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인 아모 할머니는 이혼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시면서, 쉰이 넘은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증인이 되어 달라고 하셨다. 소식을 접한 아들은 곧장 집으로 내려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고 싶었다. 아들은 어머니가 평생 말 못 할 고생을 하며 참고 사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 이혼하시겠다면 저도 물론 응원해드릴 거예요. 하지만 지금 여든이 넘으셨잖아요. 어째서 지금 와서 이혼을 하시겠다는 거예요? 이혼 서류에 서명을 하든 말든 어차피 사시는 건 똑 같잖아요.” 아모 할머니는 평온하게 말씀하셨다.
“네 말 무슨 뜻인지 안다. 어쨌든 나이 먹을 만큼 먹었고 살날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이혼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냐?” 어머니가 속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걸 깨달은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준비해 오신 듯한 아모 할머니의 표정은 평온했다. 할머니는 아들에게 천천히 말씀하셨다. “바로 그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에 이혼하기로 한 거야. 죽어서도 이 집안 선산에 묻히고 싶지는 않구나.”
어려서 민며느리로 집안에 들어온 아모 할머니는 어린 시절 온갖 구박을 당하며 살았다. 겨울에도 온 가족의 옷을 다 빨아야 했고, 임신을 하고 나서도 무거운 짐을 들고, 장작을 패서 불을 때고 물을 끓여야 했다.
나중에 공장에 취직해서 번 돈도 전부 시집에서 가져갔다. 할머니는 그래도 결혼한 지 수십 년 된 남편이 내 편 한 번 들어 준 적이 없다는 게 제일 섭섭했다. 이전에 몸이 편치 않을 때도 남편이 위로 한마디 건넨 적이 없었다. 아이만 크면 이 집안과 관계를 끊겠다고 속으로 결심한 지 오래였다. 아모 할머니는 이제 때가 되었다는 생각에, 이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다.
높아지는 황혼 이혼 비율
타이완의 인구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부터 성별에 관계없이 65세 이상 인구의 이혼 수치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중에서도 노인 여성의 이혼률 증가 추세가 뚜렷하다. 1994년부터 2014년까지 20년 동안 이혼한 부부 수가 네 배 폭증한 것으로 나왔다.
일흔 넘은 쿠차 할머니가 따님과 함께 진료실을 찾으셨다. 할머니는 스무 살 넘어 남편과 결혼 한 뒤 50년 동안 남편이 습관적으로 외도를 해 왔다고, 한 번도 그친 적이 없다고 하소연하셨다.
할머니는 훤칠한 남편이 젊어서 좀 방탕하게 사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를 위해서 기꺼이 참으며 집안을 돌보셨다. 시부모 봉양도 모두 할머니 몫이었다. 할머니는 남편이 나이 들어 놀 만큼 놀고 나면 마음을 고쳐먹기를, 본인과 함께 여생을 보내고 싶어 하기를 간절히 바라셨다.
그러다 몇 개월 전, 넘어져서 다리뼈가 부러진 남편이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하고 치료를 받았다. 쿠차 할머니는 탕을 고아서 가져가고 과일을 준비해 매일같이 병문안을 하러 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짧은 몇 주 사이에 남편이 병실 간병을 위해 부른 쉰 넘은 간병인과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고 말았다.
다친 다리가 이제 겨우 다 나았건만 남편은 간병인과 여기저기 바깥 여행을 다녔고, 몇 날 며칠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밖에서 다른 친척과 마주치는 바람에 이 일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할머니는 눈물을 떨구며 말씀하셨다.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이제는 마음을 접어야겠지.” 앞으로도 남편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샤 할머니는 사실 할아버지와 사이가 좋지는 않다. 하지만 남편은 담배도 피우지 않고, 도박도 하지 않고, 직업도 멀쩡해서 부부가 서로 손님 대하듯 존중하며 그렇게 살아왔다. 두 사람은 자녀 셋을 낳아 키웠는데, 다들 일찌감치 가정을 이뤘고 지금은 두 사람과 함께 살지 않는다.
남편은 퇴직 당시까지만 해도 일상적인 일을 알아서 처리할 정도로 꽤 건강하신 편이었다. 그런데 반년 전 대장암 진단을 받고 말았다. 자식들에게 부담을 줄까 염려한 아샤 할머니는 입원과 수술, 이후의 항암 치료까지 전 과정을 남편 곁을 지키며 돌봐 주었다.
그런데 치료가 일단락된 시점에, 아샤 할머니가 이혼을 요구하고 나셨다. 깜짝 놀란 자식들에게 할머니는 똑똑히 말씀하셨다. “정말이지 더는 네 아버지와 함께 못 살겠어 그런다. 나는 그래도 몇 십 년 같이 산 의리를 봐서 자발적으로 돌봐 준 건데, 네 아버지는 내가 기울인 노력에 고마워하는 법이 없어.
내가 돌봐 줘도 까다롭게 트집이나 잡고, 툭하면 성질을 부리고, 밥이며 반찬이며 힘들게 해 줘도 죄다마다하고, 앞으로도 돌봐주고 기저귀 갈아 주고 휠체어 밀어 줘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렇게 계속 지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는 구나. 이제는 네 아버지도 병세가 안정되었고, 나도 해야 할 도리를 할 만큼 다 했다. 더는 네 아버지와 살고 싶은 마음 없어.“
늦게 배운 도둑 시간 가는 줄 모른다더니
십 수 년을 공무원으로 지낸 왕씨 할아버지는 융통성이라고는 없이 단조로운 삶을 살아왔다.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에게는 몇 살 아래인 아내가 있고, 두 사람 사이에는 외동딸이 하나 있다. 반년 전, 왕 씨 할아버지는 우연히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예순이 넘은 주 씨 할머니를 알게 되었다. 남편을 여읜 할머니는 활발한 성격에 대인 관계도 좋고 꾸미고 나오면 단아하고 맵시도 고와 왕 씨 할아버지 눈길을 사로잡았다.
