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월든 호숫가에서의 삶~!

[중산] 2017. 5. 24. 11:10

                                <아름다운 월든 호숫가 전경, 그 곳을 여행한 조남건님 블로그의 사진에서~>

 

 

월든 호수에 간 목적은 그곳에서 돈을 들이지 않고, 살거나 사서 고생을 하려던 게 아니라, 최대한 방해받지 않고 개인적으로 일을 처리하고자 함이었다. 약간의 상식이 없어서, 혹은 약간의 진취성과 사업적 재능이 부족해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것은 서글프다기보다는 어리석게 여겨졌다.

 

 

나는 어떤 사람이 헝겊 조각을 대고 기운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얕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건전한 양심을 갖추기보다는 유행에 맞거나 적어도 기운 부분이 없고 깔끔한 옷을 입는 데 열을 올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무릎에 헝겊을 덧대 깁거나 꿰맨 자국 두어 군데가 있는 옷을 입을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으로 지인들을 시험해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옷을 입어야 한다면 장래가 암담해질 것이라고 믿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그들에게는 찢어진 바지를 입고 마을로 들어서느니 차라리 부러진 다리로 절뚝거리며 걷는 편이 쉬우리라.

 

사업을 앞두고 있다면 헌옷을 입고 시도하라.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가지고 있을 물건’이 아니라 할 일, 혹은 되어야 할 모습이다. 우리는 헌옷이 제아무리 너덜너덜하거나 지저분하더라도 새 옷을 장만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저런 방식으로 행동하고 일하고 항해한 결과 자신이 헌옷을 입은 새 사람이라고 느껴질 때까지는 그리고 헌옷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고 있다고 느껴질 때까지는 말이다.

 

 

농부가 집을 소유하게 되었다 한들, 그는 그 집 때문에 더 부유해지기는커녕 더 가난해졌을지도 모르며, 집이 그를 소유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알기로, 모무스(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비난의 신)는 미네르바(로마 신화에서 지혜의 신, 그리스 신화의 아테네에 해당한다)가 지은 집을 보고 “이동할 수 있게 짓지 않았으니 나쁜 이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반대했다는데, 타당한 의견이었다.

 

또한 우리의 집은 다루기 어려운 재산이라서 그 속에서 산다기보다 오히려 갇혀 있을 때가 많고, 피해야 할 나쁜 이웃이 우리 자신의 졸렬한 자아이다 보니 저 주장은 여전히 타당하다. 내가 알기로 이 마을에서 적어도 한두 가정은 거의 한 세대 동안이나 교외에 있는 집을 팔고 마을로 들어오고 싶어 했으나, 아직도 실현하지 못했고 죽어서야 자유로워질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도 이웃들이 가진 것과 비슷한 집 하나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탓에 평생을 불필요한 가난에 시달리는 게 실상이다. 마치 재단사가 만들어 주기만 한다면 아무 외투든 무조건 입으려 하거나, 종려나무 잎 모자나 우드척 가죽 모자를 하나씩 벗어 던지며 왕관을 살 형편이 못 되니 어려운 시절이라고 불평하는 것과도 같다. 지금보다 훨씬 편리하고 호화로운 집을 발명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집을 누릴 경제적 여유가 없으리라는 사실은 다들 시인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토록 유행을 만드는 장본인은 사치스럽고 방탕한 사람들이다. 이른바 최고급 숙소에 머무는 여행자는 그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된다. 호텔의 주인들이 그를 사르다나팔루스 왕처럼 대하기 때문인데, 그들의 나긋나긋한 접대에 몸을 내맡긴다면 곧 기력이 떨어질 때로 떨어져 버릴 것이다.

 

 

원시 시대에 벌거벗은 몸으로 소박하게 살았던 인간의 생활은 그런 이점을 암시한다. 적어도, 인간이 자연 속에 체류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인간은 음식과 잠으로 기력을 회복하면 다시 여행을 계획했다. 말하자면 이 세상이라는 장막 속에 거주하며 늘상 계곡을 누비거나 평원을 건너거나 산꼭대기를 올랐다. 하지만 보라! 인간은 자기들이 쓰는 도구의 도구가 되어 버렸다. 배가 고프면 자주적으로 과일을 따던 인간은 농부가 되었다. 쉼터를 찾아 나무 아래서 서 있던 인간은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이제 밤에 야영을 하지 않고 땅에 정착해 하늘을 잊어 버렸다.

