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리체
부모님의 그늘, 정신의 그늘 속에서 행복하려 했던 나의 마지막 시도는 오래 결렸고, 가끔 성공하는 듯도 했지만 결국은 완전히 실패로 끝났다.
하숙집에서 나는 처음에는 사랑받지도 주목받지도 못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나를 놀리다가, 그 다음에는 나로부터 물러났으며 나에게서 음침하고 패기 없는 사람, 불쾌한 괴짜를 보았다. 그런 역할을 하는 자신이 마음에 들어, 나는 그 역을 더 과장했으며, 고독 속으로 칩거하였다. 남몰래 자주 비애와 절망의 좀 먹히는 발작에 짓눌렸는데도 그 고독은 바깥에서 보면 지극히 남자답게 세상을 경멸하는 것처럼 견고해 보였다.
우리 하숙집에서 제일 나이 많은 학생, 알폰스 백이었다. 우리는 조그만 교외 술집에 앉아, 품질이 수상한 포도주를 마시며 두꺼운 유리잔을 부딪쳤다.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건 뭔가 새로운 것이기는 했다. 나는 술에 익숙지 않은 터라, 곧 몹시 말이 많아졌다. 내 속에서 창문 하나 활짝 열린 듯했다. 얼마나 오래, 얼마나 끔찍하게 오래 나는 영혼에 관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가! 나는 상상의 날개를 펴기 시작했고, 그 한가운데서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화젯거리로 내놓았다.
백은 즐겁게 내 말에 귀 기울였다. 마침내 누군가가 내 말에 귀 기울이고, 그에게 내가 무언가를 주는 것이었다! 그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를 굉장한 녀석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고 뭔가를 전하고 싶은 고이고 고인 욕구를 실컷 쏟아내는 기쁨에, 인정을 받는다는 기쁨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그가 나를 천재적인 멋들어진 녀석이라고 불렀을 때는 그 말이 감미로운 독주처럼 영혼 속으로 번졌다. 세계는 새로운 색깔로 불타고 있었다. 생각들이 수백 개의 철철 솟는 샘에서 나와 흘러갔다. 속에서 정기와 주정(酒精)의 뜨거움이 훨훨 타올랐다.
우리들의 대화는 약간 수준 낮은 것이었고, 무엇인가가 빠져 있었다. 아무튼 나는 그 가운데서 뜨거운 감정을 맛보고 혁명적 파격을 맛보았다.
잠깐 죽은 듯이 잠을 잔 후 나는 고통스럽게 깨어났다. 술이 깨고 보니, 멍한 고통이 나를 엄습했다. 낮에 입었던 셔츠를 아직도 입고, 내 옷가지며 신발은 바닥에 널리 있고 담배 냄새와 토사물 냄새가 났다. 두통과 메스꺼움과 심한 갈증 사이에서 내가 오래 직시하지 않았던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고통과 부모님 집, 아버지, 어머니, 누이들과 정원이 보였다. 조용하고 아늑한 내 침실이 보였다.
가장 먼 유년의 황금빛 정원들까지 되돌아가 부모님으로부터 경험한 모든 사랑스럽고 근사한 것, 어머님의 입맞춤 하나하나, 정원의 꽃 하나하나, 이 모든 것이 황폐화되었다. 모든 것을 내 자신의 두 발로 짓밟아버렸던 것이다! 지금 추적자가 와서 나를 묶어서 인간 폐물이며 신전 모독자라고 교수대로 데리고 간다면, 나는 동의하고 기꺼이 따라갔으리라. 그렇게 하는 것이 바르고 합당한 처사라고 느꼈을 것이다.
