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똑 같은 황혼

[중산] 2025. 3. 5. 17:55

영원토록 똑 같은 황혼

 

날마다 이맘때, 마지막 한 줄기 저녁 햇살이 문간에 비칠 때 나는 집으로 돌아온다. 소달구지와 양 떼를 몰면서, 땔나무를 짊어지고, 부모님과 동생들은 모두 마당에 있고 누렁개와 얼룩 닭도 아직 보금자리에 돌아가지 않았다.

 

모든 것이 한결같은 황혼녘이다. 국수, 배추, 찐빵, 늘 똑같은 간단한 저녁밥이 고단한 하루를 보낸 식구들을 한자리에 모은다.

 

나는 언제나 저녁밥 시간에 댈 수 있다. 우리 식구는 늘 늦게까지 밥을 먹는다. 아버지는 등받이 의자에 기대앉고, 어머니는 작은 걸상에 앉고, 자식들은 흙덩이와 나무토막에 쪼그려 앉고, 빈 그릇은 아직 치워지지 않은 채 바닥에 놓여 있다.

 

온 가족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점점 어두워져 누가 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어도 조용히 기다린다. 등잔은 집 안에 있는데 불을 밝히러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입을 여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또 다른 황혼녘, 저녁 해는 먼 곳에 있고 먹구름에 가려 문간을 비추지 못한다. 하늘은 나직하고 묵직하다. 마당은 바람에 휩싸여 있다.

 

큼지막한 나뭇가지와 잎새가 공중에 휘날린다. 대문이 덜그럭덜그럭 소리를 내며 열리고 닫힌다. 대문에 받치는 막대기는 바닥에 쓰러져 있다. 마당에 식구들이 미동도 없이 앉아 있다.

 

날이 곧 저물려고 한다. 저물고 있다. 그 시간을 기다리고, 그 시간이 와도 여전히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식구 한 사람을 기다리는 듯하다. 온 식구가 다 있는 것 같은데, 한 사람이 아직 안 온 것도 같다. 누가 들어오지 않았을까. 바람이 우우 울부짖는다.

 

머리 위에서 커다란 나뭇가지와 잎새가 쉴 새 없이 날아다닌다. 오래전에 모두 함께 있을 때부터 우리는 기다리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마을’에서 극히 일부 발췌, 류량청지음, 조은님 옮김,글항아리출판> * 류량청 : 1962년 신장 사완현에서 태어나 농사일을 하며 자랐다. 1998년 문단의 극찬을 받아 향토문학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신장작가협회 주석, 중국작가협회 산문위원회 부주임을 맡고 있다. 시집으로 <황사량에 내리쬐는 태양>, 산문집<한 사람의 마을>,<신장에서>,<나의 고독은 군중 속에 있다>, 장편소설<허토>,<착공>등이 있다.

 

 

호명사회(呼名社會)

 

사회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새로운 지능화 시스템과 플랫폼이 등장할 때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가 더 빠르게 적응합니다.

 

시간이 축적되며 세상 사람들에게 조직을 넘어 오롯이 그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대가 핵개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핵개인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소속과 직함을 버리고 자신의 업에 이름을 걸 수 있는 이들은 나이와 성별과 그 어떤 배경에 상관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 자극이 된다고 말합니다.

 

당신이 중년이라도 20대, 30대와 대등한 연대를 만들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70대, 80대와 연대할 수 있으면 당신은 호명사회의 일원입니다.

 

당신이 중년이라도 조직에서의 직위나 전 직장의 직함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동호회 닉네임인 '○○님‘으로 불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의 아카이브를 쌓을 수 있다면 호명사회의 일원입니다.

