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삶의 의미를 ‘테스’형과 현자에게 묻다!

[중산] 2020. 10. 23. 20:02

-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지 않은가.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보다 덜 신화적이고, 덜 원형적인 본보기가 필요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어떤가!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가르치는데 평생을 바쳤다. 그런데 조국 아테네의 이익을 해쳤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그를 고발한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에게 고향을 떠난다면 문제 삼지 않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그런 회유를 이미 예견하고 있었고, 그들의 제안을 단칼에 거부했다.

 

그의 절친한 동료 헤르모게네스는 당시 그가 자신의 재판을 제외한 모든 일에 평상시처럼 논의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그렇게 태평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공정한 방법으로든 부정한 수단으로든 무죄 판결을 받기 위한 전략을 세우려 하거나 혹은 법정에서 취할 수 있는 행동을 머릿속에 그리는 것만으로도 내면의 목소리 혹은 다이몬(혼령, 정령 등 영적인 존재)의 반대에 부딪힌다.”고 했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내면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라는 절대적인 의지라면서, 내면의 목소리가 반대하면 말을 멈추고 행동을 중단한다고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재판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 심지어 변론마저 반대했다. 그는 재판을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동료 헤르모게네스에게 그는 다이몬의 목소리가 삶에서 탈출할 방법을 알려 주었다. “노령의 번뇌와 질병의 아픔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건전한 육체와 정신으로 선한 마음을 드러낼 수 있고, 친구들에게 귀찮은 일거리를 남기지 않는 쉬운 방법”이라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냈다. 더 나아가 처형과정에서도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삶이 넘치도록 충만하고 풍요로웠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려놓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또한 재판을 삶을 정리할 기회이자 미래의 끔찍한 타락으로부터 탈출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닥친 모든 사건을 신들에게서 받은 선물로 받아들인 것이다. 자신을 고발한 사람들에게 분노를 품지도 않았고 자신을 변호하려 하지도 않았다. 무고함을 주장하거나 숙명에 저항하려고 발버둥 치지 않았다.

그는 판사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려는 이유를 차분하게 설명하고 독배를 들었다. 당당하게!

 

소크라테스는 쉬운 길을 거부했다. 쉬운 길을 선택하는데 필요한 조작과 변명도 거부했다. 오히려 최악의 조건에서도 의미 있고 진실한 것을 추구하려는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로부터 25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의 결정은 모두의 기억에 남아 마음의 위안을 준다.

 

소크라테스의 일화는 우리에게 이제부터라도 거짓말을 말하지 않고 양심의 목소리에 따라 산다면 어떤 위험 앞에서도 고결함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교훈, 올바른 방향을 추구하며 충만하게 살아가면 죽음의 공포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삶의 깊은 의미를 가르쳐 준다.

 

 

이 모든 가르침이 정말 진실일까?

인간은 자의식을 가진 유일한 존재다. 자의식 덕분에 스스로 나약하고 무능력한 존재라는 것. 그리고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비극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자의식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야기한다. 그 고통으로 인해 이기적이고 즉각적인 만족을 중요시하는 생각. 즉 편의주의에 빠져든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사회와 자연의 무자비한 횡포가 삶을 고통스러운 비극으로 만든다고 생각하는가? 사회와 자연은 사실 고통의 유일한 원인이 아니다. 심지어 주된 원인도 아니다. 불확실함이 가득한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들의 비인간적인 행위가 훨씬 심각한 문제다.

 

이런 이유로 희생의 의미는 더욱 복잡해진다. 단지 가난과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하고 희생하며 현재의 만족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악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와도 관련이 있다.

 

악은 자의식과 함께 찾아온다. 인간은 지진과 홍수, 가난과 암 등 어떤 시련도 감당할 만큼 충분히 강하다. 그러나 세상이 주는 시련과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 있다. 바로 인간의 악함이 만들어 내는 고통이다. 실망과 좌절이 크다고 해서 사람이 항상 사악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희생과 노력이 계속해서 거부당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런 경우에는 뒤틀리고 일그러져 진짜 괴물처럼 변할 가능성이 크다. 의도적으로 사악한 짓을 저지르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고통과 아픔을 주기 위해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의 말처럼 “삶은 지저분하고 야만적이다. 그리고 짧다.” 그러나 악한 짓을 저지르는 인간의 속성 때문에 삶이 더욱 황폐해진다. 그러나 야만적인 면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삶의 본질적인 문제다. 무엇을 어떻게 희생하느냐를 고민하는 이유는 삶의 고통뿐만 아니라 사악함을 줄이기 위해서다. 사악함은 고의적으로 최악의 고통을 유발한다.

