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한 신은 어디에도 없다 - 대지에 뿌리를 내린 나무처럼 살아라!
니체에 따르면 예수는 자신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아들이고, 그렇기에 모든 이들은 동등하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예수는 모든 종류의 싸움을 피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증오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쳤습니다.
심지어 악에도 저항하지 말고 애초부터 저항할 능력조차 갖지 말아야 하며, 그 결과로 얻어지는 평화와 온유함 그리고 모든 사람을 형제처럼 사랑하는 상태에서 영원하고 완전한 행복을 발견하라고 설파했습니다. 즉, 예수는 완전한 행복이 내세가 아닌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본 것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라는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니체는 예수가 말하는 천국은 사람들이 사후에 가는 곳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의 특정한 상태를 가리키는 상징일 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나 ‘천국’이라는 말뿐 아니라 ‘신의 아들’,‘아버지인 신’과 같이 예수가 했던 말들도 니체가 보기에는 모두 상징에 해당합니다.
더 나아가 니체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함께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비판하면서 자신들이 잘살고 못사는 것은 모두 잘못된 사회구조 때문이라고 여기는 사회주의자들이나 무정부주의자들도 원한에 사로잡혀 있다고 보았습니다.
헤겔은 인류 역사의 초기의 사람들은 목숨을 건 인정 투쟁을 벌였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투쟁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 자들은 주인이 되고, 죽음을 두려워 예속을 택한 자들은 노예가 됩니다. 그러나 역사가 흐르면서 주인은 노예들이 가져다주는 소비물로 향락을 일삼다 보니 아무런 정신적 발전도 이루지 못한 반면에, 노예들은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여 자연과 투쟁하면서 자신의 이성적 능력과 주체적인 능력을 자각해나가기에 이릅니다.
이 과정에서 노예들은 자신을 주인과 동등한 인격이라고 생각되는데, 헤겔은 이러한 생각이 반영된 대표적인 최초의 사상 형태가 만인이 신 앞에서 평등하다고 보는 그리스도교이고, 그런 이념을 정치적으로 실현하려고 했던 것이 프랑스 혁명이라고 보았습니다. 니체는 그리스도교의 평등사상이나 그것을 계승하는 민주주의 및 사회주의 사상을 모두 원한의 산물로 여겼습니다.
니체는 종교를 크게 두 가지종류로 나누었습니다. 하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죄책감을 강요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의 힘을 강화시키고 고양시키는 종교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종교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다른 하나는 지상의 힘이나 쾌락을 죄악시하고 끊임없이 회개를 강요하는 종교입니다. 니체는 종교란 결국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생각합니다.
니체는 예수가 현실적인 자극과 고통을 피하여 내면의 평화로 도피하려고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니체는 예수의 정신은 에피쿠로스와 같은 철학자의 쾌락주의가 숭고하게 발견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에피쿠로스는 ‘어떻게 하면 마음의 평안을 획득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평생 사색한 철학자입니다. 그는 정치와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기 때문에 뜻 맞는 친구들과 함께 시골로 은둔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예수를 이렇게 파악하면서 니체는 그를 부처와 거의 동일한 인물로 보았으며, 양자가 지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동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니체와 에리히 프롬의 종교관의 공통점은 종교란 결국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고 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며, 인간을 성숙시키고 발전시키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입니다.
프롬은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다른 인간들을 돕고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의 잠재력을 실현하는데 도움이 되는 종교는 인본주의적 종교, 이러한 잠재력을 손상시키고 억압하는 종교는 권위주의적 종교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교 내에는 인본주의적 요소와 권위주의적 요소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고 봅니다. 권위주의적 요소의 예로는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천국에 간다는 식의 교리를 들 수 있습니다.
권위주의적 종교를 믿으면 믿을수록 자신들만이 절대적 진리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인간이 되며 다른 종교나 사상은 모두 허위 내지 이단이라고 배격하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며 편협한 인간이 됩니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서 인본주의적 정신을 표현하고 있는 구절들의 예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 누가 나의 어머니이고 나의 형제냐?(중략)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
(마태복음 12:48-50)
-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된 것이다.(중략)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고 하느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신다(요한1서 4:12-16)~
인본적인 종교를 믿으면 믿을수록 사람들은 사랑과 자비에 가득차고, 또한 다른 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본성을 찾도록 돕는 깊은 지혜를 갖게 됩니다. 헤리히 프롬은 이러한 인본주의적 종교의 구현자를 부처나 예수 그리고 가톨릭 신비주의자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같은 사람들에게서 찾고 있습니다.
니체는 그리스도가 믿는 신이나 불교가 숭배하는 부처를 거세된 신이자 여성화된 신으로 여깁니다.
니체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신을 反자연적으로 거세하여 선하기만 한 신으로 만드는 것은 이러한 종교에서는 전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는 우리가 생존하는 것이 반드시 관용과 호의 덕분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분노, 복수, 질투, 조소,간계,폭력,승리와 파괴의 황홀한 열정을 알지 못하는 신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모든 사람이 고난과 고통을 겪을 때 인격신에 의존하기보다는 강한 정신력을 지닌 초인이 되어 어떠한 고난과 고통도 흔연히 받아들이면서 현실을 긍정하고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기를 바랐습니다. 초인은 강한 긍지와 용기 그리고 민활한 지혜를 갖추고 있으면서 자신보다 강한 자에 대해서는 의연하고 도전적이지만 패자에 대해서는 관용과 자비를 베풀 줄 아는 자를 가리킵니다.
보라,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친다! 초인은 대지의 뜻이다.~이 대지에 성실하고 천상의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
니체는 그리스도교 못지않게 플라톤이래의 서양의 전통적인 철학 역시 생성 소멸하는 현실 세계를 가상으로 보고 그 위에 영원불변한 참된 세계가 존재한다고 보면서 사람들에게 달콤한 위안을 제공하려고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정신이 얼마나 많은 진리를 견뎌내는가. 알마나 많은 진리와 부딪힐 수 있는가? 이것이 나에게는 갈수록 더 본래적인 가치 기준이 되었다.~
니체는 전통적인 종교와 철학에 대해서 회의하고 투쟁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회의와 투쟁만이 인류를 남자답게 만들고 강하게 성장시킨다는 것입니다.
내세에 대한 환상은 인간정신으로 하여금 지상 세계에 대해 그릇된 태도를 갖게 만들었다. 그것은 각 민족의 유년기가 만들어 놓은 산물이다.~
니체는 인간의 잠재력을 믿습니다. 현실의 인간은 강인한 의지로 모든 고통과 고난을 이겨내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과업을 성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에게 소망할 때의 인간은 지극히 초라해져서, 자신을 무력한 존재로 여기면서 신에게 모든 것을 해줄 것을 간구합니다. 이 점에서 니체는 소망하고 있는 인간보다 자신의 비위를 거스르는 것은 없다고 말합니다.
니체는 우리에게 나무처럼 살 것을 요구합니다. 나무는 대지에 뿌리를 박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위를 향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천상을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고향으로 희구하지 말고 이 지상에 굳게 뿌리 내리고 지상의 삶을 긍정하면서 초인의 고귀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 유성에 살고 있는 온갖 주민들 가운데서도 내게는 수목들이야말로 가장 고귀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확실히 가장 완벽한 균형감을 표명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을 낳아준 대지 속으로 더욱 깊이깊이 빠져 들어가는 저들의 뿌리를 포기하지 않고서도 끊임없이 위를 향해 뻗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초인수업’ 나를 넘어 나를 만나다. 에서 극히 일부 발췌. 박찬국교수 지음. 21세기북스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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