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년! 어서 뒈데라. 뒈디기 싫건 시집으로 당장 가거라. 못가간?....”
선천적으로 타고난 천치에 가까운 그녀의 성격은 시키건, 안 시키건, 힘차나, 가리는 법이 없이 하여야 될 일로, 눈에 띄기만 하면 몸을 아끼는 일이 없이 하는 그였다. 그 반면에 따르는 실수가 되레 일을 저질러 놓게 되어, 그릇 같은 것을 깨쳐먹은 일은 거의 날마다 있다 하여도 옳을 정도로 있었다.
열아홉 고개를 넘기도록 처묻어 두고 속을 태우다 못해 지참금으로 논 한 섬지기를 처넣어 똥 치듯 치워 버렸던 것이, 그만 오 년이 멀다 다시 쫓겨 와, 시집에는 아예 갈 생각도 아니 하고 하루 같이 심화를 올렸다.
나오기는 나왔으나 갈 곳이 없는 아다다는 마당 귀를 돌아서선 발길을 더 내놓지 못하고 우뚝 섰다. 시집으로 간다고는 하였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남편의 매는 어머니의 그것보다 무섭다.
해를 거듭하여 생활의 밑바닥에 깔아놓았던 한 섬지기라는 거름(지참금)이 차츰 그들을 여유한 생활로 이끌어, 몇 백 원이란 돈이 눈앞에 굴게 되니 까닭 없이 남편 되는 사람은 병어리로서의 아내가 미워졌다.
조그만 실수가 있어도 눈을 흘겼다. 그리고 매를 내렸다. 이 사실을 아는 시아버지는, 그것은 복을 차버리는 짓이라고 타이르나 듣지 않았다. 그리하여 부자지간 충돌이 때때로 일어났다.
“이년 보기 싫다! 네 집으로 가거라.”
그리고 다음에 따르는 것은 매였다. 그러나 아다다는 참아가며 아내로서의 그리고 며느리로서의 임무를 다했다. 이것이 시부모로 하여금 더욱 아다다를 귀엽게 만드는 것이어서, 아버지에게서 움직일 수 없는 며느리인 것을 깨닫게 된 아들은 가정적으로 불만을 느끼게 되어, 한해 농사를 지은 추수를 온통 팔아 가지고 집을 떠나서 마음의 위안을 찾아 돌다가 주색에 돈을 다 탕진하고 동무들과 물거품같이 밀리어 안동현으로 건너갔다.
이 투기적인 도시에서 뒹굴며 노동의 힘으로 밑천을 얻어선 ‘양화’와 ‘은떼루’에 투기하여 황금을 꿈꾸어 오던 것이 기적적으로 맞아나기 시작하여, 이태 만에 2만원 가까운 돈을 손에 쥐게 되었다.
그리하여 언제나 불만이던 완전한 아내로서의 알뜰한 사랑에 주렸던 그는, 돈에 따르는 무수한 여자 가운데서 마음대로 흡족히 골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새로운 살림을 꿈꾸는 일변 새로이 가옥을 건축함과 동시에 아다다를 학대함이 전에 비할 정도가 아니었다.
명민하고 남부끄럽지 않은 버젓한 새 며느리에게 마음이 쏠린 나머지, 이미 생활은 걱정 없이 되었으니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 없었다. 시부모의 눈에서까지 벗어나게 된 아다다는 호소할 곳조차 없는 사정에, 눈감은 남편 매를 견디다 못해 집으로 쫓겨오게 되었던 것이니, 생각만 하여도 옛 매 자리가 아픈 그 시집은,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찾아갈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친정집에 있게 되니 그것보다는 좀 헐할망정, 어머니의 매도 결코 견디기가 족한 것은 아니다. 어디로 가나?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야 그저 이 세상에서는 수롱이네 집밖에 또 찾아갈 곳은 없었다.
수롱은 부모 동생조차 없는 삼십이 넘은 총각으로, 누구보다도 자기를 사랑하여 준다고 믿는 단 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쫓기어 날 때마다 그를 찾아가선 마음의 위안을 얻어 오던 것이다.
