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고, 무미건조한 성격의 카렌닌에게 시집을 가 여덟 살 난 아들을 두고 산다. 그들의 결혼은 사랑보다는 조건을 중시한 결혼이었다. 나이 차이뿐만 아니라 성격 차이도 그들의 결혼생활을 불행하게 했다. 안나는 매력적이고 저돌적인 귀족 청년 브론스키를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유부녀의 사랑은 그 자체로 이미 불길한 전조를 띠고 있었다. 안나는 아들을 포기하는 것으로, 브론스키는 군대를 떠나는 것으로 그들은 불륜의 톡톡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사회는 인습적으로 자유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사회에서 격리된 생활을 했고, 안나 역시 남편이 이혼을 해주기 않기 때문에 사회에서 소외된 채 살 수밖에 없었다.
한편 지방귀족으로 사교계의 청년과는 거리가 먼 레빈은 순진하고 때묻지 않은 키티를 사랑한다. 하지만 키티는 브론스키에게 빠져 레빈의 청혼을 거절한다. 이에 실망한 레빈은 시골로 내려가 농민들을 계몽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펼치지만 키티에 대한 사랑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아내의 불륜을 알고도 이혼조차 해 주지 않는 남편과 사교계의 배척으로 안나와 브론스키는 괴로움을 겪고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브론스키와 안나에게 상처를 입은 키티는 레빈의 진지한 사랑을 받아들인다. 유럽여행도 지겨워질 무렵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의 정열이 점차 식어가고, 안나는 브론스키의 말과 행동을 의심하며 괴로워 하는데...(요약)
운명적인 만남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 나름으로 불행한 법이다.
안나의 오빠 오블론스키(스티바)의 가정은 만사가 뒤죽박죽이었다. 오블론스키는 자신의 집에 가정교사로 있던 프랑스 여자와 간통한 사실을 아내 돌리에게 들킨 참이었다. 오블론스키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누이동생인 안나에게 부부싸움을 해결해 달라고 부탁한다. 간통이라는 부정한 일을 저지르고도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이다. 기차역까지 안나를 마중 나온 오블론스키는 어머니를 마중 나온 친구 브론스키 장교를 우연히 만난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어머니는 같은 차량을 타고 온 것이다. 기차역에서 안나를 처음 본 순간 브론스키는 그녀의 시선에서 강한 생명력을 느끼고 운명적인 사랑의 포로가 돼 버린다.
잠깐 본 시선에서 브론스키는 재빨리 그녀의 얼굴에서 뛰노는 빛나는 두 눈과 보일까말까하는 미소를 띤 붉은 입술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약동하는 생기를 알아챘다. 마치 과잉의 무엇인가가 몸에 흘러 넘치면서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빛나는 눈이나 미소 속에 드러난 것 같았다. 그녀는 의식적으로 눈빛을 죽이고 있었으나,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그 빛은 어렴풋이 나타나는 미소에서 강하게 반짝이고 있었던 것이다.
안나는 고관인 남편과 8살 된 아들이 있는 유부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론스키는 안나의 매력적인 모습에서 반한 것이다. 두 사람의 미묘한 감정이 오가는 사이 후퇴하는 기차에 철도원이 깔려 죽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 철도원이 혼자서 많은 식구들을 부양하는 가장이라는 말을 들은 브론스키는 불쌍한 유가족을 위해 그 자리에서 200루블이라는 거금을 위로금으로 내놨다. 안나는 이런 브론스키의 행동에 묘한 느낌을 받았고, 철도원의 죽음을 떠올리며 불길함을 느꼈다.
“참 끔찍한 죽음도 있어!” 어떤 신사가 옆을 지나가면서 말했다. “두 동강이 났대.” “나는 반대로 가장 쉬운 순간적인 죽음이라고 생각해.” 다른 사람이 말했다. “불길한 징조예요.” 안나가 말했다.