 

"우리의 각자의 가치관을 개발할 수 없다. 내가 믿는 것이라고 해서 영혼이 무작정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 우리는 자신에게 함부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능력자가 아니다. ’오늘은 조금만 먹겠어‘라고 아무리 다짐해도 폭식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다. 이처럼 우리는 이성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다.

 

위대한 작가 조지 오웰을 통해, 사회주의적 사고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진정한 배려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부유한 사람에 대한 증오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본질적으로 사회주의자는 자본주의자보다 더욱 자본주의적이었다. 사회주의자도 자본주의자 못지않게 돈을 신봉했다.

 

세계가 두 파당으로 갈려 서로 죽도록 싸우게 된 과정과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두 시스템은 똑같이 독단적이고 부패하지 않았던가? 단지 견해 차이 때문에 이토록 극단적인 대치 상황이 벌어진 걸까? 가치 체계는 결국 권력의 포장에 불과한 것 아니었는가? 아니면 모두 미쳤던 것일까?

 

귀족 계급과 부패한 종교적 믿음을 대처하겠다고 나온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우리 사회를 더욱 고통스러운 지옥으로 만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는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문구를 새긴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여기에서 자유는 죽음을 의미했다.

 

솔제니친은 20세기에 자행된 끔찍한 사건, 직장과 가족, 신분을 빼앗긴 채 비참하게 살던 수천만 명의 삶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아낸 <수용소 군도>에서, 제2차 세계대전 전범자들에 대한 재판인 ‘뉘른베르크 재판’을 20세기의 가장 중대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인생의 필연적인 고통을 감안하면 불필요한 고통과 아픔을 줄이는 모든 행위는 선한 것이다. 불필요한 고통을 완화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닥치는지 알기 때문이다. 20세기가 바로 그 결과이다. 20세기는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지옥의 반대편에는 천국이 있다. 따라서 불필요한 고통과 아픔을 줄이는 모든 행위를 가치 체계의 최정점에 둔다는 것은 이 땅에 하나님 왕국을 세우겠다는 원대한 의지의 표현이다.

 

융은 그런 도덕적 가치 체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융은 개개인이 도덕적 가치 체계의 최상위에 두는 것은 그가 가장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이고 , 그것은 곧 자기만의 신을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높은 목표를 세우고 그것에 맞게 행동하면 의미는 저절로 모습을 드러낸다. 의미는 억지로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속임수일 뿐이다.

 

삶의 모든 요소가 최적의 상태에 놓여 있을 때 의미가 생겨난다.

의미는 혼돈과 질서의 궁극적인 균형이다. 한쪽에는 변화와 가능성으로 충만한 혼돈이 있고, 반대편에는 오염되지 않은 절제된 질서가 있다. 의미는 혼돈으로부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낸다. 더 순수하고, 더 안정적이며, 더 생산적인 새로운 균형이 탄생한다. 의미는 한층 풍요로운 삶으로 향하는 길이다.

 

의미는 사랑과 진실만이 가득한 곳, 사랑과 진실 외에는 바랄 것이 없는 그런 곳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

 

<‘12가지 인생의 법칙‘ P551 중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조던B. 피터슨 지음,강주헌님 옮김,메이븐 출판>

* 조던B. 피터슨 : 토론토 대 심리학과 교수. 전 하버드 대 교수(1993~1998), 토론토 대 대학생들이 뽑은 ‘내 인생을 바꾼 교수’로 선정.

울산 울주 나사해수욕장!

'독서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7의 인간  (0) 2020.11.05
50세가 넘으면~!  (0) 2020.11.02
칸트⦁괴테⦁니체 3인의 초대!  (0) 2020.10.21
백치 아다다 - 계용묵  (0) 2020.10.10
날개 - 이상  (0) 2020.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