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르 보바리는 어머니의 기대에 따라 의사가 되고, 토트에 개업을 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맺어준 돈푼이나 있어 보이는 과부와 결혼했다. 그런데 곧 부인이 죽어버리자, 진료차 만났다가 마음에 두고 있던 엠마와 재혼한다. 끊임없이 낭만적이고 정열적인 사랑을 꿈꾸는 엠마는 막상 결혼생활에서 그러한 것들을 느끼지 못하자 남편이 싫어지고 권태로움만 느낄 뿐이다. 보이에사르의 무도회에 참석한 뒤로, 그러한 갈망은 더욱 커져간다.
남편 샤를르는 그런 아내의 환경을 바꿔주려는 생각에 용빌로 이사를 간다. 엠마는 거기서 알게 된 레옹이라는 사내와 사랑에 빠지지만 채 내색도 하지 못하고 레옹을 떠나보내야 했다. 이후, 로돌프라는 바람끼 있는 남자에게 속아 엠마는 자신의 정열과 사랑을 온몸으로 바친다. 그리고 그와 함께 도망칠 계획을 짠다. 하지만 막상 떠나기로 한 날, 그로부터 떠날 수 없다는 편지를 받게 되는데...(요약)
▣ 등장인물
샤를르 보바리----어려서부터 엄마의 치마폭에 자라 남자다움은 없으나 아내 엠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시골 의사.
엠마 보바리-------소설의 주인공으로 언제나 낭만적이고 정열적인 사랑의 환상만 추구한다.
루오----------베르토의 농장을 경영하는 엠마의 아버지.
레옹----------용빌의 공증인 기요멩의 사무실 서기로, 소심하고 내성적인 인물이 다. 엠마를 사랑하지만
이루지 못하고, 후에 루앙에서 우연히 만나 재회하게 된다.
로돌프--------돈 있고 바람기 있는 독신 남자로서, 엠마를 꼬셔서 관능적 사랑을 한다.
결혼, 무너진 환상
어떤 학급에 우스꽝스러워보이는 학생이 한 명 새로 들어왔다. 차림새와 외모뿐만 아니라 하는 행동까지 기묘해서 학생들의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그의 이름은 샤를르 보바리였다. 그의 아버지는 ‘사내란 배짱만 두둑하면 세상에 나가서 항상 성공할 수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고 샤를르를 사내답게, 스파르타식으로 키우려고 했다. 한편, 어머니는 아들이 높은 지위에 오르기를 꿈꾸면서 샤를르의 교육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그래서 처음엔 신부에게 샤를르를 맡겼다가, 공부하는 시간이 너무 짧고 아이에게 별 도움도 되지 않아서 결국에는 루앙 중학교 2학년에 샤를르를 편입시켰다.
그가 학교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자, 어머니는 그가 대학자격시험까지 혼자 해낼 수 있으리라고 믿고, 이번에는 의학 공부를 시키기 위해 중학교를 그만두게 했다. 그는 위생학, 생물학, 해부학, 병리학, 생리학, 임상학등등이해할수없는것들을공부했지만, 결국 의사면허시험에 합격했다. 그 사이사이에 술집이나 도박장에도 다니고 여자들과 지내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샤를르는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토트에 개업할 곳을 알아보더니, 개업을 위해 돈 많은 늙은 과부를 아내로 정해주었다. 그렇게 시작한 결혼생활이 순탄할 리 없었다. 샤를르의 아내는 항상 남편의 행동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참견했고, 여자 문제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의심했다. 뿐만 아니라, 늘 외롭다면서 좀더 사랑해달라고 애원하기 일쑤였다.
베르토 농장주인인 루오 영감의 다리 골절상을 치료하기 위해 그곳을 방문한 샤를르는 영감의 딸 엠마를 처음 만난다. 엠마는 수도원에서 교육받은 다재다능하고 아리따운 처녀였다. 이러한 엠마에게 반해버린 샤를르는 그후 별다른 이유없이 베르토 농장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루오 영감의 다리가 다 치료되었는데도 걸핏하면 베르토를 자주 방문하는 남편을 아내가 가만둘 리 없었다. 그녀는 빈정거리고 화를 내고 울기도 하다가 드디어는 샤를르로 하여금 다시는 베르토를 방문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아냈다.
그 무렵 아내의 재산에 대해 의심할 만한 일들이 터지는 바람에, 샤를르의 부모는 진상파악을 위해 찾아와서는 그녀를 된통 몰아세웠다. 그후 일주일이 지나서, 그녀는 그 일이 충격이 되었는지 갑자기 피를 토하고 죽었다. 루오 영감은 샤를르를 위로하기 위해 그를 농장에 초대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샤를르는 다시 베르토에 드나들게 되었다. 혼자 사는 데 익숙해짐에 따라 그는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고, 더구나 엠마와도 친해질 수 있어 막연한 행복까지 느낀다. 그는 엠마와의 결혼을 생각했고, 루오 영감 역시 이를 예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렵지 않게 그들은 결혼한다. 결혼식은 며칠간이나 계속되었다.