불안하게 고조되는 안나의 감정
오빠의 집에 도착한 안나는 올케 돌리에게 그동안의 사정 이야기를 들었다. 안나는 올케를 위로하면서 오빠를 용서해 주고 화해하라고 말한다. 안나가 오빠 집에 온 후 돌리의 분노는 서서히 풀렸고, 안나는 어린 조카들과 놀아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 아이들만 없었다면, 돌리도 바람둥이 남편과 화해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 안나는 돌리의 동생 키티와 친해져 둘이서 브론스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정도였다. 키티와 브론스키가 사랑하는 연인 사이라는 사실은 주위에 잘 알려져 있었다. 안나는 성숙한 여인이 사랑에 빠진 소녀를 격려하는 어투로 브론스키를 칭찬했고, 기차 여행을 하면서 브론스키 어머니의 자식 자랑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그러던 어느 날, 브론스키가 키티를 찾아왔다. 그런데, 안나를 보자 갑자기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키티는 그가 자기 때문에 왔지만 손님 때문에 돌아갔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안나는 돌아가는 브론스키를 보고 일종의 불안을 느꼈다. 아니, 만족과 공포가 뒤섞인 이상한 감정이 갑자기 그녀의 마음 속에서 움직였다. 안나는 이런 예감에 빠져들면서 파멸의 길로 서서히 나아가고 있었다.
안나의 등장으로 키티와 브론스키의 관계가 서서히 서먹서먹해지며 적대적으로 바뀐다. 이 세 사람이 참석한 무도회에서 키티의 갑작스런 슬픔이, 안나의 눈부신 황홀경이, 막 시작된 브론스키의 열정이 각각 표출된다. 귀족의 무도회가 있던 날 밤 안나는 가슴이 깊게 패인 검정 벨벳 옷을 입고, 키티는 라일락 색깔의 옷을 입고 참석했다.
어머니와 함께 무도회에 참석한 키티는 자기와는 성의 없는 춤으로 일관하고 안나와 춤을 출 때는 밝고 명랑하게 대하는 브론스키를 보고 실망했다. 무도회에서 무시를 당한 키티는 브론스키에게 모욕감과 배신감을 느꼈다. 춤을 추는 동안 안나는 “눈꺼풀을 내리깔고” 키티를 응시한다. 안나의 의식에 잠재된 교활함과 잔인성이 드러난다.
사실 키티는 브론스키에 대한 사랑으로 시골에서 상경한 형부의 친구 레빈의 청혼을 거절했다. 안나는 키티에게 상처를 입힌 결과가 됐고, 키티는 질투로 괴로워했다.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고 안나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고 기차를 탔다. 그녀는 영국 소설을 읽으며, 자신을 소설 속의 여주인공으로 상상하며 고조된 감정을 느꼈다. 기차 밖에서는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기차는 보고로보역에 정차했다. 안나는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바람과 눈보라를 맞는다. 휘몰아치는 눈보라만이 안나의 혼란스런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았다. 거기서 안나는 같은 기차를 타고 있던 뜨거운 눈빛의 브론스키를 만났다. 그는 안나를 쫓아가 열렬한 심정을 고백한다.
이제 그녀의 눈에는 무시무시한 눈보라가 더욱 멋지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그녀가 마음으로는 원하면서도 이성으로는 두려워하고 있었던 바로 그것을 말했던 것이다.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그녀의 얼굴에서 그녀의 마음 속의 싸움을 알아챘다.
안나 역시 주체하기 힘든 마음으로 기차여행을 했다. 기차가 페테르부르그역에 도착하자 남편이 마중 나와 있었다. 그날 따라 남편의 귀가 너무 커 보이는 것이 싫었다. ‘맙소사, 어째서 저이의 귀는 저 모양일까?’ 그의 냉랭하고 점잔 뺀 모습과 특히 그 순간 그녀의 눈에 띈, 둥근 모자를 떠받치고 있는 듯한 귀의 연골 부분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부적절한 관계
집에 돌아온 안나는 그녀의 아들에게서도 실망을 한다. 그녀의 분별력과 도덕적 생활 습관이 이미 그 어떤 정열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찢겨지고 있는 것이다. 그날 저녁 카레닌 부부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남편은 자기 버릇대로 고지식하게 처남의 탈선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밤이 깊어 카레닌은 안나에게 잠자리에 들자고 한다. 대수롭지 않은 신체 접촉, 슬리퍼들, 그의 팔에 낀 책, 시간에 따른 생활 등에서 카레닌 부부의 육체 관계는 매우 무미건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안나는 침실에 들어서 “그녀의 마음 속 아주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불꽃이 꺼져 버린 듯 싶었다.” 카레닌 부부의 육체적 정열은 꺼진 불꽃같은 어둠이었던 것이다.
