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침묵의 세계

[중산] 2020. 11. 26. 21:00

산에 사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산의 모습이 뚜렷이 새겨져 있다. 그들의 얼굴 속의 뼈들은 솟아오른 암석이다. 그들의 얼굴에는 고갯길, 숨겨진 곳, 산봉우리들이 있다.  그리고 두 뺨 위의 두 눈의 밝은 빛은 어두운 첩첩산중 위에 드리워진 하늘의 밝은 빛과 같다. 

 

바닷가에 사는 그 누구에게나 바다의 특징이 형상으로 나타난다. 얼굴의 솟아오른 부분들, 코, 입 등의 불거져나온 부분들은 마치 얼굴이라는 드넓은 바다 속에 있는 배들과도 같다. 

 

"오늘날 인간의 얼굴에는 어떠한 바다도 어떠한 산도 없다. 얼굴이 더 이상 그것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에게서 밀어내 버린다. 얼굴에는 더 이상 그런 것들을 위한 자리가 없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뾰족한 극단에 놓이게 되고, 외부 세계는 그 뾰족한 극단에서 떠밀리고 흔들려서 떨어질 것처럼 보인다. 얼굴에서 나무들이 베어지고, 산은 파여 없어지고, 바다는 말라붙었다. 그리고 텅 빈 얼굴 속에 거대한 도시가 세워졌다."(피카르트,  ⌜인간의 얼굴⌟)

 

오늘날 사람들은 "자연의 정적"과 침묵을 얻기 위해서는 전원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거기에서도 침묵을 만나지 못한다. 반대로 인간은 거대한 도시의 그리고 자신의 내부의 소음을 시골로 가지고 갈 뿐이다. 그것이 "전원으로 돌아가라"는 운동의 위험이다.

 

적어도 대도시에서는 최소한 말하자면 한 감옥 안에 함께 감금되어 있던 소음들이 시골로 풀려나가게 되는 것이다. 대도시를 분산시킨 다는 것, 그것은 소음을 분산시킨다는 것이며 소음을 도처에 분배하는 것이다.

 

 

침묵의 실체가 자신의 내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간이라면, 그의 모든 움직임은 그 자신의 침묵에 의해서 지배된다. 그래서 그의 움직임은 완만하다. 그의 움직임들은 서로 격하게 충돌하지 않는다. 그의 움직임들은 침묵에 실려 다닌다.

 

침묵의 힘이 미치는 곳에서의 개개인은 자신과 공동체 간의 어떤 대립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인과 공동체는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둘 다 똑 같이 침묵을 마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과 침묵

사랑 속에는 말보다는 오히려 침묵이 더 많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바다 속에서 나왔다. 그 바다는 침묵이다. 아프로디테는 또한 달의 여신이기도 하다. 달은 그 금실의 그물을 지상으로 내려뜨려 밤의 침묵을 잡아 올린다. 

 

연인들은 두 사람의 공모자, 침묵의 공모자들이다. 사랑하는 남자가 연인들에게 말할 때, 그 연인은 그의 말보다는 침묵에 귀 기울인다. 침묵 속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어 병존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은 정지해 있다.

 

사랑의 수줍음은 원초성과 태초성의 수줍음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환히 빛난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투명하다. 사랑의 원초적 형상이 그들의 얼굴을 통해서 환히 빛나는 것이다.

 

사랑에는 말보다 침묵이 더 많다. 그리고 “사랑은 말할 때보다 침묵할 때 비할 데 없이 더 쉽다. 말을 찾는 것은 마음의 감동을 크게 해친다. 보다 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잃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사랑의 가치를 알고 있다면 그 손실은 큰 것이다.”(브레몽의 ⌜신비주의와 시⌟중에서 인용된 아몽의 말)

 

침묵할 때에 사랑하기가 훨씬 더 쉽다. 침묵하면서 사랑하기가 더 쉬운 것은 침묵 속에서는 사랑이 가장 멀리까지 뻗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침묵 속에는 위험도 있다. 가장 멀리 이르는 그 공간은 감독되지 않으며 사랑에 적합하지 않은 것까지도 있을 수도 있다.

 

 

자연과 침묵

자연의 침묵은 인간에게는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우선 자연의 침묵은 인간을 행복하게 한다. 동시에 자연의 침묵은 가혹하다. 왜냐하면 자연의 침묵은 인간을, 인간이 아직 말(언어)을 가지지 않았던, 인간이 아니었던 저 태고의 상태에다 도로 가져다놓기 때문이다.

 

그것은 말을 인간으로부터 빼앗아 도로 저 태고의 침묵 속으로 가져갈지도 모른다는 위협과 같다. 인간이 다만 자연의 일부에 불가하다면, 인간은 결코 고독하지 않을 것이고, 인간은 언제나 침묵에 의해서 모든 것들과 결합되어 있을 것이다.

 

봄이 시작될 때면 사물들은 침묵으로부터 돌아와서 자기 자신을 더욱 깊이 성찰하게 된다. 봄에 나뭇잎들이 나비처럼 수줍게 나뭇가지에 앉아 있고, 하늘의 푸르름이 가지들 사이로 밀려와서 나뭇잎들이 가지보다는 하늘의 푸름 속에서 떨고 있을 때, 나무는 침묵보다는 하늘에, 그리하여 자기 자신에게 더 많이 속하게 된다.

