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중산] 2021. 9. 7. 10:40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그들이 한밤중에 들이 닥친다. 현관문을 쾅쾅 두드리며 고함을 지른다. 군인들이 침실로 들어와 우리가 집에서 옮겨져 다른 어떤 곳에 재정착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우리 가족 넷을 다 합쳐 단 한 개의 여행 가방만 허용된다.

 

수용소

우리는 아우슈비츠에서 매일 샤워실에 보내진다. 그리고 매번의 샤워는 불확실성으로 점철되어 있다. 우리는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올지 유독가스가 나올지 절대 알 수가 없다. 물이 몸에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다.

 

우리는 마후트하우젠에 도착한다. 그곳은 채석장에 있는 강제수용소로 남자들만 수용되어 있다. 이곳에서 수용자들은 화강암을 자르고 운반하는 강제노동을 하고 있다. 이 화강암은 히틀러가 꿈꾸는 도시, 독일의 새로운 수도, 베를린을 건설하는데 사용될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계단들과 시체들밖에 없다. 우리는 하얀 계단들 위에 일렬로 줄을 선다. 이른바 ‘죽음의 계단’이다. 수감자들은 110파운드(약50킬로그램) 무게의 돌덩어리를 날라 와서, 186개의 계단을 일렬로 줄을 지어 올라가야만 한다.

 

나는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노예였던 선조들을 상상해본다. 돌덩어리를 들고 계단을 오를 때 만약 앞의 사람이 발을 헛디디거나 쓰러지면, 그 뒤 사람이 계단 아래로 떨어지고 그 뒤 사람이 또 떨어져 결국 그 줄 전체가 다 떨어지게 된다. 듣기로, 만약 살아남는다 해도 더 끔찍하다고 한다.

 

수감자들이 ‘죽음의 계단’ 위로 나르는 돌덩어리보다 무게가 훨씬 덜 나간다. 나는 화장터의 굴뚝들이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높이 치솟은 벽돌 더미를 보며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음을 느끼는 것, 자기 자신이 이미 죽었다고 간주하는 것은 어느 정도 그럴듯해 보인다.

 

해가 저물고 우리는 계단 위에서 잠을 잔다. ‘우리는 아침에 죽는다. 아침에 죽는다. ‘소문이 확신으로 바뀌고, 채석장 암벽에 부딪혀 메아리치듯 머릿속에서 맴돈다. 단지 한 줌의 연기가 되어 사라지기 위해 우리는 그렇게 머나먼 길을 수백 마일 걸어온 것일까?

 

나는 남자의 벌거벗은 모습이 궁금하다. 내 주위 사방 곳곳에 남자들이 있다. 더는 살아 있지 않은 남자들이다. 나는 계단에서 시체들이 쌓여 있는 진흙투성이 산비탈로 기어간다. 나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두 다리가 제각기 비틀려 있다. 나의 체모와 비슷한 검고 굵은 체모가 있다. 그리고 작은 부속물이 있다. 마치 작은 버섯처럼 생겼다.

 

우리는 다시 행군한다. 마우트하우젠에서 군슈키르헨으로 가는 ‘죽음의 행군’이다. 우리는 이즈음에 너무 허약해진 나머지 2,000명의 사람 중 오직 100명 정도만이 살아남게 된다. 너무 약하거나 너무 아파서 계속 걸을 수 없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즉시 총살된다. 온몸 구석구석이 아프다. 너무 심하게 아파서 내가 움직이고 잇다는 것을 느낄 수가 없다.

 

한 줄기 풀잎 선택하기

행군이 끝나고 우리는 라거에 도착한다. 마우타 우젠 수용소의 하위 수용소로 몇 백 명의 강제 노동자를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이곳은 죽음의 수용소는 아니다. 가스실도 화장실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죽기 위해 여기로 보내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세 명이 겹쳐서 잠을 잔다. 만약 자기 아래에서 자는 사람이 죽더라도 계속 잠을 잔다. 시체를 끌어낼 힘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발이 까맣게 썩어간다. 숙소 주변 숲 곳곳에 다이너마이트가 설치돼 있다. 

 

우리는 화염으로 우리를 삼켜버릴 폭발이 일어나갈 기다린다. 거대한 폭발이 있기까지 다른 위험들 또한 존재한다. 굶주림, 벌열, 질병, 땅에 구멍을 파서 만든 변소가 전체 수용소 안에 20개밖에 없다. 배변을 보는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총살당한다.

 

배설물이 웅덩이를 이루고 있는 그곳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불에서 검은 연기가 난다. 땅은 진흙탕이다. 걸어갈 힘이 남아 있다고 해도 절반은 진흙이고 절반은 똥인 걸쭉한 진흙탕에서 발이 제멋대로 미끌어진다. 우리가 아우슈비츠를 떠난 지 어느덧 5~6개월이 되었다.

