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유일성: 특징과 속성
우리가 인간이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 자체로 충분한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인류와 같은 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는 다른 종들이 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놀랄 만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또한 육지와 바다, 또 하늘에서 다른 종들의 자연활동을 모방하기도 하고, 또 기술을 통해 그것들을 뛰어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외부의 심판자의 눈에서 볼 때, 인류가 정당화되는 것은 인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 심판자의 생각에서 인류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활동은 이기적이 될 수 없고(이기적이지만은 않고), 관대함, 경이로움, 감사하는 마음 등의 수준 높은 지적·심미적 미덕을 가지고 진실한 것에 헌신하는 것이다. 인류가 포괄적인 의미의 자연(지구와 우주)을 위해 불가능한 일도 행할 수 있다면, 인류가 존재하지 않으면 자연이 더욱 피폐해질 것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우리는 인류에게 최고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인간 존엄성의 위상의 요소로부터 자기숭배의 오점을 제거하여 인간 존엄성이라는 관념을 더욱 드높일 것이다.
인류만이 세 가지의 필수불가결한 기능을 수행한다. 즉, 자연의 기록을 남기고, 자연을 이해하며, 자연에 대해 고마워할 줄 안다. 지구상의 종들 가운데 인류만이 지구 혹은, 그것을 넘어서 자연에 대해,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것들을 위해 이 같은 봉사를 한다. 이는 인류가 자연의 청지기라는 의미이다. 문제는 과연 우주에서 인류만이 생각을 할 수 있는 존재이며, 자연에 대한 의무를 고귀한 것으로 받아들이는가이다. 다음은 에드워드 윌슨이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문구다. “생명의 가장 경이로운 신비는 미미한 물리적 물질로부터 다양성이 창출되는 방법이다.”
나는 청지기라는 개념을 하이데거로부터 빌려온 것이지만, 문구 자체는 아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존재의 목자’라고 했다. 즉, 보호자로서 존재를 보살피는 자라는 것이다(『휴머니즘 서간』). 나는 “청지기(stewardship)”라는 용어를 선호하는데, 이는 “목자(shepherd)”라는 용어가 도살을 목적으로 양떼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즉, 보호를 위해 지켜보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자연에 대한 청지기의 역할에 비추어 너무 수동적인 표현이다.
나는 자연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의 축적과 그것을 기록하는 것이 청지기의 역할이라고 보며, 객관적인 지식이 자연의 보존이나 그것에 대한 경외감을 방해한다고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하이데거와는 다르다. 내가 존재가 아닌 자연을 염두에 둔다는 전제에서 내가 그와 다르다는 표현이, 하이데거의 가르침을 저버리고 심지어는 비난하거나 혹은 그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만약 그가 의미하는 존재(Being)가 존재에 대한 어떤 하나의 조망이 아니라, 존재와 관계없는 것이라면, 나는 그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될 것이다. 특정한 현상들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심사숙고하는 수많은 그의 글귀에도 불구하고, 청지기라는 생각은 부적절한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비인간적인 인간성을 보여주는 잔인한 인간의 역사(비인간적인 것이 인간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밝혀진 것이든 아니든 수많은 종류의 고통과 고난, 다양한 체제에 의해서 가해진 인간 가치의 하락 등을 감안한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인간 삶의 정당화는 인간이 스스로의 이익을 떠나 그 자체가 아닌 다른 것에 대해 찬사를 받을 만한 행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 기준은 인간이 그들 상호 간에 행한 잔혹한 행위와는 다르게, 인간이 아닌 것에 대해 공평하고 겸허하게 배려할 수 있을 만큼 사심이 없을 때 충족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준은 하나의 비약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 비약에 앞서 거쳐야 할 많은 단계들이 있다. 한편 자연에 대한 봉사와는 별도로 인류는 비도덕적 정당성, 즉 위대한 업적에 의한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데, 그 정당성은 인간중심적이고, 인간의 독특성과 탁월함에 근거한다. 인류의 위대한 업적들은 인류와 자연을 구분하는 중요한 근거이며, 따라서 인류의 특별한 유일성과 그에 따른 인간의 존엄성을 실증하는 데 도움을 준다.
