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사샤. 애야 말해 보렴. 아버지가 어디 갔다고? 너는 분명히 알고 있을 거다”
“어디로 가셨는지 몰라요. 하지만 편지를 주셨죠.”
“나의 출발이 당신을 비탄에 빠트리겠지. 거기에 대해선 할 말이 없지만 제발 이해하고, 다른 방도가 없었음을 믿어 주오. 이 집에서의 내 처지는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소. 그 외 모든 것과 더불어 더 이상 나는 이런 호화스러운 환경에서 머물 수가 없다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옛사람들이 흔히 하던 일이오-자신들의 세속적인 삶을 뒤로하고 만년을 평화와 고독 속에 보내는 거요.
제발 이것을 이해해 주고 내 행방을 알게 되더라도 날 찾지 마오. 당신과 나의 처지를 악화시킬 뿐이오. 내가 결정을 바꾸는 일은 없을 것이오.
나는 당신이 나와 함께 보낸 48년의 성실한 세월에 감사하오. 그리고 당신에게 지은 죄가 있다면 모두 용서하시오. 내가 온 마음으로 당신이 내게 저지른 죄를 용서하듯이 말이오.
내가 떠난 뒤에 당신이 맞게 될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맞추도록 하시오. 그리고 내내 악의를 품지 마오. 내게 편지를 쓰고 싶으면 샤샤에게 말하시오. 그녀는 나의 행방을 알게 될 것이고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보낼 것이오. 하지만 내가 있는 곳을 말하지 않을 것이오. 왜냐하면 그녀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기 때문이오.“
10.28일 톨스토이
그녀에게 편지를 써두고 집을 떠나기 위해 꼭 필요한 것만 골라 행장을 꾸리기 시작했다.
“떠날 준비가 다 되었을 때 아빠는 잠시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었지요. 정원 앞으로 가더니 자신이 태어난 집을 오랫동안 바라다보았어요. 난 그가 마음을 바꿔 침실로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잠깐 생각했죠. 그런데 갑자기 그가 젖은 풀 위에 꿇어앉더니 풀잎에 손을 비비며 고개를 숙이는 거예요. 그러더니 땅에 키스를 하고 일어섰어요. 그의 과거의 삶은 그 순간 끝이 난 것이지요.”
칠흑 같은 암흑이었다. 야젠키 역에서 한 시간 기다려야 했다. 아내가 당장에라도 나타날지 몰랐다. 마침내 기차 칸에 자리를 잡았다. 열차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두려움이 사라지자 가슴속에 (아내)소피아 안드레예브나를 향한 동정이 솟아올랐다. 내가 한 일에 회의는 없었다.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르고, 단지 내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일지도 모르지만 내 자신을 구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때때로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가 아닌, 내 안에서 반짝 빛이 나는 무엇인가를.
샤마르디노로 가는 여행은 노동자들로 만원인 삼등칸을 이용했다. 여행은 모두 배울 만한 구석이 있었다.
편지를 읽자 (아내)소피아 안드레예브나의 얼굴이 경련하기 시작했고, 뺨은 바람에 말린 종잇장처럼 구겨져 부풀어 올랐다.~
내가 소리를 질렀다. “도와 주세요!” “엄마가 물에 빠지고 있어요!” 샤샤가 울부짖었다. “엄마가 죽었어!” 남자 하인 바냐는 그녀를 돌아 눕히고 하마가 다른 하마에게 올라타듯 그녀 위에 올라타 무릎으로 폐에서 물을 뽑아냈다. 그녀는 조용히 누워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한 여자의 고통, 커다랗고 어두운 묘비를 떠올렸다. 얼마 후에 그녀는 눈을 뜨지 않은 채 정상적으로 숨을 쉬었다. 삶이 그녀를 다시 고문하기 위해 다시 데려온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의 행동에 대한 판단은 내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모든 행위마다 수많은 이유들이 존재하는 법이고, 설사 우리가 그 이유들을 다 안다고 해도 여전히 연결 짓지 못할 것입니다. 어머니에겐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과장과 감상이 많긴 하지만 삶 자체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만은 진실입니다. 아버지의 삶이 어려웠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당신은 삶을 십자가로 간주했습니다.
“친애하는 아버지께
지난 몇 달 동안 아버지의 짐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도 마음의 병을 얻었고, 최근 몇 년은 함께 사는 것이 두 분 모두에게 참기 힘든 것이었다는 것도 또한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불러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도록 했으면, 그래서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신경이 가라앉을 동안이라는 약속 아래 다정하게 떠난 것이었다면, 우리와 아버지가 함께 겪는-비록 당신은 멀리 있지만-이 끔찍한 고통은 없었을 것입니다.~사랑하는 아버지, 편지가 충고로 가득 찬 것을 용서하십시오.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이 사태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슬픈지 잘 압니다. 어머니를 볼 때마다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 딸 일리야로부터-
"정신병의 원인을 알아냈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백작부인은 두 가지 질병을 알고 계십니다. 편집증과 히스테리가 그것인데 전자가 더 심하십니다."
