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채소장수

[중산] 2020. 12. 30. 23:08

채소장수 크랑크빌은 손수레를 끌며 “양배추, 당근, 순무 사려!” 하고 외치면서 마을을 돌아다녔다. 또 부추를 가지고 있을 때는 “싱싱한 아스파라가스 있어요!”하고 외쳤다. 부추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아스파라가스 대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10월 20일 오후, 몽마르트 거리를 내려가는데, 마담 바야르라고 하는 구둣가게 마누라가 가게에서 뛰어나오더니 수레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멸시하는 듯한 표정으로 부추를 한 단 집어 들며 말했다.

 

“부추가 별로 좋지 않은데, 한 단에 얼마유?”

“15수(프랑스 동전, 20분의1프랑)예요, 아주머니. 이 보다 좋은 부추는 구경하지 못하실 걸요.”

“이 따위 부추가 한 단에 15수나 한다고?”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얼굴을 찌푸리며 부추를 손수레 속에 던져 버렸다.

 

이때 64번이라는 번호를 단 순경이 다가와서 크랑크빌에게 말했다. “어이 비켜요, 비켜!”

크랑크빌은 벌써 만 50년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손수레를 끌고 다니고 있었다. 그는 순경의 명령이 지극히 당연하고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 명령을 지킬 양으로 구둣가게 마누라에게 빨리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고 말했다. “다시 한 번 처음부터 골라봐야겠어요.” 구둣가게 마누라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14수에 줘요. 그거면 충분하지 뭘, 금방 가게에 가서 가지고 올게, 지금은 가진 게 없으니까.” 이렇게 말하더니 여자는 부추를 안고, 방금 어린애를 안은 여자 손님이 들어간 가게로 돌아갔다. 그러는 사이 구둣가게 마누라는 자기 가게에서 태어난 지 1년 반쯤 된 아기 발에 맞는 하늘색 구두를 고르고 있었다. 여자 손님은 몹시 서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부추 다발은 탁자 위에 느긋하게 누워 있었다.

 

그러자 64번 순경이 다시 크랑크빌에게 말했다. “어서 가지 못해?” “돈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서∙∙∙∙∙∙,”라고 크랑크빌은 대답했다.

“누가 아니랬어? 어서 가기나 하란 말이야!” 순경이 엄격하게 말했다.

50년이란 세월을 손수레를 끌며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던 크랑크빌은 권력에 복종할 줄 알고 있었다. 그는 14수라는 돈을 받아야 하는 자신의 권리에 지나치게 집착해서, 손수레를 끌고 가야한다는 의무를 소홀히 했다.

 

“빨리 가라고 말하고 있는 게 들리지 않나?” 그러자 크랑크빌로서는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는 이유를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 “아니 여보시우 순경 양반! 돈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러자 순경이 말했다.

“아하, 그렇다면 ‘공무집행 방해죄’로 끌려가고 싶다는 얘긴가? 진작 그렇게 말할 것이지.”

그러는 동안 호기심에 끌린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이 말다툼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자 순경은 구경꾼들이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오로지 자기의 권력을 보여주는 것만 생각했다. “좋아” 순경은 호주머니에서 지저분한 수첩과 몽당연필을 꺼냈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머리털을 쥐어뜯어면서 소리를 질렀다.

“돈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고 있잖아! 이건 무슨 놈의 날벼락이람! 원 이렇게 까지 재수가 사나워서야! 오 이 일을 어쩐다지!” 반항보다는 자포자기에서 나온 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64번 순경은, 채소장수의 이 같은 말은 자신을 모욕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리에서는 거의 의례적인 말이 되어버린 ‘망할 놈의 암소야!’(파리의 도둑들 사이의 은어로 순경을 암소라고 부르고 있었다) 라는 말과 동의어로 생각하고 있던 그에게는, 그 죄인의 말이 완전히 그 모욕적인 말로 들리고 만 것이다.

“뭐라고! 나에게 ‘망할 놈의 암소야!‘라고 말했겠다. 좋아 따라와.” 이 느닷없는 사건을 가게 점원들과 골목 개구쟁이들은 웃음소리로 화답했다. 그러나 이때 구경꾼들을 헤치고, 높다란 모자를 쓰고 온통 검은 옷을 입은 한 노인이 나섰다. 그는 순경에게 다가가 나직하고 점잖은, 그러나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잘못 알고 있소. 이 사람은 당신을 모욕한 게 아니오.”

“남의 일에 참견할 것 없습니다.”