나는 이제 자연의 청지기라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인간성의 자연주의적인 단순화를 반박하기 위해 탐색되고 옹호될 수 있는 인류의 위상이라는 실존적인 개념을 다루고자 한다. 정리하면 선택적인 철학적 인류학의 목적은 인간 존엄성이라는 관념의 기초를 제공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자연의 청지기로서 봉사하는 독특한 인간의 능력을 강조한다. 그리고 인간 존엄성이라는 관념은 두 가지 요소들을 가지는데, 여기서 두 가지 요소들은 각 개인의 평등한 지위와 인류의 위상이다. 그리고 인권의 옹호는 개인의 평등한 지위에 대한 실존적 생각과 정의에 대한 공공 도덕성의 개념에 달려 있다. 그런데 실존적인 요소와 도덕적 주장은 충분하지 않지만 필요한 것이며, 도덕적인 주장이 고통의 감소라는 명목으로 실존적 측면 혹은 지위에 대한 고려를 배제하고자 하여 도덕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시킬 때를 제외하고, 두 가지가 함께 공존해야 필요하고 충분하게 된다. 그리고 지위는 인간 존엄성이라는 개념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위와 또 다른 부분인 인류의 위상 사이에 갈등이 있을 수 있다.
인류의 위상과 위대한 업적: 세상에서 유일한 인간 정신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권이 인정되기 전 시기를 포함하는 인류의 역사를 평가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마음과 정신에 달려 있는 인간의 잠재력에 대해 더 생생하게 알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루소가 말했듯이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특별한 능력은 인류를 완성시키고, 인류가 스스로의 잠재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든다. 정신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논의에 매우 적절한 인간의 특별한 속성과 특질을 요약해 주는 단어이다. 개인의 지위와 인류의 위상 사이의 연결고리는 두 가지가 다 같은 속성과 특질을 토대로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어느 개인도 인간의 잠재력을 모두 보여줄 수 없다. 때문에 우리는 인간의 역사적 기록이 필요하다.
인류가 앞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과거에 인간들은 같은 생물학적 재능을 타고났으나 자연환경에 있어서의 차이, 그리고 많은 우연한 사건들 속에서 각기 다른 잠재력을 실현시켜 왔다. 만약에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오래 살았거나 더 많은 능력을 가졌다면, 더 위대한 업적들을 이루었을 것이다. 사실상 인류는 같은 생물학적인 재능을 가지고 각기 다른 자연환경 속에서, 혹은 보다 중요한 의미에서 유사한 자연환경 속에서 매우 다양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 어떤 사람도 완벽하게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조지 카텝 지음, 역자 이태영박사,말글빛냄>
▣ 저자 조지 카텝
프린스턴 대학교의 정치학 명예교수로 존 롤스, 이사야 벌린과 함께 자유주의 정치이론에 큰 공헌을 했다. 확고한 개인주의자인 카텝은 랠프 월도 에머슨, 존 스튜어트 밀, 한나 아렌트, 그리고 입헌민주정치에서 개인이 갖는 윤리적 중요성에 관한 학술적 저작들을 남겼다. 최근 카텝은 부시 행정부가 초래한 개인 자유 침해의 증가와, 종교주의적·민족주의적·국가통제주의적 집단 도덕관의 악영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카텝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연구원으로 선발되어 연구 지원을 받았다. 이후 그는 30년 동안 애머스트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1987년에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The Inner Ocean: Individualism and Democratic Culture』, 『Patriotism and Other Mistakes』, 『Emerson and Self-Reliance』, 『Hannah Arendt, Politics, Conscience, Evil』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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