결혼식 후 토트에 있는 집에 돌아오자, 엠마는 며칠 동안 집안을 어떻게 꾸밀지 궁리하느라 바빴다. 샤를르는 샤를르 대로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껴보지 못한 행복을 그녀가 끊임없이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출근할 때면, 엠마는 창가에 서서 그를 향해 꽃이나 나뭇잎을 뜯어 불어보내고 샤를르는 키스로 답하곤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엠마는 자신이 기대했던 정열이나 행복 따위가 지금의 고요한 생활 속에서는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수도원 시절에 읽은 낭만적이고 정열적인 사랑 이야기는 그녀의 감성적인 기질과 맞닿아서 그녀로 하여금 몽상에 빠지게 만들고, 그렇지 못한 것에는 금방 싫증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남자는 모르는 것이 없고, 여러 가지 재주에 능하고, 정열의 위력, 세련된 생활, 온갖 신비들로 인도해주는 능력을 가져야 했다. 그러나 남편 샤를르는 이런 것들과는 무관한, 정말 너무나도 밋밋한 사람의 전형이었다. 어느새 그녀는 실망과 더불어 원망까지 품게 되었다. 반면, 그림과 피아노, 살림, 어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엠마의 솜씨 덕분에 샤를르의 명성은 더 높아져갔기에 샤를르는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9월 말경, 그녀의 생활에 엄청난 일이 생겼다. 보비에사르에 있는 당데르빌리에 후작댁에서 초대를 받은 것이다. 그 위엄어린 모습에서부터, 그곳의 장식물들,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매무새, 황홀한 무도회...... 엠마의 눈길은 무의식중에 이런 화려하고 특별해보이는 것들을 좇았다. 그녀는 그 환영을 더 연장하려는 듯, 그날 밤을 그냥 뜬눈으로 지새웠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날. 엠마에게는 그 하루가 너무나 길기만 했다. 뿐만 아니라 수요일만 되면 ‘일주일 전만 해도... 이주일 전만 해도... 삼 주일 전만 해도, 그때 나는 거기에 있었는데!’하면서 그 무도회를 추억하는 것만이 엠마의 일거리가 되어버렸다.
엠마는 공상 속에 묻혀 있는 시간이 더 잦아졌고, 파리 지도나 부인용 신문, 소설 등을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녀는 책 속의 인물과 무도회에서 함께 춤췄던 자작을 결부시켜 생각하고, 공작부인들의 생활을 그려보기도 하였다. 그녀가 있는 곳은 마치 이 세계 속에서의 예외지역 같았고, 저 너머에는 행복과 정열의 나라가 광대하게 펼쳐져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녀는 매일 매일 어떤 돌발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다렸으나 늘 그곳의 생활은 고요하기만 하였다. 다시 9월이 다가오면서 그 무도회가 또 열리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초대의 편지나 방문은 없었다.
결국 그녀는 신경성 질환이라는 병을 얻었다. 얼굴이 창백해졌다가 심장 고동이 가빠지고, 한동안 열에 들뜬 것처럼 떠들어대다가 허탈한 상태에 빠져 움직이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토트를 불평했기 때문에 샤를르는 용빌 라베이라는 마을로 옮겨가기로 결정한다. 토트에서 명성과 신뢰를 쌓은 그로서는 쉬운 결정은 아니었으나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는 결심이 필요했다. 그때 엠마, 보바리 부인은 임신 중이었다.
사랑의 느낌
보바리 부부는 용빌의 금사자 여관이라는 곳에서 첫 저녁식사를 한다. 그곳은 과부 르프랑스와 부인이 경영하는 곳으로, 단골인 약제사 오메와 공증인 사무실에서 서기 일을 보고 있는 레옹이 그 날 저녁 식사에 합석했다. 식사 중 나눈 대화 속에서 레옹과 엠마는 서로가 너무나도 말이 잘 통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샤를르와 오메가 의료 행위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레옹과 엠마는 자연과 음악과 책에 대해 생각하는 모든 것들에 공감하면서 얘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새 두 사람은 바싹 붙어 앉아 있었다.
여관에서 오십 보 남짓한 곳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엠마는 장소가 바뀐 만큼 무언가 새로운 것이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용빌에서의 첫날밤을 맞는다. 그녀는 아들을 낳고 싶었다. 남자로 태어나면 적어도 온갖 정염의 세계, 온갖 나라를 두루 경험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딸을 낳았고, 무도회에서의 어느 여자이름을 기억해 이름을 베르토라고 지었다.
