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스키외는 말한다. “내밀한 기쁨과 함께 아침결 나는 잠에서 깬다. 황홀한 느낌으로 햇빛을 바라본다. 하루의 나머지 시간들도 나는 행복하리라.” 나 역시 그러했다. 나는 아침나절과 해와 햇빛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리고 자기만의 비밀을 간직한 듯한 저녁 시간, 밤 시간도 좋아했다.
하루의 경이로움과 흥분이 잦아든 후, 나는 기분 좋은 침묵의 무아 상태로 빠져들곤 하였다. 나는 잠자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그리고 깨어나는 것과 숲 속이며 바닷가를 산책하는 것도 좋아했다.
아무런 수고도 없이, 그 어떤 이유도 없이 하늘에서 갑작스레 떨어진 듯한 이러한 행복에 대하여 누구에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면서도 나는 기꺼이 감사한 마음으로 그것들을 받아들였다. 나는 어느 곳 보다도 흥망성쇠의 부침이 있는 이 세계에서 사는 것이 오히려 더 좋았다.
더 높이 노래 부르기
삶을 다시금 살 수가 있다면, 아니 삶을 다시 살아야만 한다면 삶에서 무엇을 바꾸고 싶을까? 스피노자는 후회는 두 번째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나는 똑같은 실수들과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 것이다. 나는 아주 행복했다. 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나는 회한에 잠긴다. 조금 더 잘하여야 했었다. 조금 더 즐겨야 했었다.
어쨌든 조금 더 높게 노래를 불러야 했었다. 조금 더 높게 말이다. 행복하다는 것은 얼마나 무미건조한 것인가! 샤토브리앙은 <죽음 저편의 회상>에서 이같이 쓰고 있다. “크고 자비하신 신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찮은 고통이나 비천한 행복들을 겪게 하려고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아닐 터이다!”
우리는 왜 이곳에 사는가? 두 가지 대답이 있는데, 첫 번째 대답은, 가능한 한 어떤 방법으로라도 존재의 기쁨을 최대한으로 누리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두 번째 대답은, 우리의 적들도 포함해서 모든 이들에게도 삶의 기쁨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모든 심리학이며 윤리학, 모든 다른 사상들 역시 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한 데 기인한다. 남들을 배려하는 것보다 자칭 에고이스트들, 자신의 자리를 배려하는 이들을 나는 훨씬 더 경계한다. 많은 고통과 많은 수고를 수반하여 얻어진 그들의 쾌락이 다른 이들에게까지 전파되고, 또 세상에 그 아름다움을 보태는 이들을 나는 존경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이름 하나를 붙이는데, 그 이름은 언제나 나를 미소 짓게 만든다. 그들은 예술가라고 불린다.
나는 보았다. 들었다. 세계를, 또한 내 집 주위를 산보하곤 했다. 좋은 책들을 읽었다. 때로는 우리 각자가 다 알다시피 비참한 현대인이 아침저녁으로 기도문처럼 읽는 신문들도 읽었다.
나의 길을 잘못 들어와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세 개의 신적인 존재가 있었다. 그 세가지는 의무와 일과 국가였다. 그런데 나는 불확실하고 변덕스러워 나 스스로가 내 앞길을 막는 장애물이었다. 다른 이들을 그들이 가진 침착함으로 인해 부러워하기도 했고, 미워하기도 했다.
타버린 재들과 같은 여정
비가 오는 날이나 한가한 날들이면 작가들의 생애에 관한 글들을 뒤적거리며 그들이 세상을 하직한 나이를 살펴볼 때가 있다. 미켈란젤로∙괴테∙위고∙톨스토이와 같은 아주 훌륭한 작가들은 운 좋게도 늙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단테∙셰익스피어∙발자크∙보를레르 같은 작가들은 혼신의 열정을 쏟다 탈진하여 쉰 살 무렵 죽음을 맞이하였다.