밖에서 보면 그 동안 나는 착실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처음 취한 것이 곧 처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출입이 잦았고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그런데 가담하는 학생들 가운데 나는 제일 어린 축에 들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끼워주는> 어린애가 아니라 주모자요 스타였다. 유명한, 대담무쌍한 술집 출입객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 고통을 겪는 것에는 상당한 쾌감이 있었다. 그토록 오래 내가 맹목적이고 둔감하게 웅크리고 있었기에, 그토록 오래 내 마음은 침묵하고 가난해져 구석에 앉아 있었기에 그리하여 자기 고발, 이 전율, 이 모든 영혼의 불쾌한 감정도 환영받았던 것이다. 감정이 있었다! 불꽃이 솟았다. 나는 비참한 가운데서 해방자이자 봄 같은 그 무엇을 혼란스럽게 느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기분은 참담했다. 나는 자신을 파괴해 가는 방탕 속에서 살아갔다. 학교에서는 지도자이자 굉장한 녀석으로, 대단히 과단성 있고 위트 있는 녀석으로 인정받았던 반면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두려움에 가득 찬 영혼이 불안으로 퍼덕이고 있었다. 내가 한 번도 내 동행자들과 하나가 되지 않았다는 것, 그들 가운데서 늘 외로웠고 그래서 그렇게까지 괴로웠다는 것,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술집의 영웅이었지만 아주 거친 것은 심정적으로 경멸하는 사람이었다.
우리 아버지가 하숙집 주인의 편지로 경고를 받아 느닷없이 나를 마주했을 때만 해도, 나는 놀랐고 움칫했다. 아버지가 두 번째로 오셨을 때 나는 벌써 냉혹하고 무관심했다. 아버지는 마지막에는 몹시 격분하여, 내가 달리 안 된다면, 수모와 창피를 무릅쓰고 학교에서 나를 끌고 나와 감화원에 처넣겠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나에게로 오는 어떤 길도 찾아 내지 못하셨다.
내게 가장 결핍된 한 가지, 그건 친구였다. 나의 악덕은 오래전부터 이미 누구에게도 비밀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피했다. 나는 몇 차례 엄하게 벌을 받았다. 최종적으로 학교에서 쫓겨나는 일만 남았는데 그건 내 쪽에서도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 봄날 공원에서 나의 시선을 몹시 끈 소녀를 만났다. 나는 지금까지 마음을 빼앗긴 여성에게 접근하는 것에 성공한 적이 없었는데, 이 소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인상은 이전의 모든 여성들보다 더 깊었고, 이번에 빠진 사랑이 나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강력했다. 나는 그녀에게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주었다. 이제 나는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숭배해야 했다. 다시 하나의 이상을 가진 것이었다. 삶을 다시 예감과 비밀에 찬 영롱한 여명이었다. 나는 다시 나 자신에게로 편안히 안착했다.
내가 시달렸으며 자꾸만 도피했던 성 문제는 이제 성스러운 불 속에서 정신과 기도로 승화되었다. 신음하며 지샌 밤들도, 방종한 영상들 앞에서 뛰던 심장의 고동도, 금지된 문 앞에서의 도취도, 육욕도. 그 모든 것 대신 베아트리체의 영상으로 나는 나의 제단을 세웠다. 이 베아트리체의 예배는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하여 그녀를 그리고 싶었다. 완성된 그림 앞에 앉아 있자니, 기이한 인상을 받았다. 그것은 내게 일종의 신상(神像) 혹은 성인의 가면처럼 보였다. 절반은 남자고 절반은 여자, 나이가 없고, 의지가 굳세면서도 몽상적이며, 굳어 있으면서도 남모르게 생명력이 있어 보였다. 이 얼굴은 나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했다. 그것은 나의 일부였다.
그리고 어느 아침, 꿈을 꾸다 깨어났을 때, 나는 갑자기 그 그림의 실체를 알아보았다. 그 그림은 참으로 친숙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처럼, 아득한 시절부터 나를 잘 아는 것 같았다. 어떻게 내가 그걸 이렇게 늦게야 비로소 찾아낼 수 있었단 말인가! 그것은 데미안의 얼굴이었다. 어떻게 나는 이 그림을 내 기억 속에서 찾아낸 데미안의 진짜 표정과 자주 비교했다. 비슷하기는 해도 똑 같은 건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데미안이었다. 그런데 차츰차츰 이것은 베아트리체도 데미안도 아니며 나라는 느낌이 왔다.
