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코스요리
“나이 들수록 인생은 점점 재미있어진다!”, “내 인생에 후회는 없다‘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나이 들면 불편한 점이 많아지는 건 사실입니다. 저는 가까운 장래에 걷는 속도가 느려질 테고, 젊은 사람의 눈으로 보면 부정적인 일투성일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이처럼 힘든 부분은 있겠지만, 사람은 늙기 때문에 오히려 그때 그때의 단계를 온전히 잘 살아내려 하는 것 아닐까요? 저는 인생을 코스요리에 비유하곤 합니다. 코스요리의 매력은 전체요리는 전체요리대로 메인은 메인대로, 디저트는 디저트대로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이지요. 신기하게도 어느 것이라도 빠지면 뭔가 모자란 듯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라는 그때그때 나에게 주어진 삶의 무대를 나름대로 만끽하는 게 산다는 것의 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느 한 단계라도 빠지면 훨씬 재미없을 것 같아요. 사람에게는 그 연령대가 아니면 모르는 일이 참 많습니다.‘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사회인으로서의 고충이 커서 학창시절을 그리워하기도 하지요.
아이를 키울 때는 내 시간이 없어서 ‘빨리 자유로워지고 싶다’라는 마음이 절실하지만, 막상 자녀가 독립하면 마음에 구멍이 뻥 뚫린 듯한 빈 둥지 증후군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하루하루 시간에 쫓기며 직장생활을 할 때는 은퇴 후의 여유로운 삶을 바라지만, 막상 은퇴하면 너무 많은 시간 때문에 고민이 시작되기도 하지요. 누구나 새로운 환경에 처하면 알게 되는 게 있지요. 노년기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환경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제 어머니는 노년기에 들어서면서 유난히 가벼운 옷, 가벼운 가방을 선호했어요. 종종 ‘가벼운 것이 편하다’라고 말씀을 하시기도 하셨죠. 젊을 때는 가벼운 것을 왜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 제가 바로 그 나이가 되어보니 가벼운 물건이 편하고 좋다는 걸 실감하고 납득하는 중입니다.
그 외에도 이 나이가 되어서 알게 된 게 있는데, ‘뭐니 뭐니 해도 인간은 재미있다!’라는 겁니다. 젊을 때는 되도록 피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까지 포함해서 ‘모두 제각기 달라서 재미있네’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느끼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인간 내면의 깊이와 다면성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기 때문 아닐까요. 제 눈에 보이는 것이 그 사람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지요. 특히 젊은 사람은 흔히 훌륭한 사람의 의견을 인용하면서 ‘00대학의 00교수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식으로 지식을 과시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다른 사람의 의견을 늘어놓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의견을 갖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게 됩니다. 늙어가는 것을 한탄하기 전에, 이 나이가 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인생의 단계를 만끽해보지 않으시렵니까?
누구도 정답을 알 수 없다.
지식으로는 알고 있지만 나이 먹기 전까지는 그다지 실감하지 못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이 세상은 모순덩어리라는 사실이지요. 특히 제 연령대는 아주 특수한 세대입니다. 시대가 격변하였고 세상의 가치관이 순식간에 변하는 걸 눈앞에서 보아왔지요.
제 2차 세계대전 전에 태어나, 세상물정을 알기 시작했을 때는 전쟁 중이었고, 학동 피난을 점령했습니다. 패전 후에는 한동안 적이라고 생각했던 미군에게 점령당하기도 했지요.
세계적으로도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독일이 동서로 분단되고 수십 년 후 베를린 장벽이 시민에 의해 붕괴되는 모습을 다 보았지요. 아시겠지만 자본주의를 초월하는 이상적 사회체제로 여겨지던 사회주의는 동서냉전을 거쳐 소련의 붕괴를 계기로 무너졌습니다.
자본주의의 완전한 승리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인한 세계적인 불황으로 이 체제도 이대로 가다가는 언젠가 스스로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절대적인 진실이란 없다
나라의 정책도 모순덩어리입니다. 제 어머니가 젊을 때는 ‘낳고 늘려라’했지요. 10형제인 집도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의 지도를 받아 산아 제한 시대를 맞이했고 지금은 그 반대로 저출산 시대를 맞아 다시 ‘많이 낳으라’는 흐름이 대세가 되었지요.