 

누가 살고 누가 죽어 있는지 이미 구별하기 힘들다. 질병들이 우리의 몸속으로 침투하고 우리의 몸에서 몸으로 전파된다. 발진티푸스, 이질, 흰 이, 아물지 않은 상처, 살과 살이 맞닿아 있고, 살아 있는 것과 썩어가는 것이 맞닿아 있다.

 

나의 해방자, 나의 가해자

예전에 이러한 순간-강제수용 생활의 끝, 전쟁의 끝-을 상상할 때, 나는 환희가 가슴에서 넘쳐나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목청껏 외치리라고 상상했다. “나는 자유다! 나는 자유다!”하지만 지금 내게는 목소리가 없다. 우리는 침묵의 강물이다.

 

군슈키르헨의 묘지로부터 근처의 마을을 향해 흐르는 해방자들의 물결이다. 나는 임시로 만든 수레에 타고 있다. 의식이 왔다 갔다 한다. 이 자유에는 어떠한 환희도 안도도 없다. 우리는 숲에서 느리게 걸어 나온다. 멍한 얼굴을 하고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만 이내 다시 잠에 빠져든다.

 

우리 대부분은 신체적으로 너무 피폐해진 나머지 제대로 걸을 수가 없다. 우리는 수레 위에 누워 있거나 지팡이에 기대어 걷는다. 우리의 죄수복은 더럽고 해졌다. 낡을 대로 낡고 누더기가 다 되어서 우리의 피부를 거의 보호하지 못한다. 우리의 피부 또한 뼈를 거의 보호하지 못한다.

 

우리는 매우 오랫동안 굶주렸다. 아무도 우리에게 거처를 제공하려 하지 않는다. 히틀러가 죽은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 독일이 공식적으로 항복하기까지 아직 며칠이 남았다. 나는 나치 친위대의 무미건조하고 자동적인 잔인함이나 그들의 부자연스러운 쾌활함, 권력에 취한 기쁨에는 이미 익숙해져 있다.

 

나는 그들이 우쭐한 기분을 느끼기 위해 그리고 목적의식과 통제감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들을 고양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우리를 쳐다보는 방식은 그보다 더 끔찍하다.

 

군인들이 우리를 앞으로 머무를 방으로 데려간다. 아이들 놀이방이다. 그들이 나를 들어 올려 유아용 침대 안에 눕힌다. 나는 그 정도로 작다. 몸무게가 약 70파운드(약 31.7킬로그램)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없다. 나는 아기다.

 

나는 인간의 언어로 생각할 수 없다. 나는 고통의 언어로, 욕구의 언어로 생각한다. 나는 안아 달라고 울지만 나를 안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향에 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기차 차량의 지붕으로 올라가 다른 난민들과 함께 자리를 잡는다.

 

나는 에릭에 대한 사랑, 에릭을 다시 찾을 것이라는 희망에 너무 몰두해 있어서 다른 남자의 팔을 찾아 안길 생각이 전혀 없다. 나는 뼈와 가죽밖에 남지 않았다. 게다가 온몸에 이가 득실거리고 상처투성이다. 누가 나를 원할까?

 

어느 날 오후, 거비가 내 등을 진찰한다. 그는 내가 배를 대고 엎드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신이 알게 된 사실을 내게 말해준다. “에릭은 이우슈비츠로 보내졌대.” 거비가 말한다. “에릭은 1월에 죽었대. 수용소가 해방되기 하루 전에.” 나는 통곡을 한다.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다. 슬픔이 매우 심하게 불타올라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다. 오직 목에서 신음만 들쭉날쭉 나올 뿐이다. 

 

 

벨러는 내 병실 바로 위에 있는 병실을 배정받는다. 그는 “당신을 웃게 할 거예요. 그러면 기분이 더 나아질 거예요.”하면서 혀를 날름거리고, 자기 귀를 잡아당기고, 동물의 울음소리를 낸다. 웃음이 밀물처럼 터져 나온다. ”웃으면 안 돼요.“ 의사들은 내게 경고를 했다.

 

벨러는 스물일곱 살이다. 나는 아직 어린아이다. 그의 삶에는 다른 두 여성이 있다. 벨러는 산에 숨어 있어서 다행히 나치의 손아귀를 피할 수 있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무장 게릴라가 되었다. 게릴라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그는 결핵에 걸렸다.

