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응은 몸에 전해온 DNA… 일본인이 갑자기 진화한 것 아니다"
일본인들은 종종 "슬프지만, 할 수 없어"라는 말을 잘 쓴다
자주 겪었기 때문에…
일본 대참사를 다룬 숱한 기사 중에서 국내 한 언론사 특파원이 쓴 르포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런 내용이다.
'아키타현의 한 호텔은 정전(停電)으로 암흑처럼 변했다. 호텔로비에 사람들은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 측이 "정전으로 저녁을 제공할 수 없다"며 긴급용으로 우동 10그릇을 가져왔다. 모두 굶주린 사람들이었다. 앞줄에서 먼저 우동그릇을 받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우동을 뒤로 돌렸다. 다른 사람들의 허기를 걱정하는 양보의 릴레이가 이어진 것이다.'
극한 상황에서 눈앞에 밥그릇이 있다. 일부 수행자들은 그 욕망을 참고 밥그릇을 뒤로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수행의 목적이 그런 것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 대다수는 수행자가 아니다. 밥그릇에 얼굴을 파묻고 일단 자신의 굶주림부터 해결할 것이다. 배가 부른 뒤에야 잠깐 정신차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껏 나는 인간을 이렇게 이해해왔다. 일본인들만 예외적인가.
후지모토 도시카즈(藤本敏和·62)씨를 만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NHK에서 아나운서와 프로듀서를 했다. 고베 대지진(1995년) 때는 현장에서 보도를 한 적이 있었다. 현재 경희대 초빙교수로 와있다.
―그 상황에서 당신 앞으로 우동그릇이 온다면 어떻게 하겠나?
“가장 필요한 사람인 노약자나 어린이에게 줬을 것이다. 이는 한국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아마 우리는 자기 입부터 생각할 것이다.
“쓰나미가 덮칠 때 한 여인이 양로원 앞을 그냥 지나쳤다. 그 안에는 할머니들이 있었다. 할머니들을 돕다가 자신도 죽게 된다. 여인은 나중에 이 사실을 고백했다. 그러면서 할머니들이 모두 죽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내 목숨이 달린 아주 위급한 상황이라면 나도 도와줬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동그릇이라면 서로 양보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그 상황에서 내 앞에 온 우동을 먹으면 어떻게 되나?
“일단 일본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일본에는 ‘세켄(世間)’이란 말이 있다. 사회의 시선이라고 할까, 늘 이를 의식하며 살고 있다. 자신의 욕망과 행동을 제약한다. 한국식으로는 눈치를 본다고 할까. 항상 주변의 공기를 읽는다. 슬픈 일이 닥쳐도 너무 과도하게 울지 않는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다.”
―왜 남의 시선을 그렇게 의식하는가? 가끔은 자신의 본능에 충실해야 하지 않는가?
“본능적으로 하면 창피하지 않은가. 인간이 본능으로만 살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저마다 그렇게 살겠다면 서로 갈등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 ‘화(和)’다.”
▲ 후지모토 도시카즈씨는“일본인들은 남들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받아왔다”고 말했다./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나는 인간의 욕망이 크게 다르다고 보진 않는다. 그럼에도 일본인이 다르다면 이는 후천적 교육의 힘인가?
“한국은 대륙에 붙어 있어 갈 데가 있다. 일본은 도망칠 수 없는 섬나라다. 그 안에서 사이좋게 지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같은 섬나라인 영국은 다르지 않은가?
“영국은 일찍 바깥으로 나갔지만, 우리는 섬 안에서 농사를 짓는 공동체를 유지해왔다. 그런 부모들로부터 이어내려온 ‘DNA’가 있는 것이다. 나는 규슈 출신으로 도쿄에서 유학했다. 나를 떠나보낼 때마다, 어머니는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도 되지만 남에게 절대 메이와쿠(迷惑·폐)를 끼쳐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폐를 끼치는 것은 나쁜 일이다.”
―살다 보면 남에게 신세를 질 수도 있다. 이는 자연스럽지 않은가?