이 격동의 시대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누구도 정답은 알 수 없다’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하고 조금이라도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립’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경제적인 독립’을 가리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돈은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판단을 누구에게 맡기지 않는 것’이야말로 자립이다. 부디 자식에게 너무 공을 들이며 대신 판단해주려 들지 말고 모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나이 들수록 점점 재미있어지네요.’에서 극히 일부 발췌, 와카미아 마사코 지음, 양은심님 옮김, 가나출판사>
* 1935년 도쿄 생. 미쓰비시 은행에서 60세까지 근무. 정년 퇴직 후 컴퓨터를 구입, 2017년 아이폰용 게임 앱을 개발. ‘노인들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며 일본에서 ‘인생 100세 시대의 롤 모델상’을 수상하기도 한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봉사활동을 하는 등 현역으로서의 삶을 즐기며 살고 있다.
사람은 자라면서 자기다움을 잃어간다.
요즈음은 그야말로 ‘개인의 시대’다.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블로그나 SNS에서 마음껏 정보를 주고받는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교제하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직업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 얼핏 보기에는 아무런 속박도 받지 않고 인생을 자유로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사회’라는 틀 안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자유롭지만은 않다.
사회가 만들어 낸 ‘지혜’는 오랜 옛날부터 대대손손 전해 내려온 문화와 습관의 축적물이다. 살아남기 위해 지혜를 모으고, 시행착오를 거듭해오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태어나고 또 계속해서 성장해간다. 가정이나 학교, 사회라는 틀 속에서 익혀나가는 지혜는 우리가 물음표에 봉착했을 때 그 삶의 과정마다 해답을 제시해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지혜는 누구에게나 어느 시대에나 맞는다고는 할 수 없다. 불편하게 느끼거나 거부반응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어린아이가 울거나 난폭해지는 것도 자신에게 맞지 않는 사회의 지혜에 대항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아이들도 커가면서 교육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배워나간다. 그 안에서 자신에게 맞는 말을 받아들이고, 맞지 않는 것은 받아들이기 쉬운 형태로 바꾸는 등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사회에 적응하는 방법을 익혀 나간다.
자기다움을 잃게 만드는 사회의 지혜
그러나 더러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모나지 않게’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려고 노력하고, 그러기 위해 자신이 참아가면서라도 주변에 맞춘다. 사회적 지혜에 맞춰 자신을 속박하고 스스로를 억누르는 이들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있는 힘껏 참는다. ‘착한 아이여야 한다’.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회적인 지혜와 상식에 자신을 맞춰서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과학이 발전하고 편리해진 사회에서 얼핏 사람은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숙한 형태로 태어난 인간은 성장 과정에서 ‘사회적 지혜’를 배워서 그것에 맞추어 살아 갈 수밖에 없고, 그 안에는 인내도 포함된다.
진리라고 여겼던 사회의 지혜가 어느 샌가 자기다움을 잃어버리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미덕이라고 생각했던 ‘인내’, 즉 참는 것이 지금 스스로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 원인은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인정받기 위한 노력이 오히려 나를 외롭게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 참기만 하면서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행동만 하다보면 인간관계는 원만해진다. 언제 어디에서 누구하고 있는지 그 사람의 마음에 들도록 노력하다 보면 그 때 그 사람과는 잘 어울릴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무슨 말을 할 수 있는 친밀한 관계는 때로는 갈등이나 대립을 경험하면서 그것을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관계이며 상대에게 의존하지 않는 관계다.
혼자 있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맞춰가며 계속 참다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상대방에게 휘둘리는 관계가 되기 때문에 불안과 외로움이 오히려 커진다. ‘혼자 있는 것은 초라하다’ ‘직장에서 함께 점심을 먹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그럼에도 먼저 스스로 가까이 가거나 약속을 잡는 일도 없고, 늘 기다리기만 한다. 상대방이 다가오기 전에는 관계를 발전시킬 기회가 없다.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결국 수동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고, 상대방이 나를 챙겨주지 않는 한 가까이 갈 수도, 관계를 만들 수도 없다. 상대방에게 인정받기 위한 노력이 오히려 자신을 외롭게 만드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참지 않을 용기’에서 극히 일부 발췌, 히라키노리코 지음, 황혜숙님 옮김, 센시오출판>
* 히라키노리코 : 임상심리치료사이자, 미네소타대학원에서 심리학전공, 일본여자대학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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