 

 

 

1845년 3월 말쯤, 도끼 하나를 빌려 월든 호숫가의 숲 속을 찾아갔다. 내가 집을 지으려고 생각한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물건을 빌리지 않고 일을 시작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하는 일에 이웃이 관심을 갖도록 허용하는 가장 관대한 방식일지 모른다.

 

마침내 5월 초, 몇몇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집의 뼈대를 세웠다. 반드시 도움이 필요했다 기 보다는 이런 기회를 선용해 이웃과의 관계를 돈돈하기 위해서였다.

겨울이 오기 전에 나는 굴뚝을 세웠고 비가 샐 일은 결코 없었지만 집의 사면 벽을 판자로 둘렀다.

 

모든 작업을 나 혼자 했으니 수고비를 제외하면 집 짓는데 들인 비용은 못 값 3달러 9센트를 포함하여 총 28달러 12.5센트였다. 이렇게 해서 나는 집을 가지고 싶어 하는 학생이 현재 매년 지불하는 집세 정도의 비용으로 평생 살 집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나친 자랑처럼 보인다면, 나 자신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자랑하고 있다고 변명하겠다.

 

집을 다 짓기 전에, 나는 정직하고 유쾌한 방법으로 10달러에서 12달러 정도를 벌어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을 부담하고자 2.5에이커쯤 되고 물이 잘 스며드는 집 근처 모래땅에 강낭콩을 주로 심고, 일부는 감자와 옥수수, 완두콩, 무를 심었다. 농사로 얻은 수익은 23달러 44센트였는데 경비를 제외하고 순수익은 8달러 71.5센트였다.

 

사람이 소박하게 살고 자신이 기른 작물만을 먹되 먹을 만큼만 기르며, 그 작물을 불충분한 양의 더 사치스럽고 값비싼 물건과 바꾸려 하지 않는다면, 몇 로드의 땅만 경작해도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가축의 주인이 아니라 가축이 사람의 주인이며 가축이 훨씬 자유롭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사람은 황소와 교환해서 하는 노동의 일부로 소에게 먹일 건초를 6주 동안 마련하는데 그 작업은 어린애 장난 수준이 아니다. ~

 

 

동년배인 많은 사람처럼 나는 육류나 차, 커피 등을 오랫동안 먹지 않았다. 그런 음식이 어떤 식으로든 악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이 아니라, 내 상상력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육류에 대한 거부감은 경험의 결과가 아니라 본능이다. 소박한 식사를 하며 검소하게 사는 것이 여러 면에서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비록 완벽히 그렇게 살지는 못했지만, 내 상상력을 만족시킬 만큼은 되었다. 나는 자신이 가진 한층 고귀한 능력이나 시적인 능력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고자 진지하게 노력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특히 육류를 삼가고 음식의 종류에 상관없이 과식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믿는다.

 

내가 커비와 스펜스의 책에 발견한 곤충학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어떤 곤충들은 성충이 되고 나면 섭식 기관을 갖추고 있음에도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하는데, 이는 중요한 사실이다. 또 그 책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상태에 이른 거의 모든 곤충은 유충 상태일 때보다 음식을 훨씬 적게 먹는다. 게걸스럽던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고,....탐욕스럽던 구더기가 나비가 되고 나면" 한두 방울의 꿀이나 다른 단물로 만족한다고 밝힌다.   나비의 날개 밑에 있는 배는 여전히 유충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맛있는 부분이 있으니 나비는 언젠가는 곤충으로 잡아 먹힐 운명이다. 대식가는 유충 상태에 있는 인간이다. 그리고 온 국민이 그런 상태인 국가도 있는데, 그들의 거대한 배는 그들이 공상도 상상도 할 줄 모르는 국민이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상상력이 왜 살코기와 기름기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지 질문해 봤자 헛된 일이다. 나는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로 만족한다. 나는 아편쟁이가 경험하는 천국보다 자연스러운 하늘을 더 좋아하다는 이유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물을 마셔 왔다는 사실이 기쁘다. 나는 언제나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싶다. 취하려고 한다면 끝이 없을 것이다. 나는 물이야 말로 현명한 사람이 마시는 유일한 음료라고 믿는다. 이왕 취해야 한다면, 무엇보다 자신이 숨쉬는 공기에 취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모든 책이 책을 읽는 사람들만큼 지루한 것은 아니다. 아마 우리의 상황을 정확히 표현해 주는 말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 말을 제대로 듣고 이해할 수 있다면, 아침이나 봄보다 우리 삶에 더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우리에게 만물의 새로운 측면을 보여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작은 집에서 가끔 불편을 겪는 불편 하나는, 손님과 내가 거창한 생각을 거창한 단어를 써서 나누기 시작할 때 우리 둘 사이에 충분한 거리를 두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의 생각은 입항하기 전에 출범 준비를 마치고 시험 삼아 항로를 한두 번 달려 볼 기회를 가져야 한다. 생각이라는 탄환은 좌우 반동을 극복하고 마지막까지 확고한 경로를 유지해야 듣는 이의 귀에 도달할 수 있다.

