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행복이다
앞에서 국민 전체의 행복지수와 더불어 지역 행정과 교육의 지침으로 행복에 대해 이야기했다. 국가 전체로나 지역별로나 결국은 행복이다. 개인도 다를 바가 없다. 왜 사느냐? 무엇 때문에 사는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는 뭔가를 성취하고 달성하기 위해서라고 할 것이다. 꿈을 이루고 뜻을 이루기 위해 산다고들 할 것이다. 목적하는 바를 위해서라고도 할 것이다. 그러면서 권력, 명예, 재산 등이 언급될 것이다. 그러나 소극적으로는 다른 답들이 나올 것이다. “그저 산다고 사는 것뿐이다”라는 답을 중얼거리는가 하면 “죽지 못해 사는 거지”라고도 할 것이다.
적극적인 대답과 소극적인 대답 그 양쪽에 우리의 삶이 걸쳐져 있다. 뭔가 값지고 보람찬 것을 이루고 얻기 위해 산다고들 할 때 당연히 그 삶의 끝에는 행복이 자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소극적이고 비관적인 답을 내린 사람도 아예 행복을 포기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 서글픈 마음의 바탕에는 행복에 대한 지향이 미적대고 있을 것이다. 부서진 행복에 부치는 꿈이 응어리져 있을 것이다.
나는 불과 두 달밖에 더는 그 섬에서 살 수 없었으나 가령 거기서 두 해를 또는 두 세기를 아니, 영원히 산다고 해도 단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서 나의 아내와 세무 관리와 그 처와 심부름꾼 말고는 말 상대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선량한 사람들이었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내게는 필요한 것이었다. 나는 그 두 달 동안을 나의 전 생애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고 믿고 있다. 단 한 순간도 다른 상황으로 옮겨 살기를 바라지 않고 온 평생 동안 만족한 기분으로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될 만큼 행복한 시절이었다.
루소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 이같이 행복을 말하고 있다. 모티에에 살던 루소는 마을 사람들의 돌팔매질에 쫓겨 도리 없이 마을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는 스위스의 어느 호수 가운데 떠 있는 생피에르라는 고도와도 같은 작은 섬에 옮겨 살게 되었다. 그는 그 섬을 깊은 애정을 느끼게 해주고 그를 행복하게 해준 섬이라고 회고한다. 그때 이 철인은 집이라고는 단 한 채밖에 없는 외딴 섬, 이웃이라야 말동무가 되지도 못하는, 단 세 사람밖에 없는 고도에서 그야말로 고독한 삶을 살았다. 유배나 귀양살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가 거기서 하는 일이라고는 물가나 숲 속을 산책하면서 명상에 젖는 일뿐이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쓸쓸하기 이를 데 없는 정경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이때야말로 평생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고 말한다. 해질녘이 되면 섬의 꼭대기에서 내려와 호숫가로 나아간다. 모래사장의 어느 한구석 은근한 곳에 앉는다. 거기서는 파도 소리와 흔들대는 물결이 모든 마음의 동요를 잠재워준다. 그래서는 감미로운 몽상에 젖게 하고는 자주자주 밤이 깃들이는 것도 모른 채로 시간을 보내곤 한다. 밀려와서는 물러가곤 하는 파도의 움직임이 몽상에 젖은 내 마음의 움직임이 되면 나는 절로 나의 존재를 즐겁게 여기곤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정복이란 이름의 행복이다. 고요하고 맑고 정갈한 행복이다. 그것이 있어서 고도의 고독한 생활이 행복의 극에 다다른 것이다. 이것은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든 결국은 행복이 그 삶의 그리고 그 존재의 궁극적인 지표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 인생, 우리 삶의 궁극은 행복이다. <“행복”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김열규 지음, 비아북>
<무릇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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