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평화로운 우선권!

[중산] 2012. 10. 9. 12:53

 

어떤 징후

평탄한 길에서도 넘어질 때가 있다. 인간의 운명도 그런 것이다.

신 외에 아무도 진실을 알 수 없다.

- 안톤 체호프

 

 

우주나 신성한 지침에는 정해진 계획이 있고 내가 그것을 따를 수 있다면 모든 게 좋아지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건 어떤 징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나는 아마 어쩌다 그것을 알게 될 터다. 누구도 이런 말을 듣지 못한다. 저기서 왼쪽으로 돌면 버려진 종잇조각 아래 당첨된 복권이 있다.

 

물음의 답

네 믿음은 네 생각이 된다. 네 생각은 네 말이 된다. 네 말은 네 행동이 된다.

네 행동은 네 습관이 된다. 네 습관은 네 가치가 된다. 네 가치는 네 운명이 된다.

- 간디

 

여기 나는 A 지점에서 B로, 그곳에서 다시 C로 가고 있다. 짙은 안개 속에서 나는 신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D라는 지점으로 갈 수 있을까요?

신이 다정하게 대답한다.

내 손을 잡아라. 너를 안개 밖으로 이끌리라.

그러면 나는 고집스럽게 앙탈을 부린다.

그건 제가 원한 답이 아니에요!

우리는 신에게 어떤 사과를 사야 하느냐고 질문하며 신성한 사랑이 다른 이에게 썩은 사과를 남겨놓으리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신이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한두 명만 살리고 나머지 사람을 불에 타서 죽게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상 우리는 우리의 육신에 가해지는 은혜가 신의 우아함의 신호라고 생각한다. 신은 어디에 가면 신발을 싸게 살 수 있는지 어떤 주식을 사면 돈벼락을 맞을 수 있는지 말하지 않는다. 아예 그런 충고조차 구하지 마라. 만일 당신이 어떤 신호를 사려고 든다면 당신은 상위 자아의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진정으로 신이 내 질문을 모른다고 생각하는가? 그 대답은 내가 질문하기 전부터 내 마음속에 있다.

 

 

평화로운 우선권

신은 사랑자유의 광활한 하늘을 날아가도록 그대의 영혼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대 자신의 손으로 그 날개를 잘라내고 영혼이 버러지처럼 땅 위로 기어가는 괴로움을 겪는다는 것은 얼마나 가련한 일이겠는가.

- 칼릴 지브란

 

나는 항상 평화로운 우선권을 가졌다. 하지만 충분히 평온해야만 그것을 알 수 있다. 나의 평화로운 우선권을 따르는 것이 내 자아, 혹은 옹졸한 마음이 좋아할 결과를 보장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평화의 근원으로 이끌고 평가와 해석에서 자유롭게 한다. 내 옹졸한 마음은 무엇을 해야 할지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심지어 평화 속에서 결정을 내린 후에도 내 옹졸한 마음은 여전히 그 결과에 대해 갈등한다.

 

 

내가 누군가의 요청을 받아들인 이유가 지금 내가 내 자아와 싸우고 있기 때문이거나, 혹은 그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가 내가 자아에게 졌기 때문이든 아니든 여전히 나는 내 진정한 마음, 내 진정한 감정, 내 진정한 주체와 연결되지 못한 채다. 옹졸한 마음이 항상 제일 먼저 말한다. 가령 아내가 뭔가를 해달라고 부탁하면 나는 즉각적으로 반감을 느낀다. 그 일 자체는 괘념치 않지만 요청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 그런 반발감과 싸우지 마라. 잠깐 기다렸다가 더 깊은 감정에 초점을 맞춰라. 깊은 자아의 고동이 고적함 속에서 일어난다.

