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채우기!
믿음
이 장에서 다루게 될 주제는 ‘무조건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일신교 신앙이 아님을 우선 밝혀둔다. 그러나 신앙이라는 표현 기준이 없다면 믿음에 대한 설명은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따라서 종종 등장하는 신앙이라는 표현은 종교를 통한 개인적인 믿음을 가리키는 용어임을 전제해 둔다. 동양은 그리스도교와 전혀 다른 관점을 취한다. 이를테면 불교에 입문하는 사람들은 종교적 믿음보다는 선험적 확인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붓다’라는 스승과 ‘다르마法’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불교를 통한 모든 영적 성장은 불가능하며 붓다의 가르침 또한 무의미하다.
믿음은 모든 영역에서 확실한 효과를 보장한다. 과학자는 자신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리라는 굳은 믿음 아래 연구실로 향한다. 갈릴레이나 뉴턴 같은 학자의 경우, 이 세상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으며 인간은 분명 그것을 알아낼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들은 창조주가 만든 세상의 질서와 자연법칙을 발견하고자 했다. 만약 세상을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대상으로 생각했다면 그처럼 깊이 있는 연구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종교가 없다고 해서 우주의 선험적 질서와 법칙에 대한 믿음마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학은 진실을 열망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밝혀질 수 있다. 이것은 물론 종교적 영역에서 파생된다. 나는 신앙심이 깊지 않은 사람을 진정한 과학자로 인정할 수 없다.”
하나님의 완전한 의지와 섭리에 맡긴다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이며, 이것은 유대교와 이슬람 역시 마찬가지다. 진정한 신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자신의 삶을 받아들인다. 신에게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서야 비로소 내면의 평안을 누리게 된다. 스토아 철학자들이 ‘아파테이아Apatheia’라고 표현하는 내적 평화는 마음의 동요가 없는 고요한 영혼 상태를 이른다. 도미니크 수도회의 수사인 16세기 신학자 에크하르트는 그의 철학 사상 키워드 중 하나인 ‘겔라센하이트Gelassenheit’ 즉, ‘자아의 포기’를 설명했다. 내면의 평안을 얻으려면 ‘희망과 지적욕구 그리고 소유에 대해 초월해야 한다’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로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하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욕망을 포기함으로써 다가설 수 있는 신비의 단계에 이르지 않고는 평온한 삶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사실 우리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도 통제할 수 없다. 부부나 자식이라도 완전한 소유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이 『예언자』에 썼던 것처럼, ‘자식은 소유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일부일 뿐’이다. 직업 역시 언제 어디서 어떤 돌발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는 지뢰밭이지만 사람들은 늘 안전할 것이라는 섣부른 착각으로 살아간다. 인도의 현인들은 현실과 다투지 않고 완전하게 자신을 비우기 위해서는 ‘내려놓아야 한다’라고 설명한다. 마음을 비우고 믿음으로 채우면 갈등이 완화되고 참된 기쁨이 찾아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려놓음’은 믿음을 향한 힘찬 날갯짓이다. <“젊은 날, 아픔을 철학하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역자 강만원님, 창해>
내원암과 가을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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