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그릇된 선택을 ~!

[중산] 2016. 1. 12. 20:43

그릇된 선택을 하거나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 경향은 두 가지 요소 때문에 나타난다.

 

첫 번째 요소는 우리가 자신을 믿고 싶어 하는 것을 쉽게 믿으려 든다는 것이다. 우리는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우리 자신과 상황에 따라 알아야 할 것들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우리 자신과 상황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할 만큼 우둔하다.(45세나 50세가 된 사람이 그 전 10년 동안 자신이 한 선택에 놀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멍청하거나 무의식적으로 살아가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이다)

 

두 번째 요소는 개인적 및 문화적 역사의 깊은 영향에 의해 우리의 시각에 일어난 편향이다. 태어날 때 우리 모두는 렌즈를 하나씩 받는다. 우리의 가족과 문화와 시대정신이 만든 렌즈인데, 우리는 이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본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렌즈이기 때문에 우리는 색이 덧칠되고 뒤틀린 모습의 세상을 볼 때조차도 현실을 직접보고 있다고 짐작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교정을 받거나 아니면 훼손된 우리의 심리를 바로잡아야만 우리가 세상을 보고 이해했던 근본적인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이 확인 될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휴브리스(Hubris)라고 부르는 것은 ‘긍지(Pride)로 번역되는데 실제로 보면 자기기만의 성향, 특히 인간이 선택을 하면서 그 선택에 필요한 사실들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정도로 정의하는 것이 본래의 뜻에 가깝다.

 

젊음의 혈기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자기기만과 비극적 결함과 무의식이 서로 결합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지금 나는 잘 알고 있다.

 

보잘 것 없는 지식의 전형적인 원형은 소포클레스가 비극적으로 그린 오이디푸스 왕이다.

지능을 물려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는 불길한 예언들을 현실로 실현시키는 쪽으로 삶을 살아간다. 말하자면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에 이성을 무시하는 역사의 무의식 성향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겸손한 지혜는 우리의 가정(仮定)들의 거만함에 비춰볼 때 마치 패배처럼 느껴진다. 겸손한 지혜는 우리를 치유하고 고귀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왜냐하면 그 같은 지혜가 우리로 하여금 신과 올바른 관계를 다시 맺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심리학적 개념으로 말하면 “신들과의 올바른 관계”는 우리가 각자의 영혼을 통해서 우리의 의식적 삶이 우주와 우주의 행로를 지배하는 깊은 힘들과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한다는 것을 의미 한다. 그처럼 조화를 이루는 순간들은 행복으로, 자기와 세상의 관계가 더욱 생생해지는 느낌으로, 인생의 여행의 도중에 잠시 ‘집’에 들른 기분으로 느껴 질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이 종종 “신들을 화나게 만든다”고 믿었다. 신들은 자연의 힘을 상징하니, 말하자면 인간이 자연의 힘을 깨뜨리거나 무시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상처를 입을 경우에는 누군가의 친밀한 관계가 상처를 입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아니면 전생의 신 아레스에게 사로잡힌 사람은 이유 없는 분노에 휩싸여 무분별하게 행동하며 터무니없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따라서 고대그리스인들은 사람이 자신의 삶의 결을 ‘읽음’으로써 자신에게 무시되고 있거나 억압되고 있는 원형적인 힘을 찾아 낼 수 있고, 또 감정을 다친 신들이 누구인지를 찾아내서 균형을 되찾아 주기위해 그 신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보상적인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믿었다.(현대의 심리치료도 영혼에게 교정과 보상, 치료 혹은 옳은 관계를 제시하기위해 환자의 삶의 결을 읽고, 상처가 난 위치를 찾아내고, 자아의식이 순응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윤곽을 그려내려고 노력한다.)

 

비극적인 인생관은 병적이지 않고 오히려 영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같은 인생관이 우리들에게 경이로운 자연의 힘과 우리의 분열된 영혼 앞에서 의식을 갖고 살고, 변화를 추구하고, 겸손 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요구를 무시하는 사람은 신들의 분노로, 신경증이라 불리는 영혼의 분열로 인해 힘들어 하게 될 것이다.

 

비극적인 인생관은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의식을 갖고 살라는 초대장이다. 비극적인 인생관의 초대장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우리는 보다 큰 구도 안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의 자리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겸손한 자세로 걷고 신들을 두려워하라는 옛말의 가르침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모두에게 의미를 지니고 있다. <칼융의 심리학, 삶의 굴레를 벗기다.“나를 마주 할 용기“에서 극히 일부 발췌, 제임스홀리스 지음, 정명진님 옮김. 부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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