아빠는 신경질적이 아니었다. 비록 안드레이나 레프오빠는, 의사가 아버지를 병약한 정신 상태라고 진단하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물론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비밀스런 유언이다. 관심이 온통 아빠의 원고와 일기장의 처분에만 쏠려 있다. 그들은 돈밖에 모른다! 그들이 하는 일체의 행위는, 그들이 숭배해 마지않는 사치를 위해 계산된 것이다.나는 바바라의 방으로 갔다, 그녀는 날 끌어안고 말했다, "어떤 분이든 한 분은 곧 세상을 뜨실 거야, 그것에 희망을 가져. 이런 일은 시간이 해결해 주는 법이야."
우리 부모의 싸움이 그들의 육체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뚜렸했다. 엄마의 맥박은 미친 듯이 뛰었고 아빠는 어떤 날은 방도 거닐 수가 없었다. 어느날, 아빠는 삶에 지치고 가족들도 그에게 지쳐 떨어진, 한 노인네 이야기를 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새벽녘, 말을 타고 안개 낀 숲으로 사라져 버렸다...."아빠. 절대...." "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구나," 두려움보다는 경악 때문에 나는 대화를 피해 버렸다. -사샤-
(아내)소피아 안드레예브나에게
“지금 당장 들어간다는 것도, 우리 둘 만남도 불가능하오. 당신에게도 해로울 것이오. 당신이 흥분하거나 짜증을 내면 내 처지와 좋지 않은 건강은 더욱 나빠 질 것이오, 이미 일어난 일은 단념하도록 하시오.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도록 노력하고, 무엇보다도 당신의 건강에 유의하시오.~” -톨스토이-
그가 기차에서 내려 걷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끔찍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엄청나게 힘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가 레프 톨스토이임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모자를 벗고 마치 인도의 성자에게 존경을 바치듯 절을 했다.
레프 톨스토이는 아스타포보 역장집인 오졸린의 집에 앓아누워 있다. 사실 그들은 그가 자기 집의 객실을 쓰는 것을 상당히 기뻐하는 눈치였다. 그가 정말 이번 위기를 넘길 듯이 보여 곧 크리미아나 불가리아 혹은 터키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그는 방해받지 않고 혼자 생각하고 일하고 기도할 수 있는, 밝고 따뜻한 어떤 곳 말이다.
사샤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서둘러 역으로 갔다. 아버지가 미세한 경련을 일으키는 것도 보았다. 내심 걱정이 되었다. 종종 염증을 일으키는 그의 왼쪽 폐가 눈에 띄게 헐떡거렸다. 폐렴이 올까 두려웠다. 노인들에게 페렴이 치명적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혹은 좋다가도. 노인들에게서 현재의 고통을 앗아가 준다 해서, 그것은 종종 ‘노인의 친구’라고도 한다.
나는 밤새도록 아버지 옆에 앉아서 주기적으로 그의 맥박과 체온을 쟀다. 그것은 차라리 고문이었다. 그는 견디기 힘든 갈증에 시달렸고 몇 번이나 신에게 죽음을 청하며 울부짖었다. 그는 꼭 밑판은 내려앉을 듯하고 돛은 찢겼으며 활대는 부러진, 폭풍우를 뚫고 가는 낡은 배 같았다.
그 시간의 역은 텅 비어 있었다. 플랫 홈에 혼자 앉아 끝없이 뻗쳐 나간 빛 철로를 바라보았다. 육체의 삶과 영혼의 삶이라는 것이 이 철로와 같다고 생각했다. 가시적인 미래로 평행을 이루며 달리는, 우리는 세속적인 육체가 천상의 것과 만나는 교차점을 상상한다. 하지만 그것은 환상이다. 육체의 철로의 시간은 일정한 점 어딘가에서 멈춘다. 영혼의 철로는 계속되고, 아마 무한까지 갈 것이다. 아무도 예언할 수 없다.
“톨스토이 백작부인이 기차를 빌렸대요. 1등차를! 저녁 식사 후면 역에 도착할 겁니다.“오졸린이 전보를 보며 말했다. 나는 재빨리 역 대합실에서 사람들을 모았다. 모두가 소피야 안드레예브나가 그녀의 남편을 보게 해선 안 된다는 데에 동의했다. 그녀는 지금과 같은 상태에선 그를 죽이고 말 것이다.
“엄마는 아빠가 죽든 살든 콩 자루처럼 끌고 갈 거예요.”
“우린 역장의 집을 둘러싸고 방어막을 쳐야 합니다.” 내가 말했다.
“소피아 안드레예브나와 그녀의 끔찍한 자식들-나는 그 가증스러운 일리아와 안드레이를 말하는 겁니다-이 그의 병실로 들어서는 것을 막아야 해요.”
이런 일이 없었다면 잊혀 졌을 아스타포보라는 마을이 갑작스레 유명해졌다. 전선국은 북새통을 이루었고 톨스토이의 맥박과 체온 그리고 몇 시간마다의 건강 상태를 얘기해 주기 위해 일정 간격을 두고 기자 회견을 했다.
