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막 결혼은 곧 전쟁
패두어의 부호 뱁티스터에게는 캐서리나와 비앙카라는 과년한 두 딸이 있어 이들을 나이순으로 결혼시키려 하는데 여의치가 않다. 얌전한 둘째딸 비앙카에게는 구혼자가 줄을 서는 반면 말괄량이로 소문난 맏딸 캐서리나의 경우에는 어떤 남자도 접근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마침 결혼도 하고 돈도 벌 목적으로 패두어에 나타난 페트루치오가 말괄량이 캐서리나보다 한술 더 뜨는 말괄량이 작전을 펴서 전격적으로 결혼식을 올린 다음, 밥을 굶기고 잠을 재우지 않고 온갖 생트집을 잡는 등 말괄량이 캐서리나의 기를 꺾어 철저하게 순종하는 아내로 길들이고자 한다. 마침내 비앙카와 루첸티오의 결혼식 피로연에 참가한 페트루치오와 캐서리나 일행은 가장 순종하는 아내에게 돈을 거는 내기에서 멋드러지게 기적을 연출하여 연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데…(요약)
부호 뱁티스터와 그의 두 딸 캐서리나와 비앙카, 그리고 비앙카의 구혼자들인 그레미오와 호텐쇼 일행이 벌이는 실랑이다. 당장이라도 혼사를 치르고 싶어하는 둘째딸 비앙카의 구혼자들에게 뱁티스터는 이렇게 말한다.
“두 분은 제발 그만 조르시오. 아시다시피 내 결심은 요지부동입니다. 글쎄 맏딸을 시집보내기 전에는 절대로 둘째딸을 줄 수가 없소. 만약 두 분께서 캐서리나를 좋아하신다면, 사양 마시고 제발 그 애와 직접 담판해보시구려.”
그레미오와 호텐쇼가 서로에게 캐서리나를 떠넘기려 하면서 평생 시집도 못갈 여자로 캐서니라를 조롱하자, 그녀는 울분을 터뜨린다.
“누가 당신들더러 내 시집걱정 해달라고 했나요? 난 결혼할 생각이 추호도 없어요. 하지만 만약 결혼을 하는 날엔 세 발 달린 의자로 당신네 머리털을 빗질해주고, 당신네 얼굴은 생채기를 낸 피로 화장시켜 광대 상판때기로 만들어줄 테야.”
반면 뱁티스터의 편애를 받는 비앙카는 “아버님, 저는 아버님 분부대로 하겠어요. 이제부터는 책과 악기를 벗삼아 홀로 공부에만 전념하겠어요”라고 말함으로써 말괄량이 캐서리나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그레미오는 “뱁티스터씨, 저런 지옥의 마녀 때문에 작은 따님을 가두어두고, 언니의 독설의 대가를 동생이 치르게 할 작정이십니까?”라고 말하며 뱁티스터의 마음을 돌려보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대신 뱁티스터는 두 구혼자에게 음악과 시를 좋아하는 비앙카에게 적당한 가정교사를 추천해달라고 말하고 비앙카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가버린다. 뒤에 남은 그레미오와 호텐쇼는 비앙카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무슨 수를 쓰든 적당한 가정교사를 찾아 추천하기로 작정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 경쟁자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비앙카와 결혼하려면 언니 캐서리나의 신랑감을 찾아주는 것이 절대적으로 급선무이니 이점에 서로 협력하자는 호텐쇼의 제안에 그레미오도 동의한다.
지금까지의 광경을 지켜본 루첸티오는 한눈에 얌전하고 온순한 비앙카에게 반해 열렬한 사랑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비앙카에게 접근할 방도를 찾아내겠다고 골똘히 생각하더니, 자신이 비앙카의 가정교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루첸티오는 영리한 하인 트라니오를 자기 대신에 루첸티오 역을 맡도록 시키고 자신은 트라니오 역을 자청하여 주인과 하인 역을 뒤바꾸는 시도를 한 다음, 루첸티오 역의 트라니오에게도 비앙카의 구혼자의 한 사람이 되도록 지시한다.
베로나 출신의 페트루치오가 패두어에 사는 친구 호텐쇼를 찾아온다. 호텐쇼가 패두어에 온 동기를 묻자, 페트루치오는 아버지 안토니오가 돌아가시고 난 뒤 아내도 얻고 돈도 벌 속셈으로 패두어에 왔노라고 대답한다. 이에 호텐쇼는 페트루치오를 은근히 떠본다.
“페트루치오, 그렇다면 까놓고 할 얘기가 있네. 자네 못 생긴 말괄량이를 아내로 맞아보지 않겠나? 달갑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 여자가 돈이 많다는 건 보증하네. 아주 큰 부잘세. 그야 물론 소중한 친구인 자네에게 그런 여자를 권하고 싶지는 않네만.”
