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마키아벨리 <군주론>

[중산] 2017. 8. 9. 18:25

 

군주는 돈 때문에 경멸당하는 게 좋은가, 아니면 증오를 사는 게 좋은가? 경멸당하는 상황에 처하면 경쟁자인 귀족에게 권력을 빼앗길 수 있고, 증오 받는 성황에 처하면 경쟁자인 인민에게 권력을 박탈당할 수 있다. 어느 것도 옳지 않다. 결국 권력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좋은가? 마키아벨리는 군주라면 낭비하지 않는 구두쇠가 되는 것이 좋다고 결론을 내린다. 군주가 낭비하지 않으면 시혜를 베풀 재산이 있으므로 경쟁 관계에 있는 자들한테 경멸받을 일도 없고, 인민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지 않아도 되기에 증오 받을 일도 없기 때문이다.

 

군주가 낭비하는 돈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돈은 귀족에게 또는 인민을 수탈하든 결국은 최종생산자인 인민에서 나온다. 추가 세금을 적게 걷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국고를 사적 욕망과 쾌락을 채우는 데에 사용 하지 않아야 한다. 예컨대 자신의 성적 쾌락을 채우려고 여성에게 지나친 돈을 쓰거나 자신이 권력을 잡는 데에 도움을 준 자들에게 지나치게 나눠주지 않으면 된다.

 

군주는 활수*함을 자랑하다 군주의 자리를 잃을 것인가, 아니면 인색하다는 평을 들어도 군주의 지위를 계속 유지할 곳인가? 전자를 선택하는 군주는 당연히 망한다. 왜냐하면 돈과 자원낭비의 악순환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 순환은 다음과 같다.

 

재원확보--> 자기 과시적 낭비-->재원부족-->인민에게 지나친 세금 부과-->인민 수탈-->재원확보--> 자기 과시적 낭비~

 

활수는 활수 그 자체를 파괴한다. 활수는 이 두 가지 다 당신에게 가져다줍니다. 따라서 ‘강탈자’라는 별명을 불러오는 ‘아낌없이 돈 쓰는 자’라는 명칭 보다는 ‘구두쇠’라는 칭호를 얻는 것이 훨씬 현명합니다.

왜냐하면 돈을 ‘아낌없이 돈 쓰는 자’는 증오를 동반하는 비난을 부르지만, ‘구두쇠’는 증오를 동반하지 않는 비난을 부르기 때문이다.

 

당신이 활수하다면 당신은 활수를 행할 수 있는 권력을 잃게 되고, 가난해져서 경멸받거나 빈곤을 벗어나려고 인색해지다가 증오를 사기 때문입니다. 현명한 군주가 피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위험은 경멸과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 활수 : 사전적의미로 돈이나 물건을 아끼지 않고 시원스럽게 쓰는 씀씀이나 그런 사람을 뜻한다. 이 점에서 활수는 주로 물질적으로 베풀기 좋아하는 사람을 뜻한다.

마키아벨리는 16장에서 군주가 물질적으로 베풀거나 낭비하는 경우 어떻게 되는가를 다룬다.따라서 여기서는 Liberality를 활수로 역하는 것이 적당하다.

 

** 경멸과 증오의 대상이 대해서는 모두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 의해 설명이 가능하다.

 

 

 

마카아벨리가 경멸이라는 표현을 쓴 이면에는 군주와 귀족을 경쟁관계로 바라본 관점이 존재한다. 그가 증오라는 표현을 쓴 이면에는 군주와 인민의 관계를 일종의 우정관계로 바라본 관점이 존재한다. 여기서 우정은 상호 대등한 자들의 관계가 아니라 상하 관계의 우정이다.

 

인민은 군주의 통치를 받는 자들이며, 군주는 통치할 권력을 얻는 대신에 인민의 복리를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있다. 군주가 낭비를 해서 인민의 복리를 책임지지 못하면 증오를 받게 된다.

마키아벨리가 경멸이라는 표현을 쓴 이면에는 군주와 귀족을 경쟁 관계로 바라본 관점이 존재한다. 그가 증오라는 표현을 쓴 이면에는 군주와 인민을 일종의 우정의 관계로 바라본 관점이 존재한다. 여기서 우정은 상호 대등한 자들의 관계가 아니라 상하 관계의 우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 따르면 “우정은 간절히 바라지 않았는데도 호의나 선행을 받을 때 생겨난다.” 일반적으로 우정은 친구뿐 만이 아니라 다양한 관계에서도 발생한다. 인민이 필요를 느낄 때 군주가 선행을 베풀면, 예컨대 가뭄이 들어 먹고살기 힘들 때 군주가 인민에게 식량을 나눠준다면, 이때도 우정이 발생한다. 만약 군주가 낭비를 일삼고 인민에게 선행을 베풀지 않으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인민은 군주를 증오한다. 왜냐하면 인민은 군주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분노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인민은 군주를 친구가 아닌 적으로 삼고 기회를 노리게 된다. 즉, 군주가 호색과 방탕으로 쾌락을 즐길수록 인민은 슬픔을 느끼고 복수할 마음을 품는다. 이 단계를 지나면 인민이 군주를 처벌할 마음, 즉 군주를 제거하고 다른 군주를 옹립할 마음을 품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잔인함과 인자함>에서 다룬다.

마키아벨리는 야심이 있는 자, 군주가 되고 싶은 자는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말한다. 돈을 쓰지 않는다면 군주의 자리에 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키아벨리의 저서가 군주의 성공을 위한 행동 지침서라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군주론’ 극히 일부를 요약발췌하다. 마키아벨리지음.>

 

정치 파괴자로서의 마키아벨리

군주에게 억압을 통한 최적의 통치방안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에게 멸망의 지름길을 알려주려 했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안스러운 해석 방법이 아닐 수 없다. 마키아벨리는 사람은 버릇과 고정된 성품에 따라 행동한다고 말한다. 그는 권력을 논하며 도덕적 승리를 말하지 않는다. 도덕적 평가와 정치적인 힘을 철저히 분리하는 것이다.

 

사실주의 작가로서의 마키아벨리

어떤 사람들은 마키아벨리가 사실주의 작가로서 당시의 현실을 그대로 글에 반영한 것뿐이라고 해석한다. 이는 사실이다. 그는 당시 시대상황에서 군주가 해야 하는 것들을 열거했고, 그 당시 군주는 계략적이고 도덕적이지 못했다. 마키아벨리의 방법은 그 시대에 사용했던 정치적 수단이었고, 어쩌면 그 시대뿐 아니라 모든 시대에 정치적 성공을 원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적용되는 수단일지도 모른다. 그는 어디서 이 아이디어를 얻었을까? 플라톤은 유토피아를 그리며 세상이 변화되기를 바랐지만 마키아벨리는 정치가들이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 성공하기를 원했다. 마키아벨리가 도덕성과 정치적 자율성 사이에서 정치적 자율성을 옹호하거나 현실 그대로에 만족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현실 그대로의 상황에서 경쟁력을 지녀야 한다고 본 것이다.

 

풍자작가로서의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는 독재자를 반대하기 때문에<군주론>은 권력가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허세를 드러내고 그들이 사용하는 악덕한 책략을 세상 밖으로 알리는데 목적이 있다고 주장한다. 전제정치를 조롱하고 군주의 가면을 벗김으로써 군주의 이중성을 드러내려 한 것이다.<‘권력의 조건’ 극히 일부를 요약발췌하다. 레이몬드&벨리오티지음.한누리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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