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살에 내가 박은 가시들
"근심 걱정은 내가 만든 것 그런데 남의 탓이라고만 우겨 내 살에 내가 박은 가시를 왜 빼지않고 잔뜩 찡그리는지… 좌절과 시련에 쓰러지면 고통이 되지만 그걸 지팡이 삼으면 정상에 오르는 도구돼"
속상한 일이 생겨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괴로워했습니다. 애써 잊어보려고 술도 마셨고 수면제도 먹었지만 원망을 가셔낼 수는 없었습니다. 내 속을 뒤흔든 사람은 지금쯤 쿨쿨 자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순간 나만 손해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속상해서 마신 술은 간을 괴롭힐 것이고 잠들기 위해 삼킨 수면제도 내 몸의 어딘가를 갉아먹을 것이며, 밤새 미워하고 원망한 내 영혼은 상처투성이가 되었으리라. 아, 밤새 내 영혼에 쓰레기를 퍼 담았으니 내게서 악취가 진동할 테고 마음마저 병들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스승의 말씀이 내 가슴을 마구 두들겼습니다. "꽃다발을 주었을 때 받으면 누구의 것인가?"
"제 것입니다."
"받지 않으면 누구의 것인가?"
스승은 슬며시 웃더니 다시 물었습니다.
"쓰레기 한 봉지를 주었을 때 받으면 누구의 것인가?"
나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꽃다발은 성큼 받고 싶은데 쓰레기는 받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쓰레기도 받으면 제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쓰레기를 받지 않으면 누구의 것인가?"
나는 얼른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쓰레기를 준 사람의 것입니다."
일 년 동안에 꽃다발을 몇 번쯤 받는지 한 번 세어 보세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분노, 미움, 질투, 좌절, 근심, 걱정은 얼마나 많이 다가왔을까요? 그것들을 쓰레기라고 생각해보셨나요?
결코 내게 득 될 게 없는 것들이니 분명 영혼의 쓰레기입니다. 꽃다발은 받으면 화병에 꽂아 두게 됩니다. 그렇다면 쓰레기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정답은 딱 한 가지, 쓰레기통에 버리면 그만입니다.
쓰레기를 끌어안은 채 밤새 내가 나를 두들겨 팬 셈입니다. 인생은 자신이 문제를 출제하고 자신이 해답을 찾는 것인데, 왜 자꾸만 어렵게 출제하고 해답을 못 찾아 산지사방을 헤매는지 모르겠습니다.
근심, 걱정은 대체로 내가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남의 탓이라고 자꾸 우기게 됩니다. 내 살에 내가 박은 가시를 왜 빼지 않고 잔뜩 찡그리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나를 밤새 미워하고 못살게 굴었으니 먼저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비행기를 탑승했는데 김해공항에서 착륙하려다가 갑자기 급상승했습니다. 굉음과 함께 돌연 기체가 뒤로 넘어갈 듯 기울어져 더럭 겁이 났습니다. 잠시 후 기장은 착륙 도중에 돌풍이 불어 급상승을 했고 30분 정도 공항 주변을 배회하니 양해해 달라고 했습니다. 비행기는 좌우로 흔들렸고 공항은 점점 멀어져 바다 위를 맴돌았습니다. 30여분 내내 불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다시는 비행기를 타나 봐라, 기차를 탈 걸, 비행기 타고 다닐 거리의 강연요청은 거절해야지, 만약 추락하면 어쩌나, 가족은 어쩌고 친지들은 뭐랄 거며 쓰다만 글은 어쩔 것인가, 바다에 추락하면 구명복을 입어야 하는데 어디 있더라, 비행기만큼 빠른 고속철은 왜 못 만드는 거야, 이렇게 죽으면 개죽음인데….' 별의별 방정맞은 생각을 하며 기나긴 30여분을 보냈습니다.
돌풍이 멈추자 비행기는 사뿐히 착륙했습니다. 세상모르고 코를 골던 승객들은 그제야 눈을 비비고 일어나 여유만만하게 걸어나갔습니다.
그들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나를 몹시 괴롭힌 비행기였지만 잠들었던 사람에게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빨리 데려다 준 고마운 비행기일 뿐입니다.
내가 근심, 걱정에 휘말렸던 '30분'과 그 시간에 잠들었던 승객들의 '30분'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그 사람들은 나 같은 걱정을 안 했을 뿐이지 행복했던 건 아닙니다. 온갖 걱정을 했던 내가 불행했을까요?
나는 그 '30분' 동안 엄청 많은 걸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좀 더 재미있게 살고 가족과 더 화목하며 친지들과 자주 어울리고 죽었을 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를 생각했습니다.
근심, 걱정을 한다는 게 꼭 손해 보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배운 셈입니다. 내가 그 사람들처럼 쿨쿨 잠들었다가 깨어났다면 그냥 강연하러 부산에 다녀온 기억뿐이겠지만 그동안 온갖 걱정을 함으로써 오히려 많은 걸 깨달을 수 있었으니 그런 큰 마음공부를 어디서 달리할 수 있겠습니까.
비행기 안에서 30여분 동안 온갖 걱정을 하기 전까지는 그냥 무덤덤하게 무언가에 쫓기며 살았는데,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내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무지하게 고맙고 기뻤습니다.
근심, 걱정, 실패, 좌절, 시련에 밟혀 쓰러지면 고통이 되지만 그걸 지팡이 삼아 걸어나가면 정상에 오르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시련은 사람을 빛나게 할 뿐만 아니라 향기롭게 만들기도 합니다. 풀을 베면 은은한 향을 풍기는 건 상처에서 향기가 나기 때문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다이아몬드가 귀한 것은 갈고 닦는 혹독한 시련을 거쳐 찬란한 빛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DNA를 가졌더라도 혹독하게 깎고 갈아내지 않으면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기는 참 쉬운데, 저 자신도 잘 안 되는 걸 어쩌죠?
<김홍신, 소설가/건국대 석좌교수, 조선일보 기고문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