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시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모든 추억을 지워 버리고, 생각을 고정하라.
멋진 금빛 축 위에 조화롭지만 불안정하고,
근심스럽지만 부동의 상태로 생각을 유지하라.
물론 한순간의 꿈을 영원하게 하라.
진리와 미를 사랑하고 그 둘의 조화를 찾으라.
마음속으로 정령(精靈)의 메아리를 들어라.
아무 목적 없이, 아무렇게나 홀로 노래하고 웃고 울라.
미소나 단어, 한숨이나 시선에서
경외와 매력이 넘치는 뛰어난 작품을 만들라.
눈물에서 진주를 만들라.
그것이 바로 이승에서의 시인의 열정이니라.
그것이 바로 시인의 행복이고 인생이며, 야망이니라.
안녕히, 쉬송*
안녕히 쉬송! 나를 일주일 동안 사랑했던
나의 백장미여!
이 세상에서 가장 짧은 쾌락은
종종 최고의 사랑을 만들어 냅니다.
내가 당신을 두고 떠나는 순간
내 떠돌이별이 어디로 나를 데려가는지 나는 알까요?
내 사랑, 그렇지만 나는 떠납니다.
아주 멀리, 아주 빨리,
언제나 뛰어서.
나는 떠납니다. 그리고 내 격렬한 입술은
당신의 마지막 키스로 여전히 뜨겁습니다.
경솔한, 내사랑, 당신의 아름다운 이마가
방금 내 품속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내 심장이 얼마나 두근거리는지 느껴지십니까?
당신의 심장은 너무도 활기차게 고동쳤지요!
귀여운 내 사랑, 그렇지만 나는 떠납니다.
아주 멀리, 아주 빨리,
언제나 당신을 사랑하면서.(∙∙∙)
쉬송, 당신이 나를 잊게 되더라도,
우리의 사랑이 조금만 더 지속되기를!
시든 꽃다발처럼,
우리의 사랑을 당신의 매혹적인 가슴속에 감추세요!
안녕히! 행복은 집에 머무르고,
추억은 나와 함께 떠나갑니다.
내 사랑, 나는 추억을 가져갈 겁니다.
아주 멀리, 아주 빨리,
언제나 당신에게로.
*쉬송 : 뮈세가 1845년경에 만나 사랑에 빠진 여인으로, 보주 도지사 라 베르주리 남작의 딸로 추정되나, 이름을 확인할 수 없는 여성이라고도 한다.
진혼곡 - 뤼시
가여운 내 사랑, 당신은 마음속으로 데스데모나*가 신음하는 것을 느꼈나요?
당신은 울고 있었죠. 당신은 당신의 사랑스러운 입술에
내 입술이 포개지는 것을 슬프게 내버려 뒀습니다.
나의 키스를 받아들인 것은 바로 당신의 고통이었습니다.
난 그렇게 차갑고 창백한 당신을 포옹했습니다.
두 달 뒤, 당신은 그렇게 무덤에 놓였습니다.
오, 내 정숙한 꽃이여! 그렇게 당신은 가버렸습니다.
당신의 죽음은 당신의 생명만큼 부드러운 미소였습니다.
당신은 하느님 곁에 있는 당신의 요람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순수가 머무는 집의 달콤한 신비여,
노래여, 사랑의 꿈이여, 아이가 하는 말이여,
마르가레테*의 방문턱에서 파우스트를 망설이게 만든
아무것도 금지된 게 없는 미지의 매력인 그대여,
청춘의 순진함이여, 다 무엇으로 변했나?
내 사랑, 당신의 영혼과 기억에 깊은 평화가 깃들기를!
안녕히! 상앗빛 건반 위에 놓인 당신의 하얀 손은
여름밤에 더 이상 날아다니지 않을 겁니다.
사랑하는 내 벗들이여, 내가 죽거든
무덤에 버들 한 그루를 심어 주오.
난 울고 있는 듯한 그 나뭇잎을 좋아한다네.
파리한 그 색깔이 내겐 감미롭고도 사랑스럽다네.
내가 잠들게 될 그 땅에
버들은 우아한 그늘을 드리울 거라네.
