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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백수가 됐습니다!

조금 전 백수가 됐습니다. 낯설도록 텅 빈 책상을 천천히 둘러 본 뒤 몸을 일으킵니다. 그동안 수고 많았구나. 낡은 몸을 기대게 해주던 의자에 인사합니다. 미리 조금씩 정리해둔 덕분에 따로 들고 나갈 건 없습니다. 스스로와 약속한 대로 바람인 듯 나서면 그만입니다. 화장실이라도 가듯 천천히 걸어가 편집국 문을 나섭니다. 후배 몇 명이 전송하고 싶어 하는 눈치지만, 미리 부탁한 대로 해달라고 눈짓으로 눌러 앉힙니다. 끝내 바람 닮은 뒷모습이기를 소망합니다. 문을 나서는 순간, 진공의 공간에 든 듯 모든 소리가 멈춥니다. 로비에 문이 또 하나 있습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문이지만, 이 순간 제게 다가오는 의미는 남다릅니다. 이제 저 문을 나서면 다시는 사원이란 이름으로는 돌아올 수 없습니다. ..

독서 자료 2022.03.19

애착이 클수록 미움도 크다!

미움 내 그를 미워하기로 제대로 고집 센 그가 손톱만치나 고치랴 타고난 제버릇을! 내 그를 미워함이 힘없고 보람 없기 새로운 ‘체’막음 같고 꿈속 팔짓 같구나 사랑이 빛 없음 같이 미움 따라 갚을 진대 내 숨결 끊이기까지 내 그를 미워하리라 변영로의 이라는 시에서 미움의 독특한 기능에 관해 노래하고 있다. 상대방을 미워하는 것은 ‘고집 센’ 그의 못된 버릇을 고치기 위함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의 미움은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꿈속 팔짓’처럼 ‘힘없고 보람 없기’만 하다. ‘사랑이 빛 없음 같이’라는 탄식에서 나의 미움은 또 다른 사랑의 표현, 상한 마음의 표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내 숨결 끊이기까지 내 그를 미워하리라’는 말은 그가 변화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역설적인 표현인 셈..

독서 자료 2022.03.16

봄!

봄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 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을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꽃이 하고픈 말 -하인리히 하이네 새벽녘 숲에서 꺽은 제비꽃 이른 아침 그대에게 보내드리리 황혼 무렵 꺾은 장마꽃도 저녁에 그대에게 갖다드리리 그대는 아는가 낮에는 진실하고 밤에는 사랑해달라는 그 예쁜 꽃들이 하고픈 말을 나무 -이..

독서 자료 2022.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