수롱은 벌써 일 년 전부터 아다다를 꾀어 왔다. 시집에서까지 쫓겨난 벙어리였으나, 김 초시의 딸이라, 스스로도 낮추 보여지는 자신으로서는 거연히 염[念]을 내지 못하고 뜻 있는 마음을 건너볼 길이 없어 속을 태워가며 눈치만 보아 오던 것이, 눈치에서보다는 베풀어진 동정이 마침내 아다다의 마음을 사게 된 것이었다.
아다다는 사람을 싫어하였다. 집에 있으면 어머니의 욕과 매, 밖에 나오면 뭇사람들의 놀림, 그러나 수롱이만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무서울 게 뭐야. 이젠 아야 집으루 가지 말구 나하구 있어 응?”
벙어리인 아다다가 흡족할 이치는 없었지만, 돈으로 사지 아니하고는 아내라는 것을 얻어볼 수 없는 처지였다.
아내를 얻으려고 십여 년 동안 품을 팔아 궤 속에 꽁꽁 묶어둔 일백오십 원이라는 돈이 지금 와서는, 아내 하나 얻기에 그리 부족한 것은 아니나, 장가를 들지 아니하고 아다다를 꼬여 온 이유도, 아다다를 꼬이므로 돈을 남겨서, 그 돈으로는 살림의 밑천을 만들어 가정의 마루를 얹자는 데서였던 것이다.
삼십 반생에 자기 소유라고는 손바닥만 한 것조차 없어, 어떻게도 몽매에 그리던 땅이었는지 모른다. 완전한 아내를 사지 아니하고 아다다를 꼬여 온 것이 이 소유욕에서였다. 작년에는 논지기가 잘 되었다.
‘우리 밭을 한 뙈기 사자, 그래두 농살허야 사람 사는 것 같다. 내가 던답을 살라구 묶어둔 돈이 있거든“
아다다는 수롱이에게 돈이 있다 해도 설로 그렇게 돈이 많은 돈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래서 그 많은 돈으로 밭을 산다는 소리에, 지금까지 꿈꾸어 오던 모든 행복이 여지없이도 일시에 깨어지는 것만 같았던 것이다.
돈으로 인해서 그렇게 행복할 수 있던 자기의 신세는 남편(전남편)의 마음을 악하게 만들므로, 그리고 시부모의 눈까지 가리는 것이 되어, 필야엔 쫓겨나지 안치 못하게 되던 일을 생각하면, 돈 소리만 들어도 마음은 좋지 않던 것인데, 이제 한푼도 없는 알몸인 줄 알았던 수롱이에게도 그렇게 많은 돈이 있어, 그것으로 밭을 산다고 기꺼워하는 것을 볼 때, 그 돈의 밑천은 장래 자기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기보다는 몽둥이를 가져다 주는데 지나지 못하는 것 같았고, 밭에다 조를 심는다는 것은 불행의 씨를 심는다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다다는 그저 섬으로 왔거니 조개나, 굴 같은 것을 캐어서 그날그날을 살아가는 것만이 수롱의 사랑을 받는데 더할 수 없는 살림인 줄만 안다. 그래서 이러한 살림이 얼마나 즐거우랴! 혼자 속으로 축복을 하며 수롱을 위하여 일층 벌기에 힘을 써야 할 것을 생각해 어던 것이다.
“고롬 논을 사재나? 밭이 싫으문?”
수롱은 아다다의 의견을 알고 싶어 이렇게 또 물었다. 돈이 있는 이상 어느 것이든지간 사기는 반드시 사고야 말 남편의 심사이었음에 머리를 흔들어댔자 소용이 없을 것이었다.
아다다는 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그 돈을 두고는 수롱의 사랑 밑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으리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짧은 봄 밤은 어느덧 새어,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처량히 들려 온다.
아다다의 마음은 더욱 조급하게 탔다. 이 밤으로 그 돈에 대한 처리를 하지 못하는 한, 내일은 기어이 밭을 흥정하여 가지고 올 것이다.
그때면 남편은 늘어 가는 돈에 따라 차차 눈은 어둡게 되어 점점 정은 멀어만 가는 가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에는 더 생각하기조차 무서웠다.
아다다는 더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남편의 코에다 가까이 귀를 가져다 대고 숨소리를 엿들었다. 씨근씨근 아직도 잠은 분명히 깨지 않고 있다. 그리고 실겅 위의 석유통을 휩쓸어 그 속에다 손을 넣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지전 뭉치를 더듬어서 손에 쥐고는 조심조심 발자국 소리를 죽여 가며 살그머니 문을 열고 부엌으로 내려갔다.