안나가 페테르부르그로 돌아간 뒤 돌리는 딸을 낳았다. 한편 브론스키의 배신으로 키티는 외국으로 요양을 가야 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아팠다. 돌리는 키티에게 브론스키 같은 사람은 사랑할 만한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고 위로했으나 키티는 흥분을 자제하지 못하고 이성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브론스키와의 불장난은 키티를 성숙시켰다. 실연의 상처로 건강을 해친 키티는 요양을 위해 독일의 온천지로 여행을 떠난다. 브론스키는 부대로 돌아가 청년 귀족 장교가 걷게 마련인 꿈과 야심의 생활 속으로 뛰어든다.
수도 페테르부르그 귀족들의 생활은 사교계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 당시 수도의 사교계는 세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첫째 그룹은 안나의 남편 카레닌이 속한 관료 모임이고, 두 번째 그룹은 리쟈 이바노브나 백작을 중심으로 형성된 명예와 신앙심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고, 세 번째 그룹은 브론스키의 사촌인 공작부인 베시를 중심으로 화려한 무도회와 연회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안나는 처음에 첫 번째 그룹에 관심을 보였다가 얼마 지나자 두 번째 그룹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모스크바를 다녀온 후에는 세 번째 그룹에 자주 드나들며 사람들을 사귀었다.
처음 얼마 동안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있던 안나도 점점 브론스키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브론스키는 안나가 가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나 닥치는 대로 따라다녔다. 마침내 두 사람의 만남이 잦아지면서 달콤한 밀월관계로 변했다. 베시의 집에서 손님들은 안나와 브론스키의 관계를 화제로 삼았다. 이들은 카레닌은 유능한 정치가이며 마음이 넓고 훌륭한 인물이지만 바보 같은 면이 있는 남자로 평한 반면, 안나에 대한 브론스키의 뜨거운 정열을 낭만적인 사랑으로 평가했다. 카레닌은 아내의 사생활을 인정하면서 주위 사람들과의 사이를 질투한다는 것은 아내를 모욕하는 것이라 여겼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관계를 의심하지 않다가 점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음을 눈치챈 카레닌은 아내에게 자신의 입장 두 가지를 설명했다. 첫째로 세상 사람들의 평판과 예의범절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둘째로 결혼의 종교적 의미를. 하지만 남편의 충고에도 안나는 사교계를 드나들면서 브론스키를 만났다. 두 사람에 대한 소문은 이제 페테르부르그 사교계에 널리 알려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안나는 애인 브론스키에게 임신한 사실을 고백하고 브론스키는 안나에게 결혼을 제안하며 남편과 당장 헤어질 것을 요구하지만, 그녀는 아들 세료자를 생각하며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키티에 대한 레빈의 사랑은 여전하고
어느 날 안나는 브론스키가 참가하는 경마 대회에 남편 카레닌과 함께 구경을 갔다. 브론스키가 즐기는 스포츠는 승마였다. 그날 귀족들의 경마대회에서 참가한 브론스키는 장애물 경기 도중에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그 순간 안나는 이성을 잃고 비명을 지르며 브론스키의 안전만을 걱정하는 추태를 벌인다. 유부녀로서 품위를 잃은 행동을 한 것이다. 모든 것을 들키고 만 안나는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이제까지의 일을 털어놓는다.
아내에게 배신당한 남편으로서 카레닌은 결혼을 후회하며 결투나 이혼을 생각해 봤다. 그러나 결투는 겁이 났고, 이혼은 자신을 배신한 두 사람의 결혼을 도와주는 꼴이라 생각했다. 카레닌은 안나에게 일어난 사건을 비밀에 붙여둔 채 아내의 의무를 강조하면서 브론스키와의 관계를 조용히 매듭짓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부를 집에까지 불러들이는 아내의 행동에 화가 난 카레닌은 안나와 이혼 수속을 밟고 아들 세료자를 누이에게 맡기기로 한다.
