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우정의 그루터기!

[중산] 2011. 7. 28. 12:39

 

우정의 그루터기

조국을 잃은 청년, 그가 고뇌하고 있는 것들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조국의 풀과 땅, 꽃과 하늘... 그것들이 주는 향수에 괴로워하는 청년, 히페리온. 그는 독일로 망명했을 당시 친하게 지냈던 친구 벨라르민에게 여러 통의 편지를 보내면서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벨라르민에게

사랑하는 조국 땅은 나에게 또 다른 기쁨과 번민을 안겨준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코린트 지협의 고지(高地)로 산책을 하러 간다.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꿀벌처럼 내 혼은 가끔 바다와 바다 사이를 여기저기 날아다닌다. 내가 딛고 서 있는 햇볕에 이글거리는 산과 산은 양쪽에서 그 소맷부리를 시원스럽게 바다에 씻기고 있다. ‘만약 내가 천 년 전에 이곳에 서 있었더라면…….’ 이제야 과거를 회상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폐허가 된 고대의 돌더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타인이 내 조국의 일을 물어볼 때, 나는 늪에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과연 내 조국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어느날 그의 정신적 지주이던 스승 아다마스가 우연히 그리스 땅에 오게 된다. 오랜만에 만난 스승은 만나자마자 이별을 약속하지만 그 뒤에 남겨진 스승의 소중함은 히페리온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잡게 된다.

 

 

벨라르민에게

자네는 플라톤과 스텔라(플라톤의 제자)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고 있는가? 나도 그를 그렇게 사랑했고, 또 그렇게 사랑받았었다. 오오, 나는 분명 행복한 청년일 것이다. 대등한 자끼리 친구가 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인물이 보잘것없는 사람을 클 수 있도록 끌어올리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일일 것이다.

 

내 스승, 아다마스는 인간을 낳은 근원의 힘을 찾기 위해 이곳 폐허가 된 땅, 그리스에 왔었다. 아직도 그가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로 다가오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직도 나는 그의 인사말과 그의 질문 하나하나가 뒤에서 들리는 듯하다.

 

 

나는 아다마스와 함께 스인루스 산상에 갔었다. 우리가 산상에 닿았을 때는 아직 새벽이었다. 우리가 멀리 주위를 내다보고 있었을 때 태양은 벌써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태양은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와 함께 황폐해진 우리 국토와 신전과 그 신전의 원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신과 같아지도록 해라.” 아다마스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며, 내 손을 잡고 태양신 쪽으로 향했다. 그때 아다마스가 내게 들려준 한마디, 한마디를 생각할 때마다 내 마음은 지금까지 슬프면서도 즐거워진다. 인간이 이처럼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 안 있어 우리는 헤어졌다. 난 허전한 마음을 꾹 참으면서 마지막으로 그를 껴안았다. “저에게 축복의 말을 한마디만, 아버지시여.”라고 그를 바라보며 나는 속삭였다. 그는 너그러운 얼굴로 미소지었다. 그는 하늘을 쳐다보며 외쳤다. “이 사람을 지켜주소서. 보다 나은 시대의 신령들이여, 그리고 당신의 불사의 경지로 이 사람을 끌어올려 주소서, 당신들 하늘과 땅의 모든 다정한 힘이여, 이 사람과 함께 있어 주소서…….”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 마음에는 신이 있단다. 그 신은 물의 흐름처럼 운명을 인도하고 지배한다. 그리고 만물은 그 신의 영역에 있다. 그 신이 특히 너와 함께 있기를…….”

 

<“히페리온(Hyperion)‘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프리드리히 횔덜린 지음, 글쓴이 최가희님>

 

 

저 자 프리드리히 횔덜린 Friedrich H lderlin(17701848)

독일의 시인.

횔덜린은 뷔르템베르크 주에 위치한 네카 강변의 라우펜에서 태어났다. 1788년 튀빙겐대학 신학과에 들어간 그는 이때부터 헤겔, 셀링과 친교를 맺고 철학을 논하는 한편, 그리스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이 무렵에 쓴 시들은 클롭슈토크, 실러의 영향이 짙으며, 범신론적 세계관이 싹트기 시작한다. 졸업 후 성직 생활이 싫은 그는 가정교사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예나로 가 피히테의 강의에 심취한다.

23세 때 슈투트가르트에서 실러를 알게 되었고, 그의 소개로 칼프 부인집의 가정교사로 취직하게 된다. 이때부터 서간체 소설 『히페리온 Hyperion』을 쓰기 시작하는데, 26세 때 프랑크푸르트의 은행가 곤타르트집의 안주인인 주제테가 그 소설의 모티프다. 횔덜린은 그녀에게서 그리스적인 미(美)를 발견했고, 그녀도 그의 순진한 심정을 보고 서로 사랑하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디오티마(Diotima)라는 이름으로 서간체 소설 『히페리온 및 그 밖의 많은 시편(詩篇)에 등장했으며, 그 작품들은 모두 불후의 명작이 된다. 이 부인과의 사랑에 의해서 횔덜린은 선인들의 모방을 버리고, 시작(詩作)의 독자적 경지를 개척한다.

 

결국 곤타르트 씨의 오해를 낳아 집을 나오게 된 그는 그후 친구 집에서 기식을 하며 고독한 생활을 보내면서 비극 엠페도클레스의 죽음 Der Tod des Empedokles』(179799)의 완성에 전력을 기울인다. 30세 되던 해,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그는 정신 착란 증세가 심해진다. 이후 2년 간에 씌어진 『빵과 포도주 Brot und Wein』 귀향 R ckkehr in die Heimat 라인강 Der Rhein』등의 시들은 그의 정신적인 긴장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시들은 다소 난해하지만, 그가 남긴 시들 가운데서 최고봉으로 꼽힌다. 결국 그는 37세부터 73세에 죽을 때까지 정상적인 사람이기보다는 광인으로 더 많은 나날을 비참하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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