아버지도 이제는 비난도 위협도 없이 다시 전 같은 어조로 편지를 쓰셨다.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에게나 그 누구에게 어떻게 변화가 일어났는지 설명할 충동을 느끼지 않았다. 이 변화가 우리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소망과 일치한 것은 우연이었다.
이 변화는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로 데려간 것이 아니었다. 나를 누구에게도 접근시키지 않았다. 나를 오직 더 고독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어딘가를 목표로 삼고 있었다. 데미안을, 먼 운명을, 내 스스로야 몰랐다. 그 한가운데 있었잖은가. 베아트리체로 일은 시작되었으나, 얼마전부터 나는 그림 그려진 종이들 그리고 데미안에 대한 나의 생각들과 더불어 살고 있었다. 얼마나 완벽하게 비현실적인 세계 속에서 살고 있었는지, 베아트리체마저 시야에서 생각에서 까마득히 사라졌다. 내 꿈들, 내 기대들, 내 내면의 극심한 변화에 대해 나는 아무에게도 한마디도 말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내 안에 어둡게 숨겨진 목표를 끌어내어 내 앞 어딘가에 그려내는 일, 교수나 판사, 의사나 예술가가 될 것이며, 그러자면 얼마나 걸리고, 그것이 어떤 강점들을 가질 것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들처럼 그려내는 일, 그것은 할 수 없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찾아내면,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 자신의 욕구와 필요가 그를 거기로 인도한 것이다.
저기서 연주하고 있는 사람은 이 음악 안에 보물 하나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안다. 음악이 몹시 좋아요. 음악은 별로 도덕적이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모든 것은 도덕적이지요. 저는 도덕적인 것에는 늘 시달렸거든요.
<해설, 우연히 역사시간에 이 이름을 듣게 되어 그것이‘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키는 상징적 과제를 지닌 어떤 신성’이라는 것 정도란 알게 된 주인공 싱클레어는 압락사스라는 낯선 신을 찾아 헛되이 도서관을 뒤지고,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 그 꿈의 영상에 집착한다. 그러다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와 만나게 되고, 자신의 영혼에 대한 귀기울임과 배화(拜火)를 경험한다. 모든 대화가 내 허물을 벗는 일에, 알 껍데기를 부수는 일에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에바부인
사람들이 서로에게로 도피하고 있어. 서로가 두렵기 때문이야. 신사들은 신사들끼리, 노동자는 노동자들끼리, 학자는 학자들끼리! 그런데 그들은 왜 불안한 걸까?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은 한 번도 자신을 안 적이 없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은 모두가 그들의 삶의 법칙들이 이제는 맞지 않음을, 자기들은 낡은 목록에 따라 살고 있음을 느끼는 거야.
어떻게 한 시간을 유쾌하게 보낼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걸, 저런 대학생들 술집을 한 번 봐! 아니면 부자들이 가는 유흥장들을 봐! 절망적이지 그 모든 것에서 진정한 명랑함이 나올 수 없단다. 저렇게 겁을 먹고 서로 뭉친 사람들은 두려움과 악의로 가득 찼어. 그들은 이제는 더 이상 이상(理想)이 못 되는 이상들에 매달려 있어. 그러면서 새로운 이상을 내세우는 사람에게는 돌을 던지지. 싸움이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감지해. 싸움들이 다시 벌어질거야.
⌜사랑은 간청해서는 안 돼요⌟ 에바 부인이 말했다.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사랑은, 그 자체 안에서 더 이상 끌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끕니다. 싱클레어, 당신의 사랑은 나에게 글리고 있어요. 언젠가 내가 아니라 당신의 사랑이 나를 끌면, 그러면 내가 갈 겁니다. 나는 선물을 주지는 않겠어요. 쟁취되겠습니다.⌟
그녀 얼굴을 보고, 그녀와 말하고,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서도, 그녀가 정말로 거기 있는지, 꿈은 아닌지 잘 분별할 수 없기도 했다. 그녀가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나에게 그녀의 성숙하고 향내 나는 온기를 미소로 보내주었을 때, 나는 마치 내가 내 자신 안에서 한걸음 진보를 이루어내었을 때와 똑 같은 느낌을 가졌다. 그녀의 모습이 내 생각 하나하나 속으로 녹아들고, 내 생각 하나하나가 그녀 속으로 들어갔다.
