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내를 소중히 생각한 까닭은 이 33번지 18가구 가운데서 내 아내가 내 아내의 명함처럼 제일 작고 제일 아름다운 것을 안 까닭이다. 아랫방은 그래도 해가 든다. 아침결에 책보만한 해가 들었다가 오후에 손수건만해지면서 나가버린다. 해가 영영 들지 않는 윗방이 즉 내 방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빈대가 무엇보다도 싫었다. 그러나 내 방에서는 겨울에도 몇 마리씩 끊기지 않고 나왔다. 내게 근심이 있다면 오직 이 빈대를 미워하는 근심일 것이다. 나는 빈대에게 물려서 가려운 자리를 피가 나도록 긁었다. 쓰라리다. 그것은 그윽한 쾌감에 틀림없었다. 나는 혼곤히 잠이 든다.
아내는 하루에 두 번 세수를 한다.
나는 하루 한 번도 세수를 하지 않는다.
나는 밤중 세 시나 네 시 해서 변소에 간다. 그러니까 나는 이 18가구의 아무와도 얼굴이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다.
아내에게 내객이 있는 날은 이불 속으로 암만 깊이 들어가도 비오는 날만큼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나는 그런 때 아내에게는 왜 늘 돈이 있나 왜 돈이 많은가를 연구했다.
나는 우선 내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가를 연구하기에 착수하였으나 좁은 시야와 부족한 지식으로는 이것을 알아내기 힘이 든다. 아내는 밥도 지었다. 아내가 밥 짓는 것을 나는 한 번도 구경한 일은 없으나 언제든지 끼니때만 내 방으로 내 조석 밥을 날라다주는 것이다. 우리 집에는 나와 내 아내 외의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내는 한 번도 나를 자기 방으로 부른 일이 없다. 나는 늘 윗방에서 나 혼자서 밥 먹고 잠을 잤다. 밥은 너무 맛이 없었다. 반찬이 너무 엉성하였다. 나는 여지없이 창백해가면서 말라 들어갔다. 나날이 눈에 보이듯이 기운이 줄어들어갔다.
아내가 쓰는 돈은 내게는 다만 실없는 사람들로밖에 보이지 않는 까닭 모를 내객들이 놓고 가는 것에 틀림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내객들이 돌아가고, 혹 밤 외출에서 돌아오고 하면 아내는 편한 것으로 옷을 바꾸어 입고 내 방으로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이불을 들치고 내 귀에는 생동생동한 몇 마디 말로 나를 위로하려 든다. 아내가 무엇이라고 지껄이고 갔는지 귀에 남아 있을 리가 없다. 다만 내 머리말에 아내가 놓고 간 은화가 전등불에 흐릿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다.
내객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아내가 내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일종의 쾌감 - 그 외의 다른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을 나는 이불 속에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감기가 들었다. 아내는 내 머리를 쓱 짚어보더니 약을 먹어야지 한다. 아내는 따뜻한 물에 하얀 정제약 네 개를 준다. 이것을 먹고 한잠 푹 자고 나면 괜찮다는 것이다. 나는 단번에 그냥 죽은 것처럼 잠이 들어버렸다.
아내는 한 달 동안 수면제 아달린을 아스피린이라고 속이고 내게 먹였다. 그것은 아내 방에서 아달린 갑이 발견된 것이다. 미루어 증거가 확실하다. 무슨 목적으로 아내는 나를 밤이나 낮이나 재웠어야 됐나? 나를 밤이나 낮이나 재워놓고 그리고 아내는 내가 자는 동안에 무슨 짓을 했나? 나를 조금씩 조금씩 죽이려던 것일까?
나는 내 눈으로는 절대로 보아서 안 될 것을 그만 딱 보아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얼떨결에 그만 냉큼 미닫이를 닫고 그리고 현기증이 나는 것을 진정시키느라고 잠깐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기둥을 짚고 섰자니까, 일 초 여유도 없이 홱 미닫이가 다시 열리더니 매무새를 풀어헤친 아내가 불쑥 내 멱살을 잡는 것이다. 나는 그만 어지러워서 그냥 나둥그러졌다.
그랬더니 아내는 넘어진 내 위에 덮치면서 내 살을 함부로 물어뜯는 것이다.
사실 나는 반항할 의사도 힘도 없어서 그냥 넙죽 엎드려 있으면서 어떻게 되나 보고 있자니까, 뒤이어 남자가 나오는 것 같더니 아내를 한 아름에 덤썩 안아가지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다소곳이 그렇게 안겨 들어가는 것이 내 눈에 여간 미운 것이 아니다. 밉다. 아내는 너 밤새가면서 도둑질하러 다니느냐, 계집질하러 다니느냐고 발악이다. 이것은 참 너무 억울하다.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도무지 입이 벌어지지를 않았다.
너는 그야말로 나를 살해하려던 것이 아니냐고 소리를 한번 꽥 질러보고도 싶었으나 그런 긴가민가한 소리를 섣불리 입 밖에 내었다가는 무슨 화를 볼는지 알 수 있나. 차라리 억울하지만 잠자코 있는 것이 우선 상책인 듯싶어 생각이 들 길래, 몰래 미닫이를 열고 그냥 줄달음 박 질을 쳐서 나와 버렸다.
나는 아무데나 주저앉아서 내 자라온 스물여섯 해를 회고하여 보았다. 몽롱한 기억 속에서는 이렇다는 아무 제목도 불 그러져 나오지 않았다.
우리들은 서로 오해하고 있느니라. 설마 아내가 아스피린 대신에 아달린의 정량을 나에게 먹여왔을까? 나는 그것을 믿을 수는 없다. 아내가 대체 그럴 까닭이 없을 것이니, 그러면 나는 날밤을 새면서 도적질을, 계집질을 하였나? 정말이지 아니다.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나는 이 발길이 아내에게로 돌아가야 옳은가 이것만은 분간하기가 좀 어려웠다. 가야 하나? 그럼 어디로 가나? 이때 뚜우 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나는 불현 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어디 한 번 이렇게 외쳐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이상 ’날개‘에서 일부 요약 발췌, 범한출판>
* 작품해설 : 이상 1910~1937. 시인이자 소설가. 서울생. <오감도>,<실락원><실화>등. 1936년 <조광>에 ‘날개‘를 발표했다. 주인공 ‘나’는 매춘을 업으로 하는 아내에게 기생해 살며, 외부세계와 단절한 채 살고 있다. 단지 외부세계와 연결해 주는 끈이 있다면 그것은 아내 뿐이다. 아내와 장지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생활을 하기 때문에 은화를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 뿐이다. 자신의 불륜현장을 ‘나’에게 들킨 아내는 되레 악다구니를 늘어놓는다. 이 소설에는 시간과 공간이 무시되고 필연성이나 외적 연결성있는 사건도 존재하지 않고 단지 ‘의식의 흐름’만 있을 뿐이다. 신심리주의로 불리는 소설로서, 현실을 초월한 내부적 잠재적인 독백이다.
간절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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