 

이민의 날

이민의 날인, 1949년 10월 28일은 내 인생 중 가장 낙관적이고 가장 희망찬 날이었다. 병원 병실에서 한 달 동안 살고, 비자가 나오길 기다리며 비엔나의 자그만 아파트에서 다섯 달 동안 살았다. 우리는 딸의 기회를 위해 미래의 보장을 포기하고 함께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미국에 왔어, 자유의 땅이야.” 내가 딸 마리안느에게 말했다.

 

죄책감과 불안은 국경 없이 떠돌아다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는 의류공장에 출근하여 매일 그곳에서 12개당 7센트를 받고 남자아이 팬티 솔기의 풀린 실을 자르며 하루를 보낸다. 아우슈비츠에서 강제 이송된 후에 일했던 독일의 실공장을 떠올리게 만든다. “화장실 가는 시간을 최소화 하시오!” 여자 작업 감독이 소리친다.

 

하지만 내게는 아우슈비츠의 여자 감독이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들린다. 그녀는 우리가 탈진될 때까지 일하다 그 후 모조리 살해당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나는 한시도 멈추지 않고 계속 일한다. 수지 않고 일하는 것 자체가 버리기 힘든 오랜 습관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편 벨러의 첫 번째 직업은 창고에서 무거운 짐을 들어 올리는 일이었다. 급료는 형편없고 일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하지만 이것이 이민자의 현실이었다. 1956년, 남편 벨러는 공인회계사 시험에 통과하고 자격증을 취득한다. 우리의 셋째 아들이 태어나기 몇 달 전에 침실이 세 개 있는 평범한 주택을 사들인다.

 

고통은 필연적이고 보편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고통에 대응하는 방법은 각기 다르다.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나는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심리학자들에게 자연스레 끌렸다.

 

항상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내가 선택하는 세계 하나와 내가 부정하지만 내 허락도 없이 밀고 들어오는 세계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불편한 경험을 하고, 실수를 저지르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항상 얻지는 못한다.

 

이는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의 일부다. 자기수용은 치유과정 중 내게 가장 힘든 부분이었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나는 이것과 씨름하고 있다. 내가 경험한 끔찍한 감각(심장이 빠르게 뛰고 손에 땀이 나고 시야가 좁아지는)은 트라우마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응이었다(살면서 수없이 계속 경험한다.

 

80대 후반이된 지금까지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Post-traumatic stress)’에 ‘장애(Disorder)라는 이름을 붙여 일종의 병으로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는 트라우마에 대한 장애 반응이 아니다. 평범하고 정상적인 반응이다. 아우슈비츠에서도, 마우트하우젠에서도, ‘죽음의 행군’에서도, 나는 내면의 세계에 의지하여 살아남았다.

 

나는 굶주림과 고문과 죽음에 둘러싸였을 때조차도 나의 내면에 존재하는 세계에서 희망과 신념을 발견했다. 첫 번째 ‘플래시백(flashback)’을 겪고 난 후 나는 나의 내면세계에 악령들이 살고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내 안 깊은 곳에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한다 고 믿게 됐다.

 

나의 내면세계는 더는 나를 지탱해주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느끼는 고통(막을 수 없는 기억들, 상실감, 공포)의 근원이 되어버렸다. 나는 과거의 기억들을 제거하려고 애썼다. 나는 과거가 생존의 문제였다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도망치는 방법으로는 고통을 치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데 됐다.

 

“이걸 읽어봤나요?” 나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빅터 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이다. 철학책 같은 느낌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차단됐거나 덫에 걸렸거나 그곳에 다시 가둬져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놀랍게도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읽는 모든 페이지마다 나는 만점을 주고 싶다.

 

1966년 가을, 나는 프랭클의 가르침 중 가장 핵심인 이 부분을 읽는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 마침내 나는 나에게도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나의 인생을 바꾸게 된다.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P482 중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에디트 에바 에거 지음, 안진희님 옮김, 위즈덤하우스출판> * 에디트 에바 에거 : 헝가리의 평범한 가정에 태어나 발레리나를 꿈꿨지만, 열 여섯 살에 가족과 함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이송됐다. 역사적 사건의 생존자라는 죄책감을 떠안고 과거로부터 숨어버리기로 결심했지만, <<죽음의 수용소>>의 저자 프랭클 박사를 만나 자신처럼 마음의 외상을 입은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길을 선택했다. 현재93세 나이의 현역 임상 심리치료사로 퇴역군인과 신체 및 정신적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있다.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미국 전역과 세계각국 강연을 하고 있다.

*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며 혹독한 <<죽음의 수용소>>를 탈출한 빅터 프랭클의 자서전 요약분을 본 블로그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농원의 꽃무릇이 활짝 폈다~!
백일홍과 제비나비
말벌이 호박꽃 화분을 열심히 먹고 있다!
흐린 날 병산지에서~, 가을 장마가 길어지고 있다~!
그래도 들판에 벼들은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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