할아버지는 주 씨 할머니에게서 제2의 청춘이라도 찾은 듯, 거의 매주 할머니와 약속을 잡고 놀러 다니거나 노래를 부르러 다녔다. 친구들도 할아버지가 딴 사람이 되었음을 알아차렸다. 한 번도 그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그렇게 편안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할아버지는 용기를 내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이혼하고 싶다고 밝혔다. 세상에서 제일 아끼는 외동딸이 극구 말리며 마음을 고쳐먹으시라고 권해도 할아버지는 꿈쩍도 하지 않으셨다. 마지막 담판에서 할아버지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지만, 이혼하겠다는 마음은 굽히지 않으셨다.
왕씨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평생 좋은 남편으로, 좋은 아버지로 살았으니 이제 나 자신을 위해 한번 살아야겠구나.”
늘그막에라도 ‘나’로 살고 싶다.
자녀가 경제적으로 독립했거나 부모를 지원해 주고 있다면 노인들도 자신의 마지막 인생 여정을 위한 계획을 세우지 시작한다. 특히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이 마지막 여정이 20년, 30년이 될지도 모르게 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충동적으로 헤어지는 일이 잦은 젊은이들과 달리, 나이가 들어서 이혼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풍부한 인생 경험을 쌓은 뒤에, 결혼의 여러 측면을 두루두루 지켜보고, 결혼에 대한 전통적인 기대와 삶에 대한 자신의 생각 사이에서 오랫동안 모순을 겪으며 몸부림치다가, 결국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을 때 용감하게 안녕을 고하는 경우가 많다.
자녀가 이혼의 촉매제가 되다
이미 성인이 된 자녀는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충격을 상대적으로 덜 받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인생 경험이 쌓이면서 결혼 생활의 고통과 행복을 모두 느껴 본 까닭에, 어떤 때는 도리어 부모의 이혼에 ‘촉매제나 조력자’역할을 하기도 한다.
자녀들도 부모가 어떻게 함께 지내는지 오랫동안 다 보아 온 터다. 특히 가정폭력, 외도, 폭음 등등의 문제는 더 그렇다. 많은 자녀가 이제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거나 적당한 시기가 되었다는 판단이 서면, 심지어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드릴 테니 헤어지시라고 강하게 권하기도 한다.
자식들은 대부분 부모가 신변 안전을 보장받으면서 살 수 있기를, 양친 사이의 충돌이 잦아들기를, 혹은 부모가 조금이라도 더 즐겁게 사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일을 감행한다.
황혼 이혼 이후의 양대 난제
황혼 이혼에 정말 좋은 점만 있을까? 타이완보다 고령 인구가 훨씬 많은 일본에서는 이미 경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황혼 이혼으로 부부가 ‘다 같이 망하는’ 결과를 초래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일본에서는 이혼을 원하는 노인들에게 일단 계산기를 정확히 두드려 보라고, 이혼 서류에 서명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당부한다.
경제적인 현실, 이게 바로 황혼 이혼의 첫 번째 난제이다. 이는 주로 이혼의 위험성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일흔, 여든이 넘은 여성들은 그 시대의 분위기 때문에 결혼 후 대부분 가정주부로 살아온 탓에 일해서 번 수입이 없다.
경제권을 쥐고 있지 않거나 자기 이름으로 된 자산이 없으면, 이혼할 때 위자료를 받지 못하면, 경제적인 압박은 심각해진다. 이혼 이후 가난해지는 현상이 빚어지면서, 일본인들은 이혼도 ‘하류 노인’으로 전락하게 되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고 보게 되었다.
두 번째 난제는 돌봄 문제이다. 나이가 들면, 지금은 그럭저럭 건강하고 정정해도 앞으로 병에 걸리지 않을 거라고, 다른 이의 돌봄이 필요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기가 어려워진다. 이혼하면, 부부 관계는 사라진다. 하지만 자녀 입장에서는 그래도 양쪽 다 자신의 부모이다.
따로 떨어져 사는 부모가 양쪽 모두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자녀가 감당해야 할 정신적, 금전적 부담은 몇 배로 가중된다. 이 두 난제가 현실이 되어 눈앞에 나타나면 이혼을 하고 나서도 함께 살거나, 이혼을 하고 여러 해가 지난 뒤 자식에게 부탁을 받고 투병 중인 전처나 전남편을 돌보는 데 동의하는 등 특수한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프다면서 병원에 가지 않으시고‘ P319중 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차이자펀지음, 우디님 옮김,
* 차이자펀 : 미국 서먼캘리포니아대학 알츠하이머연구센터 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타이베이룽민쭝병원 노년정신과 과장, 국립 양민자오퉁대학 의과대학 조교수. <고귀함을 잃지 않는 삶>, <제가 당신을 사랑했다는 기억하시나요>, <오늘은 약 처방이 없습니다: 의사가 알려주는 치매 예방법>등 다수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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