“여보게, 우리 친구 사이에 빈말은 그만두세. 아무튼 충분한 재산만 있다면 됐네. 그녀가 저 플로렌티어스의 애인처럼 박색이라 해도, 예언녀 시빌 같은 할망구라 해도,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처럼 고약한 바가지쟁이라 해도 상관없네. 부자 마누라를 얻으려고 패두어에 온 내가 아닌가. 돈만 생긴다면야, 패두어는 천당이지 뭔가.”
제2막 말괄량이를 위한 맞불작전
회초리를 들고 등장한 캐서리나가 비앙카를 때리며 구혼자들 가운데 누가 마음에 드는지 말하라고 으름장을 놓는 소동이 벌어진다. 그러자 뱁티스터가 나타나 왜 가만히 있는 비앙카를 괴롭히느냐고 캐서리나를 나무라는데, 그렇게 동생을 두둔하는 아버지에게 캐서리나는 이렇게 분통을 터뜨리며 뛰어나간다.
“좋아요, 알았어요. 저앤 아버지의 보물이니까. 어서 신랑을 얻어주시죠. 저애 결혼식 날 난 맨발로 춤을 춰야겠죠. 아버지가 저애만 귀여워하시니까. 난 처녀귀신 팔자대로 원숭이들이나 끌구 지옥으로 가는 거죠 뭐. 이제 말도 하기 싫어요. 혼자 외롭게 앉아 울기밖에 더 하겠어요. 이 분이 풀릴 때까지.”
마침내 페트루치오와 캐서리나의 첫 대면. 예상대로 팽팽한 재치의 공방전이 벌어지고 어느 한쪽도 쉽사리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그렇지만 결국 페트루치오는 캐서리나를 주춤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 모든 한담일랑 집어치우고 내 분명히 말하리다. 당신 아버지가 벌써 내게 당신을 준다고 승낙을 하셨소. 당신 지참금도 합의하고 말이오. 그러니 당신이 좋든 싫든 난 당신과 결혼할 것이오...... 나는 당신을 길들이기 위해 태어난 사내, 들고양이를 온순한 집고양이로 바꾸듯 당신을 얌전한 케이트로 만들어놓고 말겠소.”
제3막 미치광이 결혼식
리치오로 변장하고 류트를 든 호텐쇼와 캠비오로 변장한 루첸티오가 비앙카를 서로 먼저 가르치겠다고 실랑이를 벌인다. 이에 두 가정교사 사이에 끼여들며 비앙카는 단호하게 말한다.
“아니, 신사분들, 제게 선택할 권리가 있는 것을 가지고 다투시다니 이중으로 잘못하시는 거예요. 저는 학교에 다니며 매를 맞는 어린애가 아니라구요. 정해진 시간표에 얽매여 꼬박꼬박 시간을 지키는 건 싫어요. 뭘 배우든 제 마음대로 하겠단 말예요.” 루첸티오는 라틴어 번역을 해주는 척하면서 자신의 신분과 가정교사로 변장한 목적을 비앙카에게 알린다. 호텐쇼 역시 비앙카에게 음계를 가르쳐주는 척하면서 자신의 열렬한 사랑을 고백한다. 비앙카와 루첸티오가 먼저 퇴장하자, 호텐쇼는 루첸티오의 눈치가 수상하니 잘 지켜봐야겠다고 말하면서 만일 비앙카가 엉터리 사기꾼에게 마음을 뺏길 정도의 여자라면 자신은 다른 여자를 찾을 거라고 말하며 퇴장한다.
페트루치오와 캐서리나의 결혼식. 뱁티스터, 그레미오, 루첸티오로 변장한 트라니오, 캠비오로 변장한 루첸티오, 신부 옷차림의 캐서리나, 비앵커, 하인들, 그 밖의 군중들이 신랑 페트루치오를 기다리고 있다. 예식 시간에 맞춰 신랑이 나타나지 않아 애간장이 타는 신부 캐서리나는 망신살이 뻗쳤다며 울상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캐서리나가 피로연이 끝날 때까지만 머물자고 간청해도 페트루치오는 조금도 그 말에 듣는 척도 안한다. 마침내 캐서리나는 화가 났다.
“흥, 그럼 마음대로 하세요. 난 오늘 안가요. 아니 내일도 안가요, 마음이 내킬 때까진.”
“이봐, 오만하게 굴지마. 노려보지도 발을 동동 구르지도 안달하지도 마. 내 소유물에 대해서는 내가 주인이 아니냐 말야. 이 여자는 내 재산이요, 동산이요, 집이요, 내 살림도구요, 전답이요, 곳간이요, 내 말이요, 소요, 당나귀요, 아무튼 내 물건. 여기 내 여자가 이렇게 있소. 누구든지 감히 손만 대봐라. 내 길을 막는 오만한 자에 대해서는 행동으로 내가 맛을 보여줄 테다.”