한편 키티에게 청혼을 했다가 거절 당한 레빈은 시골로 내려가 키티의 가족들을 피해 사냥을 하거나 여행을 다녔다. 그는 여러가지 일을 하며 농촌 생활에 전념하지만 마음의 공백을 메울 길이 없어 괴로워했다. 여러 친지의 집을 찾아다니면서 농업발전을 위한 조합을 생각해내기도 했다. 그 조합은 농민에게 땅이나 가축을 빌려주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을 지주와 농민이 반씩 나누는 것이었다. 한동안 시행착오가 있었으나 이같은 조합을 이용한 농업 경영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농업에 대한 레빈의 열정은 농노해방의 결과로 빚어진 새로운 사회적 상황에 대한 적절한 대처였다. 시골생활을 하던 레빈은 오블론스키의 집에서 열리는 만찬장에 초대를 받고, 그곳에서 건강을 회복해 오랜만에 러시아로 돌아온 키티를 다시 만나게 됐다. 레빈은 그녀를 보자 사랑이 아직 식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키티를 원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키티 역시 그의 성실한 인품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됐으며 지난날의 자신의 무례를 사죄했다. 레빈은 키티에게 옛날의 청혼을 다시 상기시키고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안나가 모든 것을 고백했음에도 그녀의 남편은 세상의 이목을 걱정해 결국 이혼을 해주지 않았고, 이혼 절대 불가를 선언했다. 딸을 낳은 후 산욕열로 죽음에 이르는 위험 상태에 빠진 안나는 남편과 브론스키에게 화해를 청했다. 죽음과 싸우는 아내를 불쌍히 여긴 남편은 모든 것을 용서하겠노라고 약속한다. 카레닌은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는 아내와 브론스키를 용서하기로 마음먹고, 둘은 서로를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고 절망감에 사로잡힌 브론스키는 집에 돌아가 권총을 빼들고 왼쪽 가슴에 방아쇠를 당겼으나 총알이 심장을 벗어나는 바람에 자살하는 데 실패했다. 건강을 회복한 브론스키는 수치심과 굴욕감에서 벗어나고자 타슈켄트로 전출을 가려 했다. 카레닌은 안나가 낳은 브론스키의 딸을 자신의 친딸처럼 정성껏 보살펴 줬다. 안나의 오빠 오블론스키는 카레닌의 관대함에 대해 안나가 느끼는 죄의식과 고통을 이해하고 안나가 원하는 대로 이혼을 성사시키고자 노력했지만 카레닌은 이혼을 체면과 종교적 문제와 결부시켜 옳지 않게 여겼다.
브론스키는 타슈켄트로 전출 명령을 받고 안나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방문하는데, 만나자마자 두 사람은 열정을 억제하지 못한다. 결국 둘은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유럽으로 사랑의 도피 여행을 떠난다. 그들이 유럽 여행을 하고 있는 동안 모스크바에서는 레빈과 키티가 주위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리고 시골로 돌아갔다.
존엄한 생명과 사랑의 위기
안나는 여행을 하면서 지난 일들이 악몽처럼 느껴졌고,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긴 자식과 명예를 잃었으니 앞으로의 인생이 행복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외국 여행의 즐거움에 빠지면서 지난 일도, 미래의 불행도 모두 잊혀졌다. 그러나 곧 안나와 브론스키는 외국 생활에 지루함을 느끼고 권태를 느끼기 시작했다.
한편 시골로 내려가 신혼의 단꿈에 젖은 레빈과 키티는 얼마 안되어 어떤 지방 도시의 여관에서 레빈의 형 니콜라이의 죽음을 지켜보게 됐다. 키티는 니콜라이를 며칠 동안이나마 헌신적으로 간호했으나 허사가 되고 말았다. 니콜라이의 죽음은 슬픔이지만, 잇따라 알게 된 키티의 임신은 기쁨이었다. 기쁨과 슬픔은 모두 일상생활의 한 부분인 것이다. 어느덧 1년이 지나고 키티는 출산의 고통을 겪고 아들을 낳는다. 레빈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찬란한 행복의 새 빛으로 빛나는 세계로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기쁨의 눈물이 그의 마음 속에서 솟아올랐다. 레빈은 아내의 손을 잡고 새로 태어난 생명에 경이를 느낀다.
마치 촛대 위의 불처럼, 인간적 존재의 생명이 동요하고 있었다. 그것은 여태까지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생물이며, 그것은 역시 같은 권리, 같은 의의를 가지고 살 것이며, 자신을 닮은 것들을 번식시킬 것이다.