데스데모나* : 셰익스피어의 비극<오셀로>에 등장하는 베니스의 귀족 겸 원로원 의원의 딸이자 오셀로의 아내. 사악한 부하 이아고의 간계로 인해, 순결한 아내 데스데모나의 부정을 의심하게 된 무어 장군인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살해한 후 진실을 알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마르가레테* : 괴테의 희곡,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여성, 마법의 힘을 빌려 20대 청년으로 돌아간 파우스트가 길거리에서 만나 마음을 빼앗긴 아름다운 소녀.
꿈
농부가 씨를 뿌리고, 땅을 팔 때면
그에게 보이는 건 씨앗, 황소들, 그리고 밭고랑뿐.
- 자연은 적막 속에서 비밀을 완수하는데,-
그 농부는 쟁기에 기대어 추수를 기다립니다.
저녁에 그의 안내가 초가집으로 되돌아오며
그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자. 그는 제 자식을 기다립니다.
죽음이 그의 늙은 아비를 곧 붙잡으려 하는 것을 알자,
그는 잠자리 밑에 앉아 죽음을 기다립니다.
우리가 그 이상 더 아는 게 뭔가요? 또한 인간의 지혜가
인간의 영역에 있어서 그 이상 더 무엇을 찾아냈던가요?
인간의 지혜는 이 넓은 우주에 발을 디뎠다고들 말합니다.
인간의 지혜가 언제나 찾아다닌 지 이제 5천 년이 흘렀습니다!
12월의 밤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어느 날 저녁 나는 우리 둘만의 방안에서
잠을 자지 않고 있었습니다.
내 책상 앞으로 동생 같아 보이는
검은 옷을 입은 한 가여운 아이가
다가와 않았습니다.
희미한 촛불에 비친 그 아이의 얼굴은
슬프면서도 아름다웠습니다.
그 아이는 다가와서 펼쳐진 내 책을 읽었습니다.
그 아이는 제 손 위에 이마를 얹고
생각에 잠긴 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튿날까지 머물렀습니다.(∙∙∙)
사랑을 믿는 나이에,
어느 날 나는 내 첫 번째 불행을 슬퍼하며,
내 방에 홀로 있었습니다.
동생 같아 보이는
검은 옷을 입은 한 낯선 사내가
내 불가에 와 앉았습니다.
그는 침울하고, 근심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는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다른 손엔 검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의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한숨만 한 번 쉬더니
꿈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향연 자리에서
건배를 들던 방탕했던 나이에,
어느 날 나는 내 잔을 들어 올렸습니다.
동생 같아 보이는
검은 옷을 입은 한 남자 손님이
내 앞에 와 앉았습니다.
그는 열매 맺지 못하는 도금양* 화관을 머리에 쓰고,
망토 속에 걸친
남루해진 주홍빛 누더기를 흔들고 있습니다.
그의 야윈 팔이 내 팔을 찾던 중에
내가 든 잔이 그의 잔에 스치며
힘없는 내 손 안에서 깨졌습니다.(∙∙∙)
내가 잠들고 싶었던 어디에서나,
내가 죽고 싶었던 어디에서나,
동생 같아 보이는
검은 옷을 입은 불행한 사내가
내가 가는 길에 와 앉았습니다.
이승에서 내가 가는 길에
언제나 눈에 띄는 그대는 대체 누구이더냐?
그대는 우울하겠지만, 나는 그대가
내 불길한 운명이라고 믿을 수 없다.
그대의 부드러운 미소에는 지나친 인내심이 있고,
그대의 눈물에는 지나친 자비심이 있다.
그대를 보면서 나는 신을 사랑한다.
그대의 고통조차 내 번민과 비슷하다.
그것은 우정과 닮았다.
내 청춘의 유령이여, 그 어느 것에도 걸리지 않는 순레자여,
그대는 대체 누구이더냐?
어찌하여 나는 언제나 내가 지나간 어둠 속에
그대가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된단 말이냐?
외로운 방문자여, 내 고통에 붙어 있는 주빈이여,
그대는 대체 누구이더냐?
이 세상에서 나를 뒤쫓기 위해 그대는 무슨 짓을 벌인 것인가?
눈물 흘리는 날에만 나타나는 내 동생이여,
그대는 대체 누구이더냐? 그대는 대체 누구이더냐?
