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우는 이유는 아기의 뇌에 아무런 교육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는 새로운 뇌에 빛, 소리, 냄새, 촉감 그리고 모든 신호들이 쓰나미처럼 밀려드니 아기는 그게 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우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이 문제가 거꾸로 적용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청개구리 소리를 들었다고 하자. 청개구리가 울긴 우는데 예전만큼 소리가 크지 않다.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게 들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청력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나의 뇌도 분명히 쇠퇴하고 있다. 보청기를 꼈을 때는 아주 고음의 새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와! 그런 새소리를 들었던 게 언제였던가!
나는 인간이 50대는 되어야 비로소 나이가 들기 시작한 거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노화는 당신이 낳은 아이들이 적어도 50세는 되었을 때 시작한다. 진정한 노화가 시작되면 청력이 떨어지고 시력이나 기억력도 감퇴하기 시작한다. 외모도 에전과 달라진다. 당신은 더 이상 중요한 존재가 아니고, 오히려 사회의 짐이 된다.
시인인 하워드 넬슨은 이렇게 썼다.“오늘 카누 캠핑하러 감. 아이 둘(49세, 45세)과 손자 셋과 함께. 내가 이 탐험대의 대장일까요? 나는 지금 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늙은이로 변신 중입니다.”
세상을 조금 더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지옥은 지구 중심이 아니면 있을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천국은 ‘올라가는’ 곳이고 지옥은 ‘내려가야’하는 곳이다. 게다가 지구의 핵은 항상 불타고 있다고 배웠는데, 우리는 어떻게 거기로 가야 한단 말인가? 무슨 터널 같은 게 있나? 터널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래서 나는 지옥은 없다고 믿게 되었고, 죽음이 아주 덜 끔찍하게 느껴졌다.
이제 나는 죽음을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설령 그게 의식이 있는 생명체의 삶이 아니라도 말이다. 내 몸의 분자 중 몇 개는 무덤 근처 식물의 씨앗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 씨앗들을 쥐가 먹고, 그 쥐는 또 여우가 잡아먹을 것이다.
죽음을 딱히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론 천국에 간다고 믿는 게 훨씬 낫고 그게 훨씬 더 낙관적인 생각이지만, 어쨌든 결과는 같으니 아무 상관없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때가 되면 올 것인데, 무슨 걱정을 하겠는가?
자연세계에서는 늙어서 죽는 동물은 거의 없다. 모두 싸우다 죽거나 자기보다 강한 포식자에 먹히거나, 먹을 게 충분치 않아서 굶어 죽는다.
성공적인 노년을 맞기 위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원칙을 말해보려 한다.
첫 번째는 ‘건강을 유지하라’다. 술을 많이 마시지 말고, 담배도 많이 피우지 말자. 운동을 열심히 하고, 제대로 요리된 옳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
두 번째 제안은 ‘무엇인가를 하라’다 만약 당신이 은퇴를 했다면, 어느 대낮에 우두커니 텔레비전 앞에 앉아 저 광고는 뭘 팔려는 건지 이해하려고 애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은퇴가 기회인 사람도 있다. 우선 당신은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노숙자 쉼터나 교회, 병원에서 당신보다 어려운 처지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는 봉사를 해도 된다. 아니면 집에 있으면서 채소밭을 일 굴 수도 있다. 어느 연구에 따르면, 은퇴 후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행복한 여생을 보낸다고 한다.
세 번째 제안은 ‘고립되지 말라’다. 인간은 멋지고 재미있는 유인원으로, 모두 사회적 동물로 태어났다.
나처럼 남편이 없는 여자는 노년의 시간을 어쩔 수 없이 혼자 지내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항상 텔레비전을 켜둔다. 그러면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또한 개 두 마리와 고양이 세 마리도 함께 키운다. 모두 같은 침대에서 잠이 든다. 따뜻한 몸뚱이를 서로에게 꼭 붙이고, 모두 행복해진다.