 

여름 한낮의 열기 속에서 침묵은 완전히 공간으로 변해버린다. 그 충격으로 마비된 듯이 시간조차 정지한 듯하다. 산,나무, 흩어져 있는 집들은 한낮의 침묵의 공간 속으로 아직 빨려 들어가지 않은 마지막 사물들 같다.

 

빛은 어둠이 아니라 침묵 속에 있다. 그러한 사실이 여름의 한낮보다 더 분명해지는 때는 없다. 그때, 침묵은 완전히 빛으로 변해 있다.

 

밤이 되면 침묵은 지상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간다. 지상에는 온통 침묵이 스며들어 있고 침묵은 지면 속으로까지 뚫고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밤의 침묵에 의해서 낮의 말은 용해되어 가라앉아버린다.

 

바다가 울부짖는다. 마치 자기 자신을 찢어 열어젖히려는 듯 높다랗게 파도침으로써 자기 자신을 벗겨 드러내려는 듯이, 그러나 돌연히 바다는 자신이 찾던 것을 자신의 깊은 곳에서 발견한 듯이 자신 속으로 가라앉는다. 바다 밑바닥은 갑지기 자신의 고요로 뒤덮인다.

 

자연속의 침묵이 너무도 농밀해짐으로써 자연 속의 사물들이 다만 침묵을 더욱 심하게 응축한 것처럼 보일 때에는 인간 역시 더 이상 말을 소유하지 않게 된 것처럼 보이고, 말은 다만 침묵의 갈라진 틈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고독하게 존재했던 그리고 나를 안정시켜주고 소모된 나의 신경에 유익했던 이 정적이, 그러나 차츰차츰 납덩어리처럼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우리 내부의 생명의 불꽃은 어떤 비밀의 잠복처로 자꾸만 물러났고, 우리 가슴의 고동은 점점 느려졌다. 심장의 고동이 멎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몸을 흔들어야만 할 날이 오리라. 우리는 그 침묵 속에 깊이 가라앉았고 그 속에서 마비되었으며, 우리는 말할 수 없이 힘을 들여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는 우물 밑바닥에 있었다. ”(공트랑 드 퐁생,⌜카블루나⌟)

 

 

시와 침묵

시는 침묵으로부터 나오며, 또한 침묵을 동경한다. 시는 인간 자신과 마찬가지로 한 침묵에서 다른 침묵으로 가는 길 위에 있다. 시는 침묵 위를 비상하고, 선회하는 것과 같다.

어느 집 마룻바닥이 모자이크로 아로새겨져 있듯이 침묵의 바닥은 시로 아로새겨져 있다. 위대한 시란 침묵 속에 박아 넣은 모자이크이다.

 

"가장 고귀하고 뛰어난 것이라고 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시인이 그의 작품에서 드러내는 것보다 더 큰 깊이를 그의 내부에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작품들이 그 예술가의 최선의 것이다. 그리고 그의 내부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뿐인 어떤 것, 그것이 시인 자신은 아니다.“(헤겔)

 

위대한 시인은 자신의 말들로 대상은 완전히 사로잡지 않는다. 위대한 시인은 그 대상에게 다른 시인, 보다 고귀한 시인이 그 대상에 대해서 한마디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는다. 위대한 시인은 다른 시인도 또한 그 대상을 함께 나누도록 허용한다.

 

 

오늘날 침묵하는 사람은 없다. 더 이상 말하는 사람과 침묵하는 사람 간의 구별이 없다. 다만 말하는 사람과 말하지 않는 사람간의 구별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침묵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경청하는 사람 또한 없다. 오늘날 인간은 더 이상 경청할 수 없다.

 

 

그리스 신전의 원주의 열(列)들은 마치 침묵에 따라 서 있는 경계선들 같다. 침묵에 기대어 있음으로써 그리스 신전의 원주들은 더한층 반듯하고 더한층 하얘졌다. 이집트의 원주들 사이를 거니는 것은 어둠 속으로, 원주들 뒤의 어둠 속으로 걸어가는 것 같다.

 

침묵은 대성당들 안에 스스로 틀어박혀 그 벽으로 자신의 몸을 지켜왔다. 담쟁이 덩굴이 수세기를 두고 벽을 뒤덮으며 자라나듯이 대성당은 침묵의 둘레에서 자라났다. 대성당은 침묵의 둘레에 세워진 것이다.

 

<‘침묵의 세계’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막스 피가르트 지음, 최승자님 옮김, 까치 출판>*막스 피가르트 : 1888년 독일 슈바르츠발트에서 태어남. 하이델베르크 대학 의학부 조교를 거쳐 뮌헨에서 개업한 의사이다. 저서로는 <사람의 얼굴>,<신으로부터의 도주>, <우리안의 히틀러>등이 있다. 1965년에 영면했다.

                                                                    간절곶 등대

진하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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