순경은 상대방이 좋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위협적인 말투만은 자제했다.

노인은 매우 차분하고 겸손한 태도로 자신의 의견을 되풀이해서 말했다. 그러자 순경은 노인에게, 그렇다면 서장에게 가서 그렇게 설명하라고 말했다. 노인은 병원원장이자 도뇌르 훈장 수여자인 마티에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그때 크랑크빌이 다시 소리쳤다. “그러니까 내가 ‘망할 놈의 암소야! 라고 말했다고? 어이구. 나 참!” 낯선 노인은 순경이 절대로 모욕당한 것이 아니며, 순경이 그저 잘못 들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크랑크빌은 여전히 풀려나지 못한 채 경찰서 안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 마차에 실려 그는 미결수 감옥으로 보내졌다. 사흘째 되는 날 그에게 레메를이라고 하는 법조계에서 가장 젊은 변호사가 찾아왔다. 그의 변호사는 늙은 채소장수가 하는 모든 말에 미심쩍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아, 예! 하지만 조서에 그런 말은 하나도 적혀 있지 않은데요.”“있는 그대로 모두 자백하는 게 당신을 위해서도 좋을 겁니다. 내 생각에 영감님처럼 모든 걸 부인하는 건 오히려 불리해요.” 브리시 재판장은 크랑크빌의 신문에 꼭 6분을 소비했다. 그러나 크랑크빌은 논리적으로 말하는 데 익숙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가 침묵을 고수하는 바람에 재판장 자신이 답변까지 떠맡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와 같은 답변은 피고의 유죄를 확정짓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피고는 “망할 놈의 암소야!”라고 말한 것을 시인하는 거군!”

“순경 나리가 “망할 놈의 암소야!”라고 말했기 때문에 저도 “망할 놈의 암소야!”라고 말한 겁니다요. 그러니까 그때 처음으로 나도 “망할 놈의 암소야!”라고 말한 거지요.“

“그럼 피고는 경관이 먼저 그런 말을 입에 담았다고 주장하는 건가?” 크랑크빌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부분을 설명하는 것이 그에게는 너무나 힘겨운 일이었다. “피고는 항변하지 않는군. 당연할 테지.”재판장이 말했다.

 

한편 변호인 측 증인으로써 구둣가게 마누라, 목격자인 마타에 박사이다. 구둣가게 마누라는 자기는 아무것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다고 기묘한 진술을 했다. 목격자 마타에 박사는 “그를 모욕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사실대로 말했다.

“마트로 순경, 자네가 피고를 체포했을 때 여기 계신 마티에 박사라는 분이 자네가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지 않았나?”

“이 분은 저를 모욕했습니다, 재판장님.”

“무슨 말을 했는데?”

“망할 놈의 암소야!”라고 말했습니다.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법정 안을 가득 메웠다. 재판장은 당황한 투로 무례한 태도가 되풀이 될 경우 전원 방청을 금지하겠다고 경고했다.

 

법정이 다시 조용해지자 레메를 변호사가 일어섰다. 그는 자신의 변론을 먼저 경찰관에 대한 찬사로부터 시작했다. “그들은 쥐꼬리만한 봉급을 받고, 날마다 영웅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겸허한 공복들입니다. 모두 군인 출신인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병사입니다. 병사! 이 한마디로 이미 모든 것을 얘기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레메를은 그 자신도 ‘그가 일찍이 복무하는 영광을 가졌던 프랑스 군대를 모함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재판장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저는 피고 크랑크빌이 이 같은 군인 출신을 모욕한 것을 알았더라면, 여러분, 저는 절대로 그의 변호를 맡지 않았을 겁니다. 이 말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은어 사전’을 찾아보면 ‘암소 - 게으름뱅이, 빈둥거리는 자, 암소처럼 누워있기만 하고 일하려 하지 않는 사람, 또는 경찰 스파이’등으로 의미의 말을 읽게 될 것입니다. 크랑크빌은 술과 여자로 몸을 망친 채소장수의 사생아입니다. 다시 말해 유전적인 알코올 중독자로 태어난 존재입니다. 지난 60년 동안의 가난 때문에 찌들어버린 이 가련한 모습을 보신다면, 여러분도 반드시 그가 책임을 물어 처벌할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실 것입니다.”

 

그러자 재판장이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판결문을 읽었다. 제롬 크랑크빌을 2주일간의 금고형과 50프랑의 벌금형에 처한다는 내용이었다. 법정은 마트로 순경의 증언을 신뢰한 것이다.