나는 레프 니콜라예비치의 1901년 일기 한 구절이 떠올렸다. 그것은 그가 병중에 가스프라에게 썼던 것이다.
죽음의 끝에 서니 내가 아직도 삶을, 신을 향한 계속적인 진보로, 즉 사랑의 증대라고 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받고 싶어진다. 만약에 내게 말할 힘이 없을 때, 대답이 “그렇다”라면 내 눈을 감겠다. 만약 대답이, 아뿔싸, “아니다”라면 위를 쳐다보겠다.
사랑하는 레프 니콜라예비치는 영원으로부터 우리를 갈라놓는, 얇은 베일 뒤에 감춰진 그 무엇과 가까워 보였다. 토요일 오후, 그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다급한 목소리로 의사들을 불렀다. “숨을 못 쉬겠소!” “아들아” 그가 말했다. 아들 세르게이는 그의 옆에 꿇어앉아 자신의 귀를 아버지의 입술가까이에 가져다 했다.
“진실....내게 그것은 중대사란다. ....그 방법은.....”
그의 목소리가 끊겼다. 그는 더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잠에 곯아떨어졌다. 10시30분이었다.
슬프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낯설다, 나는 이 세상의 반종교적인 사람들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생각해 왔다. 아마도 가장 좋은 접근 방법은 그들을 동물처럼 대하는 것일 것이다. 사랑하고 동정하지만 정신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런 시도는 공연히 나쁜 감정만을 초래할 뿐이다.
이런 사람들은 나의 실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와 확신의 부족으로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이성적인 논쟁을 이용하고, 진실과 선을 반박하는 등 나를 자극하여 나를 나쁘게 만들려고 한다. 난 자기 표현에 서투르지만 사람은 그런 사람들에 대한 자기 나름의 특별한 태도를 가다듬어서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손상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일기 1910.1.5-
<‘톨스토이의 마지막 정거장’에서 극히 일부 발췌,제이 파리니 지음, 김소영님 옮김,궁리 출판>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소설가, 시인, 개혁가, 사상가이다.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였으며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작가 중 한명으로 꼽힌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서 자랐다. 법학과 다니다 인간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각을 억압하는 대학교육방식에 실망을 느껴 중퇴하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그의 사상을 존경하는 한 사람이었는데 참 한 사람의 인생연극이 마지막 정거장인 '아스타포보 역'에서 이렇게 막을 내렸다! 그것도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가정사다. 인간의 삶을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구현 해내던 그도 가족 구성원과의 따뜻한 마음의 집을 만들지 못했다. 저작 수입과 백작의 지위로 행복한 가정을 꾸릴 법도 한데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된 것 또한 가족 각자의 몫이였는지 모르겠다. 그는 중년시절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나나‘같은 대작들을 발표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지만 쉰 살에 이르러 죽음의 공포를 체감한 후 종교적 삶을 택했다. 만년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면서도 슬프다. 청빈과 도덕 율이 몸에 젖은 자신과는 달리 풍부한 삶을 추구하는 가족 간의 갈등과 그의 고뇌가 절절하게 묘사돼 있다.
소설 ‘부활’에서 동방정교회를 비판하여 파문을 당한 적도 있다. 악처라는 소문과는 달리 곁에서 부인인 소피아 안드레예브나의 역할이 일정부분 있었다. 도스토엡스키 미망인 안나를 찾아가 출판업 판매기술을 전수받아 20년 동안 부의 축적을 할 수 있었다.
자료에 의하면, 불쑥 찾아오는 문학친구들의 방문에 대한 예우, 자기만 알 수 있는 난해한 원고 교정 등에 많은 내조를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몸소 실천하고 도덕적 생활에 익숙했던 남편과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철학을 논하며 돈 한 푼 벌지 못한 소크라테스를 백수건달로 경멸하여 악처가 된 소크라테스 부인 '크산티페', 14세에 베토벤에게 음악을 가르쳤고 35세의 나이로 요절했던 모차르트 부인 '코스탄체'와 더불어 세계3대 악처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모차르트 부인은 9년간 모짜르트와 살면서 여섯명의 아이를 낳아 4명은 요절하고 2명만 독신으로 키웠다고 한다. 자세한 자료를 접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음악에만 심취해 있는 남편에 대한 불만과 아이의 죽음과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가 아닐까 싶다.
18세의 소피아는 34세의 톨스토이를 만나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자녀들끼리도 아버지의 문학을 이해하고 원고작업을 도운 딸들과 나머지 자녀들과 더불어 어머니 편으로 나눠져 있었다.
말년에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였다. 여러 명의 자녀들과의 재산, 상속문제와 부인의 정신적 문제로 집안이 항상 시끄러웠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내용과 책의 본문에서 밝힌 여행의 문학적 동기를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을 듯싶다. 그가 머물었던 ‘아스타포보 역’은 후에 ‘톨스토이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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