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선이냐?
어느 시어머니가 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며느리가 촌스럽고 예의 없다고 생각해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교양이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지요. 그런데 차츰 며느리를 좋아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어머니에게서 외견 상 변화를 찾을 수 없습니다.
좋아하기 전이나 후나 그의 외적 행동이나 사르트르가 말하는 실존적 선택에는 변화가 없으니까요. 머독은 이 이야기를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자신의 편견에서 스스로 해방하는 과정으로 해석합니다. 머독에 따르면, 며느리를 제대로 인식하는 도덕적으로 더 올바른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주관적 관점과 편견으로 인식을 흐리지 않고,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지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시어머니는 현실을 더 잘 볼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머독에게는 관심이 가장 중요한 도덕적 가치입니다. 면밀하게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주관성을 넘어서는 보편성을 발견하는 거니까요. 아이리스 머독은 20세기 철학자 가운데 플라톤을 비롯한 고대 그리스 철학으로 눈을 돌린 몇 안 되는 사람입니다. 머독이 플라톤의 철학에서 발견한 것은 우리의 경험 너머에 진짜 현실이 있다는 인식과 선을 추구하는 힘입니다.
우리는 딜레마 상황에 처했을 때, 공평과 진실의 가치를 보다 더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어떤 것을 좋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이 정말 선한지 꼭 살펴야 합니다. 선은 정의상 늘 선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선한지 묻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머독에 따르면 인간으로서 우리는 선 그 자체는 정의하거나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사고의 경계를 넘어서기 때문이지요.
진정한 사랑이란?
요즘 들어 신조처럼 여겨지는 사랑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들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랑의 개념을 우리 자신과의 관계에만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머독에 따르면, 우리는 엄밀한 의미에서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니까요.
사랑하는 것은 자기로부터 벗어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에게 관심을 갖는 것, 그럼으로써 다른 누군가에게 자기 자신을 내주는 일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스스로를 내줄 수 없습니다. 머독은 사랑이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전제로 한다고 말합니다.
성적인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우리는 자위행위를 할 수도 있지만, 그때에도 보통 상상의 타자가 있지요. 사랑은 우리에게 성적인 의미의 사랑을 포함해서, 늘 우리 자신을 넘어서기를 요구합니다. 자기계발서에서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행복을 얻거나 자존감을 개선해서, 결국 다른 사람이 우리를 사랑하도록 만드는 수단으로 여깁니다. 그건 도구적 사랑이지요. 이런 생각은 사랑을 맞교환 관계로, 일종의 거래로 만들어 버립니다.
머독은 사랑을 말할 때 느낌이 아닌 깨달음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사랑은 특정한 감정이나 느낌만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그렇게만 설명한다면,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너무나도 가볍고 가변적인 것이 됩니다. 사랑은 그렇게 정의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사랑을 자기애를 넘어 지속적인 관심을 다른 이에게 꾸준히 쏟는 것으로 여겨야만 합니다. 그래야 사랑이 의미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머독은 왜 사랑이 무척 어려운 깨달음이라고 했을까요? 우리가 갈수록 자기 자신에게 매몰되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그저 순간순간의 감정에 불과하다는 말은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광범위한 도구화 현상과도 너무 잘 연결됩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다른 사람은 오직 나에게 이득이 될 때에만, 긍정적인 감정을 줄 수 있을 때에만 소중하게 여겨지지요. 사랑하는 사람 역시 그저 개인적인 행복을 얻기 위한 도구가 될 테고요. 저명한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각자의 경험을 강화하고 향상시키는” 한에서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거동도 못할 정도로 심하게 아파서 그를 하루 종일 돌봐야만 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일이 더 이상 나의 만족과 향상을 보장해줄 수 없다면요? 머독의 메시지는 사랑이 단지 주관적인 느낌이 아니라 우리 바깥에 존재하는 무언가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는 과정 그 자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굳이 우리 자신을 사랑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니까요.
사랑은 도구화되는 순간 그 의미를 상실합니다. 사랑은 오직 이런 것입니다. “널 사랑해, 이상! I love you, period.” 댄 베어드가 노래한 것처럼 무조건적이지요. 우리가 도구화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사랑의 진짜 의미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 말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철학이 필요한 순간’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님 옮김, 다산초당출판>
* 스벤 브링크만 : 덴마크 오르후스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철학과 심리학 전공했고 현재 알보그대학교 심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아이리스 머독 : 아일랜드 출신으로,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철학 공부, 1948년 옥스퍼드대학교 선임연구원, 1960년 전업작가. 주요 저서는 <도덕지침으로서의 형이상학> 등. 1954~1995년까지 25권 넘는 소설을 씀. 2001년 그의 생애를 다룬 영화 <아이리스>로도 이름을 알림. 지혜로우면서도 아름다운 글을 쓰는 철학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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