어느날 엠마는 아이가 보고 싶어서 유모 룰레의 집으로 찾아가는 길에 레옹을 만난다. 그들은 평범한 인삿말을 건네려고 노력하는 와중에도 똑같은 번민이 서로를 사로잡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레옹에게 그녀는 용빌의 따분한 인간 군상 속에서 특별한 그 무엇이었다. 레옹은 하루에 두 번씩 금사자를 찾아갔고, 그때마다 엠마는 그의 발소리와 그림자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가끔 오메와 레옹은 함께 보바리 부부의 집에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특히 오메는 이 의사를 자기편에 두는 것이 후에 약사 면허가 없는 자신에게 이로울 것 같아서 더욱 샤를르에게 친근하게 접근했다. 식사 후에 오메와 샤를르는 도미노 게임을 하다가 잠들었고, 그들이 잠든 옆에서 레옹은 스릴을 느끼며 엠마에게 시를 낭송해주기도 하고 소곤소곤 이야기도 주고받았다. 이런 식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책이나 사랑 노래로 인한 일종의 결속이 성립되었다.
이제, 레옹은 어떤 방법으로든 속마음을 고백하고 싶어졌다. 소심함과 부끄러움 사이에서 주저하면서 편지도 몇 번씩 썼다 찢었고, 대담하게 마음 먹었다가도 엠마 앞에만 가면 그 결심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엠마 역시 레옹을 매력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왜 그와 맺어질 수 없는지를 탄식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자신의 사랑을 의식하면 할수록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그것을 약화시켜 보려고 속마음을 억누르고, 더 정숙한 체하려고 가사일과 남편, 아이에게 더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레옹이 그것을 눈치채주기를 바랐다. 그러다가도 이런 위선을 다 집어치우고, 레옹과 함께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레옹은 남편과 아이를 너무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엠마의 모습에 스스로를 원망하고, 또 보답 없는 사랑에 지쳐가고 있었다. 결국 그는 파리로 가서 법률 공부를 마치기로 결심했다. 그는 엠마와 기약 없는 작별인사를 하고 마차에 올랐다.
레옹이 떠나고 나자, 엠마는 자신의 행복이었던 그를 왜 잡지 않았는지를 후회하고 레옹을 사랑하지 못한 자신을 저주했으며 그의 입술을 갈망했다. 달려가 그를 붙잡고 ‘저는 당신의 것이에요!’라고 말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의 욕망은 이렇게 계속 끓어올랐지만, 그녀의 정열은 구원받을 수 없었다. 결국, 토트에서와 같은 몹쓸 나날이 또 시작되었다. 변덕을 부리기 십상이었고 발작이나 기절, 심지어는 각혈까지 하였다. 그러면서도 치료도 받지 않았다.
좀 차도를 보일 무렵, 연금이 어마어마한 로돌프 블랑제라는 독신 남자가 샤를르의 집을 방문했다. 몸이 안 좋아서 피를 뽑으러 온 것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그는 엠마에게 반해버렸다. 거친 기질에 머리 좋은 그는 여자 관계가 복잡해서 그 방면에는 훤했다. 그래서 엠마가 남편에게 따분해하고 있는 것도, 사랑에 목말라 하는 것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는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을 생각하면서 그녀를 가질 방법을 궁리했다. 그리고 곧 열릴 농사 공진회를 그 기회의 날로 잡았다.
사랑의 배반
농사 박람회가 열렸다. 주민들은 모두 구경나오고, 면사무소 정면은 담쟁이덩굴로 장식되었으며, 목초지 한 곳에는 연회 때 사용될 천막이 쳐 있었다. 성당 앞 광장의 중앙에는 지사의 도착과 표창받는 농부의 이름을 알릴 때 사용할 구식 대포도 준비돼 있었다. 이 축제를 위해 모인 많은 군중이나 그 분위기를 뒤로 한 채, 로돌프는 면사무소 2층의 비어 있는 사무실로 엠마를 유도한다. 그들은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축제를 구경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식이 시작되어 지사 대신 나온 참사관이 농업의 효용성에 대해 부르짖고 농업인들에게 상을 주고 있을 때도 그들은 그들만의 이야기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시골 생활의 무미건조함이나 그로 인한 숨막힐 것 같은 생활, 거기서 상실되어가고 있는 꿈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행복에 대해, 의무나 도덕의 진절머리남에 대해, 정열에 대해, 그리고 우연과 운명에 대해 로돌프는 흥분하며 말한다. 그러다가 덥석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들의 만남이 운명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6주 동안 로돌프는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자신이 보고 싶어 초조해지면 엠마의 사랑이 더 간절해질 것이라는 계산에 의한 것이었다. 그런 뒤에 나타나, 줄곧 그녀만을 생각했으며 매일밤 여기에 찾아와 어둠 속 유리창 너머로 불빛만 바라보며 그녀를 그리워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계속되는 로돌프의 달콤한 구애에 엠마의 자존심은 맥없이 늘어져버렸다. 때마침 들어오는 샤를르에게 로돌프는 부인의 건강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면서 건강엔 승마가 제일이라고 권한다. 아내를 사랑하고 그녀의 건강을 늘 염려하던 샤를르는 흔쾌히 허락하면서 그녀에게 승마복을 새로 마련해주었다.
