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과 생각을 분리해라
나이가 많이 들었다는 건 그만큼 세상에 대한 경험을 많이 했다는 뜻이다. 그 경험들이 좋았든 나빴든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문제를 바라본다. 그런데 이 경험은 문제를 부정적으로 보게 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시각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더욱 신중해질 수 있고, 또 다른 경우의 수나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대비책을 세우는 데는 비관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지레짐작이나 기우, 불안, 비관적 전망 같은 부정적인 감정만 잔뜩 부풀려놓는다. 그래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자포자기하거나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십상이다.
최소한 인생을 40년 이상 살아온 사람이라면 생각의 단계와 걱정거리를 구분할 정도의 판단력은 가지고 있다. 다만 걱정거리를 과감하게 버리지 못할 뿐이다. 그래서 신중함을 넘어 우유부단이 되거나 결국 ‘장고 끝에 악수를 두는’ 형국을 만들기도 한다. 신중함과 생각이 많은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또한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변수까지 고려의 대상에 넣어서도 안 된다. 그러다간 불확실성에 빠져서 ‘에잇, 나도 몰라! 될 대로 되라지!’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될 대로 되라고 선언한 이상 깨끗하게 잊어버릴 수만 있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다. 하지만 자포자기는 곧 두려움을 불러온다. 단지 걱정이었던 문제가 포기를 해버리는 순간 두려움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중년에는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파장이 그 책임의 영향 하에 있는 많은 사람에게까지 미친다. 그래서 보다 신중해지기도 하지만, 신중함만큼 객관성과 냉정함도 유지해야 한다. 자신이 노력해도 안 될 것이 확실하고 달리 해결책을 마련할 수 없는 문제라면 거기까지만 확인하고 생각을 아예 접는 게 좋다. 그런데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마음을 쉽게 이기지 못한다. 이제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생각의 꼬리를 다시 붙잡고 만다. 엘리자벳 역시 이 꼬리를 붙들고 원맨쇼를 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어느 날 저녁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뒷골이 너무 당기고 현기증이 나는 거예요. 겁이 더럭 났죠.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혈압이 높아진 건가? 아니면 뇌졸중이 진행되고 있는 건가? 척추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이런 걱정을 하면서 며칠이나 잠을 설쳤어요. 사실 그렇게 걱정이 되면 바로 병원에 예약을 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혹시라도 나쁜 결과가 나올까 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걱정만 하고 있다가 어이없는 행동을 하고 말았어요.”
나중에 밝혀진 엘리자벳의 두통 원인은 복용하던 빈혈약 때문에 생긴 부작용이었다. 갱년기를 맞은 그녀는 골다공증 예방과 빈혈 치료를 위해 약을 먹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빈혈약만 바꾸면 해결되는 간단한 문제였던 것이다. 하지만 느닷없이 두통이 나타나자 엘리자벳은 두려웠다. 병원에 가면 큰 병에 걸렸다는 확진을 받게 될까 봐 겁이 난 그녀는 병원에 가는 대신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인터넷에서 접한 수많은 정보들이 하나같이 그녀가 겪었고 걱정하고 있는 증상과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엘리자벳은 이제 구체적인 병명까지 떠올릴 정도로 질병에 대한 확신을 굳혀갔다. 그녀는 자신이 뇌종양에 걸렸다는 어이없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래 걱정은 걱정에 그치지 않고 꼭 티를 내는 법이다. 걱정이 생기면 우선 마음이 약해진다. 엘리자벳 역시 불치병에 걸렸을지도 모를 자신에 대해 남편이 너무 무관심한 것이 서운했다. 매사 지나치게 비관적인 엘리자벳에 비해 남편 존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사람이었다. 존은 엘리자벳이 자신의 증상들에 대해 걱정을 한 바가지나 늘어놓자 그러면 병원에 가서 제대로 검사를 받아보자고 말했다. 남편으로선 당연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미 걱정으로 마음이 꼬여 있는 엘리자벳에겐 무심하고 무관심한 태도로만 보였다. 뇌종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남편에 대한 서운함 때문에 엘리자벳은 외동딸의 약혼식에서도 내내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우울한 태도는 딸과 사위가 될 청년 그리고 그의 부모에게 ‘사윗감이 마음에 안 들어서 저런 표정을 짓는다’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일 때문에 딸은 약혼식이 끝난 후 엄마에게 화를 냈다. 가뜩이나 마음이 약해져 있던 엘라지벳은 딸이 화를 내자 설움이 복받쳐서 자신이 뇌종양에 걸렸으며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가족들은 모두 당황했고 이튿날 그녀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의사가 가족들이 모두 있는 앞에서 내 증상은 약 부작용 때문이라고 말했을 때, 너무 창피해서 투명인간처럼 사라져버리고 싶었어요. 진작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더라면 그런 망신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그 후로 제가 몸이 아프다고만 하면 모두들 ‘상상뇌종양’일지 모르니 병원에 가보자고 놀려대요.”
중년의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얻은 지식과 경험은 현명함이란 선물을 안겨준다. 그런데 이 선물이 효력을 나타내기 위해선 우선 객관성을 가져야 한다. 객관성을 유지하려면 자신의 생각에만 매몰되지 않고 한 발 떨어져서 생각하려는 관조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걱정과 기우에 어떤 함정이 있는지를 포착할 수 있다. 관조할 수 있는 사람은 걱정과 생각의 경계선이 분명히 존재함을 안다.<“나이와 행복을 함께 초대하라”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데이비드 니븐 지음, 역자 임은경님, 명진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