 

 

나의 '가장 좋은'방이자 언제든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된 응접실은 집 뒤편의 소나무 숲이었다.거기 깔린 양탄자에는

해가 거의 들지 않았다. 여름날 귀한 손님들이 오면 나는 그곳으로 데려갔다. 가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한 하인이 바닥을 쓸고 가구에서 먼지를 털고 잘 정돈해 둔 곳이었다. 손님이 한 명이라면 가끔 내 간소한 식사를 나눠 먹었다. 즉석 푸딩을 휘젖거나 잿더미 속에서 빵 한 덩어리가 부풀고 익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무리 없이 대화를 이어 갔다.

 

나는 숲으로 둘러싸인 지평선을 독차지하고 있다. 한쪽으로는 호수와 인접한 철도가 멀찍이 보이고, 다른 쪽으로는 숲 가장자리를 따라 뻗은 울타리가 보였다. 그러나 대체로 내가 사는 곳은 대초원만큼이나 적막하다.

 

나는 외로움을 느낀 적이 없으며 고독감에 짓눌린 적도 없다. 다만 단 한번, 숲에 들어오고 몇 주가 지난 뒤였는데, 사람들을 이웃에 두고 사는 것이 평온하고 건강한 삶의 필수 요건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한 시간쯤 한 적이 있다. 혼자라는 사실이 못마땅했다. 하지만 동시에 내 기분이 약간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고 회복되리라는 사실을 예감했던 듯하다.

 

보슬비가 내리는 동안 이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득 자연 속에, 후드득 떨어지는 그 빗방울 속에 그리고 집 주위의 모든 소리와 광경 속에 다정하고 자비로운 벗들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나를 지탱시키는 대기처럼 무한하고 형언할 수 없는 그 우정 덕분에, 사람을 이웃에 두었을 때 얻게 될 것 같았던 이점이 하찮게 여겨졌다. 그래서 그 뒤로는 그런 생각을 다시 하지 않았다. 작은 솔잎 하나하나가 나와 교감하며 커지고 부풀어 올라 친구가 되었다.

 

가장 즐겁게 보낸 시간 중에는 봄이나 가을에 긴비바람이 치던 때도 있다.그런 때 나는 오전은 물론이고 오후에도 집에 틀어박혀 쉬지 않고 몰아치는 바람 소리와 빗소리로 마음을 달랬다.

 

내 집에는 함께하는 벗들이 무척 많다. 아무도 찾지 않는 아침에는 더욱 그렇다. 내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몇 가지 비유로 설명해 보겠다. 그토록 크게 웃어 대는 호수의 되강오리가 외롭지 않듯이, 혹은 월든 호수가 외롭지 않듯이 나도 외롭지 않다, 저 고독한 호수에 무슨 벗이 있느냐고? 호수는 그 하늘빛 물속에 푸른 '악마들'(우울증 의미)이 아니라 푸른 천사들을 품고 있다.

 

해와 바람과 비, 여름과 겨울 등 자연은 형언할 수 없이 순수하고 자비로워서 건강과 기쁨을 무한히 베푼다! 또 우리 인간에게 느끼는 동정심도 무한해서, 타당한 이유로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면 온 자연이 영향을 받아 해는 흐리고 바람은 인간처럼 탄식하며 구름은 비를 눈물처럼 쏟고 숲은 한여름에도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상복을 입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어찌 대지와 교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 몸의 일부도 나뭇잎과 식물의 부식토가 아닌가?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다른 이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며, 열정이 넘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한동안은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을 각오도 되어 있다. 은둔을 즐기는 천성도 아니며, 볼 일이 있어 술집에 간다면 가장 끈덕지게 머무르는 단골손님보다 더 오래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

 

내 집에는 의자가 세 개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해 쓰고 둘은 우정을 위해 쓰고 셋은 교제를 나눌 때 쓴다. 뜻밖에 손님들이 단체로 우르르 찾아와도 그 모든 이들을 위해 내놓을 의자가 셋뿐이지만, 대개 손님들도 서 있음으로써 공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했다.

