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바보
명문이라고 일컬을 만한 곳에서 나는 공부했다.
내가 과연 공부를 좋아했던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공부는 나에게 알리바이를 제공했다는 점이 더 맞는 듯하다. 공부에 대해 특히 좋았던 점은, 내가 무엇보다 두려워했던 현실 세계에 들어가는 시간을 늦춰준다는 점이었다. 현실세계에서 나를 되도록 제일 멀리하는데 유리한 학과목들을 선택하는데 나는 공을 들였다.
직업이 없어도 되는 학문을 말이다. 먼저 역사부터 시작했다. 지리학이나 문헌학, 법학, 정치학, 경제학으로 연결되어, 결국에는 내가 끈질기게 거부하던 그런 일하는 직종으로 빠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문학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거기서 열정들, 사랑, 절망, 아이러니와 방종의 취미와 큰 명예를 얻는 꿈을 다 돌아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언어가 있었다. 언어는 나를 행복하게 했다.
문학의 어떤 부분은 외교 분야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의 아버지는 끈질기게 이 분야로 나를 밀어 넣으려 하였는데, 나 자신은 그것을 피하기 위해 세상 끝까지라도 도망갈 참이었다. 샤토브리앙, 모랑, 고비노 등 많은 이들이 전현직의 외교관이면서 글을 쓰는 작가들이었다. 공포감이 엄습했다. 더 먼 곳을 찾아야만 했다.
철학이 나의 흥미를 끌었다. 철학은 다른 곳, 더 높은 곳에 있어서 내게 약간 겁을 먹게 했다. 내 주변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철학에 열중하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내게는 좋아 보였다. 나는 경계심을 가지고 접근했다. 철학은 내게 많은 즐거움을 주었고, 그 아름다움으로 나를 황홀케 했으며, 희망으로 나를 취하게 했고, 깊이 감동시켰다. 세상에는 똑똑한 바보들이 있다. 내가 그런 바보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에게, 또 남들에게도 들기 시작했다.
세상이 주는 현기증
도무지 내가 무얼 해야 할지를 몰랐다. 세상은 나를 현기증 나게 했다. 아첨꾼 같은 자들에 의해서 가볍게 예외적인 존재로 치켜세워지는 젊은이들에게 내가 충고할 말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의 젊음과 그 젊음의 고뇌를 인내로 견뎌서 그것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다. 젊음은 인생자체가 그런 것처럼 불안정한 시절이며, 회복해야 할 질병이며, 부패할 식품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한순간의 걱정거리이며, 지나가는 시험거리인 것이다. 용기를 가지기를! 그것은 항상 지나가기 마련이다.
어떤 방식이로든 젊음은 몇몇 굴곡을 겪은 뒤에 결국 노화나 죽음으로 미치게 된다. 때로는 그 두 가지가 한꺼번에 오기도 한다.
커다란 즐거움
삶에서 내가 성공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세상에 경의를 표하고, 그 아름다움을 축복하고, 그것이 주는 쾌락들을 즐긴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내게 속삭이는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결국은 실패로 끝나게 되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아주 찬란하게 빛나는 영광은 사람들에게, 적어도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란 삶을 사랑하는 것,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상당히 괜찮은 일이다. 그리고 아주 버거운 일이기도 하다. 내 능력보다 더 큰 용기와 지혜를 필요로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즐거움, 커다란 즐거움은 조금 더 너머에 있다. 그 비밀과 그 수수께끼는 삶을 아주 재미있게 만든다.
타버린 재들과 같은 여정
비가 오는 날이나 한가한 날들이면 작가들의 생애에 관한 글들을 뒤적거리며 그들의 세상을 하직한 나이를 살펴볼 때가 있다. 미켈란젤로, 괴테, 위고, 톨스토이 같은 아주 훌륭한 작가들은 운 좋게도 늙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단테, 셰익스피어, 발자크, 보들레르 등은 혼신의 열정을 쏟다 쉰 살 무릅 죽음을 맞이하였다. 아주 일찍이 세상을 등졌다. 뒤 벨레는 서른 일곱에, 파스칼은 서른 아홉에 세상을 떠났다.
내가 서른 살 이전에 죽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생의 막이 내려졌을 것이다. 나의 경우 더 오래 살았기 때문에 더 많은 책들을 썼다. 사라지지 않고 버티고 존재했다는 단지 그 이유만으로 나는 서서히 약간은 신비한 방식으로 야심 많은 도제에서 존경받는 스승의 신분으로, 다른 말로 하면 머저리에서 늙은 머저리로 변하였다.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면서 내가 걸어온 타버린 재들과 같은 여정을 자부심을 가지고 헤아릴 수 있다. 어쩌면 타는 불과 같은 여정이기도 하다. 그건 내가 살았기 때문이다. 또한 타버린 재들과 같은 여정이기도 하다. 그건 내가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 왕국들
아! 솔직히 정말 어렵다. 하여튼 이렇게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세 왕국에 살고 있는데, 우주라는 이름으로서는 그 세 왕국들이 단 하나의 왕국이 된다. 그 왕국들은 공간의 왕국과 시간의 왕국과 사유의 왕국들이다.
마술의 붓이 공간 속에 펼쳐져 있는 사물들과 그 공간자체와 존재의 사유위에 우리가 시간이라고 부르는 미세한 유약을 바른다. 시간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없다. 영원과 무가 있을 뿐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들은 시간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 것이고, 죽은 자는 시간 너머로 나가게 된 것이다.
신이 있다면 그는 시간 너머에 있다. 시간을 떠나서 영원한 무 이외의 어떤 존재가 있다면 우리는 그 존재를 신이라 부른다. 현재는 스스로 계속해서 사라지는 걸 모든 사람이 다 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현재 속에서 살아간다.
사후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사후에 뭔가가 있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에 대한 모든 논쟁은 헛되다. 비밀은 잘 지켜지고 있다.
신은 길가의 돌보다, 멀리 있는 성운의 별보다 내게는 더 가까운 존재이다. 곧 사라져 버릴 이 세상이라는 꿈속에서 또 하나의 다른 세계를 향하는 꿈과 희망을 준다는 면에서 그러하다.
우리의 과거가 끝까지 다 채워져서 더 이상 미래가 있을 수 없을 때 죽음이 오는 것을 안다. 그는 시간은 지나간다는 것을 안다. 그는 어제는 여기에 없고, 내일은 아직 여기에 없으며, 현재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살아있는 것이 행복하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장 도르메송, 김은경님 옮김,동문선 출판>
* 장 도르메송 : 1925년 좌파 정부의 대사직을 역임한 아버지와 부르조아 가문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교육을 받았고, 고등사범학교에 입학, 철학사 학위 취득, 교수자격시험 합격 등 일찍부터 명석한 엘리트 코스 자격증을 취득한다. 유네스코 관료로 일하면서 글쓰기 함. 1971년 <제국의 영광>으로 프랑스 학술원 대상 타이틀을 거머쥔다. 1974년 학술원 회원으로 등극, 2003년<살아있는 것이 행복하다>는 작가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고, 그의 죽음을 미리 느껴 보게까지 한다.<세계의 창조>등 20여권에 달하는 책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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