“나리! 나리! 아, 나리!”늙은 채소장수는 한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2주일 전까지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그 양반들은 말이 너무 빨라요. 말들은 잘 하는데 너무 빨리 씨부렁거려서 도무지 무슨 얘긴지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원!”

 

다시 감옥에 들어간 크랑크빌은 멍하니 벽에 고정된 걸상에 걸터앉았다. 법정은 그 장엄한 형식으로 그들의 약점을 은폐했다. 그런 엄숙한 의식 속에 뭔가 결점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자기가 ‘망할 놈의 암소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런 불경한 말을 입에 담았다는 죄로 2주일의 금고형을 당하고 보니, 그의 뇌리에는 모든 것이 일종의 장엄한 신비, 경건한 신자들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따라하는 교리 같은 것, 요컨대 장엄한 동시에 무서운 수수께끼로 찬 계시로 느껴졌다.

 

이 가련한 늙은이는 마치 교리 문답서를 배우고 있는 어린아이가 이브의 죄를 자신의 죄로 생각하듯, 자신도 신비로운 작용에 의해 그 64번 경관을 모욕하는 죄를 범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자기를 감방에 가두면서 “너는 망할 놈의 암소야!”라고 말했어“라고 했으니 ! 그렇다면 틀림없이 자기도 실제로 뭔가 신비에 찬, 뭔가 전혀 알 수 없는 방법으로 그 말을 외친 것이리라.

 

그는 어느새 초자연의 세계에 이끌려서 재판이라는 것이 그의 눈에 일종의 운명적인 계시처럼 여겨졌다. 자신의 죄에 대해 명확한 관념을 가질 수 없었던 그에게는 형벌에 대한 관념은 그 이상으로 알쏭달쏭한 것이었다.

감옥에서 나오자 크랑크빌은 다시 전처럼 손수레를 끌며 몽마르트 거리를 ‘양배추, 당근, 부추 사려!“라고 외치면서 돌아다녔다. 그는 자기가 감옥에 들어간 것을 자랑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크랑크빌 영감, 무슨 일이라도 있었수? 꼬박 3주일이나 통 얼굴을 보지 못했으니 말이우. 병이라도 앓은 건가, 안색이 좋지 않구려.”

“그동안 호강 좀 하느라구요, 아주머니.” 늙은 채소장수가 말했다.

얼마 안 가 그는 단골 아낙들이 이상한 눈길로 자신을 쳐다보기 시작한 것을 알아챘다. 몽마르트의 모든 사람이 크랑크빌이 감옥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 아무도 그를 아는 척하지 않게 되었다.

 

점심때쯤 그는 큰 단골 고객인 마담 로르를 보았다. 그녀는 마르탱이라는 소년의 손수레 위에 몸을 구부리고 큼직한 양배추를 만지락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크랑크빌은 부아가 났다. 그는 자신의 손수레로 마르탱 소년의 손수레를 밀치면서 서운한 듯이 마담 로르에게 말했다.

“아주머니까지 저를 버리시다니, 이거 너무 하시는 군요.”

그러나 마담 로르는 화난 듯한 얼굴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늙은 채소 장수는 심한 모욕을 느끼고 있는 대로 소리를 질렀다.

“에이, 빌어먹을 여편네 같으니!”

마담 로르는 들고 있던 양배추를 떨어뜨리고 소리쳤다.

“저리 썩 꺼져, 이 영감탱이! 감옥에서 나온 주제에 행패까지 부려?”

 

크랑크빌은 평상시였으면 마담 로르의 행동에 대해 절대로 그렇게 욕하고 덤비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그는 완전히 이성을 잃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세 차례나 마담 로르에게 빌어먹을 여편네, 못돼먹은 년, 갈보라고 욕을 해댔다.

그리하여 이 한바탕 난리 때문에 크랑크빌은 결정적으로 몽마르트 교외와 리시 거리 전체 사람들의 눈밖에 나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의 성격은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조그만 일을 가지고도 오랜 단골손님에게 욕지거리를 퍼부어 댔다.

 

불행은 그를 ‘부정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이제 자신에게 한 번도 해롭게 한 적이 없는 사람들과 때로는 약한 사람들에게까지 행패를 부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한번은, 얌전한 선술집 아들 알퐁소가 감옥에서 재미가 좋았느냐고 물었다고 사정없이 따귀를 올려붙였다.