일찍이 아침을 지어먹고 나무새기를 뽑으러 간다고 바구니를 끼고 바닷가로 나섰다. 아무도 보지 못하게 깊은 물 속에다 그 돈을 버리자는 것이다.
아다다는 너 같은 것을 버리는 데는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이, 넘도는 물결 위에다 휙 내어 뿌렸다. 세찬 바닷바람에 체인 지전은 바람결 좇아 공중으로 올라가 팔랑팔랑 허공에서 재주를 넘어가며 산산이 헤어져, 멀리, 그리고, 가깝게 하나씩하나씩 물위에 떨어져서는 넘노는 물결조차 잠겼다 떴다 소꾸막질을 한다.
아다다는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밀려 내려가는 무수한 지전 조각들은, 자기의 온갖 불행을 모두 거두어 가지고 다시 돌아올 길이 없는 끝없는 한 바다로 내려갈 것을 생각할 때 아다다는 춤이라도 출 듯이 기꺼웠다.
뒤에서 허덕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에 돌아다보니 뜻밖에도 수롱이가 헐떡이며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야! 야! 아다다야! 너 돈 돈 말이야, 돈 돈.....?”
둥둥 떠내려가는 것을 본 수롱이는 아다다에게 그 연유를 물을 필요도 없이 미친 듯이 옷을 훨훨 벗고 첨버덩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헤엄을 칠 줄 모르는 수롱이는 돈이 엉키어 도는 한복판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벌써 지전 조각들은 가무가물하고 물거품인지 지전인지도 분간할 수 없으리만큼 먼 거리에서 흐르고 있다.
수롱이는 벌벌 떨고 섰는 아다다의 중동을 사정없이 발길로 제겼다. “앗!” 소리가 났다고 하는 순간, 벌써 아다다는 해안의 감탕판에 등을 지고 쓰러져 있다.
“아 ----아 ---아 .....” 수롱이는, 아다다가 움찍하는 것을 보더니 아직도 살았느냐는 듯이 번개같이 쫓아내려가 다시 한번 발길로 제겼다. “푹!” 하는 소리에 아다다는 언덕을 떨어져 덜덜덜 굴러서 물 속에 잠긴다.
아다다는 그저 물 위를 둘레둘레 굴며 요동을 칠 뿐, 그러나 그것도 한 순간이었다. 어느덧 그 자체는 물 속에 사라지고 만다.
주먹을 부르쥔 채 우상같이 서서, 굽실거리는 물결만 그저 뚫어지라 쏘아보고 섰는 수롱이는 그 물 속에 영원히 잠들려는 아다다를 못 잊어 함인가? 그렇지 않으면 흘러 버린 그 돈이 차마 아까워서인가?
갈매기 떼들은 눈물겨운 처참한 인생 비극이 여기에 일어난 줄도 모르고 ‘끼악 끼악’ 하며 흥겨운 춤에 훨훨 날아다니는 깃[羽]치는 소리와 같이 해안의 풍경만 돕고 있다.
*[작품해설] 계용묵(1904~1961). 평안북도 선천 생. <마부>,<별을 헨다>,<물매미> 등이 있다. 좌우익의 대립이 심각했던 해방 공간에서는 일관되게 중립을 고수했다. 벙어리 아다다에게는 어린이 같은 천진함이 있다. 그 점이 오히려 그녀를 백치처럼 취급받게 된다. 아다다는 지참금을 가지고 시집을 가서 귀여움을 받았다. 그러나 남편이 투기를 해 돈이 생기자 점차 박대가 심하여 살지 못하고, 친정에서도 문전박대를 받고 결국 수롱이와 산다. 첫째남편이나 둘째 남편 수롱이는 애초부터 아다다에 애정을 가졌던 인물이 아니다. 둘째 남편 수롱이는 장가들 경비를 줄이자는 목적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아다다는 물질적인 데서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 작품의 의미는 아다다를 통한 휴머니즘의 실현이라고 하겠다. 작가는 불구자의 천진함과 순수성을 내세워 물질만능의 잘못된 세태를 꼬집고 비판하고 있다. <‘백치 아다다’에서 일부요약 발췌, 계용묵 지음, 범한출판>
솔개공원
솔개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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