<해설, ⌜에바부인⌟은 만남과 공동체에 대한 성찰이다. 데미안은 마침내 자신이 그린 꿈의 영상의 현실의 모습을 찾아낸다.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이다. 허약한 사람들은 어디서나<두려움에서, 무서움에서, 당황해서 만든 공동체>를 만드는데 그런 공동체는 패거리 짓기일 뿐이며, 내부가 상해있고 곧 무너질 것 같기 때문이다. 데미안은 사람들은 서로에게로 도피하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싱클레어는 공동체들이 와해되고 나면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말의 예감 속에서 싱클레어는 푸른 혼돈을 떨치고 큰 날개 짓으로 짙게 구름 낀 하늘 속으로 사라지는 새의 영상을 본다. 낡은 한 세계의 와해를 피부로 느낀다.>
종말의 시작
내가 전장으로 갔을 때는 이미 겨울이었다. 지금 나는 많은 사람들, 아니 모든 사람들이, 이상을 위해 죽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그것은 개인적 이상, 자유로운 이상, 선택한 이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떠맡겨진 공동의 이상이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공격 때뿐만 아니라 어느 때나 확고하고 먼, 약간 신들린 듯한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시선은 목적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며 엄청난 것에 몰두해있음을 뜻한다.
전쟁의 외적이고 정치적인 목적들에 대한 물음이 표면에 거치듯이, 깊은 곳에서는 무엇인가가 생성 중에 있었다. 새로운 인간성 같은 무엇이.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바로 내 곁에서 죽었다. 그들에게는 미움과 분노, 살육과 말살이 대상에 매어 있지 않다는 통찰이 느껴졌다. 아니다. 대상들은 목표들과 꼭 마찬가지로, 완전히 우연이었다.
가장 거친 느낌들도, 적에게 향하여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유혈의 위업은 오로지 내면의, 그 자체 안에서 산산이 파열된 영혼의 발산이었다. 새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 위하여 광분하여 죽이고, 말살하고, 죽으려는 영혼의 발산이었다. 거대한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고 있었다. 알은 세계였고 세계는 짓부수어져야 했다.
나는 포플러 가까이에서 흙과 상처로 뒤덮인 채 발견되었다. 나는 어느 지하실에 누워 있었다. 내가 부름을 받은 곳에 와 있다는 느낌이었다.
붕대를 감을 때는 아팠다. 그때부터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아팠다. 그러나 이따금 열쇠를 찾아내어 완전히 내 자신 속으로 내려가면, 거기 어두운 거울 속에서 운명의 영상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내려가면, 거기서 나는 그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 그와, 내 친구이자 나의 인도자인 그와.
<해설, 겨울 전장에서 부상당한 주인공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다시 만난다. 그의 키스와 그들 통한 에바 부인의 키스를 받지만, 다음날 아침 깨어 옆을 보니 이미 데미안은 거기 없다. 그러나 ‘내 친구이자 나의 인도자인 그와’ 닮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제 ‘자신 속에 있는 뛰어난 존재’와 하나가 된 것이다.>
<‘데미안’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헤르만 헤세지음, 전영애님 옮김, 민음사 출판>
* 헤르만 헤세 : 1877년 독일남부 칼브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시인이되고자 수도원 학교에서 도망친 뒤 시계공장과 서점에서 견습사원으로 일했으며, 열다섯 살에 자살을 기도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냈다. 스위스로 이사한 1919년을 전후로 헤세는 개인적인 삶에서 커다란 위기를 겪고, 이로 인해 그의 작품세계도 전환점을 맞이한다. ‘데미안’과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이 바로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헤세는 이 작품들과 더불어 소위 ’내면으로 가는 길‘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림은 음악과 더불어 평생지기가 되었다. ’싯타르타‘,’황야의 이리‘,’나르치스와 골드문트‘,’동방순례‘,’유리알 유희‘등 작품을 발표했고, 1946년 노벨문학상 수상했다. 1962년8월85세 나이로 제2의 고향인 스위스 몬타뇰라에서 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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