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올바른 가치를 추구하는 기술

[중산] 2012. 11. 16. 12:40

 

플라톤이 권하는 올바른 가치를 추구하는 기술

5년 동안 알렉산더는 플라톤 연구를 정신적 수행의 초석으로 삼았다. “서양의 정신세계는 대부분 플라톤에 기초를 두죠.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신비주의적 전통은 플라톤에게 깊이 빚지고 있어요. 나에게 플라톤주의는 사물을 보는 한 가지 방식이에요. 진실을 보고자하는 열망, 진실을 하나의 사실로서 만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좋고 아름답고 질서 있는 것으로 보고자 하는 열망이에요.

 

플라톤은 우리가 우주에서 보는 모든 선과 아름다움과 질서는 ‘영원한 선(善)이 형태를 갖고 드러나는 거라고 믿었어요. 개인은 영원한 선에 대해 투명해질수록 더 진짜가 돼요.

그래서 나는 늘 영원한 선에 참여한 선에 참여한다고 상상하려고 노력해요. 무슨 일을 하든지 경외감을 갖고 하려고 해요.“ 그는 지금 댈러스의 한 병원에서 수술실 간호사로 일한다.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만은 아니에요.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하죠.

 

그는 자신이 현대 미국 사회에 조금 맞지 않다는 걸 인정한다. “플라톤 사상의 근본적인 생각은 부분이 전체와, 그리고 절대적인 것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에요. 미국에서는 다들 독특해지려고 애를 쓰고, 집단적인 것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걸 두려워해요. 플라톤의 이상적인 도시에서는 모든 건물, 모든 예술, 모든 시민들이 전체와의 관계를 통해 한데 더해지고 조화를 이뤄요. 그와 반대로 미국의 도시는 서로 다른 스타일들이 엉망으로 모여 있어요. 공통된 아름다움이란 게 결여되어 있죠.”

 

“플라톤은 민주주의에서 모든 욕망과 기쁨에는 동일한 목소리가 주어진다고 했어요. 욕망의 무정부 상태죠. 어떤 선이 더 고귀하고 어떤 선이 더 낮은가 하는 계층 개념은 없어요. 하지만 플라톤은 가장 저급한 식욕보다는 가장 고결한 열망을 중심에 두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플라톤에 따르면 인간의 가장 고결한 열망은 신에 대한 갈망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그 열망을 중심으로 세워진 공동체는 신권정체일 거라고 알렉산더는 말한다. “플라톤이 말한 <국가>를 따른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모든 영혼이 신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신이 늘 함께하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에서요.”

 

 

“플라톤주의는 사실상 꽤 엘리트주의적인 철학이다. 전체를 보기위해 시간을 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이전 생각들을 버린 사람들에게만 진리가 열리기 때문에 나온 개념이에요.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모두 고려한다는 것이 지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불가능하니까요.”

 

플라톤주의의 정신적 측면,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초월하여 전체를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플라톤이 사치생활을 다 포기하라고 할까봐 걱정해요. 그건 어느 정도까지는 사실이지만, 수도사와 같은 수준의 금욕을 요구하는 건 아니에요.

 

원시 인간사회에서는 종교와 정치가 나란히 공존했다. 부족사회에서 족장은 지상의 일을 책임졌고, 샤먼 또는 주술사는 정신적 문제를 책임졌다. 샤먼은 좀 이상하고 딴 세상 존재 같은 사람들이었다.(소수 문화권에서는 여전히 그렇다). 영적세계로 가려면 샤먼은 최면상태외 비슷한 무아지경에 빠져든 다음 가상의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시베리아의 샤머니즘과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사다리가 그중 하나다) 샤먼에게는 명확히 정의된 사회적 기능과 정치적 기능이 있다. 그들은 미래를 예견하고, 병을 치료하며, 전쟁, 사냥, 농사에 축복을 내리고, 악령과 신의 분노로부터 부족을 보호하며, 부족 구성원들이 세상을 떠나면 사후세계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부족들에게 샤먼은 사제이기도 하고 의사이기도 하다.

 

 

몇 천 년이 넘게 지속되었던 종교와 정치 사이의 이런 관계는 2500년(BC400~500)전 철학의 탄생과 함께 종말을 맞았다. 기원전 6세기부터 5세기 사이에 활약했던 그리스의 합리적인 철학자들은 자연계에 대한 샤먼들의 설명에 도전하기 시작했고, 월식이나 천둥, 간질같은 현상들에 대해 훨씬 설득력 있고 합리적인 설명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들은 인간에게 법과 관습을 가져다준 영적 왕국이 있다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왜 모든 문화가 선에 대해 각기 다른 개념을 지닐까? 아마도 몇몇 대담한 철학자들은 법은 신이 준 게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것일지 모른다고 말했을 것이다.

 

또한 이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은 없고, 특정한 경우에 사람들에게 옳게 보이는 것과 그르게 보이는 것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의 철학자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BC485?-BC414?)가 기원전 5세기 말에 말했던 것처럼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말했을지 모른다. 이것은 사제의 권위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었다. 신의 의지를 찾아내려고 애쓰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며, 재물을 바치고 사제나 미신적 숭배 대상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더욱 의미 없는 일이라는 의미였다.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쓸모 있는 공부를 하고 싶다면, 홍보를 공부하고, 사람들의 기분과 변덕을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미사여구와 웅변술로 사람들을 조종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기원전 5세기 말경에 아테네는 철학자들과 소피스트(지혜의 행상인)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젊은이들에게 삶의 기술을 가르쳐줄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들이 말하는 삶의 기술이란 수사법과 홍보의 기술이었다.

 

그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홍보라는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은 진정으로 막강한 권력을 가질 수 있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신에게 더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는 것에 비해 훨씬 의미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어차피 신을 믿는 건 사람이 아니던가? 그렇게 주술사의 자리는 점차로 언론 담당자가 대신해 갔다.

 

소크라테스의 어린 제자였던 플라톤은 이런 세속적이고 진보적인 혁명을 공포에 휩싸인 채 바라보았다. 젊은 시절 플라톤은 피타고라스의 신비주의 철학과 만나 깊은 인상을 받았다.

피타고라스와 마찬가지로 플라톤도 기하학, 논리, 음악을 공부하면 변화하는 물질적 현실 뒤에 숨은 영원한 진리를 밝혀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이 충분히 계몽되고 충분한 훈련과 교육을 받으면 그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에게 변증법을 배웠고, 대화를 통해서 자유, 미, 정의 같은 도덕적 용어들의 더 타당하고 포괄적인 정의를 찾는 법을 익혔다. 그는 2 더하기 2는 항상 4가 되는 수학적 진실의 순수한 영역이 존재하 듯, 변증법으로 자유, 미, 정의 같은 도덕적 가치들의 순수한 영역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 소피스트들은 ‘진실’ ‘미’ ‘정의’란 대중의 의견보다도 실질적이지 못한 것에 의존하는 단어나 관습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그런 도덕적 절대가치의 존재를 부정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선을 찾으려는 노력은 사람들의 호의를 얻어려는 인기경쟁으로 타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플라톤은 좋은 음식이란 ‘사람들이 표를 던져 선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분명 어떤 음악은 다른 음악들보다 진짜로 더 좋고, 어떤 미술작품은 다른 미술작품보다 더 뛰어나며, 어떤 삶은 다른 삶보다 더 훌륭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철학자가 하는 일은 소피스트와 언론담당자가 하려는 것처럼 여론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철학을 말하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발췌, 줄스 에반스 지음, 서영조 옮김, 더 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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