다음 날 정오, 로돌프는 엠마와 말을 타고 나갈 수 있었다. 숲 기슭을 따라 계속 가다가 로돌프는 말에서 내려 그녀를 데리고 어디론가 계속 걸어 들어간다. 엠마의 경계심에 아랑곳하지 않고 로돌프는 계속 구애를 펼친다. 그러다가 결국 엠마는 로돌프의 어깨에 쓰러지듯 기대어 자신의 몸을 내맡겼다. 돌아오는 길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지만, 이 일은 엠마에게는 산을 하나 옮겨놓은 것 같은 큰 사건이었다. 로돌프는 헤어지는 순간까지 잊지 않고 그녀의 손에 계속 키스했다. 그녀는 체념했던 열병과도 같은 행복이 다시 찾아옴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가 선망했던 책 속의 여주인공 같은 사랑에 빠진 것처럼 여겼다. 그녀의 몽상이 현실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뉘우침도 불안도 고민도 없이 그 사랑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날부터 그들은 서로 수많은 맹세를 주고받고, 매일밤 편지도 주고받았다. 어느날 아침, 샤를르가 날이 새기도 전에 외출하자 그녀는 로돌프를 당장 만나고 싶은 충동에 그를 찾아가 그의 품에 안긴다. 이 대담한 행동이 성공하자, 엠마는 이제 샤를르가 일찍 나갈 때면 어김없이 그를 찾아갔다. 헤어지는 길은 아쉬움에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때마다 엠마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밀회 방법과 장소를 바꿔가면서 계속 만났다. 초상화를 주고받는가 하면, 머리카락을 한줌씩 잘라서 서로 교환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런 감상적인 엠마와는 달리, 로돌프는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들자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녀를 매혹시키던 감미로운 말도 건네지 않았고, 그녀를 미치게 만들던 열렬한 애무도 없었다. 엠마는 이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아서 더욱더 애정을 쏟았지만 로돌프는 점점 더 무관심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밀회 장소에도 세 번이나 나타나지 않았다.
엠마의 마음속에 후회가 찾아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녀는 샤를르를 사랑하려고 애쓰는 편이 낫지 않을까 자문해보았다. 때마침 오메가 화제가 되고 있는 안짱다리 수술에 대해서 얘기했고, 엠마는 그것을 샤를르가 한다면 명성도 얻고 돈도 벌 수 있어 좋을 것 같았다. 그녀는 사랑 이상의 확고한 그 무엇에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샤를르의 수술은 실패했고, 뇌샤텔의 유명한 카니베 의사가 뒷수습을 맡아야 했다. 엠마는 그의 무능함에 다시 한번 절망하면서 이제는 그의 모든 것, 요컨대 그의 존재 자체마저 싫어졌다. 그러나 바로 그날 밤, 엠마를 찾아온 로돌프의 키스는 그녀의 원망을 눈 녹듯 녹여버렸다. 남편에 대한 혐오에 비례해서 로돌프를 향한 애정은 더해만 갔다.
그녀는 로돌프에게 도망가서 살자고 제안했으나, 그는 못 알아들은 척 화제를 바꾸었다. 그에게는 단지 관능적인 사랑에 불과할 뿐, 그 때문에 번거로워야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상인 뢰르씨를 통해서 구입한, 손잡이를 도금한 채찍과 ‘가슴속에 사랑을’라는 명문이 새겨진 봉인용 스탬프, 스카프, 담배 케이스를 로돌프에게 선물했다. 로돌프는 그녀의 이런 행동이 귀찮기만 했다. 그는 이미 그녀가 보여주는 사랑의 말들에도 이력이 나 있었다. 그녀의 매력은 이미 다 사라졌고 단조로움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와 도망칠 생각만 하고 뢰르씨에게 여행 가방과 망토를 주문해놓는다. 결국 로돌프는 그녀와 떠날 약속을 하고 돌아와서는, 그녀를 떼어놓기 위한 거짓의 편지를 써보낸다. 그리고 그녀를 피해 잠시 루앙으로 간다.
편지를 받은 이후, 그녀는 정신을 잃었다. 발작도 일어났다. 뇌막염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샤를르는 정성스레 그녀를 치료했지만 그녀는 로돌프의 기억이 떠오르는 날이면 발작을 하고 심장에 통증을 느꼈으며 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이런 아내에 대한 샤를르의 걱정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게다가 그는 돈걱정까지 해야 했다. 오메씨가 가져온 약값과 식모를 쓰는 살림비용과 엠마가 주문했다고 갔다놓은 많은 물건들 때문에 청구서는 빗발치듯 들어왔다. 하는 수 없이 천 프랑을 꾸었다. 엠마의 회복은 오래 걸렸다. 이런 모습을 본 오메는 샤를르에게 엠마의 기분 전환을 위해 루앙에 온 테너 라가르디의 공연을 권했고, 그 제안에 동의한 보바리 부부는 루앙 극장을 향해 마차에 올랐다. 그런데 보바리 부부는 극장의 인파 속에서 뜻하지 않게 레옹을 만나게 된다.
