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좋아하는 일을 하든가,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든가!

[중산] 2019. 5. 24. 08:35

좋아하는 일을 하든가,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든가

내가 생각하는 ‘성공적인 인생’은 두 가지 가능성을 충족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하나는 사는 보람을 발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어떤 지점을 인생에 만들어두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를 보완해 준다.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삶의 보람에 대해 말하자면 자신의 일에서 흥미와 기쁨을 느끼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두 번째로 타인으로는 불가능한 나만의 어떤 지점이란 숙련도다. 내가 기쁨을 느끼고 즐거워하는 일에서 타인이 흉내낼 수 없는 나만의 완성도를 갖춰놓는 것이 바로 성공적인 인생의 기준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든지, 아니면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을 좋아하면 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받는 입장

거렁뱅이 근성이라는 게 있다. 내가 봤을 때는 매우 보편적인 근성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스럽기도 하다. 다만 한 가지 곤란한 점이 있다. 타인으로부터 받는 입장에 처해 있는 인간은 절대로 그 상황에서 만족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족이 없으니 행복할 리 없다.


환자와 어린이와 노인을 가리지 않고 타인에게 줄 수 있는 입장이 되었을 때 비로소 인간은 만족한다. 노인의 불행은 누가 나를 부축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부축 받지 못했다고 불평하는 순간 불행해지는 것이다. 세상의 불행은 대부분 이런 사고방식에서 생겨난다.

불행을 알아야 행복도 안다


기본적이며 원시적인 불행이란 오늘날과 같은 의식주가 확보되지 않은 것을 말한다. 이런 체험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기본적이고도 원시적인 행복을 발견하는 기술면에서 서툴다.

오늘 밤 먹을 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행복인가. 눅눅하지 않은 잠자리에 누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행운인가. 이에 대해 감사해하 보지 못한 사람이 행복을 모르는 건 당연하다.

사람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의 가치를 이해하는 데 능란하다. 짓궂은 장난 같은 일이다.



오늘 저녁 밥상이 준비되어 있다.

성서에 보면 ‘기뻐하라!’라는 구절이 있다. 인생에 대한 명령 중 하나다. 사도 바오르는 ‘기쁨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땅에서 행복을 손에 넣는 첫 번째 열쇠라고 가르치고 있다.


항상 기뻐하라고는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은 문제다. 바오르는 주변 환경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서 기뻐해야 된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게 누구 덕분이며,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를 떠올려본다. 불경기라고는 해도 머리 위로 포탄이 날아다니지는 않는다.

당장 내가 사는 골목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날 염려도 적다. 전기와 수도가 끊기지 않고 넉넉히 공급되는 집에 살고 있다. 오늘 저녁 밥상이 준비되어 있다. 이처럼 당연한 일상에 감사하는 것, 이를 두고 재능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시련을 겪은 덕분에

어렸을 때 우리 집은 가정 폭려기 있었다. 내가 선택할 수만 있다면 평화로운 가정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운명은 나를 평화롭지 못한 가정의 외동딸로 선택했다.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운명에 순종하고, 적극적으로 이를 개척하는 수밖에 없었다. 소녀 시절에 매일같이 이런저런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 바람에 무척 이른 나이에 인생은 비참하고 어둡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 나이에 인생의 밑바닥을 체험한 덕분인지 작은 도움에도 한줄기 빛을 만난 것처럼 감사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무리 어둔 터널 속에 있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는 법을 알게 되었다.

세상이 살기 어렵다지만 매년 조금씩이나마 좋아지는 모습도 있다. 나는 그 작은 변화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어려서 세상에 쓴맛, 단맛을 다 겪었기 때문이다. 별것도 아닌 일에 고마움을 느끼는 현재의 내 모습이야말로 그 시절 나를 괴롭혔던 쓰라린 운명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견뎌내는 것이다.

한탄해본들 불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두운 얼굴을 해 보인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라면 같은 상황에서 밝게 웃고 있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는 자신의 몫이다.

질병에 걸리고 수험에 실패하고 실연하고 망하고 전쟁에 휘말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육친의 사별,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당한 사람은 그 고통스런 시간을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몰라보리 만큼 강해진다.


마침내 불행이 그 만의 개인적인 자산이 되어 그의 등 뒤에서 발게 빛난다. 불행을 한탄하며 세상과 인생에 악평을 쏟아내는 사람을 볼 때마다 다시없을 기회를 놓치겠구나, 안타깝기만 하다. 인간은 본디 강하다. 그래서 견뎌내는 것이다. 그런 견뎌냄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증명하며 살아간다. 



떨어져 있을 때 상처를 받지 않는다.

거리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의미를 갖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상처를 받지 않는다. 이것은 엄청난 마법이며 동시에 훌륭한 해결책이다. 다른 사람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내 경우엔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으면 세월과 더불어 그에게 품었던 나쁜 생각들, 감정들이 소멸되고 오히려 내가 그를 그리워하는 건 아닌가, 궁금함이 밀려온다.


 

마음을 비운다.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을 비우기를 잘하는 편이다. 특별히 사상적인 고민의 결과는 아니다. 다만 이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는 곳임을 잊지 않고 있으므로 끈덕지게 좇아가겠다는 집착에서 시달리거나, 효율이라는 것을 따져 계산하거나, 시기가 이르지 않은 일들을 당장 이루어지기를 욕심내지 않는다는 정도다.


목적은 어차피 한 가지밖에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결정한 후 나머지는 마음을 비우는 게 상책이다. 마음을 비우는 일은 언제나 효과적인 해결책이다. 마음을 비우는 일에는 자신의 생명도 포함된다.


불운이 찾아오기 전에 먼저 조금씩 비워나간다면 절망과 원망에 시달릴 일이 없다. 절망하고 원망하는 이유는 누군가가 나서서 나의 상황을 개선해주리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간의 거리를 둔다’에서 극히 일부 발췌, 소노 하야코 지음, 김욱님 옮김, 책 읽는 고양이 출판>


                                                                       부산 금정 회동수원지

지하철 1호선 장전역 4번 출구에서 나와 도로를 건너 오륜대(본동)가는 5번마을 버스를 타면 된다. 종점에서 내려 편백나무숲과 맨발로 걷는 황톳길 등을 둘려보면 된다.

                                                                     




                                                                          숲속 황톳길







                                                                                    편백 숲

                                                       책 한권,간식거리 싸들고 하루 소풍가기에는 참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