 

 

상상된 정체성

이 세상의 유일한 악마는 우리 마음에서 날뛰고 있기에 모든 전투는 마음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 간디

 

당신이 당신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정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자아나 상상된 정체성은 아이들의 상상 속 친구와 매우 흡사하다. 개별적이고 자주적인 마음으로 만들어진 그것은 곧잘 스스로를 방어한다. 새로운 동네 친구와 말하지 마. 상상 속의 친구가 그렇게 말한다. 왜냐하면 진짜 우정이 상상의 존재를 와해시키리란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자아는 충고한다. 당신의 진정한 감정과 상의하지 마. 왜냐하면 진실이 당신의 자아를 와해시키니까. 그러나 명심하라. 무엇이 진실인지에 대한 자문이 자아에 대한 비난은 아니다.

 

아이들이 상상 속의 친구와 다툴 때 그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더욱 강하게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진짜 친구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상상 속 친구에 대한 흥미를 잃는다. 그런 식으로 자각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신에 대한 관심을 일으킨다.

 

 

해야 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느냐, 무엇을 알고 있느냐, 무엇을 믿고 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결국 우리가 무엇을 행동으로 실천하느냐이다.

- 존 러스킨

 

우리는 행동하기 위해 공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직장을 그만두기 위해 화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예배당을 변화시키기 위해 집회를 비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친구들을 관계에서 뒷걸음치게 만들기 위해 그들에게 적대적인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아파서 침실 문을 닫고 몸져눕는다면 우리는 마음의 문까지 닫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적인 길을 따르는 것은 당신이 더 이상 마음의 방향을 지시하기 전에 심상(心象)을 결정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관계에서 물러나야 한다면 당신의 정신적인 사면과 더불어 전진을 멈춰라. 만일 아파야 한다면 당신의 사랑으로 가득한 생각을 식구들 주위에 머물게 하라. 그리고 죽어야 한다면, 당신의 영원한 존재로 축복받지 못한 것을 단 하나도 남기지 마라.

 

 

마음 청소

당신 자신에게 약간의 시간을 투자할 마음이 있다면 당신의 기분을 효율적으로 지배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날마다 체력 훈련을 받는 선수가 인내심과 강인함을 조금씩 키우는 것처럼 말이다.

- 데이비드 번스

 

옹졸한 마음은 항상 뭔가를 느끼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누구냐는 질문을 소명 받았다.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대한 게 아니라 그 대답은 내 감정을 무시하거나 부인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실 내 감정을 더 많이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이제 나는 그 인식을 빗자루로 써서 감정의 찌꺼기를 치우고 있다.

 

 

치료의 문제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절대 행복하지 않다. 만족한 인생을 보내는 비결은 다른 이에게 보다 많은 사랑과 기쁨과 행복을 나누어주는 데 있다. 자기의 일만 생각하고 있는 인간은 그 자신마저도 될 자격이 없다.

- 『탈무드』 중에서

 

조엘 골드스미스의 말이다. 치료의 문제는 당신이 누구를 거리로 다시 내몰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 이처럼 항상 마음을 치료하고 육신이 제 이야기를 하도록 하라. 만일 내가 마음속으로 누군가 의지하고 내 마음을 치료한다면 분명 육체 또한 치료될 것이다.

 

 

치료의 힘

받으려면 주어야 하고, 모으려면 뿌려야 하고, 행복해지려면 남을 행복하게 해야 하며 그리고 영적으로 강인해지려면 타인의 영적인 유익을 추구해야 한다.

- 찰스 스펄전

 

어떤 누구도 치료받지 못한 채 내 앞을 지나가지 않도록 하라. 한 명의 노숙자도, 상처 입은 아이도, 트럭 운전수도, 분개한 점원도. 만인에게 평등한 신의 사랑이 비치지 않는다는 생각이나 상상을 고쳐줘라. 유일한 능력은 보유할 가치가 있고 모든 이들이 이미 그것을 갖고 있다. 치료를 실천하라. 그러면 당신은 치료사가 될 것이다. 육체적인 치료를 사랑의 상징으로 베푸는 것은 좋다. 닭고기 수프를 제공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신이 어떤 이를 치료하고 다른 이를 치료하지 않는다거나, 신이 닭고기 수프를 만드는데, 그것이 야채수프로 판명되리란 생각은 단 1초도 믿지 마라.<“조금만 더 일찍 나를 알았더라면”에서 극히 일부 요약발췌, 휴 프레이더 지음, 역자 오현수님,큰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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