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 가난이 내 집 입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어.
이성 : 차지한 게 아니라 지키는 거지. 옛날에 수백 년 동안 가난이 로마를 어떻게 지켰는데, 새삼스럽게 그게 새롭거나 이상할 게 뭔가. 항상 간소하고 경계를 늦추지 않는 가난의 천막 사이로는 유약한 사치나 몸을 마비시키는 졸음, 마음을 느슨하게 하거나 무기력하게 만드는 술 같은 것이 뚫고 들어갈 수 없어.
고통 : 가난이 우리 집에 갑자기 들이닥쳤어.
이성 : 가난은 도둑과 그보다 더 나쁜 관능에 눈 감지 않고 경계하며, 샘 많은 대중의 험담과 말도 안 되는 판단과 파렴치한 인색과 흔히 부잣집 문 앞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낭비에 물들지 않게 지켜주지.
이 모든 악덕에서 자네 집을 가장 잘 지켜주는 것이 바로 가난이야. 부자가 아무리 잘 베푼다 해도 대중은 그가 자기 것을 챙기면 당장 인색하다는 꼬리표를 붙이는 반면, 가난한 사람은 설령 욕심이 많아도 잘 베푼다고 보거든.
이웃 사람들은 자네가 부자라면 시샘하겠지만 가난하면 불쌍하다고 할 거야. 그들은 부를 겉으론 비판하면서도 내심 부러워하고, 가난을 속으론 싫어하지만 겉으론 칭찬을 퍼붓기 때문이지.
고통 : 난 참 빨리도 늙었어
이성 : 인생은 짧을 수도 있고, 때론 너무 짧을 수도 있지. 너무 길수는 절대 없고 말이야. 인생은 떨떠름하고 불확실한 채로 항상 계속된다네. 마지막 단계는 노년이고, 어떤 것에 대해 다른 것보다 더 불평을 하겠는가? 자넨 늙었어.
이제 인생의 짐을 다 진건가? 자넨 고통의 끝에 이른 거라고. 이제 푹 쉬게. 길을 걸어오느라 기진맥진한 나그네가 미쳤다고 이 길을 처음부터 다시 걷겠나? 지친 사람에게 숙소보다 더 좋은 건 없지.
<‘행운과 불운에 대처하는 법’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지음, 임희근님 옮김, 유유출판> *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 1304~1474, 르네상스 최초의 인문주의자. 이탈리아 시인으로‘현대 사상가의 아버지’, ‘휴머니스트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지만 고전학문의 부흥을 꾀했다. 1340년 로마와 파리에서 계관시인으로 추대 받았고, 로마 철학자 키케로의 서한문을 발견한 뒤유럽에 ’편지열풍‘을 일으켰다. 대표작 <칸초니에레>로, 릴케, 밀턴, 셰익스피어 등이 모두 그의 영향을 받았다.
1769년 카사노바는 런던에서 샤필롱이라는 젊은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그보다 훨씬 어렸을 뿐만 아니라, 그 때까지 알고 있던 여성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게다가 그녀는 남자들의 신세를 망친 요부로서도 악명이 드높았다.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그녀는 그를 유혹해 파멸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도 카사노바는 열심히 그녀의 꽁무니를 쫓아다녔다. 만날 때마다 그녀는 그가 잘해주면 자기도 다시 생각해보겠다는 의사를 은연중에 내비쳤다.
그녀는 지금까지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만약 자기를 길들이는 남자가 있다면 그 최초의 남자는 그가 될 것이라며 그의 호기심에 불을 댕겼다. 카사노바는 나중에 이렇게 회고했다.
“욕망이라는 독이 나의 전 존재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었다. 그녀가 장담했던 대로 그녀는 나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나는 한 번의 키스를 위해 스스로 거지가 되었다.”
결과는 카사노바의 참패였다. 한마디로 그녀는 카사노바를 가지고 놀았다. 샤필롱은 카사노바의 약점을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카사노바는 다른 남자들이 맛보지 못한 쾌락을 반드시 맛보고야 말겠다는 욕망이 누구보다 강했다. 그녀는 바로 이 점을 노렸다.
그러한 정복욕의 이면에는 상대 여성이 주는 고통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일종의 마조히즘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손에 넣을 수 없는 여자라는 인상을 심어준 다음 그를 유혹해 결국은 절망에 빠뜨림으로써, 궁극적인 유혹을 제공했다.