“우리에게는 그것이 몸에 배여 있다. 가령 교실에서 선생님이 질문한다. 우리는 알고 있어도 손을 안 든다. 남들도 다 아는 것을 내가 손들면 잘난 척하는 것처럼 되기 때문이다. 이는 분위기를 깨는 것이다. 고2 때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친구가 들어왔다. 선생님이 ‘아는 사람?’ 하자, 이 친구가 손을 들었다. 그래서 왕따가 됐다. 우리 질서를 이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체 당신들과 함께 생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1980년 연세대 어학당에서 미국 학생들과 한국어를 배웠다. 선생님이 ‘모르는 것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다. 일본 학생들은 질문을 안 한다. 모르는 것이 있어도 안 묻는다. 자기는 몰라도 남들은 알고 있을 수 있다. 그걸 질문하면 남들에게 폐가 된다. 우리는 집에 가서 자기 혼자 알아본다. 그런데 미국 학생들은 자기가 모르는 걸 다 물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그건 너만 모르는 것이니 너 혼자 공부해라’며 속으로 화가 났다. 이들에게서 나쁜 인상을 받았다.”
―이번 재난 지역에서는 생수 한 통을 사려고 수퍼마켓에 줄이 길게 이어졌다. 주유소에 약간의 기름을 넣는데 1~2시간씩 기다렸다. 참을 수 없을 것 같은데 ‘폭발’하지 않는다.
“그렇게 성미가 급한가. 줄서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면 서둘 것이다. 다른 도리가 없지 않은가. 일본에는 거지가 동냥할 때도 ‘한 푼 줍쇼’ 하고 너무 안달하면 끝내 못 받는다는 속담이 있다. 그런 모습은 보기에도 안 좋을 수 있다.”
―만약 새치기를 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가?
“새치기하는 사람이 없겠지만, 만약 있다면 지탄받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때리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질서를 파괴하는 사람에 대해 벌을 줬다. 옛날 마을에서는 ‘무라하치부(村八分)’라는 말이 있었다. 공동체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 있다면 단지 불이 났을 때와 장례식 때만 도와줬다. 다른 여덟 가지에서는 왕따시켰다. 새치기하는 사람도 질서를 파괴하는 사람이니까 집단 왕따를 당할 것이다.”
―영국의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재난 속 일본인의 이런 모습에 ‘인류 정신의 진화’라고 경탄했다. 이런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이나?
“바깥에서는 감동을 느낀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 눈에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일본인들은 으레 그렇게 할 것으로 나는 생각했다.”
―인류 정신의 진화는 맞을까?
“약탈과 방화, 무질서가 일어난 것과 비교하면 진화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2차 세계대전과 일본군위안부 등 많은 나쁜 짓을 해왔지 않는가. 아주 훌륭한 민족이라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런 우리가 갑자기 ‘진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번 모습은 과거부터 쭉 계속 내려온 것이다. 일본 사람만큼 자연재해를 많이 받은 민족도 없다. 그 앞에서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우리 DNA 속에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순응과 체념이 있는 것이다.”
―쓰나미가 덮쳐 실종된 남편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무너진 폐허 속에서 찾아낸 것이다. 그 현장에서 부인은 구조대원들에게 ‘남편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내게는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었다.
“일본인들은 종종 ‘슬프지만, 뭐 할 수 없잖아’라는 말을 잘 쓴다. 자주 그렇게 겪어왔기 때문인지 모른다.”
▲ 생필품을 사기 위해 늘어선 줄 ―일본인들은 죽는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가 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죽고 난 뒤의 세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죽음은 두렵다. 하지만 인간은 다 죽어야 하니까. 빨리 죽으나 늦게 죽으나 같다고 받아들인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 같은 나라에서 구호물품이 전달 안 돼 이재민들이 추위와 굶주림에 떠는 것은 순응의 차원은 아닌 것 같다.
“쓰나미가 예상 밖에 커서 도로가 끊겨 교통수단이 없었을 것이다.”
―도로가 끊겼으면 헬기로 공수(空輸)하면 되지 않는가?