카레닌은 안나가 브론스키와 함께 집을 나간 후에도 평소처럼 태연하게 살아갔다. 그는 관청에도 변함없이 출근하는 한편 안나의 짐을 하녀에게 정리시키는 등 집안 일을 돌봤다. 그는 비록 중매로 안나와 결혼했지만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아내를 사랑하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아 친구 하나 사귀지 못했다. 친구가 없는 그는 자신의 괴로움을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긴 유럽 여행을 마치고 페테르부르그로 돌아 온 두 사람은 다시 사교계를 출입하기 시작했으나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모욕을 당했다. 브론스키는 이제 더이상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도망치듯 영지로 떠나 시골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원래 활동적이었던 브론스키에게 시골생활은 견디기 어려운 답답한 것이었다. 점차 귀족회의 등의 일을 보기 위해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안나에게는 가정과 아이를 버리면서까지 택한 브론스키만이 삶의 유일한 보람이었다. 안나는 육체적 쾌락으로 그를 붙잡으려 했다. 그녀의 사랑은 점점 소유욕과 에고이즘으로 나타나고 비정상적일 만큼 질투심이 강해졌다. 예전과 다름없이 안나를 사랑했지만 브론스키는 지나치게 자신의 자유를 구속하려드는 안나가 짐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안나는 브론스키와의 식어 가는 사랑 때문에 빈번하게 싸움을 벌였다. 브론스키는 농촌에서 벌인 여러 가지 사업 때문에 바빠지자 안나에 대한 배려가 전과 같지 않았다. 만사에 싫증을 잘 내는 브론스키와 안나는 서로 상대편의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했다. 안나는 예전 같지 않은 브론스키의 태도를 점점 의심하게 되고 걷잡을 수 없는 질투의 늪에 빠져 버렸다. 그녀는 죽음만이 자기를 치욕과 불명예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죽어버리자!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와 세료자의 치욕과 불명예도, 나의 이 무서운 치욕도, 모두가 죽음으로 구제되는 것이다. 죽어야지 -- 그러면 그분도 후회하여 나를 가엾게 생각하고 사랑하게 될 것이며, 나 때문에 괴로워도 하겠지.
이런 생각을 하고 난 며칠 후 안나는 오빠에게서 카레닌과의 이혼이 불가능하다는 전보를 받았다. 현재의 처지에서 그녀에게 이혼은 사느냐 죽느냐 하는 중요한 문제였다. 안나는 새삼스럽게 브론스키에게 이혼문제에 대해 따졌다. “무엇 때문에 당신은 그런 것(이혼)을 그렇게 바라는 거죠?” “무엇 때문인지는 당신도 알고 있지 않아 -- 당신을 위해서나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요.”
이때 안나는 브론스키와 그의 어머니를 싸잡아 비난했다. 브론스키는 어머니를 욕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했다. 브론스키에 대한 안나의 의심은 증폭되고 그녀는 자살을 결심하고 목숨을 끊기 위해 아편을 복용한다. 안나는 삶과 죽음의 공포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오락가락했다.
‘죽음이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때 너무나 격심한 공포가 그녀를 엄습했으므로, 그 때문에 얼마 동안은 자기가 있는 곳조차 분간할 수 없었으며, 손이 덜덜 떨려서 성냥을 찾을 수도 다 타버린 양초 대신 새 양초를 켤 수도 없었다. ‘아니야, 어떻든 -- 살고 볼 거야! 나는 그이를 사랑하고 있고, 그이도 나를 사랑하고 있거든! 이제까지도 이런 일은 있었지. 이번에도 틀림없이 지나가 버릴 거야.’
브론스키는 안나와 말다툼 끝에 집을 나가버렸다. 안나는 그를 찾아 정거장으로 갔다. 철도원의 말에 따르면 브론스키는 소로킨 공작 부인과 그 딸을 마중 나왔다는 것이다. 안나는 자기 예감이 들어맞았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세상 만사가 다 기만이요, 허위 같았다. 그녀는 들어오는 화물열차를 보는 순간 자신이 기차를 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브론스키를 처음 만나던 날, 열차에 치어 죽은 사람이 생각났다. 이제 안나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다.