뒤 발레는 서른일곱에, 파스칼은 서른아홉에 세상을 떠났다. 나의 경우 더 오래 살았기 때문에 더 많은 책들을 썼다. 그 이유는 내가 일찍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면서 내가 걸어온 타버린 재들과 같은 여정을 자부심을 가지고 헤아릴 수 있다. 어쩌면 타는 불과 같은 여정이기도 하다. 그건 내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타버린 재들과 같은 여정이기도 하다. 그건 내가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똑똑한 바보
명문이라고 일컬을 만한 곳에서 나는 공부 했다. 내가 과연 공부를 좋아했던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공부는 나에게 알리바이를 제공했다는 점이 더 맞는 듯하다. 공부에 대해 특히 좋았던 점은, 내가 무엇보다도 두려워했던 현실세계에 들어가는 시간을 늦춰 준다는 점이었다.
먼저 역사학부터 시작했다. 미지의 세계에 들어간 알렉산더 대왕과 그의 그리스인 용사들, 자신의 양탄자에서 율리시스 카이사르의 발아래 엎드린 클레오파트라, 관용을 몰랐던 칭기즈 칸, 베네치아와 사마르칸트와 종교와 교역의 신비스러운 움직임, 스탈린과 트로츠키가 출연하는 역사는 나의 공상을 이어주는 모험들로 가득했다.
그렇지만 역사학에는 어느 정도 위험 부담 또한 있었다. 지리학이나 문헌학 법학 정치학 경제학으로 연결되어, 결국에는 내가 그렇듯 끈질기게 거부하던 그런 일하는 직종으로 빠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학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거기에는 생시몽류와 샤토브리앙류의 대귀족들과 비용류의 부량자들과 같은 인물들이 다양하게 섞여 있었고, 그것이 내게는 나쁘지 않았다. 거기서 열정들, 사랑, 절망, 아이러니와 방종의 취미와 큰 명예를 얻는 꿈을 다 돌아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언어가 있었다.
언어는 나를 행복하게 했다. 다른 사람들이 우표나 유리구슬을 수집하는 것처럼 나는 언어를 수집했다. 머리가 돌아 버릴 것 같은 말들도 있었고, 아주 재미난 말들도 있었다. 또한 걱정스러운 말들도 있었다. 철학이 나의 흥미를 끌었다. 철학은 다른 곳, 더 높은 곳에 있어서 내게 약간 겁을 먹게 했다. 철학이 내게 말해주는 이야기들을 모두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나는 경계심을 가지고 접근했다.
철학은 내게 많은 즐거움을 주었고, 그 아름다움으로 나를 황홀케 했으며, 희망으로 나를 취하게 했고, 깊이 감동시켰다. 적어도 철학으로 인해서 나는 낯설고 멀리 떨어진 곳에 가있었고, 거기서는 내가 혼란과 번민 속에서 멀리하고자 했던 너무도 익숙한 거리로 나를 되돌릴 지름길을 만날 위험이 없었다. 세상에는 똑똑한 바보들이 있다. 내가 그런 바보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에게, 또 남들에게도 들기 시작했다.
위대한 작가
위고는 중학교 시절부터 샤토브리앙이 되고 싶어 했다. 드골은 짧은 바지를 입었던 시절부터 침략자를 응징하고 조국을 구하는 글을 썼고, 알키비아데스는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늙은 소크라테스를 사랑했다. 나는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와 코르네유와 위고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났다. 서른 살 무렵에도 나는 거의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문학에 문외한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문학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몽테뉴와 파스칼∙보쉬에와 루소∙샤토브리앙의 단편들을 읽었었다. 게다가 호메르스와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의 시들도 읽었다. 그들의 작품 이외에 그 어떤 것이라도 새로이 쓴다는 것은 쓸데없고 불편한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 모두는 나와는 뭐랄까 또 다른 세계 속에 있었다.
