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타인은 없다. 대상만 있을 뿐

[중산] 2011. 8. 17. 12:47

 

타인은 없다. 대상만 있을 뿐

 

환상 그리고 대상

프로이트에겐 대상Object은 욕망 충족의 수단이다. 욕망이 세상에 존재하는 외적 대상External Object을 발견한다. 욕망이 없으면 대상도 필요 없다. 마음속에 만들어지는 내적 대상Internal Object도 마찬가지다. 욕망의 대상으로만 마음에 각인된다. 환상도 마찬가지다. 바라는 것, 두려운 것, 모두 욕망의 결과다. 욕망이 없으면 바랄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 욕망이 없으면, 세상도 필요 없고 마음도 필요 없다. 모든 것은 욕망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프로이트가 생각하는 인간의 마음이고, 세상이다.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은 프로이트와 매우 다른 생각을 전개한다. 그녀에 의하면 사람의 마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욕망이 아니라 공포다.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마음속에 무시무시한 내용의 환상이 들어 있다고 클라인은 생각한다. 그 환상에는 내적 대상이 이미 들어 있다. 프로이트의 내적 대상은 외적 대상에 욕망이 투사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인 반면, 클라인의 내적 대상은 이미 환상의 한 요소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걸로 끝은 아니다. 세상에 대한 경험이 환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따뜻한 세상을 경험하면 공포로 가득했던 환상이 덜 무서운 쪽으로 변한다. 내적 대상 또한 그에 맞게 변한다. 환상과 세상은 그렇게 끝없이 상호작용하며 서로의 모습을 만들어간다.

 

바랄 건 못 바라고, 못 바랄 건 바란다 - 환상과 대상, 윌 헌팅이 사는 법

중간은 없다. 흑백의 세상: 〈굿 윌 헌팅〉(1997)에서는 비뚤어진 심보 때문에 세상에 몇 있을까 말까 한 머리를 썩이는 아이. 마음만 살짝 바꿔 먹으면 누릴 수 있는 보장된 인생을 제 발로 걷어차고 밑바닥 인생을 고집하는 아이. 그런 아이가 있다. 그의 이름이 윌이다. 윌의 세상은 흑백이다. 색맹이라는 게 아니라 흑 아니면 백, 딱 두 가지로 세상을 본다는 뜻이다. 수학 교수 랭보와 여자친구 스카일라에게처럼, 어떻게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잔인할 수 있는 걸까? 어떻게 그런 사랑과 적개심이 한 마음에 공존할 수 있는 걸까?

 

 

마음을 움직이는 힘: 프로이트는 마음을 움직이는 근본적 동기가 생물적 본능Instinct이라 생각했다. 본능에 대한 그의 생각은 여러 번 바뀌는데, 그는 사람에게는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삶의 본능은 합쳐지고(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것), 커지고(수정란의 세포분열), 분화되려는(신체 각 기관의 발생) 경향을 띠고, 죽음의 본능은 해체되고, 작아지고, 미분화의 상태로 돌아가는 경향을 보인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본능은 마음에 욕동Drive이라는 것을 만드는 데 욕동은 말 그대로 마음을 움직여 뭔가를 하게 하는 힘 또는 에너지라고 보는 것이다. 욕동이 마음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동기이기 때문에 프로이트의 이론을 욕동 이론이라 부르기도 한다. 삶의 본능이 만드는 욕동은 리비도, 죽음의 본능이 만드는 욕동은 공격 욕동Aggressive Drive이라 불린다.

 

 

클라인의 환상: 생각, 감정, 느낌, 상상,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다양하다. 그중 하나가 환상Phantasy이다. 클라인에 의하면 태어날 때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미 구체적인 내용의 환상이 들어 있다. DNA에 새겨진 유전 정보처럼, 그런 상태에서 아기가 뭔가를 경험할 때마다 그에 연관되는 환상이 자동적으로 마음에 떠오른다. 좋은 경험에는 좋은 환상이, 나쁜 경험에는 나쁜 환상이. 클라인의 환상에는 또는 자기Self와 대상Object, 그리고 이 둘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대상이라는 개념은 클라인의 이론에서 매우 중요하다. 타고나는 환상에 포함된 대상의 대부분은 부모의 신체 부위다. 이것을 부분 대상Part Object이라 부른다.

 

 

클라인의 환상에서 나쁜 대상은 강하고 좋은 대상은 약하다. 좋은 대상은 나쁜 대상에 의해 쉽게 파괴되고, 심지어는 나쁜 대상으로 변해버리기까지 한다. 상상 속에서 아이는 나름 최선을 다해 나쁜 대상을 공격해보지만 나쁜 대상은 파괴되지 않는다. 환상의 발생에 대한 견해는 다르지만 그 중요성은 어느 학파도 부인하지 않는다. 언제 어떻게 생기든, 사람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수많은 환상은 신경회로의 연결, 정신결정론을 의미한다. 환상은 현실을 왜곡하고 채색한다. 그렇게 해서 정신적 현실이 만들어진다.

 

 

바랄 수 있는 것, 바랄 수 없는 것: 나쁜 대상에 대해 윌이 갖는 감정은 두 가지다. 증오와 두려움. 증오는 그의 겉모습을 만들어낸다. 사납고 무례한 윌.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에게는 두려움이 만들어내는 숨겨진 모습이 있다. 소심하고 주눅 든 윌. 소심한 윌은 겁에 질려 있다. 세상 누구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슬프다. 사나운 윌은 인간은 모두 쓰레기라 믿는다. 닥치는 대로 공격하고 조롱한다. 누군가 내민 손도 잡지 않는다. 그걸 잡으면 정체를 드러내고 널 비웃을 거라고, 그런 손 따위 할퀴어버리라고 소심한 윌에게 말한다.

 

 

누구나 사나운 나와 소심한 나를 품고 산다. 소심한 나의 간절한, 하지만 얇은 유리판처럼 깨지기 쉬운 소망을 깊이 감추고 우린 사납게 살아간다.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사랑을 바랐다간, 그걸 표현했다간 웃음거리가 될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바랄 수 있는 걸 바라지 못한다. 완벽해야 하는 건, 세상이 흑백이기 때문이다. 흑백의 세상에선 가장 소중한 사람 같은 건 무의미하다. 전부 아니면 전무다. 전부가 아니면 가짜다. 그 전부를, 완벽을 남에게 바란다. 그렇게 타인을 질식시켜서 떠나게 한다. 그러고는 말한다. 그것 보라고. 너도 가짜였다고. 세상에는 진짜는 없다고. 세상은 쓰레기라고. 너도, 쓰레기라고.<“당신은 마음에게 속고 있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최병건박사 지음, 푸른숲>

                                                   

                                                   비짜루 : 열매는 장과로 둥글고 붉게 익으며 어린순을 나물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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