‘저기로, 저 한 가운데로. 나는 그 사람을 벌하고, 그리고 모든 사람들과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야지.’ 안나는 마침내 수영할 때 물 속에 뛰어 들 듯이 기차 바퀴에 뛰어 들어 자기 생명의 마지막 촛불을 꺼버렸다. ‘신이시여, 모든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그녀는 저항할 수 없는 어떤 힘을 느끼면서 중얼거렸다. 어떤 몸집이 작은 농부가 뭐라고 중얼중얼하면서, 철로 위에서 뭔가 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만과 기만과 비애와 사악으로 가득 찬 책을 그녀에게 읽을 수 있게끔 해 주던 촛불이 유난히 환하게 밝게 타더니, 여태까지 어둠에 싸였던 온갖 것을 그녀에게 비춰 보이는가 싶더니, 곧 바싹바싹 소리를 내면서 어두워지고, 그리고 영원히 꺼져 버렸다.
안나가 자살한 뒤 브론스키는 세르비아의 독립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의용군에 자원 입대해 전쟁터로 떠나 버렸다.
▣ 더재미있게읽기위하여
왜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바람에 흔들리는 걸까?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문제다. 사랑은 인류 역사와 더불어 존재한 오래된 감정이지만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새롭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의 감정 중에서 가장 복잡한 것이 사랑임을 알고 있다. 창조적인 동시에 파괴적이고 아름다우면서도 무서운 사랑은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 수도 있고, 가장 가까운 것들을 잃게 하고 슬픔과 고통으로 인도할 수도 있다. 모든 사랑은 저마다 비밀의 언어를 갖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사랑은 없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1877)에서 보여주는 사랑은 어떤 사랑이기에 한 여인을 비극적인 죽음으로 몰아간 것일까? 시대를 달리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를 들어 안나의 죄를 열거하거나 주변 환경 문제를 탓했다. 그녀의 죽음의 원인을 여러 차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애정 없는 결혼은 비극의 출발점
첫째 주인공의 비극은 애정 없는 결혼 생활에서 비롯됐다. 주인공 안나는 상냥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젊은 귀부인이다. 그러나 자기 보다 20살이나 나이가 많은 남편과 사랑의 감정 없이 결혼했다. 나이 차이에서 오는 불합리한 결혼과 사랑이 없는 타산적인 결혼이 비극의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안나의 내부에는 활기에 넘치는 정열과 자유를 갈망하는 감정이 넘쳐흘렀다. 그녀는 넘쳐흐르는 과잉의 정열과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나는 마치 먹을 것을 받은 굶주린 사람 같아요”라며 난생 처음 느낀 진정한 사랑의 행복을 토로했다. 안나가 지닌 최대의 매력은 끊임없이 타오르는 정열의 불꽃을 그녀의 내부에서 삭이며 불태우고 있는 듯한 젊음 그 자체다. 매슈 아놀드가 그녀를 “정열의 보석”이라고 말한 것은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안나의 성(性)담론은 자유로운 관능이라기보다는 세련되고 자유로운 성(性)의식과 본성의 솔직함에서 나온 것이다.
안나의 비극의 두 번째 원인은 서류 세계(paper world)에 묻혀 사는 남편 때문이다. 종이세계는 인간적인 감정이 결여된 위선의 세계를 말하며, 모든 것을 서류로 기계적으로 처리하고자 하는 세계를 말한다. 카레닌은 풍부한 감정이나 충동적인 열정이 없는 인물이다. 안나는 8년간의 부부생활에 대해, “그 사람은 남자가 아니에요. 인간이 아니에요. 그 사람은 인형이에요!..... 그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 기계예요”라고 남편을 평가한다. 인간적인 감정을 상실하고 자기만족에 빠져 있는 어리석은 인간, 기계적으로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카레닌은 전형적인 종이세계의 인물이다.
그는 관료답게 사회적인 관습을 중시하고 체면을 존중했다. 부부관계도 감정보다는 이성에 의지해야 하고, 결혼은 사무적인 거래 관계와도 같다는 카레닌의 결혼관은 안나에게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안나는 풍부한 감성과 지성과 교양을 갖춘 여성이었다. 야간 열차 안에서 영국소설에 몰두하며 자신이 작품의 주인공이 된 듯 상상할 정도로 감성적이다.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브론스키에게 간 뒤에도 소설이든 무엇이든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라면 전부 다 읽고, 외국의 신문이나 잡지에서 추천하는 책은 한 권도 빼놓지 않을 정도로 읽는다. 그녀의 지적 관심은 단순히 문학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브론스키가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은 모두 잡지나 전문서적으로 공부해 당사자인 브론스키에게 조언할 정도다.