재회, 또 다시 사랑
레옹은 삼 년 만에 다시 만난 그녀를 이번에야말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나서 연극을 보기 위해 혼자 하루 더 루앙에 남은 엠마를 찾아가 서로 부재했던 불행한 과거의 일들을 미화시켜 이야기했다. 레옹은 첫눈에 그녀에게 반한 얘기며, 좀더 일찍 만나서 헤어질 수 없는 인연으로 맺어졌더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찢어진다는 얘기 등을 건넸고, 엠마도 이러한 레옹의 말에 동감했다. 그 즉시 레옹은 지금부터라도 다시 시작하자고 애원한다. 엠마는 그 제안을 거절하고 다시 용빌로 돌아왔으나, 시아버지가 죽고 난 집안 분위기 속에서도 레옹과 지낸 시간들만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 뢰르가 방문하여 유산 상속을 축하하며 어음을 갱신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그리고 어음을 인계하는 데에는 위임장 한 장이면 간단하다고 말한다. 그는 꾸준히 엠마를 찾아오면서 물건들도 팔아먹고 위임장에 대한 얘기도 빼먹지 않았다. 엠마는 위임장 문제를 공증인 레옹과 의논하는 것이 좋겠다는 구실로 루앙을 향한다. 그때부터 그들의 밀월은 시작된다. 용빌로 돌아오면서 엠마는 편지를 약속하고, 레옹은 그녀의 편지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편지만으로는 그들의 정열을 분출하기에 부족했다. 레옹은 어느날 갑자기 용빌에 찾아와 그녀를 몰래 만났고, 이별을 아쉬워하면서 엠마는 그와 일주일에 한 번은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한다. 이렇게 해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피아노 레슨이었다. 그래서 엠마는 목요일마다 피아노 레슨을 받는다는 핑계로 시내에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은 불로뉴 호텔에서 매주 만나, 열렬한 포옹과 키스로 시작하여 지난 한주간의 일들을 얘기하였다. 아쉬운 이별은 어김없이 찾아와, 일주일 동안 격한 욕망에 시달리다가 다시 목요일이 되면 레옹의 애무 속에서 폭발시켜버리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레옹과 팔짱을 끼고 호텔에서 나오는 모습을 뢰르가 보고 말았다.
그로부터 사흘 뒤, 뢰르는 비아냥거리면서 엠마에게 돈을 요구했다. 그때 이미 엠마에게는 지금까지의 어음을 대체, 연장한 것들 외에도, 지불되지 않은 커튼, 양탄자, 옷, 화장품, 의자 커버 등의 상품 목록만으로도 이천 프랑에 가까운 빚이 있었다. 뢰르가 제안한 것은 시골의 오두막집을 처분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남편 모르게 이 모든 것을 처리했다. 계산의 삼분의 이를 마친 즈음, 그만 그녀가 없는 목요일에 어음이 날아오는 바람에 샤를르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친 역시 노발대발하며 위임장을 태워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에게서 다시 위임장을 받아낸다. 그리고는 어음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엠마는 집에 돌아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레옹을 만나고 싶은 욕정이 일어나면 그녀는 무슨 구실로든 떠났다. 그녀는 레옹에게 세세한 것까지 온갖 관심을 다 쏟았고, 마치 어머니처럼 충고하기도 했다. 그리고 늘 자기만 사랑해달라는 매달렸다. 그녀는 자신의 정염에 완전히 사로잡혀버린 상태였다. 레옹 역시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그녀가 그의 정부라기보다는 그가 그녀의 정부가 되었다.
어느날, 엠마는 뢰르가 벵사르라는 사람에게 자신이 서명한 7백 프랑의 어음을 돌린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그 다음 일은 이제 재판소의 판결과 차압뿐이다. 엠마는 울면서 뢰르에게 매달렸고 뢰르는 지불기일을 각각 한 달로 하여 250프랑짜리 어음 넉 장을 쓰게 했다. 그러면서 벵사르를 달래보겠다고 했다. 그날 밤 당장 그녀는 샤를르를 졸라 어머니에게 나머지 상속분을 전부 보내달라는 편지를 쓰게 하고 남편 몰래 환자들의 집으로 청구서를 보냈다. 또한 자신의 낡은 장갑이나 모자, 고철 따위를 팔기 시작했다. 아무한테나 돈도 꾸었다. 이런 악순환 끝에 결국 그녀는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레옹과 좋은 호텔에 들기 위해 저당을 잡히기까지 했다.