샤필롱이 그랬듯이 손에 넣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손에 넣기만 하면 굉장한 쾌락을 맛볼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일단 장애를 극복할 수만 있다면 아무도 가져보지 못한 것을 갖게 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상대는 고통을 맛볼 수도 있지만, 고통은 쾌락의 친구다. 그런 점에서 고통은 그 자체로 유혹의 힘을 발휘한다. 구약성서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다윗은 침대에 일어나 궁전 옥상을 거닐었다… 옥상에는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보게되었다. 그 여인은 매우 아름다웠다. ” 그 여인은 밧세바였다.
다윗은 그녀를 불러 유혹한 뒤, 전쟁터에 나간 그녀의 남편 유리아를 제거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다윗을 유혹한 것은 실은 밧세바였다. 그녀는 다윗이 옥상으로 나오리라는 것을 알고 한 시간 전부터 자기 집 지붕 위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여자에게 약한 다윗의 약점을 잘 알고 있던 그녀는 일단 미끼를 던진 다음, 남자가 먼저 손을 내밀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기회의 전략이다. 마치 우연인 것처럼 상대의 주변을 맴돌면서 그들 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게 하라. 유혹에서는 특히 타이밍이 중요하다.
적시에 상대에 나타나 그들 스스로 정복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면, 상대는 아무 생각도 못하고 끌려오게 되어 있다. 만족이나 안정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미끼가 통하지 않는다. 상대가 욕망을 채우는 순간, 유혹은 끝난다.
미끼가 없다면 유혹은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 따라서 상대의 약점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거기에 맞는 미끼를 던질 수 있도록 사전에 철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유혹의 기술‘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로버트 그린 지음, 강미경님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출판>
* 로버트 그린 : 캘리포니아대학과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고전학을 전공했다. <권력의 법칙>,<전쟁의 기술>,<유혹의 기술> 저서로 전 세계 수백만 독자들에게 인생교과서로 자리매김했다.
삶의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우리가 그리고 있는 미로를 인식하게 하는 무언가 말입니다. 인생이 짧다고 생각하는 건 인생을 곧은 선으로 인식하기 때문이지요. 인생은 곧은 선로가 아닙니다.
우리가 한걸음씩 만들어나가는 미로 같은 여정입니다. 그래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여정의 의미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풍요롭고 행복한 삶이 반드시 아주 긴 삶이어야 하는 건 아니며, 아주 긴 삶이 반드시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행복한 삶은 그 삶을 산 사람에게 의미가 있었던 삶이기에, 세상의 인정이나 많은 수입 또는 대단한 경험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충만함은 객관적인 기준이 아니라 고유한 정체성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세네카에 따르면, 행복한 삶은 표면이 아니라 깊은 곳에서 산 삶이며, 특히 오늘날에 이 말은 외부적 조건을 넘어 자신의 존재 의미를 구축하는 것을 뜻합니다.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인생의 짧음에 대한 불안을 버리고, 당신이 무엇에 관심을 쏟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고 세네카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관심은 관대함의 가장 희귀하고 순수한 형태”라고 시몬 베유는 썼습니다. 당신은 하루 중 무엇에 관심을 쏟나요?
휴식을 취하고 자기 계발을 하는 데 얼마나 시간을 쓰고 있나요?
지혜를 위한 시간은 얼마나 할애하나요?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일기장에 써보세요. 사실 세네카가 당신에게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지만요. “살면서 어쩌다 남는 시간만 스스로의 몫으로 삼고, 다른 일에 쓰지 못하는 자투리 시간만 지혜에 할당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 아닙니까?”
관조 속에 머무르기
오늘날 진정한 사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인생이 세네카가 살던 시대보다 오늘날 훨씬 더 심하게 휴식 없는 경주가 된 까닭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최적화하고, 채우고, 자본화하도록 떠밀린 나머지 텅 빈 시간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초생산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고 그렇지 못하면 어딘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거대한 집단적 착각입니다. 이 착각 때문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죠. 자신이 생산적이지 않고 남들만큼 열심히 살지 않아 문제라고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죄책감을 느낍니다.
인기인, 중요 인사, 성공한 사람 중에는 이 시대정신에 적합한 특성(소통을 잘하고, 생각의 속도가 빠르며, 실용적이고 생산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가졌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거대한 새장에 갇힌 신세가 된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삶의 의미는 돈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팔로워 숫자에 달려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직 자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묵묵하게 길을 걷는 여정 자체에 있는 것입니다.