셋째로 모성애의 상실에 대한 죄책감이다. 남편과의 의미 없는 결혼 생활에서 유일한 낙은 아들 세료자의 존재였다. 그녀는 모든 아이들을 사랑했다. 돌리의 아이들 하나하나에 대해서조차 언제 태어났으며 어떤 병을 앓았는지, 각각의 성격이 어떤지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었다. 가정이라는 것은 사랑 없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안나의 비극은 남편에 대한 자신의 죄를 의식해 고뇌하는 부정한 아내의 비극은 아니었다. 그러나 브론스키에 대한 그녀의 열렬한 애정은 내면적·도덕적 고통을 환기시켰다. 애인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어머니로서의 감정과 의무와 날카롭게 대립했다. 아들과 애인에 대한 사랑이 동일한 힘으로 공존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안나는 브론스키와 새로운 생활을 하면서 아들 세료자를 멀리하게 됐다. 안나는 자기생활의 흐름을 바꿀 만한 힘이 없었다.
고통 속에 명멸하는 사랑의 빛과 그림자
넷째로 욕망만을 추구하는 브론스키의 부정적인 성격과 행동에 이미 비극은 감춰져 있었다. 욕망이란 굶주림처럼 육체적으로 만족되면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브론스키는 그 당시 페테르부르그의 전형적인 귀족 청년이었다. 젊은 독신 장교로서 명예를 존중하는 부유하고 늠름한 미남이었으나, 이기적이며 냉혹하고 육감적인 인간이었다. 도덕적 의무를 남자에게 부여하는 가정생활이란 그와 무관한 것이었다. 귀족 사교계의 대표적인 청년 브론스키에게 정신적 욕구란 여자와 말에 대한 관심뿐이었다. 그에게 사랑이란 정욕이었으며, 정욕은 그의 생활의 의미였고 또 목적이었다. 순진한 소녀 키티의 사랑을 경쟁자들에 대한 승리라는 허영심의 만족으로 끝을 내고, 새로운 애인 유부녀에 대한 정욕을 택했다.
브론스키의 지적 능력도 그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정신적 욕구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는 강신술(降神術)의 기적을 믿고, 오페라에서는 잠을 자고 카페에서 쇼를 끝까지 즐기는 천박한 초보적 예술애호가일 뿐이다. 그의 그림은 예술을 이해하는 사람들의 조소와 화를 돋구는 것이었으나 안나는 그를 천재로 생각한다. 고상함의 화신으로 행동하는 브론스키의 천박한 행동은 철도원 가족에게 200루블을 희사하는 행동에서도 나타난다. 그의 기만성과 허위성은 외국여행뿐만 아니라 시골 생활에서도 나타난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안나는 그의 희생물이었을 따름이다.
다섯째로 안나를 둘러싼 사회의 기만성과 허위성이었다. 당시 안나를 둘러싸고 있던 사교계는 그녀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녀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괴물 같은 존재였다. 사회의 후진성은 성담론에도 위선적이며 진보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안나는 시대를 앞서간 여자로서 사회의 거짓과 기만에 당당히 맞서 스스로 비극적 자살을 택했다. 결국 안나는 휴머니즘을 상실한 산업사회의 상징물인 기차에 의해 참혹하게 죽는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불륜은 비극적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안나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그녀가 깨뜨린 도덕률 때문이 아니라 위선적인 상류사회가 정해놓은 불륜의 관계에서 지켜야할 관습화된 예절을 그녀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안나는 위선을 싫어했기에 과감하게 진실한 사랑으로 상류사회에 맞서보지만 상류사회의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비극적인 자살을 결행한 것이다.
이 소설에서 안나의 이야기와 또다른 축을 형성하는 콘스탄틴 레빈은 행복한 삶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그의 사상은 작가의 사회사상을 보여준다. 레빈은 현실에 불만을 품고 인생의 새로운 길을 탐구하면서 고난을 겪는 주인공이다. 안나가 상류계층의 기만적이고 허위적인 도덕의 장벽에 부딪혔다면, 레빈은 사회의 경제적·정치적·철학적 장벽에 부딪혔다. 작가는 레빈을 통해 새로 조직되는 사회적 관계를 신랄하게 비난한다.