“그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위에서 뿌리는 것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고베 대지진 때도 헬리콥터로 왜 소화활동을 안 했느냐고 나중에 비판을 많이 받았다. 매뉴얼에 없었다고 했다.”
―일본은 정해놓은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매뉴얼 사회’라서, 이번에도 그것만 고수하다 신속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매뉴얼로써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그럴 경우 결단을 내리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지금 일본에서는 그런 리더가 없다. 2차대전 전범 재판 때 사형선고를 받았던 도고 시게노리 외상이 ‘왜 전쟁에 반대하지 않았느냐’는 신문에, ‘개인적으로는 반대였지만 그때 추세가 그랬다’고 답했다. 이른바 추세가 메뉴얼이다. 이는 집단이 만들어놓은 것인데 무조건 그걸 따른다는 것이다.”
―한국 같았으면 온 국민들이 벌써 우르르 몰려가 재난 구호를 했을 것이다.
“일본은 자원봉사에 아직 익숙하지 못하다. 원전(原電)과 여진 문제로 정신이 없는 면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현장에 가면 그쪽에 ‘폐’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정부에서 ‘지시’가 있으면 다 갈 것이다.”
―당신은 고베 대지진 때 현장에서 리포트를 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이번 NHK 재난방송은 인상적이었다.
“일본에서는 생방송 진행자가 지진을 느껴도 ‘스튜디오도 많이 흔들리고 있다’는 식으로 하지 않는다. ‘흔들림은 도쿄에서도 감지됐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기상청 발표가 있는 대로 전해드리겠습니다’고 한다. ‘아주’ ‘굉장히’ ‘세게’ 같은 감정이 들어가는 표현은 안 쓴다. 그건 듣는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판단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지진 강도의 객관적 수치만 말할 뿐이다.”
―그러면 실감이 덜 하고 시청률이 떨어지지 않을까, 한국의 공중파는 이를 걱정한다.
“한국 방송을 보고 있으면 무엇이 일어날지 불안하다. 오열하는 유족에게도 마이크를 들이댄다. 그 순간에는 인터뷰할 단계가 아니다. 안 들어도 그 대답은 예상되는 것이다. NHK 보도는 한국인 눈으로 보면 촌스러울지 모른다. 하지만 뉴스 보도는 재미있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40년 전 NHK에 들어갔을 때 말하는 스타일이 지금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사실을 정확하고 차분하게 전달해온 것이 방송의 신뢰를 높여왔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한국인에게서 ‘이해가 안 되는’ 점은 어떤 것인가?
“어떤 여론조사에서 한국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세다’가 나온 적 있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 젊은 여자가 감정이 격해 탁자 위를 확 휩쓸어버린다. 고함을 지르고 울부짖는다. 그런 장면을 보면 우리는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의아해진다. 전철에서 한국인들은 크게 떠들고 통화도 한다. 일본의 전철 안에서는 통화하는 사람이 없다. 한국인은 거절할 때도 상대를 별로 배려하지 않는다. ‘안 된다’ ‘못 하겠다’고 잘라버린다. 살살 거절해줬으면 좋겠는데.”
―일본인에 대해서는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표현)가 다르다고 지적한다. 소위 이중적 인간이라는 뜻이다.
“이는 공동체 유지를 위해 ‘립서비스’가 필요하다는 뜻도 된다. 직접 거절하면 인간관계가 어려워진다. 우리는 늘 ‘어렵네요, 노력해보겠습니다’고 말한다. 본인으로서는 관계를 좋게 하려고 하는 것뿐이다. 실제로는 못 해줘도 말만으로도 서비스를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해주는 것보다 낫지 않나. 그게 일본 사람들의 생각이다.”
―남의 기분을 너무 의식해야 하는 사회에 살면 ‘스트레스’가 많지 않겠나?
“일본인을 ‘텐션(tension·긴장) 민족’이라고 한다. 한국인은 화병을 내세우지만, 일본인의 국민병은 ‘견비통’이다. 아직 젊거나 여성 중에도 어깨가 결린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조선일보 글 인용)
<NHK 출신 후지모토 도시카즈 경희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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