엠마의 광적인 사랑에 레옹은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하라는 사람들의 말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의 어머니와 사무실에서 모시고 있는 주인 뒤보카쥬도 그를 설득했다. 결국, 레옹은 엠마를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게다가 그는 곧 수석 서기가 될 참이었기에 감정의 흥분이나 공상의 세계와는 연을 끊는 편이 나았다. 그녀도 이젠 습관처럼 그에게 집착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녀는 매번 소환장과 인지가 붙은 서류들을 받고 있었지만 신경을 쓰지 않다가 재판소의 판결 서류를 받게 된다. 물건을 사면서 대금은 지불하지 않고 어음을 쓰고, 그리고는 다시 그 어음을 다른 어음으로 바꾸다보니 새 지불기일이 될 때마다 금액이 불어나 결국 그녀는 뢰르에게 한밑천 톡톡히 만들어주고 자신은 추락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랑의 종말
다음 날 차압 조서를 작성한다며 사람이 찾아왔고 집안의 하찮은 물건들까지 낱낱이 조사했다. 이튿날, 엠마는 루앙의 금융업자들을 찾아가서 돈을 부탁했지만 모두 그녀의 청을 거절했다. 그리고 레옹을 찾아가 8천 프랑이 필요하다고, 최소 3천 프랑만이라도 있다면 막을 수 있다면서 그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임을 거듭 강조한다. 레옹은 돈 많은 상인의 아들인 친구를 오늘 만나기로 했으니, 그에게 부탁하면 될 것이라고 말하고 그녀를 돌려보낸다. 그리고 다음 날 3시까지 자기가 나타나지 않으면 기다리지 말아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엠마는 자신의 집 동산 전부가 경매에 붙여진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공증인 기요멩을 찾아간다.
그는 이 어음의 긴 내력을 그녀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엔 별것 아닌 소액의 어음들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가며 이서를 받고, 각각 지불 간격을 길게 잡아 끊임없이 갱신을 반복한다. 그리고는 마침내 뢰르가 그 지불 거절 증서들을 모아갖고는, 지독한 놈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제 친구인 벵사르를 시켜 그의 명의로 필요한 소송을 제기하도록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공증인은 그 문제는 건성으로 듣고, 엠마의 몸을 건드리려 했다. 엠마는 분노에 차서 그 집을 나와버렸다. 레옹과 약속했던 3시가 되었다. 그녀는 레옹이 틀림없이 돈을 구해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기다렸으나 그는 오지 않았다. 순간, 그녀의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간 것은 로돌프였다. 엠마는 마지막 비상구로 그를 찾아갔다. 처음엔 그가 없는 고통스런 나날과 사랑을 주제로 얘기하여 로돌프의 마음을 움직여놓았지만 자신의 파산 소식과 돈을 요구하자 그는 침착하게 거절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다. 절망한 엠마는 오메 씨가 식사하는 틈을 타서,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약국 창고의 비소를 찾아 한움큼 입 속에 털어넣는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운 엠마는 발끝에서 심장까지 냉기가 올라옴을 느꼈다. 구토증에 신음, 창백하다못해 푸르스름한 얼굴. 샤를르는 집에 오자마자 그녀가 내일 읽으라고 써놓은 편지를 뜯는다. ‘아무도 책망하지 말아주세요......’라고 시작되는 그 편지를 읽다 말고 샤를르는 “음독! 음독!”을 외쳤다. 카니베가 와서 구토제를 처방했으나, 그녀는 심한 경련을 일으키고 처절하게 소리를 질러댔다. 뒤이어, 라리에르 박사가 나타나, 가망이 없다는 사실만을 확인시키고 갔다. 샤를르는 종교적 힘에 의지해보고도 싶어졌지만 신부의 방문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녀는 심한 경련을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울부짖으며 그녀 곁을 떠나려하지 않던 샤를르는 마지막 배려로 그녀가 원하던 대로의 의상과 관을 준비했다. 장례 행렬은 추모곡을 부르며 묘지에 도착했고 관은 내려갔다. 샤를르는 두손 가득 흙을 담아 던지면서 마지막 키스를 보냈다. 그러더니 그녀와 함께 묻히겠다고 구덩이 쪽으로 뛰어들려고 했다. 그는 사실 그녀를 집에 두고 싶었으나 사람들의 만류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비록 상대방에게 인정받지 못한 것이었지만 샤를르의 아내 사랑은 각별했다. 샤를르는 그녀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준 그녀를 잊을 수가 없었다.