 

당신이 젊은 시절 친구들을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나서 서로의 경제적 수준이나 사회적 성취를 떠나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중심으로 소모임을 이루고, 왕년의 이야기가 아니라 미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이미 호명사회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당신이 취미를 발전시켜서 당신만의 작업 공방, 당신만의 원 테이블 레스토랑으로 사람들을 초대할 수 있다면 당신만의 호명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반대로 당신이 유명한 사람일지언정 ‘셀프 동기’를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자동화 시스템과 AI에 적응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호명사회의 일원이 아닐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일상을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하거나 당신의 일들을 누군가 대행해야 한다면, 역시 당신은 호명사회의 일원이 아닐 수 있습니다.

 

호명사회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고 각자 역할을 분업해서 살아왔던 시대를 뒤로하고 당시의 영광으로 포장된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이들에게 먼저 찾아옵니다.

 

자신의 이름으로 바로 서는 일은 누구에게나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이제 정보의 현행화는 AI가 맡았으니 사람의 역할은 새로운 현상을 감시하고 문제를 정의하는 쪽으로 점차 이동할 것입니다.

 

그럴싸한 해답을 만들어내는 일은 AI가 인간보다 훨씬 잘할 수 있지만 무수하게 펼쳐진 질문 속에서 현실을 관통하는 획기적 질문을 찾는 일은 아직 인간의 역할고 남은 것입니다.

 

온라인에 많은 글이 매일같이 올라오고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몇 개 안 되는 댓글을 매일 찾아보며 억울한 비난에 상심한다는 수많은 유명인의 이야기도 익숙합니다.

 

이제 많은 조직이 직급을 단일화하거나 없애고 있습니다. 프로나 매니저로 총칭하는 단일 직급과 한국어로 된 이름을 부르기엔 낯설어 영어 이름을 직급없이 부르는 새로운 규칙이 출현한 지도 꽤 시간이 지났습니다.

 

언어학자 신지영 교수는 <언어의 높이뛰기>에서 한국어의 특징 중 하나가 2인칭으로 부르는 호칭이 마땅치 않은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전 세계 207개 언어 중에서 공손성을 이유로 2인칭 대명사를 기피하는 언어는 7개 불과한데, 그 중 하나가 한국어라는 설명입니다.

 

‘너’든 ‘당신’이든 2인칭을 설명하는 대명사가 한국어에서 쓰인다면 상대와 일전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우리 언어는 상대를 직접적으로 지칭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k교수님’, ‘k상무님’과 같은 직위나 직책의 호칭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구조는 우리 사회에서 더욱 서열을 강조하는 의식을 형성한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직함과 직급이 사라진 상태에서 개인에 대한 호칭까지 사라지는 위험성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 전체가 되는 소속이 사라지는 순간 마치 본인의 존재가 사라지는 듯한 당혹감을 떨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난이든 칭찬이든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다면 ‘나는 그에게 실재하는 개체로 인지됨’을 이해합니다. 그가 나를 생각하고 나를 떠올림으로써 나의 존재는 깨어나고 나는 실존합니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가 개인을 사회적 정체성으로 호출하는 과정을 호명( interpallation)이라 정의했습니다.

자립한 핵개인은 각성 후 건강한 연대를 시작합니다.

 

단순히 부름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름을 부르는 상호 호명의 사회는 수직적 통제가 아닌 대등한 협력의 네트워크를 형성합니다.

 

이름이 불리면 그 목소리는 그를 깨웁니다. 자신의 이름에 책임을 지는 이들의 수평적 연대는 각자가 스스로를 완결하여 이름의 값을 해내는 신뢰의 사회를 형성합니다.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고 이름에 부응하는 자기 완결성의 사회, 호명사회가 다가옵니다!

 

<‘시대예보 : 호명시대’P339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송길영님 지음, 교보문고> * 송길영 : 컴퓨터공학 박사, 시대의 마음을 캐는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이다. 일상적 기록을 관찰하여 현상의 연유를 탐색하고 그들이 찾고자 하는 의미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20여 년 간 해왔다. 저서로<시대예보 : 핵개인의 시대>, ,그냥 하지 말라>,<상상하지 말라>,,여기에 당신의 욕망이 보인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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