고대 로마에서 점술가들은 미래를 알고 싶을 때 구부러진 막대기를 새들이 비행할 공간을 허공에 그렸습니다. 하늘에 그려 놓은 열린 공간을 통해 그들이 보는 것은 미래가 현재로, 무한이 유한으로, 의미가 무의미로 침입하는 것을 뜻했습니다.
열린공간(templum)의미는 라틴어(contemplari)에서 파생된 단어가 고요한 마음으로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보는 관조(contemplation)였습니다. 고요 속에서 묵상하고 일상 안에서 짧더라도 여백의 시간을 들여놓는 것은 활동적인 삶에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고 자신을 돌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 로마 문화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돌보기 위해서는 활동적인 삶 삶과 관조적인 삶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두 가지는 서로 별개로, 명료하게 구별되는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오늘 날 이런 자유시간이 우리 삶에 거의 없다는 사실은 인간의 삶을 보는 방식이 낳은 결과입니다. 중요한 성과를 내고, 일하고, 점점 더 많은 부를 축적하는 것이며, 이제 관조는 게으름의 징후이자 쓸모없는 것으로 생각하지요.
고대 철학자들의 자유 시간 개념은 지금의 관점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고 멀게만 느껴지는 존재 모형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사실 관조적 삶은 비활동적인 게 아니라 묵상, 경청, 명상,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전념하는 데 시간을 쏟는 것이며, 그럴수록 우리는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소명을 깨달으며 가야 할 방향을 터득하게 됩니다.
고요 속에서 묵상하고 일상 안에 짧더라도 여백의 시간을 들여놓는 것은 활동적인 삶에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고 자신을 돌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느 하나에 우선순위를 두는 게 아니라 균형을 찾는 문제입니다. 관조적 삶을 활동적 삶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활동적 삶을 관조적 삶에 맞춰야 합니다.
지루함이 주는 선물
20세기 가장 중요한 비평가로 손꼽히는 벤야민은 “지루함이야말로 경험이라는 알을 부화시키는 마법의 새“라고 말했습니다. 분석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1930년, ‘지루함을 견딜 줄 모르는 세대는 필연적으로 모든 삶의 추진력이 사라진 비참한 이들의 세대가 될 것’이라고 말하며 오늘날과 같은 시대가 올 것을 이미 예상했습니다.
사람들은 지루하거나 빈둥거릴 틈이 없이 디지털 기기에 언제든 접속할 수 있고 누군가와 소통하거나 콘텐츠를 소비하느라 항상 분주합니다. 이는 우리가 고요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도록 합니다. 심리학자 필립스는 이런 고요한 시간을 ‘유예된 기대’라고 정의했습니다.
이런 빈둥거림이 시간 낭비가 될까 봐 두려워 멍하게 앉아 자신에 대해서 또 타인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할 틈을 없애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순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유일한 것이 시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으며, 시간을 잘 쓰려면 그것을 최적화해야 한다고 확신하면서도 실제로는 시간을 아무렇게나 낭비합니다.
여가 시간은 결코 낭비되는 시간이 아니며, 기다리는 시간은 버리는 시간이 아닙니다. 공백은 활동적 삶에서 있을 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들, 즉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정서,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감정 상태 등을 드러내주는 유일한 도구입니다.
빈둥거리는 시간은 우리가 실제로 어떤 상태인지를 이해하는 성찰과 연결되며,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지루함을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시간의 경제학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기 절제 및 조화로운 관리를 주제로 삼아야 하며, 시간과 삶을 조화롭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게으름이 중추에 있어야 합니다.
특히 창의적인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게으름은 창의성에 반드시 필요하며, 우리는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 아이디어가 생깁니다. 무언가를 억지로 하려고 들지 말고 몸과 마음, 영혼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세요. 그래야만 활동적인 삶과 관조적인 삶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으며, 그렇게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곧 하나의 미덕입니다.
<‘모든 삶은 빛난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안드레아 콜라메디치, 마우라 간치타노 지음, 최보민님 옮김, 시프출판>
* 안드레아 콜라메디치, 마우라 간치타노 : 이탈리아 철학자, 고대 철학자 아카데미를 만들어 일반인들이 더 친근하게 철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당신은 신이 아니다>, <착한 소녀에서 벗어 나세요>, <성과 사회>, <새로운 신들의 새벽> 등 철학 에세이가 있으며, 2021년에 펴낸 <모든 삶은 빛난다>는 출간 즉시 아마존 이탈리아 인문 부문 베스트 셀러1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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