이내, 돈 문제가 다시 시작되었다. 명목적으로 피아노 레슨을 지도했다고 랑프뢰르 양이 6개월분의 수업료를 청구했고 도서 대여점은 3년 분의 구독료를 신청했다. 레옹과의 편지를 배달해주곤 하던 롤레 아줌마는 편지 배달료를 요구했다. 빚을 갚을 때마다 이것으로 끝이려니 생각했으나 또 다른 것이 계속 튀어나왔다. 그는 처음에는 엠마의 물건은 그대로 두려고 했지만 차츰 하나씩 팔아야만 했다. 모든 방이 텅텅 비어갔지만 그래도 엠마의 침실만은 그대로였다. 죽은 사람에 대한 존중 때문에라도 그는 섣불리 엠마의 책상의 비밀함은 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그는 그것을 열었다. 레옹에게서 받은 편지 전부며, 로돌프의 초상화까지 다 보고 난 샤를르는 고함을 지르며 흐느껴 울었다. 그는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지만 그들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다만 운명의 탓으로 돌렸을 뿐이다. 다음날 베르토가 저녁을 먹기 위해 아빠를 부르러 갔을 때, 그는 뒤로 젖힌 머리를 벽에 기댄 자세로 앉아 있었다. 눈은 감고 입은 벌린 채 길다란 검은 머리카락 한줌을 양손에 쥐고 있었다. 베르토가 그를 건드리는 순간 그의 몸은 그대로 미끄러졌다. 이미 샤를르는 죽어 있었던 것이다!
보바리 가에 남아 있는 모든 것을 다 팔고 남은 12프랑 75상팀은 어린 보바리 양이 할머니한테로 가는 데 쓰였다. 그러나 할머니마저 죽고 나자 여기저기 떠돌던 어린 베르토는 결국 방직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에서 요약 발췌,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 저 자 귀스타브 플로베르 Gustave Flaubert(1821∼1880)
예술은 곧 진리라고 믿었던 최첨단 문예이론의 선구자.
열등감을 맛보며 자랐던 플로베르는 낭만주의가 확립되던 즈음에 루앙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와는 달리 그의 집안은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분위기였다. 아버지는 시립병원의 유명한 외과의사였고, 어머니 역시 감성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이고 현명한 편이었다. 플로베르에게는 아홉 살 차이가 나는 큰형과 세 살 아래인 여동생이 있었는데, 부모는 장래에 아버지의 뒤를 이을 영리한 맏아들에게 관심을 쏟았고, 막내딸에게 애정을 주었다. 게다가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식구들에게 ‘집안의 백치’라고 인식되었다. 이렇듯 아버지로부터 유형무형의 압박을 받고 또 늘 형제간 비교에서 열등감을 맛보며 자란 플로베르는 현실세계와 언어로부터 동시에 소외당한 존재였다. 이러한 플로베르가 아홉 살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서는 사르트르의 플로베르에 대한 비평서『집안의 백치』에 잘 나타나 있다.
‘소외당한 존재였던 어린 플로베르는 글을 배우게 되자 글을 거울삼아 자신을 비추어 소외된 존재로서의 자각을 외면화시켰다. 그는 자유를 향한 돌파구를 우선 연극에서 찾았다. 그는 열한 살 때부터 식구들을 불러 모아놓고 연극놀이에 몰두했지만, 아버지는 성가시다는 이유로 이것조차 금지시킨다. 이제 플로베르에게서 자유는 글자의 세계뿐이었다. 플로베르와 글과의 연결은 소외당한 존재의 자기 확신이라는 수동적인 것이었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그는 ’마지못해‘ 문학이라는 ‘음침하고 고독한 놀이’를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엄청난 스캔들로 뜨거운 논란의 대상
플로베르는 『성 앙트완느의 유혹』의 초고를 완성해서 절친한 친구인 루이 부이예와 막심 뒤 캉에게 서른 두 시간에 걸쳐 낭독했으나 혹평을 당하자 원고를 서랍 속에 감춰버린다. 그때 루이 부이예는 당시 사회의 화젯거리였던 ‘들라마르 부인 사건’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소재로 해서 소설을 쓰도록 충고했다. ‘들라마르 부인 사건’이란 당시 으젠느 들라마르의 부인 델핀이 생활의 권태를 느끼다 삶의 돌파구이자 희망으로 바람을 피고, 결국은 죽음을 맞은 사건이었다.
그후 2년간 동방을 여행하는 중에도 플로베르는 소설 구상을 계속해, 크르와세로 돌아오자마자 『보바리 부인』에 착수한다. 그리고 끈질긴 작업을 통해 무려 53개월 만에 작품을 완성한다. 이후, 막심 뒤 캉의 주선으로 『파리 평론』에 『보바리 부인』의 연재가 시작되는데, 잡지가 발매되자마자 각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뜨거운 논란 대상이 되었다. 『파리 평론』은 정부의 검열을 우려한 나머지 작가의 동의 없이 원고 일부를 삭제한 후 게재하려 했지만, 플로베르의 강한 반발에 부딪친다. 결국 정부에서는 1957년, 종교와 양속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하여, 『보바리 부인』을 실은『파리 평론』과 플로베르를 기소하였고, 1월 19일에 열린 재판에서 마리 앙트완느 줄 세나르의 뛰어난 변호로 무죄 판결을 받는다. 플로베르는 작품에 빛을 보게 해준 그에게 이 책을 헌사한다. 이러한 엄청난 스캔들 이후 『보바리 부인』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독창적인 문체
새로운 문학사조와 문예이론이 나올 때마다 플로베르는 최첨단 이론의 선구자로 각광받으며 그 현대성을 새롭게 쇄신하곤 했다. 60년대에 누보 로망이 등장했을 때에는 누보 로망의 선구자로 인식되었고, 이야기 구조 분석이 새로운 문학 이론으로 대두되던 20세기 후반에는 그의 모든 언어적 실험이 다시 한번 현대성을 부여받는다.