도금양* : ‘은매화‘라고도 하며, 결혼식 화관으로 쓰인다.
추억
나는 울고 싶었지만,
그대를 다시 볼 용기를 내자 고통이 느껴졌습니다.
오, 추억이 잠들게 될 영원히 존엄한 장소여,
가장 소중하면서도 가장 알려지지 않은 무덤이여!
짙은 녹음이 드리운 전나무들,
무심하게 굽이진 깊은 협곡,
오래된 속삭임으로 내 행복한 시절을 달래 주던
야생의 벗들이 저기 있습니다.(∙∙∙)
내 인생의 슬픔은 무엇이 되었을까요?
나를 늙게 만든 그 모든 게 이제는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저 다정한 계곡만 보면
나는 어린애가 됩니다.
오, 시간의 힘이여! 오, 가벼운 세월이여!
너희는 우리의 눈물과 고함, 그리고 회환을 가져가 버린다.
하지만 너희는 동정심에 사로잡혀
시든 꽃들 위로는 결코 걷지 않는다.
위로를 주는 친절이여, 내 마음이 온통 너를 축복한다.
나는 우리가 그런 상처로 인해 그토록 고통스러워하고
그 상처가 달콤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결코 생각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근심이 잠자고 있는 뜨거운 재 안에서
불똥을 발견하고, 그 불꽃을 붙잡아
불꽃 위로 보이지 않는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불운한 자여!
그의 영혼이 사라진 과거 속으로 잠길 때,
깨진 이 거울을 보고 울면서 꿈을 꿀 때,
그대는 그가 속은 것이며, 그의 미미한 기쁨은
단지 끔찍한 고통이라는 것을 그에게 말하세요!
불행한 이들이여! 당신들의 마비된 영혼이
그녀가 이승에서 질질 끌고 다니는 쇠사슬을 흔들었던 그 순간,
그 잠시뿐이던 순간은 당신들의 전 인생이었습니다.
그것을 아쉬워하지 마세요!
그렇습니다, 아마도 모든 게 죽습니다. 이 세상은 거대한 꿈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최소한의 행복이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우리는 그 갈대를 손에 넣기도 전에
바람이 우리에게서 그것을 앗아 갑니다.
내 두 눈은 무덤 속에서 죽은 줄리엣보다 더 슬프고,
로미오가 가져온
죽음의 천사에게 바치는 건배보다 더 끔찍한
것들을 응시했습니다.
우리는 깊은 밤 우리의 가여운 사랑을 가슴에 안고
그 얼마나 부드럽게 잠재웠던가요?
아! 그것은 생명보다 더한, 사라져 버린
세상이었습니다.(∙∙∙)
슬픔
난 기력도, 인생도,
벗들도, 그리고 기쁨도 상실했습니다.
난 내 천재성까지 믿게 해 주던
자부심까지도 상실했습니다.
‘진리’를 알게 됐을 때,
난 진리가 내 편이라 믿었습니다.
진리를 이해하고 느꼈을 때,
난 진저리가 났습니다.
그렇지만 진리는 영원한 것이며,
진리를 모르고 죽은 사람들은
이승에서 아무것도 몰랐던 겁니다.
신께서 말씀하시니, 우린 그분께 응답해야만 합니다.
이 세상에서 내게 남은 유일한 행복이라고는
이따금 눈물을 흘렸다는 겁니다.
<‘뮈세 시선’에서 극히 일부 발췌, 알프레드 드 뮈세 지음, 윤세홍님 옮김, 지식을 만드는 지식 출판>
* 알프레드 드 뮈세: 1810년 12월 11일 파리의 문인 귀족 집안에서 태어남. 조부와 외조부 모둔 시인이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루소 전집> 22권을 직접 출간한 루소의 전문가임. 1819년 파리 앙리 4세 고등학교에 입학한 뮈세는 그곳에서 동갑내기 샤르트르, 빅토르 위고의 처남인 폴 풋셰 등과 친구가 되었다. 1845년 문학적 공훈을 인정받아 레지웅 도뇌르 기사 훈장을 받음. <변덕>, <촛대>,<말 보다 행동>, <아무것도 장담하지 마라>등 발표. 1857년 3월 건강 악화로 영면.
가을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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