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할 수 있는 일과 즐길 수 있는 일!

[중산] 2020. 6. 8. 12:23

할 수 있는 일과 즐길 수 있는 일

정말로 젊다는 것이 부러울 정도로 멋진 것일까? 괴테가 생애를 걸고 쓴 대작 ⌜파우스트⌟의 주인공 파우스트는 모든 영역의 학문을 연구했다고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뛰어난 학자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제까지의 삶에 공허함을 느꼈던 파우스트는 마침 그 무렵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를 만난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의 혼을 자신에게 판다면 그에게 무엇이든 갖고 싶은 것을 모조리 주겠다고 제안했고, 파우스트는 이에 응해 ‘젊음’을 손에 넣는다.

 

염원했던 젊음을 손에 넣은 파우스트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매우 아이러니하지만 실제로 행복해지기는커녕 불행해지고 말았다. 분명 파우스트는 젊은 여성과 사랑하고, 자식도 낳았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훨씬 더 처참한 비극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젊었을 때에는 미숙해서 가치관도 흔들리고, 고뇌하고 초조함을 느끼는 순간들이 많기 마련이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하는 것도, 다시 되돌리는 것도 싫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젊음이 마냥 부러운 것은 스포츠맨처럼 육체가 재산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인 경우 정도일 것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자연히 시선은 앞으로의 인생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비로소 젊음을 졸업한 것에 대한 은혜로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노후에 대해서 생각할 때 노후자금은 어떻게 할 것인가? 건강 상태가 걱정되고, 재정상태가 마이너스라고 해도 나쁜 일만 상상하는 것은 이제 졸업하자. 돈이나 건강에 대한 걱정은 노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내내 쫓아 다닌다. 지금 이러고 있는 순간에도 누구에게나 걱정거리인 것이다.

 

노후에는 그 문제가 한층 더 잘 표출된다는 것뿐이지 사실 예상외로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앞날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런 것은 잠시 잊어버리자. 무엇보다 지금은 최고의 이성적인 노후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는 편이 훨씬 즐겁고 벅찬 마음으로 노후 준비에 임할 수 있다.

 

 

슬슬 노년이 보이기 시작하면 앞으로 어떻게 인생을 즐기면서 살고 싶은가에 대해 구체적인 문장으로 정리하거나 말하는 것이 좋다. 신기하게도 일단 말로 이야기하다보면 꿈이나 이상은 점점 현실감을 띤다. 주위에서 공감하고 격려라도 해준다면 한층 더 힘이 실린다. 반대로 무시당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꿈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그리 나쁘지 않다. ‘본때를 보여줘야지!’하는 의욕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후반에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일찍이 노년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왔던 사람들이다. 행복이나 즐거움은 구체성을 가질 때 비로소 실현된다. “‘할 수 있는 일’보다 ‘즐길 수 있는 일’이 늘어나는 것이 좋은 인생” 사이토 시게타씨의 말이다. 어떤가?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지 않는가?

 

 

 

은퇴한 남편이 왜 귀찮게 여겨지는가?

⌜주거 환경 연구소⌟가 정년 후 배우자에게 기대하는 것에 대한 조사한 결과, 아내가 남편에게 요구한 것 중 첫 번째는 ‘자립하길 원한다’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응답자 43%)‘였다. 반면 남편이 아내에게 바라는 첫 번째는 ‘건강하길 바라고 씩씩하게 살았으면 좋겠다(응답자의65%)’였다.

 

이 결과만 놓고 보면 남편들은 아내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왜 그럴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년 후 남편은 일에서 해방되나 아내 입장에서는 가사란 정년이 없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하지 않아도 됐던 남편의 점심 식사까지 준비해야하는 새로운 업무가 더해진 걸 감안해야 한다.

 

왠지 불공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거기에 본인이 외출하려고 할 때 ‘내 밥은?’이라고 남편이 말하면 ‘본인 밥 정도는 스스로 만들어 드세요!’라고 대답하고 싶을 것 같은 마음이 이해가 된다.

‘내 밥은?’ ‘어디에 가는데?’ ‘몇 시에 들어오는데?‘와 함께 ‘아내가 듣기 싫어하는 남편의 3대 질문’이라고 한다. 외출하려는 참에 ‘내 밥은?’이라고 말한다면 아내는 당연히 화날 수밖에 없다. ‘식사는 무엇으로 할까?’를 생각하며 음식을 만들고 상까지 차려내는 것은 당연히 아내의 일이라는 남편의 속내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내가 먹여주었는데’, ‘연금도 내가 일했기 때문에 받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아내가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아내가 가정을 제대로 지켜주었기 때문에 아이들도 제대로 자랄 수 있었다’라며 이렇게 서로가 감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상론일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서로 열심히 살아서 오늘날이 있다는 동지 의식을 잊지 않는다면 남편 재택 스트레스 증후군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설령 빠진다 해도 적어도 빨리 극복할 것이다.

<‘나는 이제 백발도 사랑하게 되었네’에서 극히 일부 발췌, 호시다다카시편저,오용균님,박계주님번역,리안출판>

 

초롱꽃

                                                                                                      섬머레이디 장미꽃

 

강양항, 명선교에서 찰칵!

                                                                                                        진하 명선도

진하 명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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