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이 살던 생폴드방스를 염두에 두고 쓴, 김춘수 선생의 시<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입니다.
샤갈의 마을에는 3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던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 같은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마르크 샤갈의 본명은 ‘모이세 세갈’입니다. 그는 유대인입니다. 샤갈의 생애는 유대인의 혼을 떼어놓고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는 유대인 촌락 공동체 게토 슈테틀의 전통에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를 몽상의 은유작가로 만들었습니다.
샤갈의 가족들은 석유 등잔불이 밤을 밝히는 거실에 모여 식사를 했습니다. 벽에는 괘종시계가 걸려 느릿느릿 흘러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 풍경이 샤갈의 1909년 작<안식일>이라는 유화에 그대로 표현됩니다.
1906년 샤갈은 가난에 시달리던 부친을 위해 사진관에서 일을 하다가 러시아로 갑니다. 거기서 예술가들을 후원했던 골드베르크 변호사를 만납니다. 그 덕분에 샤갈은 예술원 부속 왕립미술학교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샤갈은 1941년부터 7년간 미국에 체류했습니다. 나치를 피하기 위해서였지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파괴성은 혁명과 전쟁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을 떠돌았지만 그는 평생 고향을 그리워했습니다.
그의 반려자는 1944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갑자기 사망하자 샤갈은 우울증에 빠집니다. 1952년 발렌티나 브로드스키와 재혼합니다. 샤갈이 평생 열정을 가진 대상은 성서였습니다. 그는 1950년부터 성서 속의 삽화를 그리는데 69세에 시작한 작업이 81세가 되어서야 끝나게 됩니다.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이 그린 ‘낙원’(1961)에는 하느님의 여러 창조물이 등장한다. 화가는 낙원을 표현하기 위해 에덴동산에 있는 다양한 소재를 한 자리에 모았다. 에덴동산과 아름다운 꽃, 그 안에서 사랑을 나누는 아담과 하와, 사람과 그들을 축복하는 천사, 하늘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 온갖 동물이 서로 평화로우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운 푸른색과 녹색은 낙원 전체에 하느님의 생명이 충만함을 드러낸다. 창세기는 에덴동산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샤갈은 즈반체바 미술학교에도 다녔습니다. 그리고 1910년 처음 파리로 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모딜리아니, 수틴, 아르펭코, 레제 같은 젊은 예술가들을 만납니다. 이때의 교류가 인상 깊었는지 샤갈은 “파리야말로 나의 예술과 인생의 진정한 배움터”라는 말을 남깁니다.
샤갈의 활동 폭은 넓었지요. 회화뿐 아니라 스테인드글라스 ∙도자기 ∙ 판화 ∙ 벽화에서도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첫 개인전을 1차 세계대전 직전 베를린에서 열었습니다.
샤갈은 피카소와 함께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로 꼽힙니다. 1977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생존화가로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작품이 걸리는 영광도 맛보았습니다.
그는 1985년 97세로 사망할 때까지 마지막 20년을 생폴드방스에서 살았습니다. 난해하기 그지없는 초현실주의로 불린 자기 작품에 대해 그는 “그것은 비이성적 꿈이 아니라 실체의 추억을 그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샤갈의 그림에는 동물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동물은 인간과 동등한 존재입니다. 초록색 염소는 러시아에서 살아가는 유대인 가정, 비둘기는 연인, 안개꽃은 평화, 소는 고향을 표현하는 상징으로 쓰입니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나와 마을>에도 상징이 가득합니다. 염소 젖 짜는 여인은 자기 아내가 될 사람이 자신과 가족을 위해 젖을 짜는 장면을 암시하지요. 그림 아랫부분의 생명나무는 여인에게 영원히 헤어지지 말자는 프러포즈로, 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가 따 먹은 선악과가 달린 생명나무를 염두에 둔 것이며, 윗부분의 교회는 여인과 결혼식을 올릴 거라는 뜻입니다.
여인이 거꾸로 매달린 장면은 하루 종일 마음 졸이며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의 심정을 보여주며, 낫을 든 남자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행복감의 표현이고, 검은 색은 죽음의 뉘앙스가 아니라 밤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샤갈이 살았던 생폴드방스는 정말 프로방스적 색채가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언덕을 한참 올라가면 마그 재단 미술관이 나오고 오른편으로 중세 성곽에 둘러싸인 마을이 시작됩니다.
생폴드방스는 마을 전체가 샤갈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진품은 없지만 도로 표지판이나 게시판이나 샤갈 그림이 빠짐없이 들어가 있고, 후배 예술가들이 앞다투어 마을 곳곳에 자기 작품을 헌정했습니다.
“인생이나 예술이나 모든 것은 변한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입 밖에 낸다면∙∙∙∙.
진실한 예술은 사랑 안에서만 존재한다.“ -마르크 샤갈
<‘여행자의 인문학’ P269 중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글 문갑식님, 다산출판>
*문갑식 : 연세대 졸업. 영국 옥스퍼드대 울프손칼리지에서 방문교수.
1988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지금은 선임기자로 재직 중이다. ‘문갑식의 세상읽기’,‘문갑식이 간다’등을 연재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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