이렇게 대꾸한 페트루치오는 캐서리나를 안고 퇴장해버린다. 남은 사람들은 미치광이 결혼식에 어리둥절해하면서 결혼피로연으로 향한다.
제4막 당신이 달이라고 말하신다면…
저녁으로 가져온 음식들을 고기가 너무 탔네 어쩌구 하면서 내동댕이친 뒤 페트루치오는 캐서리나를 신방으로 안내한다. 그리고는 다시 무대에 나타나 자신의 말괄량이 아내 길들이기 방법을 설명하는 긴 독백을 늘어놓는다.
“난 이처럼 교묘하게 남편으로서의 지배권을 확립했지. 내 매는 지금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일 게다. 그러나 못참고 애걸복걸할 때까지 아무것도 먹이지 말아야지. 배가 부르면 길들이기가 힘들거든. 또 한가지 야생매를 길들이는 방법이 있지. 그건 잠을 못자게 하는 거야. 사납게 날개를 퍼덕이는 암팡지고 말 안듣는 매에겐 이 수가 최고지. 그리고 아까 양고기를 갖고 트집잡았던 것처럼 잠자리에 대해서 생트집을 잡는 거야. 베개는 저리, 이불은 이리, 시트는 저리, 닥치는 대로 내던질 테다. 그런데 이런 소동도 죄다 아내를 끔찍하게 위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처럼 해야 된단 말씀야. 바로 이것이 친절로써 마누라를 잡는 방법이라구. 이렇게 해서 그 미치광이같은 고집불통 기질을 꺾는 거라구.”
음식과 마찬가지로 모자와 옷을 권했다 뺏었다 하며 페트루치오가 캐서리나를 꼭두각시처럼 취급하고 놀리자 마침내 그녀는 분통을 터뜨린다.
“내 혀는 마음속의 울분을 말할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참다 못한 내 가슴이 터져버릴 테니. 그렇게 되기 전에 속 시원하게 실컷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말겠어요.”
하지만 페트루치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재단사에게 호통을 치면서 기세를 잡은 다음, 캐서리나에게 친정집에 데리고 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하인들에게 준비를 시킨다.
루첸티오와 비앙카의 결혼식 피로연장에 하객들 모두가 모이자 루첸티오가 축하연설을 한다. 곧 이어 페트루치오, 루첸티오, 호텐쇼는 캐서리나, 비앙카, 과부, 이 세 아내 중에 누가 가장 순종하는 아내인가를 가리는 돈내기가 벌어진다. 비앙카와 과부는 하인이 부르러 가도 나타나지 않는데, 놀랍게도 말괄량이라고 내내 놀림감이 됐던 캐서리나만이 남편의 명령에 따라줌으로써 페트루치오가 이기게 된다. 뱁티스타는 큰딸이 딴 사람이 되었으니 지참금도 새로 2만 크라운을 더해주겠노라고 한다.
제5막 기적을 칭송하라
캐서리나의 변모는 그뿐이 아니다. 그녀는 남편이 시키는 대로 비앙카와 과부를 데리고 돌아와서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무를 가르치는 일장연설로써 좌중을 압도한다. 캐서리나는 설교한다.
“당신의 남편은 당신의 영주요, 생명이요, 보호자요, 당신의 머리이며, 당신의 군주이십니다. 당신을 아끼고, 당신을 먹여살리기 위해 몸을 바쳐 바다에서나 육지에서나 힘든 노동을 마다하지 않고, 폭풍우가 치는 밤이나 혹한의 낮을 지켜주시니 당신들은 집에서 안심하고 아늑하게 지내잖아요. 그러고도 다른 선물은 원하지도 않고, 다만 사랑과 고운 낮과 진실한 순종밖에 바라지 않지요. 그렇게 큰 빚에 비하면 지불하는 대가는 너무 하찮죠. 신하가 군주에게 진 의무, 바로 그것이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무라고 하겠어요.”
이 연설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들 놀라운 기적이라 칭송하고, 의기양양한 페트루치오와 캐서리나가 잠자리에 들기 위해 퇴장하며 극은 끝이 난다.
물질주의적이고 강압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서 캐서리나는 남편에게 길든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신 ‘복종을 통한 지배’를 꿈꾸었을 수도 있다. 페트루치오가 말괄량이 그녀를 ‘한술 더 뜨기 말괄량이 길들이기 작전’으로 길들였다면, 이번에는 그녀 편에서 ‘한술 더 뜨기 순종작전’으로 남편을 길들이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렇다면 캐서리나는 남편에게 길들어줌으로써 가부장제적 질서를 완전히 내면화하거나 혹은 가부장제적 질서의 참담한 희생자로 전락하기를 거부하고, 순종적인 아내의 역할을 통해 남편을 길들일 수도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는 지혜로운 여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말괄량이 길들이기(The Taming of the Shrew)”에서 일부 요약 발췌,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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