레빈은 상류사회, 즉 도시의 관리나 지주 또는 귀족들의 환경과는 동떨어진 존재였다. 레빈은 도시의 귀족들을 무식하고 나태한 인간들의 집단으로 생각했다. 레빈은 종교적인 인간이지만 공공교회를 싫어한다. 무위도식으로 기생하는 귀족들의 생활을 증오하는 레빈은 “더욱 많이 일하고 더 적게 사치하자”고 스스로 결심한다. 지주로서 농업 경영을 하면서 그는 자신의 신조에 따라 농군들이나 일하는 사람들에게 공정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지주로서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실망하게 된다. 사랑의 진실을 거절당하고 자살하고자 하는 비극적 상황에 이르렀을 때 레빈은 철학적 탐구에 몰두했다. 신앙 속에서 선행의 참뜻을 이해하고 인간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고서 영혼의 안정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삶의 의미에 대한 레빈의 고통스러운 의문, 뇌리를 떠나지 않는 자살 생각, 농부들과 어울리고자 하는 욕망 등은 당시 톨스토이가 겪고 있던 갈등을 뚜렷이 반영하고 있다.
사랑은 많은 신비와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오블론스키 부부의 사랑, 레빈과 키티의 사랑,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 등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똑같지 않다. 그들만의 사연과 사랑의 코드를 갖고 있다. 누구의 사랑이 아름답고 누구의 사랑이 추하다고 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고통의 용광로를 거치면서 성숙해지고 사랑의 빛과 그림자를 이해하게 된다. 안나가 처음으로 느낀 사랑은 자기 영혼의 구원자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랑은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바뀌었다. 안나는 운명적으로 다가온 사랑에 솔직했으나, 그녀의 사랑은 금지된 사랑이었다. 금지된 사랑은 매혹적이지만 언제나 치명적이다. 금지된 불륜은 파멸과 죽음을 경고하는데, 그럴수록 매혹의 힘은 강해진다. 사랑은 죽음을 불지피고, 죽음은 사랑을 완성한다. 안나는 자신이 선택한 사랑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극적인 여성이다. 안나의 사랑에서처럼 있을 수 없는 사랑은 없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있을 뿐이다.
목가적 사랑의 구원 암시
이 작품에 나타난 철학적 세계관 역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독립된 철학적 세계관의 장은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도덕철학이 작품 전체에 배어 있다. 이 철학은 낙관적이 아니라 비관적이고, 세속적이기보다는 청교도적이다. 이 작품 속에서 작가는 목가적인 사랑과 비극적인 사랑을 대비시키고 있다. 그러나 독자는 이 사랑 속에 목가적이며 맹목적인 선한 구원의 신보다 불길한 운명을 암시하는 비극적인 신의 복수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이 시작되는 소설의 에피그라프에 로마서 12장 19절 “복수하는 것은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라는 말은 신의 심판을 미리 예고해주고 있다. 인간의 죄는 법적으로 처벌하지 않아도 신의 뜻에 따라 저절로 심판된다는 것이다. 이 비극적인 복수의 분위기는 소설의 끝에 이를수록 심화된다. 도덕률과 사회적 규범을 어긴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구원보다는 복수와 비극적인 파멸 쪽으로 달려간다. 안나는 브론스키에 대한 사랑의 복수로 자살을 결심하고 실행한다. 반면에 이들의 사랑의 유형과는 다른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선하고 자연에 순종하는 레빈과 키티의 목가적인 사랑은 그 과정에서 혼란과 위기를 경험하지만 새로운 깨우침으로 거듭나는 사랑이다. 레빈의 사랑과 인생관은 톨스토이 자신의 철학적 세계관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안나 카레니나(Анна Каренина)“에서 일부 요약 발췌,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 저 자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1828∼1910)
이견이 필요없는 러시아의 대문호. 살아생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지만 죽을 때까지 겸손하게 삶의 진실을 추구했다.
▣ 글쓴이 조주관교수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슬라브어문학 대학원에서 『제르좌빈의 시학에 나타난 시간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러시아 문학회 회장직을 역임하고, 현재 연세대학교 유럽어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톨스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