그럼에도 아침에 일어나면 종종 우울해질 때도 있다. 물론 이런 우울함도 서재에 나가면 거의 희석되지만 말이다. 나는 아들네 가족이 길 건너편에 산다는 게 참 감사하다.
혼자인 삶이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정리가 안 된 집이 자연히 그 사람의 생태계가 되고, 그러면 아무도 방문하려고 하지 않으니, 거의 하루 종일 혼자 지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우울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강력한 사회적 관계가 중요하다. ‘관계’는 거의 모든 종이 생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요충분조건이기 때문이다. 루가복음 6장 31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우리가 황금률이라 부르는 이 행위 규범은 그리스도교도가 이웃에게 해야 할 도리를 요약한 것으로, 기본적인 윤리 원칙을 말하고 있다. 이런 강한 관계가 없다면 모든 게 잘못될 수도 있다. 소외는 사회적 동물에게 고통스러운 것이다.
사랑은 이제 막 빠져들기 시작할 때와 아주 단단하게 결속된 관계가 되었을 때 완전히 달라진다. 사랑을 시작할 때는 나와 또 다른 개인이 필요하지만 사랑이 단단해지면 두 사람이 하나로 되어갈 것이다.
내가 동물을 사랑하는 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심성이다. 나는 나의 사랑스런 반려 견을 보고 이것을 깨달았다. 그 개는 ‘펄’이라는 호주산 셰퍼드다. 내가 샤워를 하면 펄은 샤워 커튼 옆에서 나를 기다렸다. 하루 종일 내 옆에 붙어 있었고, 밤에도 내 침대 옆에서 내게 꼭 붙어 잠을 잤다. 펄은 2010년에 죽었다. 치료 불가능한 암에 걸려 안락사를 시킬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하루도 펄이 생각나지 않은 날이 없다.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게 느끼지 못하면서 반려 견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잘못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백 번 이해한다 해도 내가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인간은 행동하는 방식을 바꿀 수는 있지만 감정까지 바꿀 수는 없다. 내 곁을 떠나간 많은 이들이 나와 똑같은 사람이었지만, 펄은 내 손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남편은 2015년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 둘 다 여든세 살이었고 , 결혼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였다. 남편은 루게릭병으로 알려진 근위축성측색경화증으로 사망했다. 나는 집중도 잘 되지 않았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내가 죽으면 남편과 함께 있을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르면서 내 노화는 더욱 심해졌다. 자동차 열쇠는 거의 매순간 잃어버렸다. 안경을 잃어버리니 삶이 더 힘들어졌다. 정신과의사인 내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네가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도 상관없어. 하지만 그 물건을 왜 찾고 있는지는 기억해야 해.” 뭔가를 왜 찾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는 그 물건을 애써 찾으려고 하지 않았고, 이런 방식이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계절이 한 바퀴 돈 다음에 코트를 입으려다 열쇠를 다시 찾은 경우도 있다.
샤워하는 방법을 바꾸었다. 나는 이제 바로 서서 샤워하지 않고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선다. 그럼 샤워하다가 뇌졸중이 와도 벽에 기댄 채 쓰러져 바닥에 주저앉게 될 테니, 앞으로 넘어져 이마를 깨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왕년에 남편도 들어 올린 적도 있다. 지금은 5킬로그램도 안 되는 물건을 들 때도 약간 머뭇거리게 된다. 예전에 읽었던 아브람 콜리에르의 <노년 : 최고의 나이>라는 책이 떠오른다. 나는 ‘최고’라는 말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대신 이런 제목이 낫지 않을까? <노년은 좋다, 문제를 잘 해결할 수만 있다면>이라고 말이다.
<‘내가 살아야 할 생을 잘 살아서 기쁘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엘리자베스 M. 토마스 지음, 최유나 님 옮김,홍익출판사> * 엘리자베스 M. 토마스 :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나 스미스여대와 래드클리프대에서 영문학과 인류학 전공했다.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으로 이주하여 원시상태에 머물러 있는 그곳 사람들의 삶을 연구했다. <세상의 모든 딸들>,<개들의 숨겨진 삶>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지리산 중산리 계곡
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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