“요 못된 코흘리게 녀석! 네 애비야말로 감옥에 들어가 앉아 있는 게 어울릴 게다, 이런 독약을 팔아서 살찌우는 것보다는.” 결국 그는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법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발길질을 했다.

 

가난이, 그야말로 최악의 가난이 찾아왔다. 지금은 단돈 1수도 없는 신세가 되어 있었다. 셋방에서 쫓겨난 그는 지금은 어느 헛간의 달구지 밑에서 잔다. 꼬박 한 달동안 장마가 져서 하수가 넘치고 헛간에 물이 들었다.

쥐와 거미와 들고양이 들이 득실거리는 곳, 정부가 자기에게 살 집과 먹을 것을 주었던 옛날을 회상했다. 그는 굶주림에도 추위에도 시달리지 않는 죄수들의 처지가 부러웠다. 그러자 문득 다음과 같은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 맞아! 그 방법이 있었지!” 그는 일어나서 거리로 나왔다. 밤 11시가 지나 있었다. 어둡고 축축한 밤이었다. 등불 주위에는 이슬비가 내리는 것이 잘 보였다. 경관은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어둠보다 불빛이 좋은 건지 아니면 걷다가 지쳤는지, 그는 마치 친구 옆에 있는 것처럼 가로등 밑에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모자 때문에 더욱 커 보이는 그의 얼굴은 조용하고 슬픈 듯 했다. 그의 짧고 숱 많은 콧수염은 벌써 희끗희끗 세어가고 있다. 40살이 넘은 늙은 중사였다.

크랑크빌은 그에게 조용히 다가가서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 망할 놈의 암소야!”

그런 다음 그는 그 신성한 말의 효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조금은 경멸하는 듯 늙은이의 얼굴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크랑크빌은 잠시 당혹스러웠지만 다시 용기를 내어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나는 당신한테 ‘이 망할 놈의 암소야!’라고 말했소!”

 

오랜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경관이 입을 열었다.

“그런 말을 하면 안돼∙∙∙∙∙∙, 진심으로 충고하겠는데,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야. 당신만한 나이가 되면 조금은 생각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 자, 자, 어서 갈 길이나 가시오.”

“왜 나를 체포하지 않는 거유?” 하고 크랑크빌이 물었다.

경관은 그 젖은 모자를 쓴 머리를 내저었다.

“무례한 말을 했다고 일일이 다 잡아들이다간 그 많은 일을 언제 다하나. 또 그런 것을 해서 무엇하게!”

 

크랑크빌은 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 태도에 맥이 빠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커다란 물웅덩이 한 복판에 오랫동안 묵묵히 서 있었다. 그러나 그 자리를 떠나기 전에 그는 어쨌든 자신의 심정을 설명해 보려고 했다.

“내가 ‘이 망할 놈의 암소야!’라고 말한 것은 당신한테 하는 말이 아니었소. 또 다른 누구에게 말한 것도 아니라오. 실은 어떤 목적이 있어서 그런 말을 한 거요.”

 

“목적이 있든 없든 그런 말은 절대로 하는 게 아니오. 적지 않은 수고를 하면서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사람한테 쓸데없는 말로 모욕을 줘서는 안 돼요. ∙∙∙∙∙∙,자, 어서 가던 길이나 가시오.”

크랑크빌은 고개를 푹 숙이고 팔을 흔들면서 비가 내리는 밤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아나톨 프랑스-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 ‘아나톨 프랑스’편에서 발췌>

* 채소장사 크랑크빌은 50년 동안 길거리 노점상을 하면서 단골손님들과의 별 마찰 없이 신뢰를 쌓아가며 생계를 꾸려왔다. 누구나 자기 능력 밖의 감당하기 힘든 일이 터진 경우에는 대 혼란에 빠지게 마련이다. 그것도 법정다툼이었기에 사실이 아닌데도 자기 의도와는 상관없이 타의에 의해 부당한 판결로 이어져 억장이 무너졌다. 평소 법하고 거리가 먼 평생을 소박하게 살아온 그로서는 당연히 이런 큰 시련을 극복하기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평상심을 회복하지 못하고 비이성적인 행동들이 이어지면서 한 사람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과정을 그린 글이다.<중산>

                                                                                            간절곶 앞바다

간절곶

'독서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성시대  (0) 2021.01.03
이해인 - 송년의 시  (0) 2020.12.31
인생이란 무엇인가  (0) 2020.12.22
권위의 원천  (0) 2020.12.18
이론보다 현실  (0) 2020.12.18