 

 

그러나 스무명이 집에 와서 앉아 있을 때는 두 사람 몫의 빵이 있더라도 식사에 대한 말은 꺼내지도 않았고, 오히려 음식을 먹는 것을 이미 버린 습관처럼 취급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금식을 했지만,그것이 손님 접대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없었으며 그야말로 적절하고 사려 깊은 행동으로 여겨졌다. 이런 때면, 잦은 회복이 필요한 육체적 생명력도 소모되고 쇠약해지는 시기를 기적적으로 늦추는 것 같았고 활력도 제자리를 굳게 지켰다.

 

나는 언제나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싶다. 취하려고 한다면 끝이 없을 것이다. 나는 물이야말로 현명한 사람이 마시는 유일한 음료라고 믿는다. 포도주는 그렇게 고상한 술이 아니다. 아침의 희망을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내동댕이치고 저녁의 희망을 한 잔의 차로 내동댕이친다고 생각해 보라 그런 것에 유혹을 느낄 때 나는 얼마나 낮은 곳으로 추락하는 것인가! 음악조차 사람을 취하게 할 수있다. 겉보기에는 그토록 사소한 원인이 그리스와 로마를 멸망시켰고 영국과 미국도 멸망시킬 것이다. 이왕 취해야 한다면, 무엇보다 자신이 숨 쉬는 공기에 취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장시간 지속되는 거친 노동을 반대하는 가장 중대한 이유는 그런 노동을 하면 어쩔 수 없이 그만큼 거칠게 먹고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어디서 살든 사람들을 만나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나는 숲에서 사는 동안 내 생애 어떤 시기보다 더 많은 손님을 만났다. 숲에 있었기에 다른 어느 곳보다 양호한 환경에서 여러 손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소한 일로 찾아오는 사람은 훨씬 줄었다. 이런 측면으로 보면 내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이 걸러진 셈이었다. 나는 고독이라는 대양으로 멀리 물러났고, 교제라는 강물이 그 바다로 흘러들었다. 덕분에 내게 필요한 것을 기준으로 볼 때, 대부분의 경우 가장 고운 퇴적물만이 내 주변에 쌓였다. 게다가 다른 쪽에서는 아직 탐험된 적 없고 계척되지 않은 대륙들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내 앞으로 떠내려왔다.

 

 

평범한 밤에도 숲속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어둡다. 길 위에 우거진 나무 사이로 하늘을 쳐다보며 길을 찾아야 할 때가 많았다. 수레가 다니는 길 조차 없는 곳에서는 내가 전에 밟아서 다져놓은 희미한 길을 발로 더듬었다.

 

 

시 한 줄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것이

내 꿈은 아니다.

월든 곁에 사는 것보다

신과 천국에 더 가까이 갈 방법이 있을까.

나는 돌이 깔린 호반이며

수면을 스치는 산들바람이다.

둥글게 오므린 내 손에 안에 담긴 것은

호수의 물과 호수의 모레,

이 호수의 가장 깊은 곳은

내 생각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는다.

 

 

우리의 인생은 놀라울 만큼 도덕적이다. 미덕과 악덕 사이에는 한순간의 휴전도 없다. 선이야말로 결코 실패하지 않을 투자다. 세상 곳곳에 울려 퍼지는 하프 선율 속에 우리를 전율시키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렇게 선을 고집하는 태도다. 젊은이는 결국 그 선율에 무관심해지지만, 우주의 법칙은 무관심해지지 않고 언제까지나 가장 민감한 사람의 편에 선다.

 

산들바람 속에는 반드시 질책이 실려 오므로 귀를 기울이자.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지겨운 소음들도 멀리 떨어져서 들으면 우리의 천박한 생활을 당당하고 감미롭게 풍자하는 음악처럼 들린다.~.

 

<‘월든‘극히 일부 요약 발췌,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김율희 님 옮김>

헨리 데이비드 소로: 1817년 미국 태생,1837년 하버드 대학 졸업,

1845년 삶의 궁극적인 의미와 본질만을 추구하며 자유롭게 살아가고자 월든 호숫가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2년 2개월간 사회에서 벗어난 실험 생활을 시작했다. 그래서 자발적인 가난과 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선택해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급자족하는 단순하면서도 독립적인 삶을 꾸려 나갔다.

 

                            <아름다운 월든 호숫가 전경, 그 곳을 여행한 조남건님 블로그의 사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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