이러한 소설 이론에 관한 플로베르의 독창성은 바로 문체에 관한 것이었다. 문체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한 플로베르에게 있어서 내용은 상대적인 중요성만을 가질 뿐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작품의 내적 논리와 구조 그리고 완벽한 짜임새인데 그 완벽성의 관건은 바로 문체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플로베르에게 문체는 ‘언어적인 실체’, 즉 텍스트의 물질적인 측면인 동시에 그의 정신인 셈이다. 실제로 플로베르의 모든 노력은 소설의 예술성, 즉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문체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플로베르가 내용을 무시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는 내용과 형식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서 ‘예술’은 곧 ‘진리’이며, 문체는 ‘일종의 생각하는 방식’이라고 여긴 것이다.
실제로 플로베르는 그의 『서한집』에서 ‘정확한 말과 음악적인 말 사이에는 필연적인 관계가 존재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내용과 형식의 조화, 이것이 바로 '예술을 위한 예술'이고, 탐미주의다. 형식에 대한 이 절대적인 추구가 오늘날까지 플로베르를 여전히 생생한 현대적 작가로 만들어주는 요인이 되었다.
플로베르는 『보바리 부인』으로 근대 소설에서 사실주의를 확립하고, 자연주의로 가는 길을 닦아놓았으며, 내용면에서 현실 사회, 특히 부르주아를 비난하면서도, ‘예술 지상주의자’로서 문체의 조탁과 정확한 표현을 위해 평생 노력했다.
▣ 더재미있게읽기위하여
플로베르의 대표적인 작품인 『마담 보바리』는 150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다양한 문학적 가치를 부여받아왔다. 플로베르 자신이 당시 지방지의 삼면기사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품을 썼다는 이야기처럼, 진부한 이야기에 불과한 이 작품이 현재까지도 끊임없는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담 보바리』는 플로베르가 5년의 산고 끝에 탄생한 작품이고,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 소설이다. 단 두세 줄로 요약될 수 있는 이야기에 그러한 시간과 공을 들인 플로베르의 글쓰기에 어떠한 의의를 부여할 수 있을까?
우선 플로베르가 글쓰기에서 중요시했던 형식적인 면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사랑의 이야기들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어느 정도 닮은꼴을 하고 있고, 어느 정도는 자신의 이야기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플로베르 자신이 ‘마담 보바리, 이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마담 보바리는 우리 삶의 일면을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내용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제일 먼저 샤를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소극적이지만 성실한 인물, 사랑에 있어서도 낭만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그저 그런 평범한 인물이다. 낭만적 사랑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엠마에게 그의 존재는 목석과 같을 뿐이다. 이에 반해 엠마의 경우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녀는 낭만주의 문학에 길들여진 인물이었으며, 그 소설들 속의 삶을 동경하는 여자다. 그리고, 그 환상이 자신의 삶 속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엠마는 두 명의 남자를 사랑한다. 첫사랑인 레옹은 엠마와 아주 유사한 성격이었음에도 둘 사이의 관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원해진다. 이에 반해 두 번째 남자인 로돌프는 엠마의 결핍된 욕망을 읽을 줄 알았으며, 적극적이지만 사랑의 감정을 불신하는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로돌프의 배신은 이미 예정된 것이었고, 그럴수록 엠마의 사랑은 더욱 간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레옹과 엠마의 관계에 의문이 생긴다. 레옹은 엠마가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대상, 운명처럼 다시 만나 사랑을 나누는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엠마는 그와의 관계에 권태와 환멸을 느꼈고, 레옹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불행에 처해 있을 때조차도 그녀를 외면해버린다. 그렇다면, 도대체 엠마가 꿈꾸던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엠마라는 여자는 상상 속에서 그려오던 것과 똑같은 상대를 만나 사랑에 빠졌더라도, 결국에는 만족하지 못하고 권태 속에서 방황하다가 비극적인 말로를 맞게 될 인물이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어쩌면 엠마에 대한 샤를르의 사랑이야말로 이상적인 것인지 모른다. 무미하지만 모든 것을 받아주고 이해하는 헌신적인 사랑, 믿음에 기초한 사랑이야말로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엠마라는 인물을 통해 소위 불문학에서 말하는 ‘보바리즘’이라는 용어가 탄생한다. 즉, 현실이 줄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을 원하는 사람의 비극성. 이것은 바로 낭만주의의 폐해에 대한 강한 고발이고, 상상의 세계에 대한 현실 세계의 무자비한 승리이기도 하다.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인간은 현실에서 가능한 것 이상을 꿈꾼다는 점에서 우리는 누구나 마담 보바리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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