나는 그들을 밖에서, 또 거리를 두고 바라다보았다. 나는 슬프게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들을 공부하며 그냥 지나치는 대신에 헛되이 갈망했고, 그들을 친구처럼 여겨 친밀한 가운데 함께 노닐곤 하였다. 위대한 작가는 3천 년을 군림한다. 많은 시간이다. 그리고 적은 시간이다.
막연하고 애매한 말이지만 첫 번째 위대한 작가는 호메로스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창업자적인 천재로서 베르길리우스부터 제임스조이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모방했으며, 그에 대한 찬사는 시대를 이어 경외감을 자아내며 계속되었다.
가장 최근의 위대한 작가는 5만여 명이 그의 묘지까지 수행한 사르트르였다. 그가 샤토브리앙의 무덤에 오줌을 갈긴 것은, 이미 그에게 다가가고 있는 문학의 영예를 그가 얼마나 탐탁지 않게 보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많은 이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왜 위대한 작가의 역할을 원치 않았을까?
그는 그 자신을 거부했던 위대한 작가의 이름에 아주 걸 맞는 간단한 표현으로 그 이유를 설명했다. “만약에 내가 불가능한 구원을 액세서리 점포에 둔다면 무엇이 남게 되는가? 모든 사람들로 이루어지고, 그 모든 사람들만 한 가치를 지니지만, 그 누구도 될 수 있는 한 사람일 것이다.”
시간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없다. 영원과 무가 있을 뿐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들은 시간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 것이고, 죽은 자들은 시간 너머로 나가게 된 것이다. 신이 있다면 그는 시간 너머에 있다. 시간을 떠나서 영원한 무 이외에 어떤 존재가 있다면 우리는 그 존재를 신이라 부른다.
우주를 축복한다.
내가 살아 있음을 기뻐한다.
용서
과장하지 말자. 자신이 한 것을 바로 보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평가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없다. 너무 높게도 너무 낮게도 아니고, 심하게 우쭐대지도 않고, 너무 과소평가하지도 않고 말이다. 과소평가하는 것은 또 다른 방식의 은근한 자기 자랑이다.
평범한 것, 진부하기까지 평범한 것이 두렵다. 신의 은총으로 나는 신경증까지 일으킬 정도로 강박적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이 글을 끝까지 쓸 수 있을까? 같은 생각들이 끊임없이 내게 떠오르고, 그 생각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나는 글을 써야만 한다.
용서를 향한 길은 고백을 통해 열린다. 감내할 수 없는 과거로부터 우리가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백은 과거를 지울 수는 없어도 과거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다. 그것은 나의 능력을 조금 넘어서는 신비이다.
자백, 소설, 회한, 정신분석, 고해, 회개와 같이 자기 자신과 과거로 인해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은 언어를 통해서이다.
분명한 사실조차도 시간이 지나면 변할 수 있는 것이므로 조심해야 한다. 사람들이나 사물들을 너무 높게 평가하지 마라. 또한 너무 낮게도 평가하지 마라. 올라가라. 증오심을 포기하라. 증오심은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보다 그 마음을 품은 사람들에게 더 큰 고통을 준다.
현명한 태도만을 꼭 지키려고 하지 마라. 광적인 열정도 현명한 것일 수 있다. 현명한 것도 광적인 열정일 수 있다. 규범이나 교훈을 피하라. 이 책을 버려라.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하라. 그리고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울어야 할 때는 울어라. 또 웃어야 할 때는 웃어라.
<‘살아있는 것이 행복하다’ P263 중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장 도르메송 지음, 김은경님 옮김, 동문선 출판> * 장 도르메송 : 1925년 부르주아 가문에서 태어났다. 고등사범학교에 입학, 철학사 학위 취득, 교수자격시험 합격 등 일찍부터 엘리트코스 자격증을 취득. 1974년 학술원의 최연소 회원으로 등극, <사랑은 기쁨>, <장의 집 쪽으로>,<제국의 영광>,<세계의 창조> 등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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