습니다.

 

거대 담론이란 우리가 공통적으로 지닌 계몽사상, 즉 인간은 하나의 커다란 목적을 향해 전진한다는 사상입니다. 돌이켜 보면 인간은 항상 사회 발전을 목적으로 삼으며 살아왔습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거대한 이야기는 결국 억압을 초래하고 사고를 멈추며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포스트모던은 한계에 부닥친 근대 사상을 극복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양 있는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철학 수업‘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오가와 히토시 지음, 이용택님 옮김, 빌리버튼출판> * 철학자이자 야마구치대학교 교수이다. 교토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고 나고야 시립대학 대학원에서 인간 문화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리 가본 설악산 (지난 해 가을)

 

 

U씨는 결혼할 당시 배우자 선택 기준이 경제적으로 성공한 남자였다. 돈 때문에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며 스트레스 받고 살기보다, 경제적으로 유능한 남편의 그늘에서 전업주부로 사는 것이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심부전증으로 쓰러졌다.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두려웠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그녀에게 닥쳤는지 믿을 수 없었고 세상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U씨 앞에는 지금, 남편을 대신해야만 하는 많은 일들이 산적해 있었다. 결국 그녀는 현실을 상황을 받아들였다. 남편 사업을 대신 운영, 병 회복을 위한 일, 가족 일, 공적인 일 등 집 안팎의 모든 일들을 U씨가 결정하고 처리해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녀의 삶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놀라운 것은, 두려워서 혼자할 수 없을 것 같던 일들을 그녀 스스로 해나가면서, 비로소 마음의 진정한 평화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현재 모든 것을 책임지고 결정하면서 느끼는 두려움은, 이전에 그녀의 삶을 남편에게 송두리째 맡겼을 때 느꼈던 두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U씨는 이전, 왠지 모르게 자신의 생존 자체에 대해 불안해했었다. 인생의 모든 키를 남편에게 맡긴 무력감에서 비롯된 근본적 두려움 때문이었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앳킨슨의 성취동기에 따르면, 사람은 성취동기에 따라 ‘실패 회피형’과 ‘성공 추구형’으로 나뉜다.

 

‘실패 회피형’은 실패가 두려워 위험을 피하려고 안전을 택하는 유형이다. ‘성공 추구형’은 성공을 생각하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위험도 각오한다. 

 

위험을 피하려고 모험을 하지 않는 ‘실패 추구형’ 사람들은, 두려워도 모험을 택하는 ‘성공 추구형’보다 느끼는 두려움이 더 크다는 것이다.

 

번지점프나 다이빙을 했을 때를 떠올려 보자. 난간에 올라서면 두려움에 사로잡혀, ‘미쳤지! 비싼 돈까지 내고, 내가 이걸 왜? 그만 포기 할까?’ 생각이 든다.

 

심히 공포스럽고 두려운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순간의 담력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설마 죽기야 하겠어?’하고 일단 해보지 않았던가.

 

그 결과, 짜릿한 스릴을 느껸 멋진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인생에서 우리는 ‘완벽’이 아니라 ‘발전’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실수를 해도 괜찮다. 실수는 짧은 한 때에 그치고, 시작일 뿐이다. 두려워도 해보자.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자!

 

<‘사람들이 죽기전에 후회하는 33가지’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전세란 지음, 산솔미디어 출판> 전세란 : 1970년 서울 생으로, 한국외대 포르투칼어과를 졸업했다. 결혼 육아, 직장생활 23년 차 경험자로서, 45세에 대장암 수술, 2022년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죽음 앞에 서게 되었다. 그후 ‘삶이란, 끝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매일이 기적 같은 하루이고, 기쁨 그 자체다.‘라는 진리를 깨닫는다.

 

미리 가본 설악산 (지난 해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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